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영지전의 서막 -3 (4권 완) >
* * *
“그러니까… 엔피씨란 말이지?”
이안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다니까? 내가 이번에 가신으로 임명한 소환술사 NPC야.”
이안은 변명(?)을 하며 하린의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뚱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어리고 예쁘고 귀여운 여자여야 하는 건데?”
이안은 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하린의 어투에서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기이한(?) 분위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거야… 저 NPC능력치가 제일 좋았으니까…?”
저절로 기어들어가는 이안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자 하린은 마음이 조금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린은 질투심을 속으로 삼키며 자기 최면을 걸기 시작했다.
‘그래, 평소에 게임만 알고, 여자에는 관심도 없던 애가 일부러 예쁜 NPC를 골랐겠어? 그냥 능력치만 보고 골랐을 거야.’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사람도 아니고 게임 속 NPC에게 질투를 느끼다니….’
더 추궁하면 정말로 게임 속 NPC에게까지 질투를 하는 속 좁은 여자친구로 비춰질 것 같았기에, 하린은 애써 미소 지었다.
“그… 런거지?”
하린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진 것을 느낀 이안의 표정도 살짝 밝아졌다.
“응, 그렇다니까!”
“알겠어. 그럼 이번엔 봐준다!”
무척이나 선심 쓰는 듯 말하는 하린을 보며, 이안은 활짝 웃었다.
물론,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뭘 봐주겠다는 건지는 알 지 못한 채로.
* * *
하린을 겨우 달래놓은 이안이 향한 곳은 차원의 마탑 이었다.
차원의 마탑에 있는 차원의 마법사 그리퍼라면 엄청나게 높은 등급을 가진 NPC임이 틀림 없었고, 그런 그를 혹시 등용할 수 있을까 해서였다.
‘아마 안 될 것 같지만… 밑져야 본전이니까.’
그리고 마탑에 도착한 이안은 그리퍼의 환대를 받았다.
“오, 이안. 오랜만일세. 내 자네의 소식은 들어 알고 있었다네.”
그리퍼의 말에 이안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무슨 소식이요?”
“무슨 소식이긴, 자네가 어엿한 남작이 되었다는 소식이지.”
이안은 당황했다.
“어, 어디서 들으셨는데요?”
그리퍼는 주름진 눈을 찡긋 하며 대답했다.
“내가 루스펠 제국 황실에 지인이 좀 있거든.”
“아… 그렇군요.”
이안은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뭐지, 그리퍼가 황실에 어떻게 지인이 있는 거지? 혹시…?’
이안은 서둘러 그리퍼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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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퍼 -
레벨 : ???
종족 : 인간
직업 : 마법사(차원의 마도사)
신분 : 백작
성격 : 호기심 많은
인재등급 : (알 수 없음)
전투능력 (펼쳐보기)
세부능력 (펼쳐보기)
보유능력
(알 수 없음)
전설을 계승하는 차원의 마도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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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키고 말았다.
‘뭐야, 레벨이 몇 이기에 ???로 표시가 되는 거야?’
이런 경우를 전에도 본 적이 있긴 했다.
‘헬라임… 그 괴물이랑 비슷한 수준인건가?’
게다가 신분은 백작이었다.
이안보다 높은 등급의 귀족인 것.
남작 주제에 백작을 가신으로 둘 수 있을 리 없었다.
이안은 영주의 인장을 꺼내려던 것을 슬쩍 안으로 집어넣었다.
“하하, 그리퍼님도 루스펠 제국의 귀족이셨군요?”
이안의 말에 그리퍼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전대 황제께서 내게 백작의 작위를 하사하신 일이 있었다네. 그 때의 인연으로 내가 루스펠 황실의 황궁마법사들에게 도움을 준 일도 종종 있었지.”
“역시… 그리퍼님은 대단한 분이셨어요.”
이안의 아부에 기분이 좋아진 그리퍼는 껄껄 웃었고, 그와 얼마간의 대화를 더 나눈 이안은 결국 가신에 대한 부분은 말도 못 건네 보고 영지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이안은 욕심을 조금 버리기로 했다.
‘나중에… 언젠가 후작이나 공작 작위까지 작위를 올리게 되면 다시 시도해 봐야겠어. 그리퍼와의 친밀도는 최상일 테니까, 그때는 잘하면 가신으로 받을 수도 있겠지.’
헬라임 수준으로 강력한 가신이라니!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벅차 올랐다.
‘명성을 빨리 더 올려야겠어.’
이안은 생각난 김에 다음 작위로 올라가기 위한 조건을 한번 확인해 보았다.
남작 다음 작위는 ‘자작’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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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 귀족 등급
현재등급 : 남작
다음등급 : 자작
승급에 소모되는 명성 : 80만
권한 : NPC 25인을 수하로 등록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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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이안은 입맛을 다셨다.
지금 이안이 보유하고 있는 명성은 90만이 조금 넘는 수준.
당장에 자작 작위로 승급할 수도 있기는 했지만, 그랬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이라고 해봐야 고작 수하로 등록할 수 있는 NPC가 5명 정도 늘어나는 수준이었다.
명성이 낮아지면 영지 NPC들의 충성도도 떨어지며, 명성으로 인한 아이템 할인 등, 여러 가지 혜택들이 줄어드는 것이었으니 지금 당장 승급시킬 이유가 전혀 없었다.
‘자작 다음이 백작이고… 그 다음이 후작, 그 다음이 공작이니 아직 멀었네.’
이안은 텅텅 비어있는 자신의 가신 목록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조금 눈에 덜 차더라도 인재양성소나 영지 내에 있는 NPC들 중에 괜찮아 보이는 녀석들로 너댓 명 정도만 더 등용하자.’
어차피 가신 등용 한계숫자는 아직 넉넉하게 남아 있었고, 작위가 올라가면 한계치가 더 늘어나는 것도 확인했다.
이안의 발걸음이 인재양성소를 향했다.
* * *
로터스 영지, 영주성에 있는 대회의실.
오랜만에 길드 수뇌부라 할 만한 인원들이 전부 회의실에 모여 있었다.
로터스 길드는 이제 인원이 꽤나 많이 늘어서 총 150명 정도의 길드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중 100명 이상이 전부 100레벨 이상의 유저들로 구성되어있었으니, 제법 강력한 전력이라 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 길드 내 최고레벨을 지키고 있는 피올란은 무려 118레벨 이었으며, 헤르스를 비롯한 몇몇이 115레벨로 그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무식한 속도로 레벨업을 한 이안도 벌써 114레벨이나 되었다.
“역시나 보호가 풀리자 마자 영지전 신청이 들어오는군요.”
피올란의 말에 헤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럴 수 밖에요. 확실히 우리 길드가 순위에 비해 좋은 영지를 차지하고 있으니… 탐내는 길드들이 많은 겁니다.”
옆에 있던 클로반도 입을 열었다.
“뭐, 하지만 충분히 예상했던 부분이고… 우리길드가 최근에 길드전을 한 적이 없어서 그렇지, 많이 강해졌잖아? 게다가 수성전인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상대는 우리랑 순위 차이도 별로 나지 않는 폴라리스 길드라고.”
“클로반님 말이 맞아요. 실제로 지금까지 벌어졌던 영지전들 중에 70% 정도는 방어진영이 승리하는 거로 끝났으니까요.”
로터스 길드의 거점보호가 풀리기 무섭게 영지전을 걸어온 것은 폴라리스길드였다.
지금의 회의는 바로 영지전의 전략을 짜기 위한 것이었다.
“혹시 폴라리스 길드 전력에 대해 좀 아는 사람 있나?”
헤르스의 물음에 카윈이 대답했다.
“음, 전에 내가 알던 지인 한분이 잠깐 폴라리스 길드에 들어갔던 적이 있는데… 뭐랄까, 거긴 우리랑 다르게 길드원이 엄청 자주 바뀌는 모양이더라고.”
“그래?”
“응. 길마랑 부길마 빼고는 수뇌부도 엄청 바뀐데. 거기 길드원 숫자가 200명 가까이 되는데, 초기 멤버는 열 명 정도 밖에 안 되는 수준이라더라.”
옆에서 듣고 있던 피올란이 물었다.
“그게 그쪽 전력을 아는 데 무슨 도움이 되죠?”
이번에는 잠자코 듣고만 있던 이안이 대답했다.
“계속 멤버가 바뀐다는 소리는, 파티플레이 숙련도가 엄청 낮을 수 밖에 없다는 얘기죠.”
“아하. 그건 그렇네.”
카윈이 동의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안형 말이 맞아요. 그것도 그렇고, 거기는 길마를 비롯한 몇몇이 강력하고 나머지 길드원들은 별 볼일 없는 구조래요. 거대길드의 후광을 등에 업으려고 골드를 기부하고 들어온 길드원들도 많다고 하더라구요.”
헤르스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그렇다면 생각보다 쉽게 이길 수도 있겠네.”
그 말에 이안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렇다고 만만히 볼 건 아니야. 어쨌든 다이아 클래스에 랭크되어 있는 길드니까. 다른 길드원들이 오합지졸이라면 그 주요 멤버의 전투력이 다이아 클래스 길드의 평균 전투력보다 월등하겠지.”
이안은 머릿속으로 열심히 전략을 구상하는 중이었다.
무난한 전력의 길드보다 오히려 이렇게 특징 있는 전력을 가진 길드를 상대하는 게 전략을 짜기 더 좋아 보였다.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최근까지 벌어진 영지전들을 쭉 보면, 대부분의 방어길드가 용맹의 전장에서의 전투를 버리는 카드로 사용하고, 수호의 전장에서 확실한 승리를 가져가기 위해 전력을 전부 집중시켰잖아?”
그 말에 회의장 안에 있던 대부분의 인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도 굵직한 영지전들은 빠짐없이 시청하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헤르스가 이안의 말을 받았다.
“그랬지. 정석적인 전략이면서, 확실히 리스크가 적은 전략이니까. 어차피 방어 진영은 수성전 포함해서 세 경기만 이기면 되는 건데, 쓸데없이 용맹의 전장에 힘을 뺄 필요가 없지.”
헤르스의 말처럼, 어떤 영지전에선 방어길드 측에서 첫 세 경기를 기권 수준으로 넘겨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대놓고 수호의 전장에 올인 하는 것이다.
피올란이 말했다.
“저희도 결국 이런 전략을 쓰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래. 유리한 수성전에 전력을 집중시키는 게 훨씬 현명한 선택 아니겠어?”
대부분이 동조하는 분위기였지만, 이안은 다르게 생각했다.
이안이 잠시 생각한 뒤,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걸 역으로 이용해 보면 어때?”
* * *
“정말… 이렇게 하는 거야?”
영지전에 병력등록을 하는 이안을 보며, 헤르스는 걱정되는 목소리로 물었다.
“응. 지금까지 계속 설명 했잖아. 날 믿으라고.”
이안이 씨익 웃어보였지만, 헤르스는 걱정이 가시지를 않았다.
바로 치러질 전투와 그 다음 전투까지는 출전인원을 등록해 놓고 나면 중간에 바꾸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네 전략은 확실히 일리 있고 다 좋은데….”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첫 두 경기에 유저가 너만 출전하는 건 너무 무리수 아닐까.”
“NPC 병력은 전부 투입하잖아. 괜찮아.”
“그래 봐야 숫자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레벨도 다 60대 수준인데….”
하지만 이안은 아랑곳 않고 망설임 없이 전력을 배치해 버렸다.
이미 길드원끼리의 논의는 다 끝난 상황이었다.
그것을 본 헤르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난 모르겠다. 네 생각대로 전황이 흘러가길 빌어야지.”
“걱정 마라. 내가 2승 챙겨 오마.”
이안의 예상은 이것이었다.
공격길드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방어측 길드가 용맹의 전장을 버리는 카드로 내어놓을 확률이 높으니, 최소한의 병력으로 버리는 카드들을 주워 담으려 할 것이라는 것.
아마도 공성전까지 최대한의 병력을 보존한 뒤 한 경기에 총력을 기울여 승리를 가져가려 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역이용하면 되었다.
이안은 현재 로터스 길드 최고 전력인 자신이 NPC들만 모조리 이끌고 1,2경기에 출전을 할 생각이었다.
해서 어중간한 병력으로 승리를 주워 먹으러 들어온 상대 길드의 선발대를 박살내 버리는 방식으로 카운터를 치겠다는 작전.
이 작전은 만약 성공한다면 두 경기를 가져오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1,2경기를 역으로 주워 먹고 나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대 공격길드는 제법 많은 병력을 3경기부터 투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3경기부터 세 경기를 오히려 상대에게 줘버리는 거고.’
그럼 상대 길드는 로터스 길드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고 허무하게 병력만 소모하는 것이 된다.
공격길드 입장에서는 이제 한 번만 더 패배하면 영지전에 패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의 전략을 알면서도 어중간한 병력을 내보낼 수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 첫 공성전에 모든 병력을 전부 투입하면 병력이 얼마 남지 않은 상대 길드의 공격 정도는 가볍게 막아낼 수 있으리라.
다른 길드원들도 이안의 전략을 듣고 그 치밀함에 혀를 내둘렀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도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무튼 힘내요 이안님. 이안님 말대로만 되면 정말 거저먹기 수준으로 수성할 수 있겠네요.”
“넵. 믿어주세요 피올란님.”
잠시 후, 이안의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몇 줄 떠올랐다.
[‘이안’님께서 ‘로터스’길드와 ‘폴라리스’길드의 영지전 제 1경기에 출전인원으로 설정되셨습니다.]
[정확히 20분 뒤 용맹의 전장으로 이동되오니, 그 전까지 모든 준비를 마쳐주시길 바랍니다.]
이안의 한쪽 입 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이거… 오랜만에 설레는데?’
투기장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큰 전투임과 동시에, 그 이상으로 걸려있는 것이 많은 중요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이안 자신의 어께에 가장 큰 짐이 올려져 있었다.
이안은 소환수들의 상태를 한번 점검한 뒤, 마지막으로 등용해 놓은 자신의 ‘가신’들의 상태를 한번 확인해 보았다.
이안이 등용한 가신은 총 다섯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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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리아 -
레벨 : 110 / 직업 : 소환술사 / 등급 : 영웅
- 말라임 -
레벨 : 107 / 직업 : 전사 / 등급 : 희귀
- 텐푸스 -
레벨 : 114 / 직업 : 사제 / 등급 : 일반
- 세리우스 -
레벨 : 109 / 직업 : 마법사 / 등급 : 유일
- 로르텐 -
레벨 : 110 / 직업 : 전사 / 등급 : 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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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세리우스 라는 이름의 유일등급의 인재를 하나 더 얻을 수 있었지만, 다른 가신들의 능력치는 그저 그런 수준.
그래도 다들 레벨은 제법 높은 편이었으니 큰 힘이 되어 줄 것이었다.
‘이제 소환수들 뿐만 아니라 가신들, 그리고 병사들까지 전부 다 컨트롤해야 하니까 컨트롤 난이도가 정말 높겠어.’
하지만 긴장되지는 않았다.
이안은 자신이 있었다.
가신들의 장비까지 한번 쭉 점검이 끝나자, 시스템 메시지가 다시금 떠올랐다.
[이제 1분 뒤에 용맹의 전장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모두의 걱정 어린 시선 속에서 이안의 모습이 사라졌다.
로터스 길드의 첫 영지전이 시작되었다.
< (7). 영지전의 서막 -3 (4권 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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