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명예의 전당 -3 >
“나한테 방법이 있어.”
“정말? 무슨 방법?”
“알아보니까 로터스 길드가 북부대륙에 거점지를 가지고 있더라고.”
“… 그래?”
“게다가 거점지 규모도 엄청 큰 편이야. 거의 챌린저 클래스 길드들의 거점지에 맞먹을 정도였어. 거점지 개수는 하나지만.”
밀런은 가만히 루킨의 다음 설명을 기다렸다.
그의 머릿속에도 괜찮은 그림이 떠오르는 중이었다.
“게다가 한 2주일만 있으면 거점지 보호도 풀리더라고. 북부대륙 열리고 초기에 얻은 거점지인가봐.”
“…!”
“이 정도면 꽤나 훌륭한 떡밥 아니냐?”
그들의 길드인 폴라리스 길드는 북부 원정에서 거점지를 얻지 못했었다.
그 때문에, 길드의 수뇌부가 그렇지 않아도 곧 거점지 보호가 풀리는 길드들 중 만만한 길드를 물색하고 있던 것이었다.
물론 타겟으로 물색된 길드들 중에 로터스 길드보다 약체인 길드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거점지가 무척이나 초라한 수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로터스 길드만큼 알짜배기인 거점지를 가졌으면서도 만만해 보이는 길드는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비슷한 전력의 길드끼리 싸움이라면… 수성전이 훨씬 유리하지 않겠어? 길마가 움직이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밀런의 말에 루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많이 망설이겠지. 그가 망설이지 않게 만들어야 해.”
“그럼 무슨 방법이 있어?”
루킨의 말이 이어졌다.
“용병을 부를 거야. 상위권 길드에 아는 지인이 몇 있어. 110레벨 넘는 유저들로 한 열명 정도만 부르면 되겠지. 내가 이 정도까지 지원하면 길마도 망설이지 않고 움직일 거야.”
확실히 비슷한 전력인 길드끼리의 길드전에서 110레벨이 넘는 최상위 유저 열명 정도가 추가 된다면, 힘의 저울은 확실히 기울어질 것이었다.
하지만 밀런은 여전히 탐탁치 않은 표정이었다.
“그들이 순순히 와 줄까? 제법 큰 돈을 요구할 텐데….”
“이번엔 큰 비용 안 들여도 오겠다는 사람이 많을 걸?”
“어째서?”
“영지전을 미리 경험해 보고 싶어 하는 고레벨 유저들이 많기 때문이지. 로터스 길드의 영지가 보호가 무척 빨리 풀리는 축에 속하기 때문에, 거점보호가 얼마 남지 않은 상위권 길드들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기는 제안일거야. 하물며 이길 확률이 훨씬 더 높은 영지전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충분히 그럴싸한 이야기.
밀런의 얼굴이 밝아졌다.
“확실히 그렇네. 거점보호가 며칠 안 남으면 똥줄이 탈 만한 길드들이 많을 텐데, 영지전을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나 같아도 한번 가 보고 싶겠어.”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씨익 웃었다.
이제 길드 수뇌부에 정보만 흘리면 알아서 착착 진행될 것이었다.
“좋아, 루킨. 그럼 네가 길마에게 슬쩍 정보를 흘려.”
“그럼 너는?”
“나는 로터스 길드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알아볼게.”
두 사람은 각자의 계획을 실행시키기 위해 걸음을 바삐 움직였다.
* * *
“드디어 핀이 널 키울 때가 왔구나!”
잠재력 100이 가득 찬 ‘핀’을 보며, 이안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꾸룩- 꾸룩-?
이안은 핀의 금빛 깃털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핀아, 일단 넌 여기 앉아서 구경만 해.”
이안이 자신의 어께를 톡톡 치자, 핀이 잽싸게 날아와 그의 어께에 앉았다.
‘그럼, 시작해 볼까?’
포를란 분지에서 조금 동쪽으로 이동하면, ‘포를란 산맥’ 이라는 이름의 맵이 나온다.
산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맵이기는 했지만, 거대한 기암괴석과 얼음덩이들, 그리고 만년설로 이루어져 있어서 나무 한 그루 보기 힘든 포를란 산맥.
이안이 지금 와 있는 곳이 바로 그곳 이었다.
‘역시 사냥하기 편한 저지대에는 사람이 좀 있네. 위로 올라가야겠어.’
이안은 바삐 걸음을 옮겨 산을 타기 시작했다.
중간에 100레벨이 넘는 예티들도 몇 번 만났지만, 손 쉽게 해치우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오, 저 쪽에 괜찮은 자리가 있네?’
사냥하기 적합한 지형을 발견한 이안은 눈을 빛내며 그 쪽으로 이동했다.
너댓 마리의 예티를 잡았더니 그 새 핀의 레벨이 20이 넘어 있었다.
레벨에 비해 막대한 경험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푸드득-
핀이 날갯짓을 하며 힘차게 허공으로 날아 올았다.
그것을 본 이안의 눈이 조금 커졌다.
잠깐 사이에 핀의 모습이 달라졌기 때문.
“어, 레벨이 오르면 몸집도 커지는 거였어?”
1레벨일 때는 이안의 주먹 만한 작은 몸집이었던 핀이, 잠깐 사이에 어지간한 어린아이 크기 만하게 자란 것이었다.
작았던 부리도 더 커져서, 이제 제법 맹금류의 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안은 뿌듯한 표정이 되었다.
‘크, 다 자라면 얼마나 커지려나?’
이안은 한번도 그리핀 성체를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아마 카일란의 어떤 유저라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체가 된 그리핀의 모습이 더욱 기대가 되었다.
이안은 사냥을 시작하기 전, 모든 버프스킬을 전부 사용했다.
그리고 핀을 불렀다.
“핀, 제왕의 포효!”
끼아오-!
하늘을 찢느 듯 한 커다란 핀의 울음소리와 함께, 이안의 순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소환수 ‘핀’이 제왕의 포효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10분간 반경 50m 내의 모든 아군의 민첩성이 30% 등가합니다.]
[10분간 반경 50m 내의 모든 적군의 움직임이 30% 느려집니다.]
아직 20레벨대인 핀이 북부대륙의 몬스터들과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이렇게 버프스킬 정도는 써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냥에 무척이나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이제 놀아볼까?”
이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떡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 쿵-
그러자 수 많은 아이스트롤과 가고일, 그리고 예티들이 이안을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안과 수 없이 많은 사냥을 해 온, 다른 소환수들도, 이안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알아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안의 입꼬리가 기분좋게 말려 올라갔다.
사냥의 시작이었다.
* * *
띠링-
[영지 내정건물인 ‘군사시설’(시설레벨1)이 완공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로터스 영지에서 ‘하급보병’을 훈련시킬 수 있습니다.]
[‘하급보병’을 훈련시키는 데는 하루에 5의 식량과 15골드의 재화가 필요하며, 훈련이 완료되면 사병을 해고할 때 까지 매일 2의 식량이 소모됩니다.(훈련이 완료되는 데에는 총 3일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영지에 건설된 ‘소환술사 길드’의 영향으로 ‘하급 소환병’을 훈련시킬 수 있습니다.]
[‘하급 소환병’을 훈련시키는 데는 하루에 5의 식량과 30골드의 재화가 필요하며, 훈련이 완료되면 사병을 해고할 때 까지 매일 2의 식량이 소모됩니다.(훈련이 완료되는 데에는 총 5일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한 번에 훈련시킬 수 있는 병사는 30인으로 제한됩니다.]
[현재 로터스 영지에서 최대로 보유 가능한 병력은 500명입니다.]
‘군사시설’이 완공되는 시간에 맞춰 그 앞에 와 서 있던 이안과 헤르스는, 주르륵 떠 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들을 꼼꼼히 읽었다.
“유현아, 우리 길드자원 넉넉하지?”
헤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지금까지 식량은 쓸 일이 거의 없어서 제법 많이 모였으니… 걱정할 것 없고. 재화도 이만하면 한동안은 무리 없을 것 같아. 곧 달이 바뀌면 세금도 들어올 테니까.”
“다행이네.”
이안은 소환병과 일반 보병의 정보창을 띄워놓고는 장단점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병과에 관계없이, 1레벨인 군사시설에서 훈련되는 병사들은 전부 30레벨이네.’
특이한 점은 병사들의 등급과 능력치가 일정 범위 안에서 랜덤으로 생성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이안은 본능적으로 시설 책임자로 임명된 NPC와 병사들의 능력치가 관계있음을 느꼈다.
‘역시, 인재양성소부터 먼저 짓는 게 확실히 맞는 선택이었어.’
소환병과의 병사들은 기본 전투능력은 보병들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레벨보다 5레벨 이상 높지 않은 소환수를 1~2마리씩 소환할 수 있었기 때문에 훨씬 더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었다.
완공된 군사시설의 기능들을 한 번씩 꼼꼼히 살핀 이안은 곧바로 미리 등용해놨던 인재를 책임자로 임명했다.
[인재 ‘로만’을 군사시설의 책임자로 임명합니다.]
로만은 지금 영주성 안에 있을 것이었지만, 임명 자체는 그를 꼭 불러오지 않아도 시스템 상에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시설레벨2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업그레이드 하시겠습니까?]
군사시설이 준공되는 사이 인재양성소에서 2레벨 조건에 맞는 인재를 미리 구해놓았기 때문에, 곧바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것.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업그레이드 한다.”
그러자 다시 군사시설 건물의 상태가 ‘준공’ 상태로 바뀌었다.
완공까지 남은 시간 [23:59:58]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헤르스는 혀를 내둘렀다.
“야, 진짜 딱이네. 어디서 이런 정보를 미리 다 알아 온 거야?”
이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열심히 뒤져보면 다 나오더라. 상위 길드 까페 같은데 들어가서 몰래 구경했지. 우리보다 몇 주 먼저 영지 승급한 길드 많잖아.”
헤르스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아… 그런 방법이….”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은 이안은, 로만의 정보창을 한번 확인하더니 투덜거렸다.
“그런데 시설레벨 3은 곧바로 못 올리겠네.”
“왜? 책임자 말고 새로운 조건이 필요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책임자 레벨이 부족해서.”
이안의 말에 헤르스는 책임자 ‘로만’의 레벨을 확인했다.
로만의 레벨은 95였다.
이안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헤르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레벨조건이 100이라고 그랬었지? 완공까지 하루 남았는데, 그 때까지 로만 레벨을 100까지는 못 만드니까?”
“응, 맞아. 뭐 그 전에 인재양성소에서 100레벨이 넘는 무술교관이 나와 주면 또 모르겠는데, 그럴 확률은 거의 없으니까….”
“그건 그래.”
NPC도 레벨을 올릴 수 있다.
길드파티에 함께 데려가서 사냥을 하는 방식으로 키워주면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나중에 병력도 좀 생기고, 전투 가능한 NPC도 많아지면 NPC끼리 사냥을 보낼 수도 있다고 했다.
이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거점지 보호기간이 이제 일주도 채 안 남았어. 그 전에 군사 양성소는 3레벨까지 꼭 만들어 놓고 싶은데….’
길드 거점지 등급이 ‘영지’로 승급되면서 이런 저런 복잡한 컨텐츠들이 순간적으로 많이 생겼지만, 이안과 헤르스는 하나씩 차근차근 해 나가고 있었다.
헤르스가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이제 3일 정도 있으면 거점지 보호가 하나 둘 풀리기 시작하겠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 우린 그 때 어떤 양상으로 흘러가는지 잘 봐둬야 해.”
“맞아.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거점지 주변에 카이몬 제국 소속인 길드가 별로 없다는 정도?”
‘영지’등급 부터는 루스펠 제국과 카이몬 제국 중 하나에 속하게 된다.
영주가 두 제국 중 한 곳으로부터 작위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같은 제국 소속의 영지끼리는 영지전을 걸 수가 없다.
같은 제국 소속의 영지를 공격하면, 자동으로 귀족 작위가 박탈되면서, 해당 제국의 공격을 받게 되기 때문이었다.
제국의 공격을 막아내기라도 하면 소속국가가 없는 영지가 되는 것도 가능하긴 했지만, 막아낸다는 가정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었으므로,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했다.
결론적으로 제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선, 같은 등급인 ‘제국’ 까지 길드 거점의 등급을 올려야 하는 것이었다.
무척이나 까마득한 이야기라 할 수 있었다.
“무튼, 그 때 까지 최대한 영지 방어력을 높여놔야 하고, 정보조사도 많이 해야 해. 주변에 카이몬 제국 소속의 영지가 없긴 하지만, 아예 거점지가 없는 길드에서 공격해 올 수도 있는 거니까.”
헤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아. 우리보다 순위가 높은 길드 중에서도 거점지가 없는 길드들도 있더라고.”
두 사람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하나하나 정리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충 정리가 끝나자, 이안은 레벨업을 위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의 90% 이상은 내 계획대로 되어 가고 있어.’
그는 어느새 50레벨까지 올린 핀을 생각하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한 번도 안 쓴 던전 입장기회 5번까지 전부 사용하면, 대충 70레벨 가까이 만들 수 있겠는데?’
그리고 이안의 레벨도 잘하면 110이 될 수도 있어 보였다.
전설등급답게 엄청난 속도로 강해지고 있는 핀을 생각한 이안은 기분이 좋아졌다.
이안은 헤르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야, 유현아.”
“응?”
“포를란 갈래?”
그리고 이안의 제안에 유현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유현은 입 꼬리가 귀에 걸린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콜!”
그렇게 3일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 (6). 명예의 전당 -3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