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두 번째 진화 -5 >
클로피아의 정보창을 읽어 내려가던 이안은 씨익 웃었다.
‘역시, 내 짐작대로였어.’
이안의 시선은 클로피아의 월등한 민첩성에 고정되어 있었다.
총 전투능력치의 반절이 민첩성에 몰려있는 구조.
이안은 바로 이 부분 때문에 클로피아를 포획한 것이었다.
이안은 클로피아를 소환했다.
“클로피아 소환!”
이름은 짓지 않고 그대로 클로피아 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어차피 한동안만 쓸 녀석이니까.’
이안이 클로피아를 잡은 이유는 한동안 빙의 스킬로 자신의 민첩성을 뻥튀기 시켜 줄 몬스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래 쓸 수는 없었다. 어차피 빙의되어있는 몬스터는 레벨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레벨 차이가 많이 나게 되면 새로운 몬스터를 잡아다 빙의 셔틀로 써야 했다.
‘괜히 이름 지어줬다가 정들라.’
그런 의미에서 클로피아는 ‘빙의’ 스킬의 스킬레벨도 올릴 겸, 민첩성 능력치에도 도움을 줄 겸 딱 적당한 몬스터였다.
이안은 클로피아에게 빙의 스킬을 사용했다.
“오… 생각보다 더 좋은데?”
그동안 ‘빙의’의 스킬레벨을 올리기 위해 아무 몬스터나 빙의해서 쓰다가 그래도 능력치가 준수한 녀석을 빙의하니 확실히 체감이 달라졌다.
‘기왕 숙련도 올리는 김에 도움이 더 될수록 좋은 거니까.’
평소의 사냥에서야 주력 소환수가 빙의되어있는 것 보다 직접 전투하는 것이 더 효율이 좋다는 것은 증명되었다.
하지만 주력 소환수의 생명력이 바닥이 되었을 때 빙의 스킬을 사용하여 캐릭터의 능력치를 올려준다거나, 캐릭터의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아 위험할 때 떡대 같은 소환수를 빙의시켜 일시적으로 최대체력과 방어력을 늘려서 위기를 모면하는 등, 빙의 스킬의 활용도는 많았기 때문에 숙련도는 꾸준히 올려야 했다.
뜻하지 않게 괜찮은 소환수를 얻은 이안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다시 중앙산채를 향해 움직였다.
* * *
쿠오오오-!!
떡대의 주변으로 시퍼런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어비스 홀' 스킬이 발동한 것!
이안은 재빨리 들고 있던 활을 인벤토리에 집어 넣고 너클로 무기를 교체했다.
'확실히 어비스 홀이 발동한 뒤 부터는 너클의 효율이 좋은 것 같다는 말이지.'
너클이 활에 비해 갖고 있는 장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전류증식으로 생기는 전류 구체가 두 개가 된다는 점, 그리고 감응으로 소환수들의 스킬을 끌어다 쓸 수 있다는 점.
운이 좋아 어비스 홀이 터진 직후에 한번 더 감응으로 인해 어비스 홀이 발동되기라도 하면 거의 20초 동안 광역 메즈(Mez - Mesmerize에 기원을 둔 용어로 게임에서 적 또는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행동 혹은 기술을 뜻한다)가 발동하는 것이었다.
어비스 홀에 끌려 들어와 다닥다닥 붙어버린 적들의 중심으로 전류증식을 던지면 튕겨 나가는 후속타를 여러번 맞추기도 쉬웠고, 적들은 혼란에 빠지기 때문에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생겼다.
바로 지금처럼.
“전류증식!”
이안이 양 손으로 던진 전류의 구체가 산적들이 뭉쳐있는 중심으로 날아가 터져 나갔다.
이미 전류증식을 맞추는 데 도가 튼 이안에게, 어비스 홀로 인해 움직임조차 자유롭지 않은 타겟을 맞추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전류증식’ 스킬을 명중시켰습니다. ‘포르칼 산적’ 에게 1579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증식된 전류가 ‘포르칼 산적’ 에게 465의 추가피해를 입혔습니다.]
증식된 전류 주변으로 산적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국이었기 때문에, 후속타는 거의 한계치까지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포르칼 산적’이 ‘마비’ 상태에 빠집니다.]
[‘포르칼 산적’의 움직임이 30% 느려지며, ‘전격’속성의 공격에 50%의 추가 피해를 입습니다.]
[‘전류증식’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됩니다.]
정령마력이 전부 소모될 때 까지 이안은 연달아 전류증식을 퍼부었다.
지직- 지지직-!
산적들을 신나게 쓸어 담은 이안은 자아도취에 빠졌다.
'크으, 역시 몰이사냥이 사냥의 백미지.'
초기화 전 궁수로 답답하게 하나하나 사냥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쾌감.
물론 궁수도 광역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공격스킬도 있었고, 함정 같은 것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한 번에 여러 마리의 적을 사냥할 수 있기는 했지만, 지금 이안이 사냥하는 것 만큼 많은 숫자의 적을 몰아서 사냥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도 역시 광역딜의 부재가 조금 아쉽긴 하네.’
이렇게 순조롭게 사냥하고 있음에도, 이안은 또다시 아쉬움을 느꼈다.
그리고 문득 신규 몬스터 정보에서 봤었던 ‘라바위치’가 생각났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80레벨이 되기 전에는 잡으러 가지 않으려 했던 놈이지만… 떡대도 진화했으니 산채만 다 털고 나면 잡으러 가 볼까?’
포르칼 산맥을 넘으면 동쪽 끝으로 가기 전 '작열의 대지' 라는 맵이 나온다.
그리고 작열의 대지에는 지하던전이 있었는데, 그 곳이 바로 라바위치가 발견되었다는 곳이었다.
작열의 대지 지하 던전에는 원래 ‘라바 스폰(Lava Spawn)’이 서식한다.
이름 그대로 ‘용암을 낳는 알’ 이라고 부를 만한 몬스터.
라바스폰은 평소에는 화염 속성의 원거리 공격을 하다가 생명력이 반절 이하로 줄어들면 개체가 둘로 나뉘어 증식되며 1/4 정도의 생명력이 회복되는 좀비 몬스터였다.
이 라바스폰 들의 레벨은 70 초반 정도로 산적들보다 크게 높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떡대가 진화하기 전이라면 상대하기 힘들었을 것이었다.
진화하기 전의 떡대는 화염마법에 무척이나 취약해서 산적 주술사의 하급 화염스킬에도 큰 피해를 입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어비스 골렘으로 진화한 떡대는 화염마법에 전혀 약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렇기에 70레벨만 찍고 나면 충분히 라바 스폰들을 뚫고 들어가 라바위치의 포획 노가다를 해볼 만 해진 것이었다.
“읏차!”
새로운 몬스터를 잡을 생각을 하자 신이 난 이안은 흥에 겨워 산적들을 소탕했다.
‘자, 이쯤 해서 다시 활로 바꿔 들어볼까?’
순조롭게 한 무리의 산적들을 전부 사냥하고 나자, 이안은 다시 무기를 바꿔 들었다.
이제 다시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산적들을 몰아 와야 했는데, 몰이를 하는 동안은 활을 들고 다니며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것이 효율적이었고, 덤으로 재사용 대기 시간도 빠르게 줄어들게 할 수 있었으니까.
"떡대, 라이. 이 쪽으로 가보자."
이안은 멀찍이 보이는 산적 몇에게 활을 쏴 유인하며 천천히 산채의 심장부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드디어 산채의 채주 격인 두목 산적을 만날 수 있었다.
‘찾았다!’
선명한 보랏빛 으로 쓰여 있는 '포르칼 산적 두목' 이라는 글귀.
그런데, 이안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뭐야, 그런데 저거 레벨이 왜 저래?’
이안은 멈칫 했다.
순간 등줄기를 타고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산적 두목의 레벨이 무려 80레벨 이었던 것!
‘아니, 초기화 전에 잡았을 땐 분명 75레벨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지만 당황은 잠시.
이안은 냉정히 판단했다.
‘한번 해볼 만 해.’
중앙 산채로 오는 도중에 얻은 클로피아를 빙의한 덕에 캐릭터의 순발력도 많이 올라서 여차 하면 몸을 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안의 시선이 산적 두목의 무기를 향했다.
산적 두목은 활을 들고 있었다.
원거리형 몬스터인 것.
‘탱킹형 보스로 등장했다면 여기서 빼는 것이 옳았겠지만… 원거리형 이라면 놈만 먼저 공격해서 빠르게 잡아버린다!’
원거리형 몬스터들의 가장 큰 특징은 낮은 생명력 이었다.
‘80레벨 정도 보스 몬스터인데 원거리형 이라… 생명력은 어림잡아 3만 정도 되겠네.’
싸우기로 마음을 정한 이안은 떡대에게 명령했다.
"떡대야 어비스 홀!"
그르릉-
떡대가 어비스 홀로 산적들을 묶기 시작하자 이안은 전류증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산적 두목을 잡기 전에 먼저 주변에 걸리적 거리는 일반 산적들의 발을 묶어야 했다.
그리고 산적두목에게까지 '마비'가 걸리자, 이안은 재빨리 생각해놨던 명령을 내렸다.
"라이! 떡대 타고 넘어서 두목 먼저 잡자!"
이안이 명령을 내렸고, 라이는 지체 없이 두목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산적 두목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이놈들! 나를 우습게 보는구나!”
산적 두목이 크게 소리치자, 그의 주변으로 누런 기의 파동이 퍼져 나가며 모든 산적들에게 광역 버프가 걸렸다.
‘아씨, 광역 버프가 있을 줄은 몰랐네.’
광역버프 스킬도 보통 탱킹 형 보스가 주로 가지고 있는 스킬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의외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최대한 빨리 잡아버려야겠어.’
80레벨대 원거리 보스몹에게 제대로 공격스킬을 허용하면 생명력이 순식간에 뭉텅 뭉텅 빠져나갈 것이었다.
이안은 약점포착 스킬을 발동시켰다.
“라이, 잠재능력 폭발! 광폭화!”
이안은 라이에게 모든 버프를 몰아 걸었다.
그리고 라이는 일시적으로 무지막지한 공격력을 갖게 되었다.
[‘광폭화’ 효과로 인해 소환수 ‘라이’ 의 공격력과 민첩성이 15분간 30% 증가하며, 방어력이 30% 하락합니다.]
[‘잠재능력 폭발’ 스킬을 사용합니다.]
[소환수 '라이'의 잠재력에 비례해 '라이'의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라이'의 능력치가 1분 20초 동안 92%만큼 추가로 상승합니다.]
이안이 버프를 받은 라이의 공격력을 슬쩍 확인해보니, 무려 2260이라는 엄청난 수치였다.
‘라이야, 보여줘!’
이안은 라이를 겨냥하는 산적두목을 방해하기 위해 재빨리 활시위를 당겼다.
쐐애액-!
허공을 가로지른 이안의 화살은 라이를 조준하던 산적두목의 팔목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궁사의 명중률 보정 스킬이 없음을 감안하면 정말 신기에 가까운 솜씨!
크르릉-!
그리고 그 틈을 놓칠 라이가 아니었다.
[소환수 ‘라이’가 ‘포르칼 산적 두목’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포르칼 산적 두목의 생명력이 6018 감소합니다.]
[‘포르칼 산적 두목’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혀 5초간 공격력이 추가로 상승합니다!]
[포르칼 산적 두목이 ‘출혈’ 상태에 빠졌습니다. 매 초당 1203의 피해를 추가로 입습니다.]
“좋아!”
연달아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쾌재를 부른 이안은 후방에서 지원사격을 했다.
마음 같아서는 너클로 장비를 바꿔 착용한 뒤 근접해서 돕고 싶었지만, 라이와 같은 점프력이 없는 이안으로서는 산적들을 뚫고 안쪽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것은 민첩성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이 똥개자식이!”
산적 두목은 분노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라이는 잘 피해가며 추가 공격을 성공시켰다.
[소환수 ‘라이’가 ‘포르칼 산적 두목’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포르칼 산적 두목의 생명력이 7823 감소합니다.]
이어서 또 터져 나오는 치명타!
광폭화로 인한 추가 공격력 상승 덕에 더 강력한 데미지가 들어갔다.
출혈은 중첩되지 않는 상태이상 효과였기 때문에 추가로 발동되지 않았지만, 라이는 순식간에 산적두목의 생명력을 반 이상 떨어뜨려 놓았다.
< (2). 두 번째 진화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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