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영지 경영 -3 >
* * *
하린을 포함한 네 사람은 새로 지어진 영주성을 정신없이 구경했다.
‘촌락’ 등급일 때의 길드건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호화로운 영주성.
이안은 영주성 곳곳에 있는 NPC들의 위치와 영주성의 기능들을 꼼꼼히 확인하고 다녔다.
그리고 그 과정이 지루했는지, 피올란과 헤르스는 중간에 가 볼 데가 생겼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자연히 영주성에는 하린과 이안 두 사람만이 남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영주성의 주방이었다.
영주성 주방은 아직 휑한 상태였다.
영주인 진성이 길드 자원 배분을 해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린이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와, 나 정말 여기 써도 되는 거야?”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너랑 상의한 뒤에 세팅하려고 일부러 비워둔 거야.”
이안이 길드 자원을 배분했다면 NPC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컨텐츠들이 자동으로 설정되었을 테지만, 하린이라는 요리계의 훌륭한 인재가 있는 이상 자동설정보다는 그녀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방식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하린으로서도 영주성 주방 정도의 시설 이라면 요리 숙련도를 올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좋아, 좋아! 내 도구들이랑 재료들 다 이쪽으로 옮겨 놔야겠어.”
“응, 그렇게 해. 내가 조금 있다가 영주성 주방 설정권한 너한테 다 넘겨줄게.”
“아자! 신난다!”
하린은 정말로 기쁜 표정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규모가 큰 화덕은 다양한 요리를 시도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시도는 더 많은 종류의 레시피를 개발할 수 있게 해 주고, 그것은 곧 요리 레벨을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주방 안으로 들어선 하린이 이안에게 말했다.
“나 좀 자세히 둘러보게 잠시만 기다려 줘. 괜찮지?”
“응, 그렇게 해.”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하린은 주방과 조리실, 그리고 식당까지 여기 저기를 꼼꼼히 살피며 돌아다녔다.
그동안 이안은 훈련스킬 등, 재사용 대기시간이 돌아온 스킬들을 한 번씩 돌리며 그녀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영주성의 조리실을 마지막으로 영주성 탐방(?)을 전부 끝낸 이안은 하린과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하린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성아 넌 그럼 이제 뭐 하러 갈 거야? 퀘스트 할 거 아직 남았어?”
“아니, 이제 퀘스트는 다 끝났어.”
“그럼 사냥?”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조금 있다가 피올란님이랑 2인 던전 가기로 했어.”
“아, 그렇구나. 그렇지 않아도 피올란님이 너 돌아오면 2인 던전 같이 갈 거라고 지난번에 말하셨던 걸 들은 것 같아.”
피올란과 헤르스는 물론, 이제 100레벨이 넘는 길드원들 대부분이 ‘포를란 분지’에 발견된 2인 던전인 포를란 영웅의 무덤을 클리어 한 상태였다.
그리고 시간이 될 때 마다 2인으로 조를 짜서 던전에 다녀오고 있었다.
포를란 영웅의 무덤은 하루에 다섯 번씩 입장이 가능했는데, 그 곳의 가장 큰 매리트는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보다도, 엄청나게 짭짤한 경험치였다.
그 때문에 매 타임 빠지지 않고 던전을 돌고 오는 것이 북부대륙 유저들의 하루 일과 중 한 부분으로 자리잡아버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B등급 이상을 받아본 길드원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던전의 난이도가 높았고, 피올란은 PVE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이안이 돌아오면 기록을 갱신하리라 벼르고 있었다.
“응, 들어보니까 경험치 획득 구조도 소환술사한테 엄청 유리하더라고. 던전 안에서 사냥하는 몬스터로부터 경험치를 얻는 방식이 아니라 던전 클리어시 보상처럼 경험치가 들어오는 방식이라 소환수들과 나눠먹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그렇구나….”
이안과 함께 재료채집을 빙자한 데이트를 가려 했던 하린이 살짝 시무룩해졌다.
그리고 방금까지 무척이나 밝은 표정이었던 그녀가 갑자기 시무룩해지자, 이안은 조금 당황했다.
‘얘가 왜 이러지? 내가 뭐 잊은 거라도 있나…?’
이안은 하린이 자신에게 부탁했던 요리 재료 중 까먹은 거라도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전에도 하린이 부탁했던 재료를 빼먹었다가 적잖은 핀잔을 들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잊은 재료는 없었던 것 같았다.
‘근데 재료가 아니더라도, 뭔가 잊고 있던 게 하나 있긴 한 것 같은데….’
그리고 그 때, 문득 이안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맞다! 그, 사랑의 숲 발견보상으로 받았던 반지! 그걸 잊고 있었구나!’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볼 때 마다 사랑의 숲에서 받았던 고통이 떠올랐지만, 그 옵션이 너무 좋았기에 차마 버릴 수는 없던 숲의 결혼반지!
‘직업 능력치도 많이 올려주는 옵션이 있으니까 하린이한테 딱 이긴 한데….’
처음 반지를 얻었을 때, 결혼반지 라는 부담스러운 이름 때문에 누구에게 착용해 달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었다.
하지만 이안의 주변에 여성 유저 자체가 몇 없었기 때문에 선택 범위는 금방 좁혀질 수 밖에 없었고, 결국 하린이 떠오르게 되었던 것.
그래도 착한 하린이라면 부탁을 들어줄 것 같아 그녀를 만나면 얘기해 보려 했던 것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 기분 좀 안 좋아 보이는데… 말해도 될까?’
진성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하린아. 내가 부탁이 하나 있는데….”
어떻게 하면 이안을 설득해서 북부대륙 데이트를 성사시킬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었던 하린은, 그의 뜬금없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으응? 무슨 부탁?”
“잠깐만.”
이안은 인벤토리에서 주섬주섬 숲의 결혼반지를 꺼내었다.
여성용 반지인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 이거 혹시 써줄 수 있어?”
그리고 생각지도 못 한 타이밍에 이안의 손바닥 위에 올려 져 있는 반지를 발견한 하린은, 무척이나 당황했다.
‘뭐, 뭐지?’
하린은 진성의 표정을 힐끔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조금 하린의 눈치를 보는 정도?
‘이거 지금 무슨 상황인 거야…?’
그렇게 대놓고 호감을 표현해도, 그간 정말 이렇게 눈치 없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의 반응을 보여 왔던 진성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은 정말 있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것이었고, 덕분에 하린의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얻었는데 필요 없는 아이템이라서 주는 건가…? 괜히 내가 의미부여 하는 거 같기도 하고….’
하린이 망설이자 진성은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음… 너무 부담스럽다면, 안 받아도….”
진성이 반지를 다시 집어넣으려 하자, 하린은 자신도 모르게 재빨리 그것을 빼앗아 들었다.
“아, 아니! 부담스럽긴, 누가 부담스럽대.”
충동적으로 반지를 받아 든 하린은 잠시 어색한 표정이 되었다.
‘으, 이거 너무 덥석 받은 건 아니겠지?’
그리고 받아 든 반지의 정보를 확인한 그녀는 한 번 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뭐, 뭐야? 이거 옵션이 엄청나게 좋잖아? 게다가 이름이 결혼반지네…? 혹시… 커플링?’
진성의 의도를 조금(?) 곡해해 버린 하린.
하린은 한 번 더 확인하는 차원에서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네 것도 있는 거야?”
그리고 진성은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자신의 반지를 꺼내 들었다.
“응. 내 건 여기 있어.”
커플링이라는 것까지 확인하자, 그렇지 않아도 발그레했던 그녀의 양 볼이 더욱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고…마워. 잘 끼고 다닐게.”
하린은 설레는 마음으로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다.
그리고 이안도 조금은 다른 의미(?)로 설레이고 있었다.
‘크, 이제 50레벨제 반지 버려도 되겠구나!’
이안의 손가락에도 반지가 끼워지자, 두 사람에게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숲의 결혼반지’의 봉인해제 조건이 달성되었습니다.]
[엘모프의 축복이 내려집니다.]
[모든 전투능력이 20%만큼 증가합니다.]
[모든 직업능력이 30%만큼 증가합니다.]
[모든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1초 줄어듭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1초 이하인 스킬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하루에 각각 1회, 엘모프의 능력으로 배우자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상승한 능력치를 확인한 진성의 입 꼬리가 귀에 걸렸다.
그리고 기분도 뭔가 묘해졌다.
‘이거 하린이랑 커플링같이 착용하고 있으니까 여자친구라도 생긴 것 같네.’
어쩐지 나쁘지 않은 기분.
한편 하린은 헤벌쭉한 진성을 보며, 진성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괜히 마음 졸였잖아? 나한테 정말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약간의 오해가 그녀의 예쁜 입술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 * *
하린과 헤어진 이안은 피올란과 함께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 포를란 분지로 이동했다.
“이안님, 일단 첫 판은 클리어하기 힘들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익숙해지는 걸 목표로 해 봐요.”
“네, 뭐… 알겠어요.”
“그, 던전 공략 영상은 보고 오신 거죠?”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두 번 정도 돌려 보고 왔어요.”
“오케이, 그럼 설명하기 편하겠네요.”
잠시 후, 던전의 앞에 도착한 피올란은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첫 번째 페이즈는 빠르게 돌파하는 게 관건이에요. 몬스터 많이 잡는다고 경험치 많이 주는 것도 아니니까, 최대한 빠르게 돌파하면서 중앙에 있는 ‘영웅의 성소’ 까지 달려야 해요.”
이안은 커뮤니티를 보며 대략적으로 숙지해 놓은 내용이었지만, 한번 더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두 번째 페이즈가 시작되면 총 다섯 군데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밀려들어올 거예요. 영웅의 성소가 파괴되면 던전에서 아웃되어버리니 성소를 잘 방어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총 200개체 정도 잡으면 페이즈가 넘어간다고 했죠?”
이안의 물음에 피올란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요. 그리고 몬스터 웨이브가 끝나고 나면 ‘증오의 거인’ 이라는 중간보스 몬스터가 세 마리 등장해요. 공격력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은데, 그 중 가장 큰 녀석이 광역 스턴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그걸 조심해야 해요. 잘못해서 스턴 연계에 걸리기 시작하면 정말 속수무책으로 죽어버릴 수도 있거든요.”
“오케이, 알겠어요.”
“마지막으로는… 이제 최종 보스인 ‘포를란의 거인’이 등장하는데, 특징은 상태이상 면역력이 엄청나게 높다는 거랑 한 방 공격력이 무지막지하다는 거예요. 대신 움직임이 엄청 둔한 편이어서, 이안님이 시선 끌어 주시면 그동안 제가 최대한 딜 하는 방식으로 공략하면 될 것 같아요.”
“그렇군요.”
“이 녀석 공격패턴 중에 가장 주의해야할 때는, 놈이 갑자기 멈춰 서서 양 손으로 파란 기운을 모으기 시작할 때예요.”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영상에서 본 적 있는 기술이었다.
“그 무식하게 커다란 물대포 같은 기술 말하는 거죠?”
“맞아요. 그거. 저번에 헤르스님이 잘못 방어했다가 세 방 맞고 게임 아웃됐어요. 투사체 스피드도 엄청나서 생각보다 피하거나 막는 게 쉽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녀의 경고에도 이안은 씨익 웃을 뿐이었다.
영상으로 그 기술을 보자마자 생각해 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설명 끝?”
피올란은 아직 조금 찜찜한 표정이었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일단은요?”
“그럼 이제 들어가죠. 제한시간은 50분이라고 했고… 몇 분 안에 클리어 해야 S등급 나오죠?”
한 번 들어가 보기도 전에 S등급 클리어부터 생각하는 이안을 보며, 피올란이 피식 웃었다.
“S등급이요? S등급 클리어 성공한 파티는 아직 하나도 없어요. S등급으로 클리어하려면 원래 제한시간의 절반 수준인 25분 안으로 클리어 해야 되거든요. 공식 홈페이지 명예의 전당 들어가 보면 아시겠지만, 아직 A등급 클리어 성공한 파티도 몇 없어요. A
등급은 35분컷 이었던가…?”
피올란의 설명에, 이안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에…? 그렇게 어려워요? 동영상 보니 그 정돈 아니었던 것 같은데…. 랭커들 다 뭐한대요?”
이안은 100레벨 초반 대 유저 둘이서도 클리어가 가능한 던전 이라면 랭킹권의 유저들은 당연히 S등급 클리어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에 피올란이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그게… 난이도가 어려운 것도 이유이긴 한데, 정말 최고수준 랭커들은 여기 못 들어와서 그래요. 여기 120레벨이 넘으면 못 들어오거든요.”
“아… 그래서….”
“50위권 안에 드는 최강자들은 처음 이 던전 발견될 때 이미 120레벨이 넘은 상태여서 아마 시도조차 못 했었을 거예요.”
그제야 정확히 이해가 된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럼 이제 진짜 들어가 볼까요?”
“오케이, 준비 다 끝났죠?”
“넵.”
피올란이 씨익 웃어보이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이안님 초기화하신 이후에 처음 파티사냥 해보네요?”
“그러게요.”
“소환술사, 기대해 봐도 되겠죠?”
이안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초기화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진 그였다.
“물론이죠.”
그리고 파티장인 피올란이 던전 입구의 수정에 손을 올려놓자, 두 사람의 시야에 짤막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포를란 영웅의 무덤’에 입장합니다.]
< (4). 영지 경영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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