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그리핀의 부화 -1 >
황실기사단은 강력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헬라임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와… 무슨 136레벨 천둥새가 칼질 한방에 사라지냐….’
이안이 전투 중에 하는 일은 거의 서포터 수준 이었다.
처음엔 그래도 뭔가 해보려고 이런 저런 시도를 했지만, 그 시간에 한명에게라도 버프를 더 걸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깨닫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나마 떡대와 레이크는 제법 활약하네.’
떡대의 어비스홀은 적을 묶어둘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제법 큰 도움이 되었고, 레이크는 워낙 공격력이 강하다보니 광역으로 제법 많은 데미지를 넣고 있었다.
그 안에 새로운 스킬을 배운 라이도 함께 활약하긴 했으나 미비한 수준이었고, 이제 50레벨 이 겨우 넘은 할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웃거리며 몬스터를 피해 다니는 것 정도였다.
이안과 소환수들의 활약을 전부 합하면 근위병 한둘 정도의 활약과 비슷한 수준.
물론 그 정도 만으로도 헬라임은 이안을 높게 평가했다.
“자네, 생각보다 뛰어난 소환술사였군.”
“하하… 그런가요…?”
그로서는 레벨이 100밖에 안 되는 이안이 전투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전투가 거듭될수록 이안의 입은 함지박 만하게 커졌다.
‘크흐흐 이게 바로 진정한 경험치 루팡이지!’
고작 세 시간 정도 전투했을 뿐인데 100레벨인 이안의 경험치가 25%나 차올랐고, 라이는 101레벨이 되었으며 1레벨이었던 할리는….
[소환수 ‘할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57레벨이 되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로 레벨이 오르고 있었다.
‘50레벨이 넘고부터는 레벨 업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고 있지만… 그래도 퀘스트가 끝날 쯤 이면 80레벨 언저리까지 오르겠어.’
이안은 더욱 신바람이 나서 마력의 구체를 여기저기 쏘아 대었다.
그런데 잠시 후, 헬라임이 손을 들어 진행을 잠시 멈추었다.
“잠시 대기하고 정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이안은 조금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음…? 아직 피해다운 피해도 없었을 텐데 갑자기 왜 정비하는 거지?’
이안의 의문은 당연했다.
지금껏 헬라임의 기사단은 거의 몬스터를 학살하다 시피 하며 전진했으니까.
그리고 그런 이안의 궁금증을 헬라임이 곧바로 풀어 주었다.
“저 능선을 넘어가면 이제 천공의 사막이다. 그리고 그 곳 부터는 150레벨이 넘는 몽크 미이라 들이 나온다.”
그 말을 들은 이안은 긴장됨과 동시에 설레였다.
‘150레벨의 몬스터라니… 스크린샷으로도 구경한 적 없는 수준이잖아?’
분명 엄청나게 위험한 곳 일 터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경험치는 더 짭짤할 것이었다.
헬라임이 한번 더 당부했다.
“쉽지 않은 전투가 될 테니, 단단히 준비하도록.”
* * *
“헤르스님.”
“네?”
“우리 거점지 보호기간이 이제 얼마나 남은 거죠?”
피올란의 물음에 헤르스는 곧바로 거점지 정보창을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와, 거점지 얻은 지가 벌써 두 달이나 지났나 봐요. 이제 보호기간 한 달 밖에 안 남았어요.”
“으, 진짜 얼마 안 남았네요. 이제 한 달 뒤면 북부대륙은 완전히 난장판이 되겠죠?”
헤르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래도 그럴 것 같네요.”
로터스 길드가 거점지를 얻은 시점은 북부대륙이 업데이트 되고 난 뒤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 말은 즉, 다른 상위길드들이 거점지를 얻은 날짜도 로터스 길드와 별 차이나지 않는 시점일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가장 빨리 거점지를 얻었던 타이탄 길드가 업데이트 3일차에 거점지를 얻었으니, 아마 로터스 길드 거점지의 보호기간이 풀리는 날짜를 전후해서 대부분 길드의 거점지 보호가 풀릴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피올란은 걱정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거대 길드가 작정하고 공격하면 막아내는 건 불가능할 텐데… 이거 걱정이네요.”
하지만 의외로 헤르스는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아니에요 피올란님. 보호기간 풀리기 전에 영지로 거점지 등급만 올려놓으면 우리도 충분히 수성할 수 있어요.”
“그래요?”
피올란의 반문에, 헤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이야 촌락 등급이니 사병을 양성할 수가 없지만, 영지 등급이 되면 NPC로 이루어진 사병을 양성할 수가 있거든요. 방어벽도 제법 두텁게 쌓을 수 있구요.”
“아, 그런 건 몰랐네요.”
헤르스의 말이 이어졌다.
“방어타워 같은 시설도 설치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아, 그 얘기는 커뮤니티에서 얼핏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설치 비용이 장난 아니라고 들었는데….”
그 부분은 헤르스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기에 곧바로 대답했다.
“맞아요. 그래서 아마 영지 승급이 되자마자 영지 방어력 증진에 모든 길드 자원을 투자해야 할 듯 해요. 조금 무리하더라도 어쩔 수 없죠.”
피올란의 얼굴에 살짝 그늘이 졌다.
“음… 그랬다가 수성에 실패하기라도 하면 피해가 너무 커지는 거 아닌가요? 한두 번 정도야 수성할 수 있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공격이 들어오면 곤란해 질 텐데….”
헤르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제 생각에는 아마 한동안만 잘 버텨내고 나면 다시 잠잠해 질 거예요. 그때까지만 버티면 자리잡을 수 있을 겁니다.”
헤르스는 아무래도 길드 마스터 이다보니 거점지에 대해 제법 많은 연구를 해 놓은 상태였다.
‘1,2위를 다투는 최고 순위권의 길드들이라 하더라도 쉽게 우리 거점지를 공략할 순 없을 거야. 그 전에 내가 생각한 수준까지만 잘 갖춰 놓는다면 말이지.’
거대 길드일수록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았다.
상위 10위 안에 드는 길드는 이미 소유하고 있는 거점지만 두세 군데는 되었는데, 섣불리 병력을 빼서 다른 영지를 공격했다가 오히려 자신들의 영지를 잃을 위험도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나서지 못할 것이었다.
상위권 길드인 로터스로서는 최상위 길드들이 쉽게 넘보지 못할 수준까지만 방어력을 잘 갖추어놓으면 되는 것이다.
어중간한 방어력으로 아슬아슬하게 수성할 바에는 확실히 방어에 투자를 많이 해서 공격할 엄두도 나지 않게 만들어놓자는 것이 헤르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촌락을 벗어나지 못한 거점지들은 그야말로 좋은 먹잇감이 되겠지.’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헤르스는 상당히 불안한 상태였다.
거점지의 승급 조건들은 거의 다 맞춰져 가고 있었지만, 클로반의 귀족 승급이 언제 가능할지 감도 잘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 이안에게서 제국퀘스트를 진행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제발 진성이가 빨리 퀘스트 무사히 완료하고 왔으면 좋겠네. 이제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다른 조건들은 다 맞춰놓을 수 있을 텐데.’
클로반에게도 그 사실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명성작업을 멈추라고 하지는 않았다.
만에 하나 이안이 제국퀘스트에 실패할 가능성을 염두해 둔 것이기도 했고, 길드에 귀족 작위를 받은 유저가 많을수록 더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그 다음 단계인 대영지 승급 조건을 맞추려면 귀족 작위를 가진 길드원들이 더 많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클로반 형까지 작위가 생기면 영지 소속 기사단까지 곧바로 꾸릴 수 있을 테니까.’
헤르스의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 중이었다.
거점지를 얻고 쉼 없이 개발에 힘쓴 덕에, 길드 순위도 예전보다 훨씬 높아져서 오백위권 안에 들어간 상태였다.
‘거점지만은 어떻게든 지켜낸다.’
거점지는 발전하면 할수록 ‘황금알을 낳는 거위’ 라는 수식어가 꼭 어울리는 컨텐츠였다.
헤르스는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 * *
이안과 헬라임의 원정대가 불모지에 들어선 지도 만으로 하루가 지났다.
그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이안의 두 눈은 무척이나 퀭했다.
‘으, 한 다섯 시간은 자고 들어왔어도 괜찮았는데… 내가 너무 소심했어….’
NPC들도 밤에는 잠을 잔다.
그렇기 때문에 헬라임의 기사단도 밤이 되자 야영지를 꾸리고 취침을 했었다.
물론 이안도 그 시간에 접속 종료를 하고 수면을 취하고 왔다.
하지만 늦게 들어왔다가 불모지 한복판에 버려질까봐 불안해서, 세 시간 밖에 못 잔 상태로 다시 접속했던 것이 문제였다.
덕분에 기사단이 다시 출발할 때 까지 네 시간 가까이를 뜬 눈으로 기다려야만 했던 것이었다.
‘후, 조금만 더 참자. 퀘스트 끝나고 쉬면 되는 거니까.’
사실 이 정도의 피곤은 93레벨을 찍기 위해 폐인처럼 사냥할 때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안은 마음을 다잡았다.
휘이잉-
거센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기 시작했다.
이안은 이곳이 바로 헬라임이 말했던 천공의 고원 임을 직감했다.
‘어디, 맵을 한번 확인해 볼까?’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 맵에는 ‘천공의 고원’ 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다.
이안이 맵을 끄고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린 순간.
히이잉-!
헬라임이 자신의 말을 멈춰 세웠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일행이 차례로 자리에 멈춰 섰다.
“드디어 도착했군.”
헬라임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말머리를 돌려 원정대를 향해 돌아섰다.
“천공의 고원은 무척이나 위험하다. 특히 테라노돈 이라는 녀석이 엄청나게 강력하지.”
그 말에 이안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테라노돈 이라는 몬스터의 이름이 완전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을 뿐더러, 헬라임이 이렇게까지 어떤 몬스터를 경계하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테라노돈은 레벨이 몇인가요?”
헬라임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
“내 기억으론 190레벨 정도 되었던 것 같군. 몸집이 코끼리만한 도마뱀 같은 녀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안은 말을 잃었다.
“….”
죽을 수도 있다.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150레벨대의 몽크들에게 두세 번 정도 공격을 허용했다가 이미 사망 직전까지 몰린 적이 있었던 이안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헬라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여기는 우리의 전력으로도 한순간의 실수로 전멸할 수 있을 만큼 위험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모두가 헬라임의 말을 경청했다.
“안쪽으로 10분 정도 들어가면 고원 중앙에 높게 솟은 제단이 보일 것이다.”
목이 타는지 마른침을 삼킨 헬라임은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는 최소한의 적들만을 상대하며 최단거리로 제단의 앞까지 이동한다. 그리고 여기 이안이 그리핀의 알을 가지고 제단 위로 올라간다.”
헬라임의 시선이 이안을 향해 돌아갔다.
“이안이 제단 위에서 그리핀의 알을 부화시키는 동안, 우리는 제단 주변을 지키며 다가오는 적들만을 상대한다. 섣불리 선공은 하지 않는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그 어느 때 보다 진지한 헬라임의 모습.
이안은 천공의 고원의 위험성을 다시 한번 피부로 느끼며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까지 와서 절대로 실패할 수 없지.’
이안의 시선이 천공의 고원을 향했다.
그리고 원정대도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움직임.
느릿느릿한. 그리고 최대한 조심스러운 전진이었다.
* * *
< (3). 그리핀의 부화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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