< (2). 포를라스 고원의 비밀 -2 >
* * *
이안이 하린과 함께 포를라스 고원을 탐험(?)하는 동안, 로터스 길드의 수성전은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다.
이안의 예상대로, 3,4,5경기에서 절반도 넘는 전력을 써버린 폴라리스 길드.
그리고 그런 폴라리스 길드와, 이안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전력을 보존한 로터스 길드와의 싸움.
게다가 로터스 길드가 훨씬 유리할 수 밖에 없는 수성전 싸움이었으니, 아무리 용병을 고용한 폴라리스 길드라 하더라도, 비슷한 랭킹의 로터스 길드를 이길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결국 이안의 전략대로, 로터스 길드의 첫 영지전은 여섯 번째 전투를 마지막으로 로터스 길드의 승리로 결과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로서 일단 일주일은 지켰네요.”
피올란의 말에 헤르스가 기분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일주일 뒤에는 아마 군사시설도 3레벨로 올라 있을 거고, 짓고 있는 방어타워들도 대부분 완성될 테니, 더 강한 길드에서 쳐들어와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카일란에서는 한번 영지전을 치른 영지는 일주일간의 거점보호 상태로 전환 된다.
예외로 거점보호 기간 중 다른 영지를 공격한다면, 자동으로 영지의 거점보호가 풀리게 되지만, 그럴 계획은 없었으니 하는 말이었다.
“이거… 전 한 것도 없는데 이긴 것 같아서 좀 민망하네요.”
피올란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헤르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비슷한 기분이죠 뭐. 이안이 혼자 다 만들어놓은 거잖아요. 결국 전략도 이안이 짰던 대로 했구요. 그나마 피올란님은 마지막 수성전에서 광역스킬로 제법 활약하셨으니 좀 낫죠. 전 기사클래스여서 진짜 한 게 없어요.”
수성전에서 근접 클래스는 활약하기가 힘들었다.
특히 이렇게 수월하게 이기는 전투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외성이 뚫려 적의 병력들이 내부로 침입해야 근접 클래스가 전투할 기회가 생기는데, 폴라리스 길드는 병력이 얼마 남지 않아서 외성조차 넘지 못한 것이었다.
“뭐, 어쨌든. 덕분에 길드 순위도 두 개나 오르고 좋네요.”
“그러게요.”
“그런데, 일주일 거점지 보호기간이 끝나고 나면 또 다른 길드가 영지전을 걸까요?”
“음….”
피올란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헤르스가 천천히 대답했다.
“그럴 확률이 꽤 높다고 봐요. 이제 초기보다는 영지전 거는 데 다들 조심스러워 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우리 영지가 많이 탐스럽기는 하니까요.”
“그렇군요.”
“그리고 보호기간 끝날 때 쯤 이안이가 몇 군데 영지전 걸어 보자고 하던데….”
“네에?”
영지 방어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피올란은 헤르스의 말에 당황했다.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가 그럴 여력이 있을까요?”
헤르스는 어께를 으쓱 하며 대답했다.
“뭐, 결정된 건 아니고… 위험한 생각일 수 있기는 한데…. 이안이도 무슨 생각이 있으니까 한 얘기겠죠…?”
영지전에 들어간 사이에, 다른 길드에서 로터스 영지에 쳐들어오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동시에 걸려있는 서로 다른 영지전이라고 하더라도, 전투인원으로 등록되어있는 길드원들은 그 어떤 전투에도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피올란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음… 영주님만 믿죠, 우린.”
피올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헤르스도 웃으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죠. 그리고 일단 앞으로 일주일은 우리도 사냥 좀 열심히 해야겠어요. 이러다가 이안이한테 레벨 따라잡히겠네.”
그러자 피올란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헤르스님은 벌써 따라잡히신 거 아니었어요?”
헤르스가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아직… 제가 1레벨 더 높아요…. 아마도….”
피올란이 킥킥거리며 덧붙였다.
“과연….”
* * *
포를라스 고원에서 이안이 최초 발견한 던전의 이름은 ‘핏빛 통로(Bloody Way)’ 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에 걸맞게, 던전의 구조는, 단 하나의 길만으로 구불구불 이어진 기다란 통로였으며, 곳곳이 붉은 핏자국으로 물들어 있었다.
처음 던전에 진입했을 때, 조금은 공포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겁에 질렸던 하린이었지만, 오히려 전투가 시작되자 금방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일단 던전 밖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몬스터들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통로가 넓지 않아서, 오히려 필드에서 싸울 때 보다 더 안전한 사냥이 가능했다.
통로는 떡대가 둘 정도만 있으면 완벽히 막을 수 있을만큼 좁은 구조였기 때문에, 앞에서 싸우는 이안이 죽지 않는 이상 하린이 위험할 일은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안과 함께 한참을 사냥하던 하린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나저나, 이 통로 꽤 기네.”
그녀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뭐 다른 층으로 내려가거나 올라갈 수 있는 구조도 아니고, 그냥 이렇게 앞으로만 쭉 이어지나봐.”
“응. 뭐 좀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좀 밝은 곳은 안 나오나?”
이안이 그녀의 말에 대답하며 투덜거렸다.
“일단 이 통로가 끝나야 밝은 맵이 나오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몬스터나 좀 많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왜 이렇게 찔끔찔끔 나오는 거야. 경험치 두 배 먹을 때 바짝 사냥해야 하는데….”
하린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의 기준에서는 지금도 제법 하드한 사냥이었는데, 이안이 투덜대는 것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오는 것이었다.
“지금도 충분해 진성아….”
하린의 핀잔에 진성은 대꾸를 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안이 입을 열기 직전에 던전 안쪽 깊숙한 곳에서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우우-!
그것은 다름 아닌 늑대의 하울링!
심지어 라이의 그것과 매우 닮아있는 소리였다.
그렇지 않아도 으스스한 분위기에, 늑대의 하울링 소리까지 울려퍼지자 하린은 조금 겁에 질린 표정이 되었다.
“야, 네가 투덜거리니까 몬스터들이 더 생겼나봐.”
자신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안쪽을 두리번대는 하린을 보여, 이안은 피식 웃었다.
“그냥 경험치 덩어리 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해.”
이안은 자세를 잡았다.
안쪽에서 느껴지는 기척으로 봤을 때, 제법 많은 숫자의 몬스터들이 나타날 것 같았다.
“떡대야 준비!”
드륵- 드르륵-
계속 두세 마리씩 찔끔찔끔 등장하는 몬스터들 때문에 광역 스킬들을 사용하지 못했었던 이안은, 그렇지 않아도 몸이 근질거리고 있었다.
“레이크, 핀. 너희도 내가 신호주면 바로 스킬 쓸 준비 해. 알겠지?”
이안의 말에 두 소환수가 동시에 대답했다.
크르르-
꾸룩- 꾸룩-!
그리고 곧이어 어두운 동굴 안쪽에서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크릉- 크르르-!
그런데 몬스터들의 면면을 확인한 이안은 적잖이 당황했다.
“뭐야, 라이잖아?”
하린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에엑? 라이랑 같은 종이 필드에도 있는 거였어?”
몬스터들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핏빛 갈기 늑대’ 라는 이름이, 두 사람의 말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안은 하린에게 손짓하며 얘기했다.
“하린아, 이번엔 좀 조심해야겠다. 뒤쪽으로 좀 더 떨어져 있어.”
“응, 알겠어.”
이안의 말에 하린은 망설임 없이 조금 먼 곳으로 자리를 피했다.
지금까지 던전에 등장했던 예티나 아이스트롤의 경우에는 몸집이 크고 움직임이 둔해서 이안이 앞에서 막아주면 전혀 위험하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훨씬 월등한 순발력을 가진 핏빛 갈기 늑대라면 얘기가 달랐다.
게다가 숫자도 많았으니, 언제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하린을 공격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제대로 물려 치명타라도 터지면, 하린은 곧바로 회색 화면을 구경해야 할 것이었다.
‘레벨도 125 전후인데다 죄다 희귀등급 몬스터니….’
레벨 자체는 예티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등급이 한 단계 높은 것이 문제였다.
직접 소환수들을 육성시키는 중인 이안은, 등급 하나 차이가 능력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총 일곱 정도… 그리고 전투 중에 얼마든지 추가로 더 나타날 수도 있다.’
이안은 포를라스 고원으로 사냥을 온 뒤, 처음으로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안을 발견한 늑대들이 빠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떡대, 먼저 앞으로!”
떡대는 항상 하던대로 어비스 홀을 시전 할 최적의 각도를 잡기 위해 앞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이안은 마력의 구체를 교묘하게 날려 달려드는 늑대들을 통로 한쪽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했다.
“지금!”
이안이 소리치자, 떡대는 망설임 없이 양 팔을 앞으로 뻗었다.
쿠오오오-!
그리고 총 일곱 마리의 늑대들 중, 다섯 마리가 어비스 홀의 범위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핀, 레이크!”
이안이 손짓을 하자, 두 소환수의 광역 스킬도 어김없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
광역스킬들이 제대로 발동되는 것을 확인한 이안은 할리의 등에 올랐다.
“할리, 라이. 가자!”
할리를 탄 이안과 라이는, 나머지 두 늑대를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소환수 ‘할리’가 ‘바람의 수호자’ 스킬을 사용합니다.]
[소환수 ‘할리’의 민첩성이 나머지 전투능력치를 합한 수치만큼 추가로 증가합니다.]
새하얀 빛을 띤 바람의 기운이 할리와 이안을 감싸고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안은 할리를 단단히 붙들었다.
앞으로 2분간, 미친 바람처럼 움직이는 할리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캬아오-!
떨어지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준 이안은, 돌진하는 할리의 등 위에서 마력의 구체를 쏘아 대었다.
펑- 퍼펑-!
그리고 회수된 정령마력으로 연이어 전류증식을 발동시켰다.
지직- 지지직-!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할리의 위에서도 이안의 공격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늑대들에 정확히 격중한 전류증식은, 추가 타격까지 여러번 튕겨진 뒤 허공으로 사라졌다.
[‘핏빛 갈기 늑대’가 ‘마비’ 상태에 빠집니다.]
[‘전류증식’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 되었습니다.]
한편, 등 위에서 활약하는 이안에 힘입어 할리도 목표한 대상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콰드득-!
한 녀석의 어깻죽지를 잡아채는 데 성공한 할리가 거칠게 그의 목을 물어뜯었다.
[소환수 ‘할리’가 ‘핏빛 갈기 늑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핏빛 갈기 늑대’의 생명력이 8125 감소합니다.]
생명력과 방어력이 낮은 핏빛 갈기 늑대였지만, 레벨이 125나 되다보니, 몇 번의 공격으로 쉽게 죽어주지는 않았다.
‘레벨이 깡패라 이건가…?’
이안은 조금 놀랐다.
모든 광역기를 전부 피하지 못한 다섯 마리의 늑대들도 아직 숨이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이크의 브레스와 핀의 분쇄 스킬의 위력을 생각해 보면 놀라운 것이었다.
하지만 늑대들의 이름이 빠르게 점멸하는 것을 본 이안은 망설임 없이 라이에게 명령했다.
“라이, 피의 갈망!”
피의 갈망 스킬을 발동시킬 최적의 타이밍!
크릉-!
라이의 몸에서 새빨간 핏빛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소환수 ‘라이’가 ‘핏빛 갈망’ 스킬을 사용합니다.]
[소환수 ‘라이’의 공격력과 민첩성이 3분 동안 30%만큼 증가합니다.]
[소환수 ‘라이’의 움직임이 3분동안 40%만큼 빨라집니다.]
[이제부터 생명력이 30% 이하인 적을 공격할 때, ‘라이’의 모든 공격으로 인한 피해가 2회 적용됩니다.]
라이는 거침없이 늑대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떡대와 레이크, 핀도 영리하게 움직여 늑대들의 이동 경로를 차단하였다.
끼아오-!
허공에 한 차례 울부짖은 핀이 라이를 도와 엄청난 순발력으로 늑대들을 하나씩 제압했다.
[‘핏빛 갈기 늑대’를 처치했습니다. 142300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핏빛 갈기 늑대’ 로부터 4122골드를 획득합니다.]
[‘혈정 조각’을 획득합니다.]
늑대의 사체에서 ‘혈정 조각’ 이라는 처음 보는 이름의 아이템을 발견한 이안은, 호기심 어린 표정이 되었다.
‘이건 뭐지? 퀘스트 아이템 같은 건가…?’
< (2). 포를라스 고원의 비밀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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