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명예의 전당 -2 >
* * *
이안과 피올란의 첫 던전클리어가 있은 후, 길드채팅창은 매일 같은 내용으로 도배되고 있었다.
[길드원 ‘이안’ 님이 접속하셨습니다.]
피올란 : 이안님, 오늘은 시간 언제 되세요? 포를란 고고 해야죠?
헤르스 : 아니, 피올란님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어제도 다섯 번 중에 두 번이나 이안이랑 들어가 놓으시고 오늘 바로 또 노리시다뇨!
피올란 : 너무하다뇨, 이안님이 저랑 들어가야 기록이 제일 잘 나오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요?!
클로반 : 아냐 이안이 오늘 나랑 같이 들어가기로 했다고. 순서 좀 지키자구.
카윈 : 하, 다들 왜 이러시나. 어제도 제가 양보 했잖아요. 오늘은 제가 두 번 이안형이랑 돌 겁니다.
하린 : 나… 나도 껴주면 안 돼?
카윈 : 누나는 아직 100레벨도 안 됐잖아. 못 들어가 아직.
하린 : ㅠ.ㅠ….
이안 : 자자… 여러분들 진정 하시고. 오늘은 저랑 한 번도 플레이 안 해보신 분부터 들어가도록 해보겠습니다.
피올란 : 너무해….
카윈 : 아… 난 세 번밖에 못 들어갔는데!
클로반 : 나도 세번이라고!
미샬 : 저… 신입 길드원인데… 손 한번 들어봐도 되나요?
이안 : 미샬님 레벨이랑 직업이…?
미샬 : 저 106레벨 화염법사요.
이안 : 콜!
미샬 : 저 클리어 경험 없는데 괜찮나요?
이안 : 넵 괜찮슴다.
피올란 : 아… 이안님 왜 그러세요. 저랑 들어가서 신기록 세우셔야죠….
이안 : 어차피 S랭크는 지금 죽었다 깨나도 안 되니까 피올란님 양보 좀 하세요. 저 내일이나 모레 쯤에 S등급 트라이 한번 할 건데 그 때 같이 들어가시죠.
피올란 : 오… S등급! 아자! 신난다!!
이안은 지금 던전에 입장이 가능한 길드원들 중 누구와 함께 입장을 해도 거의 A랭크 턱걸이는 가능한 수준이었다.
피올란과 전력을 다 해서 S랭크를 도전해 봤지만 최고 기록이 29분 수준 이었고, 25분은 정말 택도 없었다.
결국 핀을 키워서 들어가기 전까지는 S랭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그렇기에 이안은 모든 길드원들과 골고루 던전에 입장하는 중이었다.
‘이제 곧 핀의 잠재력이 100이 되니까….’
핀의 잠재력을 확인한 이안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5분 전에 돌린 훈련 스킬로 인해 핀의 잠재력은 99가 된 상황.
이제 반나절 안으로 100의 잠재력이 맞춰질 것이었다.
그 후 넉넉잡아 2일 정도 빡세게 던전을 돌고 미친 듯이 사냥을 하면 6~70레벨 정도까지는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70레벨 정도만 되도 광역스킬 딜이 레이크의 브레스 정도는 들어갈 테니까.’
물론 던전도 그냥 돌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매번 던전에 들어갈 때 마다 1초라도 클리어 타임을 줄이기 위해 갖은 방법을 써 보면서 연구도 병행하고 있었던 것.
그러다 보니 포를란 영웅의 무덤 명예의 전당에는 1위부터 10위까지 두 셋 정도의 순위를 빼 놓고는 이안의 이름이 전부 들어가 있었다.
Rank1
도전자 : 이안(Lotus길드), 피올란(Lotus길드)
Rank2
도전자 : 이안(Lotus길드), 클로반(Lotus길드)
Rank3
도전자 : 카윈(Lotus길드), 이안(Lotus길드)
Rank4
도전자 : 세무스(DarkRuna길드),초(DarkRuna길드)
Rank5
도전자 : 헤르스(Lotus길드), 이안(Lotus길드)
Rank6
도전자 : 시온(DarkRuna길드), 말콤(Titan길드)
:
:
덕분에 최근 이안은 투기장 루키리그 이후로 다시 커뮤니티에서 화제의 인물로 급부상하기 시작했으며, 로터스 길드의 인지도 또한 갑작스럽게 상승 하고 있었다.
접속하자마자 쏟아지는 러브콜 속에서 미샬과 첫 번째 트라이를 하기로 한 이안은 바삐 걸음을 옮겼다.
‘오늘 던전 입장권 5회는 지금 바로 다 써 버리고… 그 쯤이면 핀이 잠재력이 다 채워질 테니, 그 때부터 내일 오후 7시 까지는 사냥만 뛰어야 겠어.’
최대한 효율적인 계획을 세우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이안!
‘그리고 7시부터 12시까지 내일 입장권 전부 소진하고 다음날 사냥까지 뛰고 오면 핀이도 던전에서 써먹을 만 해 지겠지.’
요 며칠간 무지막지한 경험치를 쌓은 이안의 레벨은 어느새 107레벨이었다. 이안이 4레벨을 올리는 동안 가장 많이 이안과 던전에 들어간 피올란도 2레벨이나 올려 115레벨이 되었고, 카윈과 헤르스도 각각 1레벨씩 올라 103레벨, 108레벨이 되었다.
이안버스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안은 미샬을 만나 던전에 입장하기 전, 길드채팅으로 한 마디를 더 남겼다.
이안 : 미샬님 다음 순서로 들어가실 분들, 순서 미리 정해 놓으세요! 다음 분은 30분쯤 뒤에 포를란 입구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이안은 길드채팅창을 또 한 번의 대혼란 상태로 만들어 놓고는 지체 없이 던전으로 입장했다.
* * *
“어때, 어때! 오늘 메뉴는? 맛있지?!”
“응. 진짜 맛있네. 이거 이번 실기 과제로 만든 레시피야?”
“맞아. 이번 중간 과제야.”
한국대학교의 학생식당 구석.
진성과 하린은 공강 시간에 점심을 먹기 위해 나와 있었다.
메뉴는 학생식당에서 식권으로 구입한 음료수 두 잔에, 하린이 싸 온 도시락이었다.
하린은 눈을 반짝이며 진성이 맛있게 도시락을 먹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하린아 그런데 유현이는? 유현이랑 같이 오는 거 아니었어? 둘이 교양수업 같이 듣는다고 들었는데…?”
“어… 그게… 유현이는 밀린 과제가 있어서 먼저 과실 가 있는다고 그랬어.”
“아 그래? 이상하네, 난 과제 없는 거로 아는데… 내가 수업시간에 자느라 못 들었나?”
하린은 진성의 눈치 없음에, 진심으로 명치를 한 대 강하게 때려주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하지만 모처럼의 단둘이 즐기는 식사가 즐거워서 차분히 분노를 가라앉혔다.
‘캡슐 밖에서 같이 식사하는 게 이주일 만이니까… 내가 좀 참아야지. 게다가 그 날 이후로는 처음 같이 밥 먹는 건데!’
하린은 진성에게 반지를 받은 역사적인 날 이후, 진성과 사귀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고민도 많이 했지만, 진성이 자신에게 준 커플링(?)을 열심히 착용하고 다니는 걸 보고 그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
다만 진성이 어지간히 눈치 없고 쑥맥인지라 자신에게 똑 부러지게 말을 못 했을 뿐이라고 열심히 합리화 하는 중이었다.
하린은 진성을 한번 더 째려 보았다.
‘그렇다고 우리 이제 사귀는 거야? 라고 물어 볼 수도 없고….’
하린 또한 지금껏 연애를 해 본적이 없었기에 벌어진 웃지 못 할 상황이었다.
‘하아, 카일란이 충분히 현실과 다를 게 없긴 하지만… 그래도 캡슐 밖에서도 데이트 좀 해보고 싶은데….’
영지로 승급한 이후, 영주성 내에 식당이 생겼기 때문에, 전투에 나가기 전 이안은 항상 쏠쏠한 버프효과를 얻을 수 있는 하린의 음식을 먹으러 왔다.
때문에 게임 안에서는 거의 매 끼(?)를 같이 먹으며, 이안이 영주성에서 내정을 보고 있을 땐 꼭 붙어 다니는 하린이었다.
다만, 게임 밖에서는 진성의 코빼기조차 보기 힘들다는 게 문제였다.
‘아니, 진욱 교수님은 대체 얠 수업을 왜 빼 주신 거야?’
하린은 애꿎은 진욱만 속으로 탓하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해물 크림 리조또를 한 숟갈 퍼 올렸다.
“진성아 이것도 먹어봐.”
속이 통통하게 꽉 찬 새우까지 야무지게 올려서 리조또를 뜬 하린은, 숟가락을 진성의 입으로 가져갔다.
그에 진성은 흠칫 하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뺐다.
“어… 어?.”
순간 진성은 자신에게 쏠린 수 많은 시선을 느끼고는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아니, 저렇게 예쁜 애가 저런 모자라 보이는 놈이 뭐가 좋다고 만나는 거지?’
‘새우 먹다가 기도가 콱 막혀서 뒈져 버려라, 나쁜 놈!’
여기저기서 쏘아져 오는 분노의 화살!
진성은 얼떨결에 하린이 내민 수저를 입에 물었다.
후루룩-!
입안으로 퍼지는 고소한 크림과 통통한 새우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식감!
하지만 진성은 맛있게 느껴졌던 음식들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당황한 상태였다.
‘이,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린이 얜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이쯤 되니 모태솔로이자, 대마법사 꿈나무인 진성으로서도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챌 수 밖에 없었다.
‘뭘까? 내가 빨리 리조또도 먹어보고 맛있다고 해주길 바라는 건가?’
진성의 상상력이 조금씩 확장되기 시작했다.
‘설마… 내가 주방에 있던 마약미트볼 몰래 가져갔다고 시위하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처음부터 떠오르고 있었던, 하지만 너무도 비현실적이었기에(?)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하나의 가정이 결국 이안의 머릿속에 들어차게 되었다.
‘혹시… 하린이가 날 좋아하는 건가…?’
이안은 이 엄청난 난제를 풀기 위해, 유현에게 상담을 받아 보기로 결심했다.
유현또한 제대로 된 연애 경험이 없다는 점이 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딱히 유현보다 나은 인물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 * *
“밀런! 밀런! 접속했으면 이리 좀 와봐!”
“왜 그래 루킨, 나 지금 사냥하러 가야된다고.”
“아니 지금 사냥이 중요한 게 아니야! 빨리 와보라니까?”
루킨의 재촉에, 사냥 장비들을 꾸려 귀환석을 타려 했던 밀런이 귀찮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니, 뭔데 그래 대체?”
“내가 오전에 팔콘한테 메시지를 받았는데.”
“어, 뭐라는데? 영웅등급 장비라도 주웠대?”
무척이나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하는 밀런을 보며, 루킨은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이안, 그 놈의 길드가 어딘지 알아냈어!”
“이안? 길드?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루킨은 답답한 표정으로 재차 입을 열었다.
“아, 그때 제사장 퀘 피케이범 소환술사 있잖아! 루키리그에서 너랑 만났던! 기억 안나?”
거기까지 들은 순간, 밀런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유도화살을 허무하게 막아내던 거북이 등껍질의 악몽이 떠오른 것이었다.
“뭐? 그놈? 팔콘이 그놈의 길드를 찾았다고?”
“그래. 그렇다니까?”
“그놈 길드가 어딘데? 아니 대체 어떻게 찾은 건데? 그 놈 항상 정보 비공개로 하고 다녔잖아?”
루킨은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그, 요즘 핫한 북부대륙 포를란 분지 있지?”
“어, 나도 알지. 지금 거기 가고 싶어서 이렇게 광랩 하는 거 아냐. 이제 10레벨만 더 올리면 갈 수 있다고.”
“응, 거기 던전 명예의 전당에 이안 놈 이름이 올라왔는데, 보니까 길드 이름이 로터스래. 커뮤니티 통해서 확인까지 해 봤는데 놈이 확실하대.”
“커뮤니티? 거기서 확인을 어떻게 해.”
“다른 유저들이 그 명예의 전당에 올라와있는 이안이 루키리그 준우승자랑 동일인물이라고 찾아 놓은 모양이더라고.”
이 정도면 확신할 만 한 정보였다.
밀런은 이를 갈았다.
“드디어, 놈을 찾을 수 있겠군. 그런데 루킨, 그 로터스 라는 길드는 순위가 어느 정도 되는데?”
루킨이 표정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게… 제법 높아. 다이아 등급 정도는 되는 모양이더라.”
“다이아 등급이면… 우리 길드랑 같은 등급이네?”
루킨과 밀런이 얼마 전에 옮겨 온 길드인 ‘폴라리스’ 길드의 순위도 로터스 길드와 마찬가지로 400위가 조금 안 되는 수준이었다.
아직 90레벨도 되지 않는 두 사람이 폴라리스 길드에 들어올 수 있던 것은, 인맥과 로비의 힘이었다.
루킨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430위 정도 되나 보더라고.”
밀런은 조금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이안의 길드가 어느 정도 상위권일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500위 안쪽인 최상위권에 속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생각보다 높잖아…? 제길. 이거 애매한데….”
전력이야 두 길드가 비슷하겠지만, 쉬이 상대할 수 있는 길드가 아닌데 그들이 부탁한다고 해서 길드의 수뇌부가 움직여줄 리 없다는 게 문제였다.
폴라리스 길드에서 그들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거의 0에 수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숨을 쉬는 밀런과는 다르게 루킨은 은근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나한테 방법이 있어.”
< (6). 명예의 전당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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