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제국 퀘스트 -3 >
* * *
셀리아스의 추진력은 대단했다.
천공의 고원으로 기사단을 파견하기로 결정 되자마자 곧바로 헬라임을 필두로 한 원정대가 꾸려진 것이었다.
이안은 일행에 합류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야, 진짜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출발해 버리잖아?’
적어도 하루는 지나야 원정이 시작될 줄 알았던 이안은 혀를 내둘렀다.
‘게임이라서 그런가? 시원시원하니 진행이 빨라서 좋긴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파티에 합류해 움직이는 것 같아서 조금 걱정도 됐다.
지금 그들이 향하는 곳이 공략된 적도 한 번 없을 정도의, 거의 알려진 최고 레벨대의 사냥터였으니 걱정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었다.
아무리 황실 기사단과 함께한다 하더라도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인원은 적네?’
원정대의 규모는 그리 큰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안은 그 구성원들의 정보를 보면서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가장 레벨이 낮은 근위병이 150레벨이라니….’
레벨이 높은 기사들 중에는 170레벨이 넘는 괴물도 몇 몇 보였다.
‘그러면 헬라임은 대체 레벨이 몇이라는 거야?’
비공개로 가려져 있는 헬라임의 정보가 문득 궁금해진 이안이었다.
‘200레벨도 넘는 건가?’
이안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원정대는 계속해서 이동했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불모지의 외곽지역에 도착했다.
불모지의 위치는 루스펠제국과 카이몬 제국의 경계에 있었다.
수도인 뮤란과는 제법 거리가 있는 위치.
하지만 황실 대마법사들의 힘을 빌어 제국 외곽의 마을까지 곧바로 순간이동 했기 때문에 원정대가 불모지까지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도 채 넘지 않았다.
“여기가 불모지군요.”
이안의 말에 헬라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다네. 이제 슬슬 몬스터가 등장할 때가 되었으니, 단단히 준비하시게.”
이안을 대하는 헬라임의 태도도 약간 호의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안은 그게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천공의 고원에 도착하기 전에 숨이 막혀 죽었을지도….’
이안은 소환수들을 하나하나 소환하며 전투를 준비했다.
이제 이안의 레벨도 세 자리수가 되었으니, 130레벨이 넘는 몬스터라 하여도 전투에 조금의 힘은 보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노리는 부분도 있었다.
‘퀘스트 중에 함께 전투하는 NPC는 파티로 인식된다고 하던데….’
강력한 황실 기사단의 기사들과 불모지의 초 고 레벨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천공의 고원을 향해 이동하면 그동안 획득할 수 있는 경험치도 제법 짭짤할 것이었다.
이안은 자신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는 할리를 응시했다.
‘마침 이 녀석도 잠재력 100이 되었고….’
사랑의 숲에서 퀘스트하는 동안 사냥은 할 수 없었지만 훈련 스킬을 열심히 돌린 덕에 할리의 잠재력도 100이 되었다.
‘이제 모든 소환수 잠재력이 다 100인가?’
이안은 소환수들의 정보를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했다.
그리고 이안의 기억대로 한 마리도 빠짐없이 잠재력이 100이었다.
‘이제 오랜만에 스킬부여도 한번 써 줄 때가 되었는데….’
지금까지 얻는 소환수마다 괜찮은 고유스킬을 가지고 있어서 스킬부여를 사용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다.
괜히 좋은 스킬을 가진 소환수에게 스킬부여를 사용했다가 쓸모없는 스킬이 나오면 낭패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잠재력을 전부 100까지 채웠음에도 스킬부여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낭비였다.
‘누구한테 스킬부여를 해볼까….’
잠시 고민하던 이안은 결국 라이에게 스킬부여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떡대의 어비스홀이나 레이크의 용암의 숨결은 지금 당장 너무 필요한 스킬이고… 뿍뿍이의 껍질거대화도 아직까진 훌륭히 제 역할을 해 주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할리에게 스킬부여를 쓰기도 애매했다.
곧 불모지의 몬스터를 잡으면 순식간에 몇 레벨이 올라버릴지 알 수 없는 데, 기껏 100까지 맞춰놓은 잠재력을 깎을 수는 없었다.
이안은 라이를 불렀다.
“라이야, 이리 와봐.”
크릉-
라이가 다가오자 이안은 라이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마지막까지 조금 고민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 라이에게 스킬부여를 하는 것이 가장 합당해 보였다.
‘광폭화 스킬도 괜찮긴 하지만… 더 좋은 게 나오길 빌어 봐야지.’
생각을 정한 이안은 더 망설이지 않고 스킬을 발동시켰다.
“스킬부여!”
그리고 라이의 전신에 새하얀 빛이 스며들었다.
[‘라이’에게 ‘소환수 스킬부여’를 사용하셨습니다.]
[‘라이’의 잠재력을 20 소모합니다.]
[소환수 ‘라이’가 가지고 있던 ‘광폭화’스킬을 삭제합니다.]
[소환수 ‘라이’가 ‘광란의 춤’스킬을 획득합니다.]
그와 동시에 라이가 획득한 스킬의 정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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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란의 춤 -
분류 - 액티브 스킬
스킬등급 - 희귀
재사용 대기 시간 - 30분
10분동안 자신의 공격력과 민첩성을 50% 증가시키고, 방어력을 절반으로 하락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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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을 확인한 이안은 살짝 실망했다.
‘으, 이정도면 광폭화보다 딱히 나을 것도 없는 수준인데….’
광폭화 스킬과 거의 비슷한 능력의 버프 스킬이었는데, 스텟의 상승과 감소폭이 함께 높아졌다.
재사용 대기 시간은 대폭 감소했으나, 치명타시 공격력이 추가로 증가하는 부가옵션이 사라졌으니 광폭화보다 더 좋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수준.
잠시 고민하던 이안은 스킬부여를 한번 더 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래, 기왕 해보는 거 제대로 된 스킬 하나 만들어 보자.’
잠재력까지 소모하면서 획득한 스킬이 별 달라질 것이 없다면 왠지 손해만 보는 느낌이었다.
이안은 라이에게 스킬부여를 다시 사용했다.
하지만….
“하아….”
이번에는 아예 일반등급의 스킬이 나와 버린 것.
이안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괜히 건드렸나….’
하지만 아직 라이의 잠재력이 60 더 남아있었다.
이대로 별 쓸모도 없는 일반등급의 스킬을 달아놓고 싶지는 않았다.
이것은 마치 백만원어치 도박을 해서 백만원을 모두 잃는 것 보단, 이백만원어치 도박을 해서 구십만원 이라도 땄을 때 기분이 더 나은 것과 비슷한 심리랄까.
이안은 또다시 스킬을 발동시켰다.
‘이번에는 제발…!’
그리고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퍼졌다.
[소환수 ‘라이’가 ‘피의 갈망’스킬을 획득합니다.]
이안은 서둘러 스킬의 정보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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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의 갈망 -
분류 - 액티브 스킬
스킬등급 - 영웅
재사용 대기 시간 - 15분
3분동안 자신의 공격력과 민첩성을 30% 증가시키고, 모든 움직임이 40% 빨라집니다.
‘피의 갈망’ 상태일 때, 생령력이 30% 이하로 떨어진 적에게 입히는 모든 피해가 1회 추가로 적용되며, 적을 처치할 때 마다 최대 생명력의 20%를 회복합니다.
(단, 피의 갈망 상태인 소환수의 공격이 적이 사망판정을 받게 만드는 마지막 유효 공격이어야 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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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환호성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됐어! 이 정도면 60의 잠재력이 아깝지 않지!’
무려 영웅 등급의 스킬.
그리고 그 등급에 맞는 충분히 뛰어난 버프스킬이었다.
이안은 무척이나 만족했다.
‘어차피 라이는 광역 공격을 맞고 빈사상태인 적을 단일딜로 마무리하는 역할이었으니까… 정말 딱 라이를 위한 스킬이네.’
라이도 만족스러운 지 이안의 허리에 머리를 부볐다.
크릉- 크르릉-!
‘이제 이 스킬은 진짜 한동안 건들지도 말아야지.’
이안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라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전방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빨리 새로 생긴 스킬 한번 써보고 싶은데….”
그런데 그 때.
마침, 일행의 선두에서 적이 나타났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뿌우-!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고, 모든 근위병들과 기사들이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헬라임이 이안을 향해 다가왔다.
“이안, 자네도 싸울 수 있겠는가.”
헬라임의 물음에 이안은 먼저 적을 확인했다.
‘천둥매라… 레벨이 132 정도네. 한 열 마리 정도 나타난 건가?’
혼자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어야 할 수준의 전력이었지만, 황실기사단과 함께라면 이안도 제 한 몸 건사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이안은 대답했다.
“예, 단장님. 괜찮습니다.”
헬라임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를 믿어 보겠네. 하지만 너무 무리는 하지 말게. 자네 때문에 오히려 우리 기사들의 발목이 붙잡힐 수도 있으니 말이야.”
자존심 상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헬라임 입장에서는 당연한 걱정이었고, 충분히 맞는 말이었다.
이안은 수긍하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윽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안은 항상 하던 대로 떡대에게 명령했다.
“떡대야, 어비스홀로 최대한 묶어봐.”
드르륵-
이안의 명령을 받은 떡대는 천둥매들의 앞으로 다가가 어비스홀을 시전했다.
쿠오오오-
어비스홀의 범위는 제법 넓은 편이었지만, 민첩성에 특화되어있는 고레벨 몬스터인 천둥매들은 쉽게 어비스홀의 사정권에 들어와 주지 않았다.
떡대의 민첩성이 상대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도 한 몫 했다.
어비스홀로 묶을 수 있었던 천둥매는 고작 두 마리 정도.
하지만 그 정도로도 제법 큰 도움이 되었다.
“레이크, 브레스!”
레이크의 브레스가 몸이 묶인 천둥매들을 훑고 지나갔고, 그 위로 토벌대의 근위병들이 뛰어들었다.
이안은 재빨리 라이에게 명령했다.
“라이, 피의 갈망!”
크르릉-!
그렇지 않아도 붉은 빛깔인 라이의 몸이 더욱 시뻘겋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지막지한 속도로 라이의 몸이 허공으로 튀어 나갔다.
라이는 근위병들에게 공격당해 어느새 이름이 깜빡이기 시작한 천둥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었다.
콰드득-!
[소환수 ‘라이’가 ‘천둥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천둥매’의 생명력이 7250 감소합니다.]
[‘피의 갈망’ 효과로 인해, 추가로 7250의 피해를 입힙니다.]
스킬활용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해 내는 라이를 보며 이안은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거의 만 오천에 육박하는 데미지를 순식간에 집어넣네. 레이크의 브레스 데미지가 2만 정도인 걸 감안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이야.’
레이크의 브레스는 광역 스킬이었고, 재사용 대기 시간도 긴 스킬이었기 때문에 라이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지표는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라이의 공격이 성공하자마자 연이어 떨어진 근위기사의 창에, 천둥매의 목이 꿰뚫렸다.
천둥매의 레벨도 높았지만, 근위기사의 레벨은 170에 육박하는 수준이었기에, 단 한방의 공격에 천둥매의 남은 생명력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이안의 입 꼬리가 귀에 걸렸다.
[천둥매를 처치했습니다. 10500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크으, 분산되는 경험치 인데도 1만이 넘는 수준이라니.’
NPC들이라서 그런지, 경험치가 분산되는 양이 생각보다 적어서 예상치 이상의 경험치가 들어왔다.
고대 아르노빌의 유적에서 혼자 사냥할 때 획득하던 경험치보다도 높은 수준.
게다가 사냥 속도는 그때와 비교도 안 되게 빠를 것이 분명했다.
이안은 헬라임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버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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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제국 퀘스트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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