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차원의 마탑 -1 >
‘여길 직접 와 보는 건 처음이네.’
차원의 마탑은 초기화 전에도 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마법사 중에서도 히든클래스인 ‘공간술사’의 직업퀘스트가 아니면 올 일이 없는 곳이었고, 이안이 초기화하기 전에는 마탑의 존재 자체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던 곳이었다.
‘역시 썰렁하네. 하긴, 여길 올 일이 있는 유저가 얼마나 되겠어.’
이안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마탑의 입구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은 칠흑같이 어두운 빛이 일렁이는 신비한 공간이었다.
“포탈인가?”
이안은 슬쩍 그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러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마탑의 상층부로 올라가시겠습니까?]
“그러지 뭐.”
이안이 승낙을 하자 그의 신형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다.
후우웅-
그리고 약간의 공명음과 함께, 이안은 위층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층의 반대편 공간에 방금 이안이 사용한 포탈과 같은 포탈이 또 일렁이는 것을 발견했다.
‘저걸 타고 계속 위로 올라가면 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이안이 발걸음을 옮기려 하던 그 때.
그의 바로 앞 공간이 일그러지며 새하얀 빛이 튀어나왔다.
갑작스런 현상에 이안은 움찔했다.
“뭐야?”
그리고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이안도 익히 알고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뭐지? 여기서 트롤이 왜 나와?’
그리고 몬스터들의 뒤편에 쳐진 푸른 장막.
그것을 본 이안은 지금 상황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건 결계인거 같은데… 매 층 올라가려면 앞을 막는 몬스터들을 잡아야 하는 건가?’
대충 상황파악이 된 이안은 모든 소환수들을 전부 소환했다.
마지막으로 소환된 짹이가 언제나처럼 부산을 떨며 이안의 주변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으, 이 시끄러운 녀석. 그나저나 요놈은 대체 전류증식을 얼마나 더 써야 진화할 수 있는 거야?’
레벨이 90이 넘을 때 까지 주구장창 전류증식 스킬을 난사해온 이안이었지만, 아직도 짹이는 단 한 번도 진화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이안은 생각난 김에 짹이의 정보를 확인했다.
[소환수 짹이 - 정령력 : 975 / 1000]
수치상으로 보기에는 MAX 수치까지 얼마 남지 않은 듯 보이는 짹이의 정령력.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950 넘긴지가 언젠데 아직도 975라니….’
처음 짹이를 얻었을 땐 전류증식을 조금만 사용해도 정령력이 금방금방 올랐었다.
그래서 금방 진화를 시킬 줄 알았건만, 정령력 수치가 높아질수록 성장하는 속도가 무척이나 더뎌진 것이었다.
‘그래도 이제 25 정도면 크게 오래 걸리진 않겠지.’
짹이의 정보창을 닫은 이안은 레이크와 라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레이크, 라이. 후딱 잡고 넘어가자!”
크르릉-!
라이는 곧바로 전투자세를 잡았지만, 레이크는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푸릉- 푸릉-
눈 앞의 트롤들이 같잖다는 듯 한 반응!
그도 그럴 것이, 영웅 등급인데다 이제 95레벨인 레이크에 비해, 눈 앞의 트롤들은 너무도 초라한 수준이었다.
트롤들의 레벨은 고작 55~60 정도.
게다가 일반 등급의 몬스터.
하지만 이안은 레이크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얌마, 거만 떨지 말고 빨리 가서 잡아. 일 안하면 너 헬리얀님에게 돌려보내버린다?”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레이크는 용암속성을 띈 정령인 주제에 더운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래서 후덥지근한 용암의 근원지로 돌려보낸다는 이안의 협박은 제법 효과가 있었다.
물론 뿍뿍이에게 미트볼로 하는 협박만큼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캬오-
이안의 협박에 번뜩 정신이 든 레이크는 곧바로 트롤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열기가 새어나오는 작열의 대지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라이도 앞으로 튀어나갔다.
화르륵-
레이크의 고유능력인 ‘용암의 숨결’ 효과가 터지자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하며 사라지는 트롤들.
떡대가 앞에 나가서 탱킹 할 가치도 없는 허약한 적들이었다.
그리고 트롤들이 전부 사라지자, 예상했던 대로 푸른 장막이 사라지며 길이 열렸다.
이안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자, 올라가 볼까?”
* * *
이안이 차원의 마탑 최상층인 15층까지 올라가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30분 남짓 정도였다.
매 층 올라갈 때 마다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레벨이 조금 올라 마지막 층으로 올라올 때는 90레벨이 넘는 몬스터와 싸워 이겨야 했지만, 그렇게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이게 지금 레벨 좀 많이 올리고 와서 이렇게 쉽지, 당시에 곧바로 도전했었다간 뼈도 못 추릴 뻔 했어.’
이안이 퀘스트를 받을 당시의 레벨은 50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물론 B급 난이도의 퀘스트였기 때문에 바로 바로 갈 일은 없었겠지만, 아마 이안의 성격상 70레벨이 조금 넘은 수준에서 곧바로 도전하기위해 왔었을 것이었다.
이진욱교수와의 내기 때문에 레벨업에 시간이 묶여있었던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말이다.
‘자 이제 차원의 마도사인지 뭔지, 만날 수 있으려나?’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차원의 마도사 ‘그리퍼’의 연구실이 마탑의 최상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구석에앉아 연구에 열중하고 있는 그리퍼를 향해 이안은 성큼 성큼 다가갔고, 이안을 발견한 그리퍼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가운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오호, 이게 얼마만의 손님인지 모르겠구만. 여기까지 올라온 걸 보니, 제법 실력이 있는 여행자로군.”
그의 호의적인 모습에 이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까칠하게 생겼는데 의외네?’
그리고 그의 첫 마디와 함께 이안의 눈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잊혀진 고대 몬스터의 흔적’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567500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퀘스트 완료 메시지를 본 이안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공짜로 경험치를 얻은 것 같은 기분에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리퍼를 향해 용건을 꺼내었다.
“반갑습니다, 그리퍼님. 저는 드래곤 테이머 오클리 님의 부탁을 받아 이 곳에 오게 된 소환술사 이안 이라고 합니다.”
이안의 말에 그리퍼의 두 눈이 조금 커졌다.
“오클리…? 설마 전설의 드래곤 테이머 오클리님을 말하는 건가?”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허허, 살아생전에 내가 그 분의 존함을 다시 들을 날이 올 줄이야.”
“오클리님을 잘 아십니까?”
“잘 안다고는 할 수 없네만, 존경하는 분이지.”
그리퍼는 이안의 손을 잡아 끌었다.
“이쪽으로 오시게. 앉아서 얘기하도록 하세.”
그렇게 그리퍼의 연구실에 마주앉은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단 오클리의 부탁으로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안은 그리퍼에게 무척이나 흥미로운 존재였기 때문에, 대화는 술술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안은 그리퍼가 하는 이야기를 꼼꼼히 기억했다.
‘차원의 마도사라는 수식어에 정말 어울리는 능력을 갖고 있는 놈이네.’
그리퍼는 시공을 뛰어넘어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아무 조건 없이 가능한 능력은 아니었다.
해당 시간, 그리고 공간에 있었던 특별한 물건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이 영혼석을 깨워 내려면 지금 하시는 연구가 마무리 되어야 한다는 거죠?”
요점을 정리하는 이안의 물음에 그리퍼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지.”
막상 영혼석을 다시 꺼내 들자, 그동안 잊고 있었던 신룡에 대한 기대감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안은 더욱 의욕이 솟는 것을 느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을까요?”
그리퍼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네. 그러니까 내 자네에게 이리 열심히 설명하지 않았겠는가?”
“그렇군요.”
“물론 내 부탁을 들어줄 테지?”
그리고 그의 말과 함께 이안의 앞에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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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유물-
차원의 마도사 그리퍼는 신룡의 영혼석을 깨우기 위해 자신이 연구하는 중인 마법장비를 작동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마법장비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재료가 필요하며, 그는 당신이 그것을 구해오기를 원하고 있다.
그리퍼가 만들어낸 차원의 문으로 들어가 그가 원하는 고대 유물의 조각을 구해 와야 한다.
조각은 총 여섯 종류로 이루어져 있으며, 종류별로 하나씩 모든 조각을 모아 가져와야 한다.
퀘스트 난이도 : A
퀘스트 조건 : 퀘스트 진행 도중 파티 불가.
제한 시간 : 3일
보상 - 알 수 없음
퀘스트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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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리로부터 받았던 퀘스트의 연계 퀘스트여서 그런지 ‘파티불가’ 라는 퀘스트 조건과 거부할 수 없는 퀘스트 라는 옵션이 그대로 딸려 들어왔다.
이안은 뭔가 기분이 찜찜해졌다.
‘어차피 포기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거부할 수 없는 퀘스트 라는 조건은 역시 좀 찝찝해.’
퀘스트 난이도도 A등급으로 올랐다.
도전하기 무서울 정도의 난이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수준의 난이도도 아니었다.
이안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뭐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유물의 조각을 모아오면 되는 거죠?”
그리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리고 성질 급한 이안은 곧바로 일어섰다.
“지금 바로 움직이죠, 뭐. 어디로 가면 됩니까?”
그런 그의 모습에 그리퍼는 웃으며 따라 일어났다.
“워, 워. 잠시만 기다리시게. 자네는 유물이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도 모르지 않는가?”
어차피 게임 시스템이 알려 줄 건데 무슨 상관이냐는 말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것을, 이안은 가까스로 참아내었다.
“그… 건 그렇네요.”
이안을 잠시 자리에 세워둔 그리퍼는 자신의 연구실 창고에 들어가 마치 돋보기 같이 생긴 물건을 하나 가지고 나왔다.
“자, 이걸 받으시게.”
“이게 뭔가요?”
“고대 유물을 감별할 수 있는 도구야. 총 여섯 종류의 다른 유물들을 하나씩 모아 와야 하는데, 생김새가 거의 똑같거든. 이 감별장치가 없으면 자네는 아마 구분하기 힘들 거야.”
이안은 물건을 품속에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그렇군요.”
잠시 뜸을 들인 그리퍼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내가 여는 포탈은 아마 고대 아르노빌 제국의 유적 지하 던전으로 이어질 거네. 자네는 그 곳으로 들어가 ‘도굴꾼의 영혼’ 이라는 녀석을 잡으면 되지.”
“도굴꾼의 영혼이 유물 조각을 가지고 있나보군요.”
그리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그에게서 얻은 유물 조각을 내가 준 감별기로 감별해서 서로 다른 여섯 가지의 유물을 다 모은 뒤 포탈을 통해 다시 돌아오시게나.”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크게 복잡할 것 없는 단순 노가다 퀘스트였다.
“알겠습니다.”
포탈로 들어가려는 이안에게 그리퍼가 한 마디 덧붙였다.
“아, 이 포탈은 3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닫히게 되니, 그 전에 꼭 돌아오시게. 아마 3일이면 시간이 모자랄 일은 없을 거야.”
퀘스트를 진행해 보기 전엔 여유로운 시간일지 어떨지 모르는 일이었지만, 제한시간이 있다면 일단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는 게 중요했다.
“예, 걱정 마세요.”
간결하게 대답한 이안은 망설임 없이 차원의 포탈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 * *
< (5). 차원의 마탑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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