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명예의 전당 -1 >
포를란 거인의 거대한 신형이 천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쿠르릉-!
그것을 확인한 피올란이 캐스팅하던 마법을 취소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아자! 잡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경과시간이 떠 있는 메시지 창을 향했다.
[00:31:29]
남아있는 시간은 무려 18분 30초였다.
정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던전을 클리어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안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보상이 기대되는 기록이었다.
‘아마도 A등급 이겠지?’
쿵-
거인이 전부 무너져 내리자, 두 사람의 눈 앞에 던전의 클리어를 알리는 정보창이 떠올랐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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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를란 영웅의 무덤
제한 시간 - 00:50:00
클리어 시간 - 00:31:29
클리어 등급 - A
획득 경험치 - 13252000
획득 골드 - 142514골드
획득 아이템 - 포를란 영웅의 신발 조각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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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창을 확인한 피올란의 입이 쩍 벌어졌다.
“와… A등급 클리어라니…!”
겨우 A등급에 턱걸이한 것도 아니고 무척이나 여유있게 A등급을 받은 것이었다.
게다가 획득 경험치와 골드 보상은 말문이 막힐 정도로 엄청났다.
피올란은 자신이 D등급으로 클리어 했을 때의 보상을 생각하며 찬찬히 계산해 보았다.
“D등급 클리어 보상의 거의 4배 보상이네요. 진짜 엄청나네.”
놀란 것은 이안도 마찬가지였다.
고작 30분 만에 1300만이 넘는 경험치와 14만 골드를 벌어들인 것이었다.
‘이 던전만 계속 돌면 하루에 1레벨 이상도 올릴 수 있겠는데?’
하루에 5회 라는 제한이 있는 것이 아쉬웠지만, 5회 클리어만 풀로 채워도 최대 필요경험치의 80%는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보상을 대충 계산해 본 이안이 피올란을 향해 물었다.
“피올란님, 이거 아이템 조각은 몇 개 있어야 완제품으로 바뀌어요?”
피올란이 곧바로 대답했다.
“총 40조각 필요해요. 전 이안님 덕에 이번에 하나 완성하겠네요.”
A등급 클리어가 계속 가능하다면, 하루 5회 트라이로 정확히 40개를 모을 수 있는 숫자!
“깔끔하게 하루에 한 개씩 만들 수 있겠네.”
하지만 그의 말에 피올란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예요. 항상 같은 부위가 나오는게 아니니까요. 저도 이번에 완제품 만드는 게 가능했던 게, 운이 좋아서 지금까지 신발만 집중적으로 나와서 그런 거예요.”
그 말에 이안은 입맛을 다셨다.
“쩝. 그렇구나. 그래도 뭐, 계속 하다보면 금방 모이겠죠 뭐.”
“맞아요. 며칠 노가다 해서 조각 쌓이기 시작하면 결국 하루에 한 개 정도씩 계속 만들어 질 거예요.”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포를란 세트 한 부위 당 500만 골드 정도 하죠?”
“네. 계속 아이템이 풀리고 있어서 금방 시세 떨어질 것 같기는 한데… 지금 시세는 그 정도쯤 될 거예요.”
“크으, 이거 노가다 좀 해서 돈 벌어다가 길드재정에 쏟아 부어야 겠어요.”
“이안님 장비는 필요한 거 없으시구요?”
“네, 뭐 당장에 필요한 건 없어서.”
두 사람이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생각지 못한 시스템 메시지가 연속해서 추가로 떠올랐다.
띠링-
[‘포를란 영웅의 무덤’ 던전을 가장 높은 점수로 클리어 하셨습니다.]
[포를란 영웅의 무덤 던전의 ‘명예의 전당’에 등록됩니다.]
[1위에 랭크되셨습니다.]
[순위가 떨어지기 전까지 매일 3000의 명성을 획득합니다.]
두 사람의 기분이 더욱 업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 * *
“휘유, 겨우 클리어 했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림롱님. 덕분에 수월하게 클리어 한 듯 하네요.”
“에이, 별 말씀을. 두 번째 페이즈에서 셀린 님이 캐리해 주셔서 시간 겨우 맞춘 거죠.”
새하얀 빛과 함께 포를란의 2인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온 두 유저는 훈훈한 대화를 나누며 던전을 나서고 있었다.
둘의 대화가 이어졌다.
“무튼 이제 클리어 경험 생겼으니, 파티 들어가기도 수월하겠어요.”
“그러게요. 이제부턴 셀린님 안 계실 때도 트라이할 수 있겠네요.”
길드에 속해있지 않은 유저들은 커뮤니티에서 파티를 구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워낙 던전의 난이도가 높다보니, 클리어경험이 없는 유저는 끼워주지도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1회라도 클리어한 경험은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런데 림롱님은 왜 길드 안 들어가세요? 림롱님 정도 실력자면 최상위 길드도 그냥 들어가실 수 있을 텐데요.”
셀린은 109레벨의 화염계열 마법사였다.
이제 겨우 100레벨이 된 림롱보다 스펙 자체는 훨씬 좋은 수준.
하지만 림롱은 신규직업인 암살자 클래스였고, 현재 암살자 클래스 중 1위로 추정되는 유저였으니,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림롱이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워낙 솔로 플레이를 좋아해서요. 그런데 이번에 생긴 포를란 던전이 하도 효율이 좋아서 솔로플레이엔 이제 한계가 있다는 걸 슬슬 느끼고 있었어요.”
“아하….”
“조만간 계기가 생기면 길드에 들어갈 지도 모르겠네요.”
그의 말에 셀린의 눈이 반짝였다.
“혹시, 생각 있으시면 저희 길드는 어떠세요?”
그녀의 말에 림롱이 되물었다.
“어, 셀린님 길드 있으셨어요?”
“네. 비공개로 해 놔서 아마 모르셨을 거예요. 잠시만요.”
말이 끝나고 잠시 후. 셀린의 머리 위에 길드 휘장이 번쩍이며 떠올랐다.
휘장의 테두리에는 오색빛깔의 빛줄기가 휘감겨 있었다.
랭킹 100위 이내의 길드휘장에서만 볼 수 있는 표식이었다.
그것을 본 림롱이 조금 놀란 표정이 되었다.
“오, 챌린저 클래스네요? 카이저 길드라면… 10위권 길드 아니에요?”
그의 말에 셀린이 뿌듯한 표정으로 웃으며 답했다.
“맞아요. 지금은 13위에 랭크되어 있지만, 8위까지 올라갔던 적도 있었죠.”
“아하.”
셀린이 은근한 목소리로 부추겼다.
“어때요 림롱님. 생각 있으세요?”
대답을 재촉하는 그녀의 말에 림롱이 웃으며 답했다.
“네, 그 정도 길드라면 저도 감지덕지죠.”
셀린이 반색했다.
“오, 그러면 길마님께 바로 메시지 보내드릴까요?”
하지만 림롱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뇨. 일단은 마음만 받을게요. 제가 아직은 길드에 소속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아… 아쉽네요.”
“대신 길드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생기면 셀린님께 가장 먼저 연락드리도록 하죠.”
그 말에 조금 시무룩한 표정이었던 셀린이 밝게 웃었다.
“좋아요! 약속 했어요?”
“넵.”
“그럼 림롱님, 전 이만 가볼게요. 곧 길드회의가 있어서….”
“그러세요, 그럼. 저도 정비하러 마을에 좀 가봐야 겠어요.”
“다음에 또 뵙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오늘 감사했어요.”
셀린이 귀환석을 타고 사라지자, 림롱은 뒷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흐, 이제 정말 길드에 들 때가 되기는 했는데….”
셀린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림롱은 이미 5대 길드 중 하나인 벨리언트 길드에서도 영입제의를 받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길드를 보는 기준은 단순히 순위가 아니었다.
‘이미 성장할 대로 성장한 길드에 들어가면 소모품 취급 밖에 더 받겠어?’
그는 자신이 들어가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만한 길드에 들어가길 원했다.
그러려면 적당히 인지도와 세력은 있되, 고만고만한 유저들로 구성된 길드가 적합했다.
그런 의미에서 10위에 근접해 있는 카이저 길드도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셀린에게 먼저 연락을 주겠다고 한 것도 거짓은 아니었다.
10위권 길드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할 만큼 능력을 키우고 나면 그녀에게 연락을 할 생각이었으니까.
“뭐,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
림롱은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오늘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세 번이나 더 남아있었기 때문에, 정비를 하고 괜찮은 파티원도 한 명 구해야 했다.
“하, 그런데 이 포를란 던전 은근히 빡세네? 쉽게 깰 수 있을 줄 알았는데 20초 남기고 겨우 클리어하다니…. 게다가 한번은 실패도 하고.”
그런데 포를란을 빠져나오려던 림롱의 눈에 문득 커다란 수정구슬이 들어왔다.
그것은 던전을 클리어한 유저들의 랭킹이 쭉 새겨져 있는 명예의 전당을 보여주는 장소였다.
“최고 기록이 얼마나 되는 지나 한번 구경해 볼까?”
과연 이 하드한 던전을 가장 빨리 클리어한 유저들은 어느 정도의 기록을 세웠을지 궁금해졌다.
림롱이 구슬 앞에 서서 한쪽 손을 올리자, 그의 눈 앞에 랭킹목록이 주르륵 나열되었다.
[포를란 영웅의 무덤 명예의 전당]
Rank1
도전자 : 이안(Lotus길드), 피올란(Lotus길드)
기 록 : [00:31:29]
랭 크 : A
Rank2
도전자 : 세무스(DarkRuna길드), 초(DarkRuna길드)
기 록 : [00:34:49]
랭 크 : A
Rank3
도전자 : 시온(DarkRuna길드), 말콤(Titan길드)
기 록 : [00:34:52]
랭 크 : A
:
:
랭킹 목록을 확인한 림롱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뭐야, 30분대 클리어가 가능한 던전이었어?”
PVE에 약한 암살자 클래스의 특성상, 클리어가 다른 직업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상위권에 랭크되어있는 기록들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단연 1위에 랭크된 기록이 눈에 들어왔다.
‘이놈들은 대체 뭐야? 로터스 길드는 무슨 처음 들어보는 길드인데….’
더욱 놀라운 것은 1위에 랭크되어있는 기록이 2위의 기록과 3분이 넘게 차이난다는 점이었다.
2위 밑으로 기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미루어 볼 때 이것은 정말 압도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2위에 랭크되어있는 다크루나 길드나, 3위부터 랭크되어있는 타이탄 길드의 경우는 각각 지금 1,2위를 다투고 있는 최상위 길드였다.
그 밑으로 보아도 로터스 길드만큼 생소한 길드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이안 이라는 유저 아이디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림롱의 시선이 잠시 ‘이안’ 이라는 이름에 고정되었다.
그리고 그는 곧 이안을 어디서 봤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 그 때 그 루키리그 결승전에서 만났던 놈!”
림롱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육성이 튀어나왔다.
그의 머릿속에 이안과의 투기장 결승전이 떠올랐다.
이기기는 했지만, 제법 아찔한 순간들도 있었던 전투였기에,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는 대결이었다.
‘그런데 그때 그 놈이라면, 이제 겨우 100레벨을 넘긴 수준일 텐데… 어떻게 1위에 랭크되어 있는 거지? 피올란이라는 유저가 110대 후반 레벨인가?’
림롱은 속에서 알 수 없는 경쟁심이 발동하는 것을 느꼈다.
‘클리어 과정을 제대로 복기해서 최대한 시간단축을 해 봐야겠어. 아무리 암살자가 PVE에 불리하다고 해도 나랑 비슷한 레벨대인 녀석과 클리어 타임이 10분도 넘게 차이나는 건 말이 안 돼.’
자신의 클래스가 훨씬 우위에 있었던 PVP에서도 근소한 차이로 이겼었기에, 클래스의 상대우위를 생각하며 자기합리화를 하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게다가 1.5배도 넘는 클리어타임의 갭이 너무 크기도 했다.
‘빨리 정비하고 다시 트라이 해 봐야지.’
림롱은 경쟁심을 불태우며 귀환석을 사용해 마을로 이동했다.
* * *
< (6). 명예의 전당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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