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그리핀의 부화 -2 >
* * *
운이 좋은 것인지, 천공의 제단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하도록 테라노돈은 단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기사단이 쉬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인 150레벨 대의 몬스터들만 한 번씩 나타났을 뿐.
하지만 테라노돈 말고도 문제는 있었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모래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는 것이었다.
‘바람의 힘이 가장 강한 곳이라더니….’
이안은 투덜거리면서도 사방을 면밀히 주시했다.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으니, 방심하다가 기습당할 확률도 엄청나게 높은 것이다.
그리고 한 번의 실수는 곧장 퀘스트의 실패로 이어질 것이었다.
그때, 전방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캬아아아오-!!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이질적인 몬스터의 울음소리.
‘테라노돈인가 하는 그 녀석이려나…?’
그리고 신속하게 헬라임의 지시가 이루어졌다.
“전투준비! 근방의 다른 적들의 시선을 끌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해서 처리한다!”
잠시 후 울음소리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것은 테라노돈이 아니었다.
‘파챠오…?’
모래바람을 뚫고 등장한 몬스터는 ‘파챠오’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생김새는 이안의 소환수인 할리와 비슷한 느낌인 거대한 호랑이였는데, 할리는 백호인데 반해 파챠오는 붉은 바탕에 누런 줄무늬를 가진 적호였다.
게다가 레벨도 180.
테라노돈은 아니었으나, 그 못지않게 강력한 상대였다.
“파챠오는 절대 한 놈씩 돌아다니지 않는다. 분명 주변에 너 댓 마리 이상이 같이 있을 터.”
헬라임은 이안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이안, 자네는 최대한 몸을 사리고, 우리는 한 놈씩 최대한 빠르게 처치한다.”
헬라임은 대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정면에서 달려드는 파챠오를 향해 마주 몸을 날렸다.
쿠오오오-
정면으로 달려 나가는 헬라임의 주변으로 커다란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대검이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뭐야, 겁나 멋있잖아?’
이안은 순간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도 잊을 정도로 잠시 동안 넋을 놓고 헬라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콰콰쾅-!!
그의 대검에서 여러 갈래로 폭사된 붉은 빛줄기가 파챠오의 온 몸을 난도질했다.
크아아앙-!
달려들던 파챠오는 그 한방에 나가떨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생명력이 반 토막 났는지 이름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역시… 최고 괴물은 헬라임이었어….’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헬라임이 예상했던 대로 몇 마리의 파챠오가 일행의 주변을 에워싸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난전이 벌어졌다.
‘파챠오는 딱 봐도 순발 형 몬스터…. 움직임도 나보다 월등히 빠를 거야. 좀 더 조심해야겠어.’
이안은 일부러 버프스킬도 사용하지 않았다.
괜히 돕겠다며 스킬을 사용하다가 타겟팅이라도 되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었다.
이안은 최대한 방어에 치중하며 존재감을 숨겼다.
잠시 후 조심스레 전장을 주시하고 있던 이안에게 헬라임이 다가왔다.
어느새 상대하던 파챠오를 처치하고 돌아온 듯 보였다.
그는 대검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이안, 저쪽에 제단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는가?”
헬라임의 물음에 이안은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모래바람 사이로 희미하게 제단의 입구가 보였다.
“네, 보입니다.”
“파챠오에게 발견된 이상, 우리는 오래 시간을 끌 수 없다. 놈들이 곧 피 냄새를 맡고 몰려 올 거야.”
이안은 다섯 마리의 파챠오를 상대로 전투중인 기사단을 힐끗 보았다.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어보였지만, 숫자가 늘어난다면 분명 피해가 속출 할 것이었다.
헬라임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자네를 엄호할 테니 최대한 빠르게 제단으로 올라가도록. 자네가 그리핀을 부화시키고 나면 빠르게 이 곳을 빠져나갈 거야.”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나를 따라 이쪽으로 오게.”
말을 마친 헬라임은 앞장서 움직였고, 이안은 그 뒤를 빠르게 따라붙었다.
그런데 그 때.
모래바람 사이로 거대한 포효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파챠오의 울음소리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크아아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헬라임이 검을 번쩍 치켜들었다.
“모든 기사단원들은 전부 이쪽으로!”
헬라임의 직속 기사단 답게 원정대의 기사들은 일사분란히 움직였다.
상대하던 파챠오들의 생명력이 아직 조금씩 남아있는 듯 보였지만, 전투에 미련을 두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이안은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체계적이야.’
그리고 곧, 모래바람을 뚫고 거대한 그림자가 등장했다.
마치 고대의 육식공룡을 연상시키는 위압적인 실루엣.
‘떡대보다도 더 크잖아?’
어릴 적 과학책에서 보았던 공룡이 튀어나오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감탄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이안, 자네는 뛰어 올라가!”
“알겠습니다!”
이안은 헬라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죽어라 달렸다.
‘미친, 저 놈 꼬리에 스치기만 해도 죽은 목숨이다!’
이안의 눈에 들어온 테라노돈의 레벨은 190도 아닌 200레벨이었다.
헬라임의 버스(?) 덕에 2레벨이 더 올라 102레벨이 된 이안이었지만, 그의 두 배인 레벨을 자랑하는 테라노돈에게는 같잖은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타타탓-
이안은 라이에 동화 스킬까지 써서 민첩성을 최대한 끌어올린 뒤 냅다 뛰었다.
다행히 몬스터들의 관심이 모조리 헬라임에게로 집중되어, 이안에게로 달려드는 녀석은 없었다.
뒤에는 테라노돈과의 싸움이 한창인지 쉴 새 없이 굉음이 울려 퍼졌지만, 이안은 앞만 보고 달렸다.
무사히 제단의 입구에 도착한 이안은 계단을 빠르게 뛰어 올라갔다.
“헉… 헉….”
제단은 대충 건물의 5층 정도 높이였다.
제단을 둥글게 감싸며 이어지는 기다란 계단을 전 속력으로 뛰어 올라가자 이안은 점점 숨이 가빠 오는 것을 느꼈다.
‘후우, 조금만 더…!’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뛴 덕에 이안은 곧 제단의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었다.
“다 왔다…!”
놀라운 것은, 제단의 꼭대기에 도착하자 그렇게 거세게 휘몰아치던 모래바람이 조금도 불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고요함, 그 자체.
천공의 제단은 마치 폭풍의 핵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는 이안의 귓전으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바람의 근원, ‘천공의 제단’을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바람 속성에 대한 친화력이 5%만큼 증가합니다.]
[바람 속성에 대한 저항력이 +10만큼 증가합니다.]
[이제부터 바람 속성 몬스터와의 친밀도가 30 이하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명성이 15000 증가합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한 종류의 시스템 메시지.
이안은 획득한 명성보다 다른 시스템 메시지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거, 열염폭인가 용암의 근원지를 발견했을 때 나타났던 시스템 메시지랑 비슷하잖아?’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사실 거의 똑같았다.
관련된 속성만 달랐을 뿐.
‘그렇다면 나중에 화염 속성의 전설등급 알을 부화시킬 때 작열의 대지에 가야할 수도 있겠는데?’
의외의 소득이었다.
이런 단서만큼 소중한 정보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른 것 보다 우선 그리핀의 알을 빨리 부화시키는 게 중요했다.
자신이 늦게 움직여서 기사단의 피해가 커진다면, 퀘스트를 성공하더라도 황제의 노여움을 살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무척이나 곤란했다.
“저건가…?”
이안의 시선이 제단 한 가운데 있는 허리 높이 정도의 단상을 향했다.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저기에 한번 그리핀의 알을 올려보자.’
단상 앞으로 후다닥 뛰어온 이안은 빠른 손놀림으로 그리핀의 알을 꺼내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단상 위에 그것을 올려놓았다.
‘자 이제 부화해라…!’
이안의 간절한 바람을 누군가 듣기라도 한 것일까.
단상의 주변으로 누런 빛 무리들이 회오리치듯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된다, 되고 있어!”
긴장된 표정으로 그리핀의 알을 응시하고 있던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리핀 알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부화중… 11%]
0%에서 멈춰 있었던 부화율이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부화율만 100%까지 차오르면 그리핀은 틀림없이 부화하리라.
그리고 그리핀의 알이 부화되고 나면 빠르게 이 제단을 벗어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드디어 이 제국 퀘스트의 끝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어서… 어서…!’
이안의 시선은 조금씩 차오르는 알의 부화율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이안의 품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안은 그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내려 보았다.
“이건 뭐지?”
그의 품속에는 조금씩 꿈틀대며 노랗게 빛나는 주먹 만한 물체가 들어 있었다.
이안은 그것을 꺼내었다.
‘뭐야. 내가 이런 걸 가지고 있었어?’
이안은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돌맹이 같이 생긴 이 물건의 정체를 기억할 수 있었다.
‘이거, 제사장 퀘스트 피케이범들이 떨궜던 그 핫팩이잖아?!’
항상 따뜻한 기운을 머금고 있어서 이안이 북부대륙에서 사냥할 때마다 품 속에 지니고 있었던 물건.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었던 물건.
돌맹이의 정체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왜 지금…?”
이안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돌맹이를 멀뚱히 쳐다 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이안의 손에 들려있던 돌맹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어, 어어?”
그리고 이안이 손 쓸 새도 없이 새하얀 빛무리에 휘감기더니, 그대로 그리핀의 알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지도 못했던 시스템 메시지도 한 줄 떠올랐다.
[‘바람의 정수’ 아이템을 사용합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이안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그리핀의 알을 향해 다가갔다.
‘난 이걸 사용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고!’
그리고 알의 부화율을 확인하기 위해 정보창을 열려는 순간.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샛노란 빛이 사방으로 폭사되어 퍼져 나갔다.
그와 함께 강력한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는데, 그것은 무척이나 강력해서 이안이 그 기운에 밀쳐져 바닥으로 튕겨져 나갈 정도였다.
제단의 중심으로부터 그 알 수 없는 기운은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고, 이안은 제단 끄트머리에 있는 홈을 붙들고 겨우 몸을 지탱했다.
‘후우… 큰일날 뻔 했네.’
조금만 더 튕겨 나갔으면 제단 바깥으로 떨어질 뻔 한 것이었다.
‘그랬으면 테라노돈의 먹이가 됐겠지….’
그리고 잠시 후.
이안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 그토록 고대하던 시스템 메시지가 드디어 울려 퍼졌다
[신수 ‘그리핀’을 부화시켰습니다.]
[최초로 전설 등급의 소환수를 부화시켰습니다.]
[‘통솔력’ 능력치가 100 증가합니다.]
[‘친화력’ 능력치가 50 증가합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은 그간의 고생이 한 순간에 날아가는 듯 한 기분을 느꼈다.
‘통솔력이 100이나 오르다니…!’
통솔력 스텟은 이안의 직업능력치 중에서도 가장 올리기 힘든 부분인데, 그것이 100이나 한꺼번에 오르는 것을 보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능력치 상승으로 인한 기쁨보다도, 지금은 깨어난 그리핀의 안위(?)가 먼저였다.
하얗게 빛나던 빛 무리가 잦아들고, 이안을 밀쳐내던 기운이 사라지자, 이안은 서둘러 제단 중앙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이안의 눈에,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알 껍질 사이로, 알을 깨고 태어난 그리핀의 모습이 들어왔다.
“성공이구나!”
그런데, 그 순간. 이안의 표정이 뭔가 묘하게 변하였다.
‘어… 뭐야…? 쌍둥이잖아?!’
이안의 눈 앞에는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어린 그리핀 두 마리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 (3). 그리핀의 부화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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