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전장의 지배자 -4 >
“하린아, 나 다 끝났어!”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뿍뿍이는 눈 앞에 있던 미트볼을 모조리 입 안으로 집어넣어 버렸다.
뿌뿍-
그리고 하린이 재빨리 진성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진성아 왔어?”
그녀는 밝게 웃으며 이안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안의 시선이 어딘가로 고정되고 말았다.
“뿍뿍아.”
낮게 깔린 이안의목소리.
입 안 한가득 미트볼을 물고 있던 뿍뿍이는 얼음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이안은 천천히 뿍뿍이에게로 다가갔다.
“대답 안 할 거야? 뿍뿍아?”
대답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입 안 가득 찬 고깃덩어리 때문에 ‘못’ 하는 중인 뿍뿍.
뿍뿍이는 어떻게든 이안이 당도하기 전에 입 안의 미트볼을 전부 삼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한 번에 다섯 개의 미트볼을 쑤셔 넣었으니, 그게 쉬울 리가 없었다.
“우리 뿍뿍이, 점심 맛있게 먹었어?”
뿍뿍이는 마치 저승사자의 목소리라도 들은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귓가에 이안의 목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뿍뿍이는 더욱 안절부절 못했다.
그리고 이안이 바로 뒤까지 다가오자, 뿍뿍이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뿍-!
껍질 안으로 숨어버리려 한 것!
하지만 입 속에 가득 차 있는 미트볼 때문에, 안 그래도 큰 그의 머리가 껍질에 걸려 들어갈 수 없었다.
그 모양을 본 이안은 피식 웃었다.
“뭐 하냐 인마.”
뿍뿍이에게 다가온 그는 등껍질을 잡아 들고는 사정없이 양옆으로 흔들었다.
“입 안에 뭘 그렇게 잔뜩 넣어 논 거야? 설마 이 형 줄 것도 안 남기고 다 먹은거야, 뿍뿍아?”
뿍뿍이는 금방이라도 입 안에 물고 있던 미트볼들이 바닥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지만, 필사적으로 미트볼을 삼켰다.
다 삼키기만 하면, 이안으로서도 물증이 없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밖에 없으리라.
그런데 그 때.
뿍뿍이의 예측 범위 밖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안이 돌연 뿍뿍이를 내려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온 말은 뿍뿍이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음, 평소보다 뿍뿍이 무게가 한 200그램 정도 더 나가는 것 같은데… 한 다섯 알 정도 더 먹었군.”
마치 저울이라도 되는 듯, 정확한 숫자 계산!
당황한 뿍뿍이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딸꾹질이 흘러나왔다.
뿌꾹-
이안을 따라 세상으로 나온 뒤, 그의 많은 능력들을 보아온 뿍뿍이였지만, 단연코 지금보다 이안의 능력이 신비롭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
이안의 ‘신기’에 하린마저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물론 이안은 대충 찍은 것이었지만.
“뿍뿍아.”
이안이 뿍뿍이를 부르자, 어느새 모든 미트볼을 다 삼킨 뿍뿍이가 슬픈 표정으로 대답했다.
뿍….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너 다섯 개 더 먹었으니까, 5일간 매 끼마다 미트볼 한 개씩 차감이야.”
피도 눈물도 없는 이안의 심판에, 뿍뿍이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뿌뿍!
소심한 반항도 한번 해보는 뿍뿍이!
하지만 이안은 냉정했다.
“말 안들 으면 미트볼 한 개씩 더 차감한다?”
무시무시한 협박에, 뿍뿍이는 결국 풀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뿍뿍.
뿍뿍이는 억울했다.
빨리 먹느라 무슨 맛인지 느끼지도 못 하고 허겁지겁 삼켜버린 것이 너무도 후회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두알 정도만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었으리라.
그랬더라면 행복한 점심식사로 마무리되었을 것이었다.
여느 때처럼 뿍뿍이의 교육(?)을 마친 이안은 하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어디로 갈 거야 하린아?”
“어… 어! 잠깐만!”
멍한 표정으로 뿍뿍이와 이안을 보고 있던 하린은, 이안이 부르자 당황했다.
방금 전까지 아무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린은 잠시 고민을 한 뒤 대답했다.
“으음… 오늘은 노르만 산맥으로 가자.”
“노르만 산맥?”
“응!”
사실 하린이 지금 이안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오늘 이안이 하린의 채집 도우미(?) 당번인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린은 최대한 채집할 재료 많고, 루트가 긴 노르만 산맥을 골랐다.
오늘 이안의 뽕을 뽑기로 작정을 하고 나왔기 때문.
잠시 생각하는 듯, 고민하던 이안이 입을 열었다.
“하린아, 거기 말고 포를라스 고원은 어때? 그쪽에는 재료 없을까?”
“포를라스 고원이 어디더라…?”
“노르만 산맥 넘어가면 있는 고원인데, 넌 아직 안 가본 곳 일거야. 평균 몬스터 레벨이 120정도 되거든.”
그 말에 하린은 당황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에에? 그렇게 위험한 곳으로 가도 되겠어?”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괜찮아. 거기는 레벨대는 높은데, 몬스터 개체수가 좀 적은 편이라 나 혼자라도 너 지켜주는데 문제 없을 거야.”
‘지켜준다’는 말에 왠지 모를 설렘을 느낀 하린은, 더 생각하지 않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 까짓거… 가잣!”
하린의 레벨은 이제 90정도.
120레벨대 몬스터에게 잘못 걸리면 찰나지간에 게임아웃 될 수도 있었지만, 그에 대한 자각이 있기는 한지 싱글벙글하기만 한 표정이었다.
“지금 바로 갈 수 있어?”
하린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게 두 사람의 조금은 위험한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 * *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큰, 영상 공유 사이트인 YouCast.
이 유캐스트에는 정말 방대하고 다양한 영상들이 많이 올라오지만, 그 중에서도 무척이나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게임 ‘카일란’의 영상이었다.
오픈한 지 이제 일 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 카일란은 전 세계적으로 급속 확산되어,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게임이 되어버렸기 때문.
서비스 오픈한 시기가 가장 늦은 편이었던 남미 지방에서도 이미 카일란의 게임 점유율이 50%가 넘어갈 정도였으니, 정말 어마어마한 수치가 아닐 수 없었다.
“음… 요즘 좀 괜찮은 소스 어디 없나?”
유캐스트의 네임드 업로더인 소진은 원래 영상편집과 CG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프리랜서였다.
그런데 카일란을 시작한 뒤, 전문적으로 카일란의 영상들을 편집하여 유캐스트에 올리기 시작하였고, 올렸던 영상 중에 하나가 크게 대박이 터져서 아예 유캐스트 업로더로 직업을 바꾼 케이스였다.
물론 게임 중에서도 카일란 카테고리의 전문 업로더였다.
“이번 달엔 거대길드 영지전 영상들로 돈 좀 만질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괜찮은 게 몇 개 없네.”
거대 길드의 영지들이 일시에 거점보호가 풀린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소진은 거기서 나온 영상들을 편집해 올릴 생각으로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길드 순위 5위에 랭크되어있는 벨리언트 길드와도 전속계약이 되어있는 그녀는, 벨리언트 길드전의 영상을 독점으로 제공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엔 그녀가 예상했던 대로, 거대길드들이 박 터지게 싸웠기 때문에 괜찮은 영상들을 몇 개 건질 수 있었고, 그것들로 재미도 좀 봤다.
하지만 2주일 정도가 지나자 거점보호가 풀리기 이전처럼, 길드들이 전부 조용해져 버린 것.
특히 소진이 가장 원했던 거대길드 끼리의 싸움은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
어지간히 전력차이가 나지 않는 한, 공격길드가 방어길드를 이기는 것은 힘들다는 것이 며칠간의 영지전 결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김이 새 버린 그녀는 조금 눈을 낮춰 다른 영상들을 검색해 보고 있는 중이었다.
“좀 확 이슈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만한 소스 어디 없나….”
그런데 그 때.
‘영지전’ 이라는 키워드로 열심히 영상을 검색 중 이던 그녀의 눈에, 제법 시선을 끄는 제목이 들어왔다.
[카일란] 다이아 클래스 영지전(Lotus Vs Polaris) Mad Movie (1 VS 30)
2일 전
조회수 - 58291회
로터스 길드, 포를란 100레벨 던전 상위랭크 싹쓸이로 유명한 소환술사 ‘이안’ 유저의 매드무비입니다.
용맹의 전장 직관으로 찍은 개인 캠입니다.
즐감해 주세요^^
화면에 떠 있는 내용을 읽은 소진은, 조금 어이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다이아 클래스 영지전인데, 1대 30으로 어떻게 싸웠다는 거지? 혼자 30명 상대로 이긴 거면 130레벨 정도 되는 유저가 80레벨 대 정도 학살한 건가?”
하지만 ‘소환술사’라는 부분을 본 그녀는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소환술사 클래스라면, 130레벨은커녕 100레벨이 넘은 유저도 거의 없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50레벨 이하 초보들 관광하는 영상인가 보네. 요즘은 뭐 개나 소나 다 매드무비래.’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발견한 끌리는 제목이었기에,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뭐 밑져야 본전이니까 클릭이나 한 번 해볼까?’
별로 대단한 영상일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1vs30이라는 부분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오호?”
영상은 관중석에서 일반인이 찍은 것 치고는 제법 화질이나 구도가 괜찮아 보였다.
그런데 영상이 시작된 뒤, 양측 진영을 살핀 소진의 두 눈이 조금 확대되었다.
“어? 30명 몰려있는 쪽의 레벨들이 그래도 90레벨 이상이잖아?”
레벨을 공개 설정으로 해 놓은 몇몇의 유저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
다른 유저들도 딱 봐도 초보 수준의 유저들은 아니었다.
흥미가 동한 그녀는 영상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뭐지? 정말 저 전력을 혼자서 이긴다고?’
곧이어 전투가 시작되자, 홀로 진영에 서 있던 소환술사가 그의 소환수들로 보이는 몬스터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면면을 확인한 소진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대부분 처음 보는 몬스터들이었지만, 붉은 줄무늬를 가진 백호의 형상을 한 몬스터는 그녀도 알고 있는 종이었기 때문이었다.
‘저거… 할리칸 아니야?!’
북부 최상위 길드 유저들이 겨우 며칠 전에야 레이드에 성공한 영웅 등급의 보스 몬스터 할리칸.
심지어 거의 전멸 수준의 피해를 입고, 운 좋게 클리어하는 영상을 본 기억이 있었으니 그녀가 당황할 만도 한 것이었다.
보스로 등장했던 할리칸보다는 덩치가 조금 작아보였지만, 그래도 할리칸임은 분명한 외형이었다.
‘미친! 150레벨이 넘는 영웅등급 몬스터를 대체 어떻게 얻은 거지? 잡는 건 절대로 불가능할 거고….’
하지만 아무리 궁금해 한다고 해도 그녀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기 때문에, 일단 호기심은 접어두고 영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상 속에선 이안의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 우와…!”
소진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소름 돋도록 절묘한 광역 스킬들의 연계와, 소환수들의 컨트롤.
그리고 NPC 하나도 허투루 놀리지 않는 이안의 전장 지휘 능력에 절로 입이 벌어진 것.
시작부터 떡대의 어비스홀과 레이크의 브레스, 그리고 핀의 분쇄 스킬의 광역 연계 때문에 반 이상의 전력이 도륙된 채 시작된 싸움이었지만, 그 이후의 전투도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정교하고 화려했다.
‘아니, 이 영상이 왜 아직까지 묻혀 있었던 거야?’
20분 남짓 되는 영상을 끝까지 숨죽이고 시청한 소진은 서둘러 영상의 조회수를 확인해 보았다.
조회수는 겨우 5만 정도.
아주 적은 조회수라고 하기는 애매했지만, 절대 많은 조회수도 아니었다.
“이 영상 저작권 당장 사야 겠어…!”
소진은 재빨리 영상의 업로더 아이디를 클릭하여, 그의 연락처를 알아내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흥분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의 번호를 빠르게 찍어대었다.
“이건… 정말 대박이야…!”
일단 이 영상을 정말 기가 막히게 편집해서 상위권에 랭크 시킨 뒤, ‘이안’ 이라는 유저를 찾아 전속 계약을 따낼 계획이 그녀의 머릿속에 빠르게 세워졌다.
최상위권 랭커들은 이미 전속 계약이 된 회사나 전문가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후발주자로 시작한 그녀로서는 아직 1:1로 영상을 거래하는 랭커는 없었던 것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큰 수확을 얻은 그녀의 두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 * *
< (1). 전장의 지배자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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