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작열의 대지 -2 >
그리고 길드원들의 소식을 듣고 나니 거점지가 잘 성장하고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그, 거점지는 어때? 주변 소탕은 잘 되가?”
“말도 마, 처음엔 거점지가 넓다고 좋아하기만 했었는데, 마을 영향 범위가 같이 넓어 버리니까 몬스터 사냥 어지간히 해서는 치안도 1 올리는 것도 힘들더라고.”
“그렇구나. 거점지 빨리 가 보고 싶네.”
카윈은 입을 삐죽이며 덧붙였다.
“형이 초기화만 안 했어도 더 수월하게 토벌작업 했을 텐데… 초기화는 왜 해가지고….”
“조금만 더 기다려라 인마. 형 이제 곧 초기화 하기 전 전투력 다 복구한다.”
이안의 정말 조금의 과장도 섞지 않고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이안의 레벨은 69.
그는 80레벨 정도에만 근접해도 초기화 전 궁사의 전투력과 맞먹을 정도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사냥 속도로 보름이면 80까지는 무리일지 몰라도 그 언저리까지는 갈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카윈은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지만.
“허풍은….”
“허풍 아니야. 나 이제 곧 70레벨이야.”
“…?!”
이안의 말에 카윈과 하린 둘 다 무척이나 놀란 표정이 되었다.
“아니, 투기장 끝난 지 이제 이주일 정도 지난 것 같은데… 69레벨이라고?”
이안이 어께를 으쓱 하자 카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이 형은 무슨 잠도 안 자고 레벨업만 하나… 하루에 1레벨도 더 올렸네 미친…!”
하린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얘기했다.
“이안님… 그러다가 수명 줄어 들어요….”
이런 저런 근황 이야기를 잠시 나누던 세 사람.
그런데 문득, 하린이 생각난 것이 있는지 이안을 응시했다.
“그런데 이안님. 제 미트볼 좋아한다던 새로운 친구 좀 보여줄 수 있어요?”
“아, 뿍뿍이요?”
뿍뿍이라는 말에 하린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네? 뿍뿍이가 이름이에요?”
이안은 웃으며 대답했다.
“네. 보시면 이름이 왜 뿍뿍이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이안은 등에 매달려있던 뿍뿍이를 내려놓았다.
“뿍뿍아 나와 봐.”
이안이 부르자 등껍질 안에 들어가 있던 뿍뿍이가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뿍-
그 모습을 본 하린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와, 엄청 귀여워요!”
한 눈에 뿍뿍이의 귀여움에 반한 하린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안녕, 뿍뿍아?”
뿍뿍이는 처음 보는 하린의 얼굴에 고개를 픽 돌려버렸다.
도도한 거북이 뿍뿍!
차가운 뿍뿍이에게 상처받은 하린은 시무룩한 얼굴로 이안에게 물었다.
“이안님, 뿍뿍이가 절 별로 마음에 안 들어 하나봐요. 왜 이러죠?”
그리고 뿍뿍이의 주인 이안은 정답을 알고 있었다.
“지금 뿍뿍이가 배가 고파서 그래요. 하린님 만들어놓으신 거 뭐 있으시면 하나만 줘 보세요. 미트볼 같은거 가진 거 있으세요?”
하린은 반색하며 인벤토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그렇지 않아도 숙련도 노가다 하면서 만들어놓은 게 있었는데… 어디보다….”
그리고 하린이 꺼내든 것은 이전의 미트볼들과는 조금 다른 노릇노릇한 색감을 가진 미트볼이었다.
밀가루를 덧입혀서 한번 더 튀긴듯 한 비주얼이었다.
“어, 미트볼 색깔이 좀 바뀌었네요?”
“네, 맞아요. 좀 더 맛있게 레시피를 개량했어요.”
미트볼 주위로 피어나는 먹음직스러운 향기!
이미 미트볼을 발견한 뿍뿍이는 시선은 떼지 못하고 있었고, 이안조차 기대에 찬 눈빛이 되었다.
“오오….”
“개량된 미트볼 이름은 ‘마약 미트볼’ 이에요. 제가 개발한 특제 소스를 표면에 얇게 펴 바르고 밀가루를 한 겹 덧씌워서 튀겨낸 거라 식감이 좋을 거예요. 비린 맛도 사라져서 이제 이안님이 드셔도 맛있을 걸요?”
자신 있게 자신의 신 메뉴를 자랑한 하린은 다시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미트볼을 뿍뿍이에게 내밀었다.
뿍-!
기다렸다는 듯 미트볼을 낚아채는 뿍뿍이.
하린에게서 미트볼을 가져간 뿍뿍이는 카윈까지 세 사람이 흥미롭게 지켜보는 가운데 그것을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뿍… 뿍!!
두 눈을 감고 미트볼의 식감을 최후까지 음미하고 난 뿍뿍이는 그 희열에 등껍질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행복한 표정으로 하린의 앞에 쪼르르 달려가 머리를 부볐다.
뿍- 뿍뿍!
시크했던 뿍뿍이는 오간데 없이 사라졌다.
마약 미트볼을 갈구하는 식탐 거북이만 남았을 뿐!
“뿍뿍이가 기분이 좋아졌나봐요!”
고객의 격한 반응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하린은 미트볼을 하나 더 꺼내기 위해 가방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 때.
이안이 그녀를 제지했다.
“하린님 더 주지 마세요. 뿍뿍이 버릇 나빠져요.”
그 순간.
찌릿-!
뿍뿍이가 두 눈으로 레이저라도 발사하듯 강렬히 이안을 째려봤다.
하지만 이안은 굳건했다.
“저한테 주시면 제가 뿍뿍이 배고파질 때 마다 하나씩 잘 줄게요.”
그 말에 하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 안에서 도시락을 꺼내어 이안에게 건네었다.
“그래요, 그렇게 해요 그럼. 이안님이 뿍뿍이 잘 챙겨 주시겠죠 뭐.”
마약 미트볼이 수십 개는 들어있을 것만 같은 도시락이 그대로 주인의 가방 속으로 들어가는 잔인한 광경!
뿍뿍이는 속절없이 그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뿍-
눈 뜨고 보기 힘든 참혹한 광경에 뿍뿍이는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옆에 서서 지켜보던 카윈이 뿍뿍이의 표정이 안쓰러웠는지, 이안에게 한마디 하였다.
“형, 쟤 울 것 같아. 한 알만 더 주지 그래?”
카윈의 말에 뿍뿍이의 그렁그렁한 눈망울이 다시 이안을 향했다.
정확히는 도시락이 들어간 이안의 가방을.
하지만 이안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 돼. 한 알이 두 알 되고, 두 알이 세알 되는 법.”
그러면서 이안은 뿍뿍이를 슬쩍 쳐다보았다.
‘이제 좀 달래줘야겠지?’
그리고 슬쩍 걸음을 옮긴 이안은 뿍뿍이의 앞에 앉았다.
“뿍뿍아.”
뿍-!!
뿍뿍이는 고개를 팩 하고 돌려버렸다.
자신을 방패로 처음 사용했을 때 만큼 단단히 삐쳐버린 것이었다.
“형 말 좀 들어봐 뿍뿍아.”
뿍뿍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이안은 말을 이었다.
“뿍뿍이 너, 세상에서 제일 잘생기고 멋진 거북이가 누군지 알아?”
뿍뿍이는 듣지 않는 척 가만히 있었지만, 이미 이안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저 북부대륙에 빡빡이라는 거북이가 있는데, 그 거북이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거북이라 하더라고.”
뿍뿍이의 고개가 살짝 돌아왔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
그리고 이안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 형이 말이야. 그 말을 듣고 참을 수가 있어야지. 내가 알기로 우리 뿍뿍이만큼 잘생기고 멋진 거북이는 없는데 말이야.”
이안의 입에서 나오는 멋진 거북 이야기는 카윈과 하린마저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형이 곰곰이 생각해봤거든?”
꿀꺽-
조용한 가운데 뿍뿍이의 침 삼키는 소리가 울렸다.
“뿍뿍이 네가 미트볼을 너무 많이 먹어서 요즘 살이 쪄서 그 빡빡이한테 밀리게 된 게 아닐까?”
뿍뿍이는 충격을 먹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살이 쪘는지 등껍질이 좁게 느껴졌기 때문!
“그래서 이 마약미트볼을 너에게 많이 줄 수가 없어, 뿍뿍아. 이 형 마음 이해하지?”
뿍…!
이안이 자신을 이렇게까지 생각해주는지는 몰랐던 뿍뿍!
뿍뿍이는 감동받은 얼굴로 이안의 손에 머리를 부볐다.
“그러니까 좀만 참아 뿍뿍아. 형이 우주에서 제일 잘생긴 거북이로 만들어줄게.”
주인과 소환수의 우정이 싹트는 광경을 보며, 카윈과 하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카윈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사기꾼….”
* * *
하린에게 충분한 지원을 받은 이안은 다시 포르칼 산맥을 넘기 위해 라이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이동속도가 느린 떡대는 소환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한 두 마리 정도씩 드문드문 등장하는 포르칼 산맥의 몬스터들을 잡아내면서 이동하는 데는 라이 만으로도 큰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과연 하린님에게 받은 마약 미트볼이 라바 위치 에게도 효과가 있을까...?’
하린은 자신이 만든 미트볼이 몬스터를 포획하는 데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일리도 있었다.
이미 뿍뿍이에게 먹여본 결과, 마성의 미트볼임을 확인할 수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온 몸이 시뻘건 용암으로 이루어진 라바위치 들도 미트볼을 좋아할지는 알 수 없었다.
왠지 떡대처럼 음식을 먹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만 더 가면 포르칼은 빠져나갈 수 있겠어.”
포르칼을 지나며 보이는 몬스터들을 꾸준히 잡은 결과, 이제 70레벨도 멀지 않은 상태였다.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작열의 대지에 등장하는 70레벨 초반대의 샌드웜들을 몇 마리 사냥하고 나면 가장 레벨이 낮은 뿍뿍이까지 전부 70레벨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안의 생각대로 곧 포르칼 산맥이 끝나고 작열의 대지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아오, 여기는 정말 들어갈 엄두가 안 나네.”
건조함으로 인해 여기 저기 쩍쩍 갈라진 황폐한 땅.
곳곳에 아지랑이가 올라오는 것이 보일 정도로 작열의 대지는 후덥지근했다.
‘그냥 보기만 해도 땀이 나네. 떡대가 진화하기 전이었으면 타고 다니면 좀 시원했을 텐데….’
떡대가 들었다면 질겁을 했을 말이었다.
아이스골렘 시절의 떡대에게 더위란 곧 재앙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어찌되었든, 포르칼 산맥을 빠져나온 이안은 작열의 대지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안은 곧 너 댓 마리 정도의 커다란 전갈 몬스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안도 익히 알고 있는 몬스터.
‘샌드 스콜피온’ 이었다.
이안은 잠시 고민했다.
'음, 떡대 없이는 힘들겠는데… 그냥 지나갈까 아니면 잡고 갈까…?'
아직 이동할 거리가 많이 남았기에 떡대 소환은 최대한 미루려 했지만, 떡대 없이 70레벨대의 몬스터 여러 마리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다고 눈 앞에 보이는 경험치를 무시하고 지나치자니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떡대 소환!"
이안은 결국 전투하기로 마음먹었다.
쿵 -
육중한 소리와 함께 작열의 대지 한복판에 떡대가 소환되었다.
이전보다 더욱 커진 덩치 때문에, 소환되는 것 만으로도 스콜피온들의 시선이 떡대에게로 집중되었다.
키이익-
스스스슷-
떡대를 발견한 스콜비온들이 빠른 움직임으로 이안들을 향해 부산히 다가왔다.
‘저 놈들은 맹독 공격만 조심하면 크게 문제될 건 없으니까.’
스콜피온들의 맹독 공격은 무척이나 위협적이었다.
맹독은 일반적으로 카일란에 알려져 있는 독 공격 스킬인 ‘중독’ 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맹독공격에 당하면 추가로 고정피해까지 입게 되기 때문이었다.
카일란에서는 일반적인 중독 상태에 빠지면 초당 최대체력의 1~2%의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런데 스콜피온들의 맹독은 최대 체력에 비례하는 피해를 입힘은 물론, 추가로 대상의 독 저항력에 따라 500에서 많게는 1500이 넘는 고정 피해를 더 입힌다.
쉽게 말해 중독상태와 출혈상태가 동시에 걸리는 효과 정도로 생각하면 되는 치명적인 상태이상이 바로 ‘맹독’ 이었다.
그렇기에 높은 레벨의 유저라도 방심하면 순식간에 골로 갈 수 있는 위협적인 몬스터.
하지만 공략법도 물론 존재했다.
< (3). 작열의 대지 -2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