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작열의 대지 -1 >
이안은 예상보다 더 쉽게 풀리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좋아, 조금만 더…!’
이안은 떡대와 함께 자신의 앞에 있는 산적들을 상대하며 라이를 힐끔 힐끔 쳐다보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게 끝날 줄 알았던 라이와 산적두목의 싸움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었다.
활을 든 궁수 답게, 보스 몬스터인 산적두목의 민첩성이 무척이나 높았던 것이었다.
처음 두 번의 공격을 허용한 후 산적두목은 좀처럼 라이의 공격에 당해주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곧, 라이도 공격을 한 방 허용하고 말았다.
[소환수 ‘라이’가 산적두목에게 피해를 입었습니다.]
[소환수 ‘라이’의 생명력이 5956 감소합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본 이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활을 맞은 것도 아니고 근접 공격에 당했는데 6천이나 데미지가 들어온다고?’
광폭화 스킬로 인해 방어력이 떨어진 라이였기 때문에 많은 피해를 예상하긴 했지만, 이건 생각보다 훨씬 위험했다.
‘아무래도 처음에 보스가 광역으로 걸었던 버프가 공격력과 관련 있는 버프였던 것 같네.’
이안은 다급히 떡대에게 명령했다.
“떡대, 날 저쪽으로 좀 던져줘!”
돌발적인 명령에 떡대는 잠시 멈칫 했다.
“빨리!”
하지만 이안의 이어지는 재촉에, 떡대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고, 그 위에 이안이 올라타자 있는 힘껏 이안을 던져 올렸다.
‘일단 잡고 본다!’
이안은 허공으로 떠오른 상태에서 계속해서 화살을 날렸다.
산적두목은 라이와 격전중이었기 때문에, 이안의 화살까지 신경 쓰지는 못했다.
퍽- 퍽-!
화살은 명중했지만, 무방비 상태로 바닥에 떨어진 이안은 피해를 입었다.
[높은 지점에서의 낙하로 인해 2352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이안은 당황하지 않고 바닥을 한번 구른 뒤 재빨리 무기를 너클로 바꿔 들었다.
‘감응 능력만 발동되면 좋겠는데…!’
전류증식 스킬을 시전하여 양 손에 전류 구체를 쥔 이안은 지체 없이 산적 두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주변의 산적들이 다가와 무척 곤란한 상황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셋의 치열한 난투전 끝에 이안이 원했던 ‘감응’ 능력이 발동되었다.
[‘고대 소환술사의 강철너클’이 ‘감응’ 능력을 발동시킵니다.]
[소환수 ‘떡대’의 ‘어비스 홀’ 능력을 빌려옵니다.]
고오오오-!
이안의 손 끝에서 커다란 파동이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파동에 산적두목뿐 아니라 그를 돕기 위해 다가온 다른 산적들도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실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됐어!’
그리고 산적 두목의 움직임이 묶이자, 라이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크르릉-!!
그리고 그것은 이 아슬아슬한 전투의 마침표였다.
“으아악!”
[포르칼 산적 두목을 처치했습니다. 18500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보스 몬스터 다운 막대한 경험치!
이안은 뿌듯함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산적 두목과의 전투 도중 제법 큰 피해를 입어서 그와 라이 모두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재빨리 회색빛으로 변한 산적 두목의 사체로 다가가 아이템을 회수했다.
[영웅 몬스터 ‘포르칼 산적 두목’ 으로부터 5914골드를 획득합니다.]
[‘포르칼 산적의 패기’ 아이템을 획득합니다.]
‘포르칼 산적의 패기’ 아이템은 포르칼 세트 중 가장 나오지 않는다는 장신구 부위의 세트 아이템이었다.
이안이 쓸 만한 아이템은 아니었지만, 기사나 전사 유저에게 제법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는 고가의 물품을 획득한 것이었다.
‘이제 여길 무사히 빠져 나가기만 하면 돼…!’
뜻하지 않았던 소득까지 챙긴 이안은 시야를 넓혀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했다.
지금의 생명력으로 남은 산적들과 싸운다는 것은 만용에 가까웠다.
“라이, 떡대가 있는 쪽으로 뛰어!”
이안이 명령하자, 라이는 떡대 에게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이안은 그와 반대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자, 이러면 내 쪽으로 쫓아오겠지?’
그리고 이안의 예측대로 산적들의 AI는 유저를 우선으로 쫓아오기 시작했다.
점점 라이와 이안의 거리가 많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충분한 거리를 확보했음을 느낀 이안은 생각해 두었던 스킬을 발동시켰다.
“공간왜곡!”
공간왜곡으로 인해 이안과 라이의 위치가 바뀌었다.
하지만 이안은 라이를 희생시키거나 할 생각으로 스킬을 발동시킨 것이 아니었다.
이안은 연달아 외쳤다.
“라이, 떡대, 소환해제!”
그러자 전장 한복판에 갇힌 떡대와 라이는 손쉽게 그 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동시에 새하얀 빛 속으로 사라지는 라이와 떡대!
소환 해제된 라이와 떡대는 아공간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등에 메고 있던 뿍뿍이 마저 소환해제 시킨 이안은 가벼운 몸이 되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클로피아 덕에 몸이 가볍네.’
민첩성이 천이 넘는 클로피아가 빙의된 이안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빨랐다.
모든 주력 소환수들을 소환해제 했으니 이제 전장을 벗어나면 최소 30분은 사냥을 할 수 없었다.
‘아직 70레벨까지는 찍지 못했지만… 이정도면 그래도 많은 소득이 있었으니까….’
이안은 마을로 향했다.
하린을 만나 소환수들의 사료(?)를 공급받고 다시 포르칼 산맥으로 올 계획이었다.
* * *
마을에 도착한 이안은 하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안: 하린님 뭐하고 계세요?]
그리고 다행히 접속 중이었던 하린에게서 곧바로 대답이 왔다.
[하린: 아 저 지금 카윈이랑 뮤란에 있어요.]
[이안: 카윈이랑요? 뮤란에서 뭐하시는데요?]
[하린 : 아, 저도 이번에 로터스 길드에 들어왔거든요. 그래서 카윈이랑 같이 북부 거점지로 가려고 준비 중이었어요. 가기 전에 이것저것 살 재료들도 많아서 지금 경매장이에요.]
하린의 말에 이안은 순간 조금 놀랐다.
‘음, 하린님 레벨업 속도라면… 레벨이 아직 60도 안 되셨을 게 분명한데, 어떻게 길드에 들어온 거지? 카윈이 친분으로 들어왔나?’
이안은 잠시 의아했다.
헤르스는 친분이 있다고 해서 길드원을 쉽게 받아주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니까.
절친한 친구인 자신이 처음 카일란을 시작했을 때도 레벨을 충분히 올리고 나서야 길드원으로 받아줬었던 헤르스였다.
하지만 이안은 곧 이유를 깨달았다.
‘아, 거점지 때문에 그렇구나. 거점지가 생기면 생산스킬 레벨이 높은 유저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했지!’
이안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산 스킬로 한정한다면 하린 정도의 인재는 정말 찾기 힘들 것 이었다.
‘잘 됐네.’
이안은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이안 : 와, 그렇구나 하린님 잘 됐네요. 제가 사냥하느라 바빠서 하린님 길드에 들어오신 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하린 : 그렇죠? 정말 잘 됐어요. 헤르스님이 저 레벨업 하는 것도 도와주신데요. 이제 정말 요리 스킬 숙련도 올리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레벨업을 도와준다는 말은 아마 길드 파티에 끼워준다는 이야기일 것이었다.
소위 말하는 버스.
‘헤르스가 잘 생각했어. 하린님 한 명 길드 파티에 끼워준다고 해서 길드원 전체의 레벨 업 속도가 많이 느려지지는 않을 테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완전히 버스도 아니었다. 재료를 충분히 사 가지고 가서 요리만 지속적으로 공급해 줘도, 하린은 괜찮은 버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었으니까.
게다가 장기적으로 생각해 보면 하린의 레벨을 올려주는 것은 길드 입장에서 무조건 이득일 것이었다.
요리 스킬에 재능이 있는 하린이 재능도 없고 흥미 도없는 사냥에 쓸 시간을 최대한 줄여주면, 지금보다 더욱 빠르게 요리의 숙련도를 올릴 수 있을 것이었다.
고개를 주억거린 이안은 본론을 꺼내었다.
[이안 : 그런데 하린님, 혹시 북부로 넘어가시기 전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세요?]
[하린 : 네? 시간이요?]
이안은 하린이 오해(?) 할까봐 얼른 말을 덧붙였다.
[이안 : 네. 다른 게 아니구요, 하린님이 주신 미트볼이 다 떨어져서요… 제가 먹을 요리는 아직 좀 남았는데, 미트볼이 모자라네요.]
잠시 후 놀란 듯 한 하린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하린 : 헐… 그 때 미트볼 정말 많이 만들어 드렸었던 것 같은데… 라이가 미트볼을 정말 좋아하나 봐요. 전 오히려 이안님이 드실 요리가 모자랄 줄 알았거든요.]
하린의 말에 이안은 절로 실소가 나왔다.
뿍뿍이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이안 : 그게, 제가 그 새 식구가 좀 늘어서요. 하린님의 미트볼을 정말 좋아하는 녀석이 하나 생겼거든요.]
하린은 자신의 요리를 좋아하는 소환수가 생겼다는 말에 반색했다.
[하린 : 오, 정말요? 어떤 소환수인지 궁금해서라도 이안님 뵙고 가야겠네요.]
[이안 : 고마워요 하린님. 일단 경매장에서 일 보고 계시면 제가 뮤란으로 가겠습니다.]
[하린 : 넵, 그러도록 할 게요.]
* * *
귀환석을 타고 뮤란으로 이동한 이안은 곧바로 경매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금방 하린과 카윈을 찾을 수 있었다.
“여, 이게 누구야, 이안형!”
이안을 먼저 발견한 카윈이 후다닥 달려와 반가움을 표시했다.
“야, 까불이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그리고 경매장에서 요리 재료들을 구매 중이던 하린도 반갑게 다가와 인사했다.
“와, 이안님 게임 안에서 더 오랜만이네요. 제가 루키리그 관전하러 갔어야 했는데, 그간 과제 때문에 아예 접속을 못 했어요.”
“아, 아니에요 하린님. 안 오시길 잘하신 거예요. 오셨어도 아마 제가 신경 못 써 드렸을 겁니다.”
“무튼 축하해요 이안님.”
그녀의 말에 문득 결승전이 다시 생각난 이안은 조금 슬퍼졌다.
“고마워요.”
그리고 그의 시무룩한 표정을 느낀 하린이 웃으며 덧붙였다.
“준우승도 대단한 거죠. 너무 아쉬워 말아요.”
하지만 이안은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대답했다.
“음… 그렇죠?”
그런데 그 때,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카윈이 놀란 표정이 되어 물었다.
“어, 게임 안에서 더 오랜만이라니…? 두 사람 실제로 만난 적 있어?”
카윈의 물음에 하린이 대답했다.
“응. 저번에 내가 학교 갈 일 있었는데 그 때 이안님 잠깐 불러냈었지.”
카윈은 질투에 찬 표정이 되었다.
“뭐?! 나도 아직 하린누나 만나본 적 없는데! 저 형이 먼저 만났단 말이야?!”
하린은 피식 웃었다.
“이안님이랑은 같은 학교잖아.”
“그래도 그렇지!”
“네가 서울 올라오던가. 한국대학교 놀러오면 밥 사준다니까?”
“아니 누나, 고딩이 무슨 돈이 있어서 서울까지 올라가! 차비도 없단 말야.”
이번에는 이안이 핀잔을 주었다.
“야, 엄살은 그만 떨고, 요즘 길드 근황이나 얘기해 봐. 다들 레벨은 많이 올렸어?”
이안의 말에 징징대던 카윈은 머쓱했는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음, 이제 다들 95레벨은 넘었어. 피올란 님은 아마 100레벨도 넘으셨을 걸?”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예상했던 정도의 레벨들 이었다.
‘이제 최상위 랭커들은 120레벨도 넘었겠는데…? 더 분발해야겠어…!’
이안은 속으로 전의를 불태웠다.
< (3). 작열의 대지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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