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두 번째 진화 -2 >
다시 카일란에 접속한 이안은 한 시간 정도를 라이를 타고 달린 끝에, 포르칼 산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크으, 오랜만이네.”
포르칼 산맥은 마법사, 궁사 등 원거리 유저들이 주로 즐겨 찾는 사냥터였다.
‘초기화 전에 여기서 꿀 좀 빨았었는데….’
포르칼은 무척이나 산세가 험하고 함정에 가까운 지형지물이 변화무쌍하게 깔려있는 바위산이다.
원거리 딜러들이 명당에 자리만 잘 잡고 사냥하면, 비교적 적은 탱커와 힐러 만으로도 사냥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소환수들을 컨트롤하며 사냥하기에는 어떻게 보면 적합하지 않은 곳.
하지만 이안은 생각해 둔 곳이 있었다.
‘포르칼 산채라면 괜찮은 사냥터가 될 수도 있겠지.’
포르칼 산채는 포르칼 산적단이 거주하는 필드 위의 던전 같은 곳 이었다.
산적들의 평균 레벨은 68~72 정도.
포르칼 산맥의 다른 곳들 보다 AI가 높아 무리지어 다니기 때문에 상대하기 까다로운 인간형 몬스터들 이었다.
그래서 선호하는 유저들이 많지는 않은 사냥터였지만, 이안은 계획이 있었다.
‘그래도 산채 뒤쪽의 협곡을 잘만 이용하면 지금 전력으로 솔로플레이 하기에 최적이야.’
포르칼 산채의 뒤편에는 좁은 바위협곡이 하나 있었다.
이안은 산적들을 협곡으로 유인해서 싸울 생각이었다.
‘떡대랑 라이가 장판파 전투의 장비처럼 협곡의 입구를 막아서면 뒤에서 화살이나 날리면서 재미 봐야겠어.’
하지만 최소 두 달 전의 기억이었기에, 이안은 지형을 다시한번 확인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라이, 저쪽이야.”
크르릉-
라이를 탄 이안은 험한 지형에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라이의 등에 잘 매달려 있기만 하면 라이가 알아서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쉽게 장애물을 피해 움직였으니까.
라이 덕에 이안은 곧 협곡에 도착했고, 지형을 확인한 뒤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충분히 가능할 것 같네.’
협곡이 기억했던 것 보다 조금 넓은 게 아쉽기는 했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괜찮은 생각을 떠올린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는 산적들을 이쪽으로 잘 유인하기만 하면 될 것이었다.
이안은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떡대도 소환했다.
“떡대 소환!”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소환된 떡대를 보며 이안은 명령을 내렸다.
“떡대, 넌 저 쪽에 가서 저기 있는 바위좀 여기까지 밀어봐.”
떡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르릉-
이안이 가리킨 곳에는 거의 떡대의 덩치만한 바윗덩어리가 협곡에 기대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바위 앞으로 가더니 낑낑거리며 밀어서 협곡 쪽으로 바위를 옮기기 시작했다.
‘너무 커서 안 옮겨지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네.’
그리고 이번에는 라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라이야, 저쪽에 보초병들 보이지?”
크릉-
거의 사람 수준으로 이안의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라이.
이안의 작전설명(?)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네가 조용히 움직여서 들키지 말고 저 놈들 근처로 다가가. 그럼 내가 활을 쏴서 마비를 걸게.”
무기가 활로 바뀐 뒤, 전류증식 스킬은 화살촉 끝에서 생성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양 손에 하나씩 착용하는 무기인 너클을 사용할 때에는 양 손에 각각 한 구 씩 두 개의 전류덩어리가 생성되었던 것이, 활로 바뀌면서 하나로 줄어든 것.
하지만 이안은 오히려 만족했다. 사정거리와 정확도가 이전과 비할 바 아닐 정도로 대폭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안의 명령을 받은 라이가 산채의 보초병들에게로 조심스럽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잠시 라이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이안은 그들과의 각도를 계산하며 조금씩 자리를 옮겨 잡았다.
‘마비가 터질 확률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선 한 발에 두 명을 다 맞춰야 해.’
전류증식 스킬의 숙련도가 그동안 올라서, 마비에 걸릴 확률도 20% 정도까지 증가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리 높지는 않은 확률.
하지만, 두 명을 동시에 맞춘다면 계산 상 36% 정도의 확률로 둘 중 한명에게는 마비가 걸릴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확률을 올려야 했다.
게다가 마비가 터지면 추가로 한 발 더 쏠 수 있으니, 전류증식을 한 번에 여러 명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쯤이면…!’
자리를 잡은 이안이 활시위를 당겼다.
“전류증식!”
시동어와 함께 화살촉 끝에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안은 신중하게 조준했다.
궁사 클래스가 아니기 때문에 명중률 보정 같은 것도 없었다.
무조건 실력으로 맞춰야 한다.
이안은 슬쩍 라이를 응시했다.
그리고 라이가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것을 본 순간, 활 시위를 놓았다.
피이잉-!
전류 덩어리가 뭉쳐있는 화살이 이안의 활 시위를 떠나 보초병의 등짝에 틀어 박혔다.
지지직-!
[‘전류증식’ 스킬을 명중시켰습니다. ‘산적 보초병’ 에게 1479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안은 타격지점으로부터 퍼져 나가는 네 갈래의 전류가 옆의 보초병에게도 맞아 주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의 계산대로, 추가 타격이 옆의 보초병에게 들어갔다.
지직- 지지직-!
[증식된 전류가 ‘산적 보초병’ 에게 527의 추가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리고 기다렸던 마비 효과도 터져 나왔다.
[‘산적 보초병’이 ‘마비’ 상태에 빠집니다.]
[‘산적 보초병’의 움직임이 30% 느려지며, ‘전격’속성의 공격에 50%의 추가 피해를 입습니다.]
[‘전류증식’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됩니다.]
“좋아!”
최상의 시나리오.
전류증식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초기화되면서 화살촉 끝에 전류 구체가 다시 맺혔다.
이안은 지체 없이 마비가 걸리지 않은 나머지 한 명의 산적 보초병을 조준하고 활 시위를 놓았다.
퍽-!! 지지직-!
이번에도 마비가 걸리길 바랬지만, 그것은 너무 요행수였다.
하지만 둘 중에 한 명이라도 마비에 걸려 이동속도가 느려졌으니, 이안은 생각했던 대로 전투를 끌어갈 수 있게 되었다.
“라이, 마비 안 걸린 놈 물어 죽여!”
이안의 약점포착이 발동됨과 동시에, 라이의 공격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안도 놀고 있지 않았다.
전류증식 스킬은 아직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연속으로 화살을 쏘아 보냈다.
핑- 피핑-!
[‘산적 보초병’에게 765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산적 보초병’에게 804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안과 라이의 연속된 공격으로 보초병 하나가 순식간에 사망했다.
레벨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일반등급의 적 정도는 가뿐했다.
그리고 한 놈이 죽자, 나머지 한 놈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적이다! 적이야!!”
그리고 그는 황급히 몽둥이를 들어 커다란 북을 울렸다.
둥- 둥-
‘그래, 잘 한다!’
이안은 놈이 북을 울리는 것을 일부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라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라이, 이제 이쪽으로 와!”
크릉-!
그리고 라이가 몸을 돌려 달아나듯 이안을 향해 움직이자, 보초병은 라이를 쫓기 시작했다.
“거기 서라 늑대놈!”
그리고 이안까지 발견한 산적은 씩씩거리며 뛰어왔다.
“숨어서 화살이나 날리다니 비겁하다!!”
이안은 일부러 놈을 더 도발했다.
“자신이 없어서 친구들을 다 불러 모은 주제에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자 우락부락한 산적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이… 이놈!”
이안의 입 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이제 안에서 다 기어 나오겠지?’
정말 사람이었다면 이런 유치하기 짝이 없는 도발에 넘어갈 리 없었겠지만, AI가 그렇게 높은 수준으로 설정되어있지 않은 산적 이었기 때문에, 효과는 직방이었다.
그리고 이안은 그 새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온 전류증식으로 보초병에게 마비를 한번 더 걸었다.
“라이, 아까 그쪽으로 가자!”
크릉-!
이안은 일부러 산적들이 자신과 라이를 놓치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해 가며 뛰었다.
그리고 그가 향한 곳은 협곡이었다.
협곡에 먼저 도착한 이안은 슬쩍 위쪽을 쳐다보았다.
이안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떡대가 멀뚱히 서 있었다.
“떡대, 내가 말하면 아래쪽으로 뛰어 내려.”
그르륵-
떡대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안은 추가로 명령했다.
“그냥 뛰어내리는 게 아니라 뛰어내리면서 산적 몇 놈 깔아뭉개야 돼. 알겠지?”
그냥 협곡에 떡대를 세워놔도 됐지만, 이안은 기왕에 공간적 여건이 가능했으니 새로운 시도를 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때.
짹- 째잭-!
이안의 머리 위에 앉아 작전지시를 보고 있던 짹이가 돌연 촐싹대며 이안의 주위를 빙글 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새 이안의 등에서 내려온 뿍뿍이도 이안을 올려다보며 항의했다.
뿍- 뿌뿍-!
이안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둘을 응시했다.
“얘들이 왜 이래?”
뿍-!
이안은 알 수 없었지만, 이런 멋진(?) 작전에 주역이 될 수 없음이 서운했던 뿍뿍이와 짹이!
그 둘은 멋있게 등장할 떡대가 부러웠다.
“뿍뿍이, 잔 말 말고 형 등에 업히기나 해.”
뿍….
뿍뿍이가 짐짓 서운한 듯 고개를 떨궜지만, 이안은 가볍게 무시하며 뿍뿍이를 업었다.
곧 산적들이 들이닥칠 것이었기에, 뿍뿍이와 놀아줄 시간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수십이 넘는 산적들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두두두-
“떡대 준비.”
이안의 말에 떡대는 바닥으로 뛰어내릴 준비를 했고, 곧 산적들이 협곡에 도착했다.
“감히 어느 놈이! 포르칼 산채에 도전한 것이냐!”
그들 중 우두머리인 듯 보이는 산적을 필두로, 수십이 넘는 산적들이 대거 협곡을 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스 격인 산적두목은 보이지 않았기에 안심했다.
‘지금…!’
타이밍을 잡은 이안은 떡대를 향해 소리쳤다.
“떡대, 뛰어!”
쿵- 쿵-!
떡대가 뛰기 시작하자, 그 무게 때문에 계곡 전체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쾅- 콰콰쾅-!
커다란 굉음과 함께, 떡대는 산적들의 머리 위로 몸을 날렸다.
“으아악-!!”
생각지 못했던 상황에 산적들은 비명을 질렀고, 이안은 자신의 예상대로 전투가 진행되자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사람은 머리를 써야 돼!’
뿍뿍이를 조삼모사의 계책으로 회유한 이후 최고의 지략(?)을 다시 선보이며, 이안은 무척이나 뿌듯해졌다.
‘됐어, 이 정도 공간이라면 추가병력이 와도 충분히 싸워볼 만 할 거야!’
이제 마음 놓고 싸울 시간이었다.
“라이, 광폭화!”
이안이 라이에게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뛰어내린 떡대도 산적들의 머리 위에 안착(?) 했다.
쿵-!
[소환수 ‘떡대’가 ‘포르칼 산적’에게 234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공격력이 별로 높지 않은 떡대였지만, 허공에서 떨어지며 깔아뭉개는 공격이었기에, 그 무게에 영향을 더 많이 받았는지, 제법 많은 데미지가 들어갔다.
‘좋은데?’
그런데 이안이 흡족해 함과 동시에, 생각지 않은 메시지가 하나 더 떠올랐다.
[소환수 ‘떡대’가 높은 지점에서의 낙하로 인해 2892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안의 표정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아, 뭐야. 이러면 의미가 없잖아!’
입은 피해가 더 크긴 했지만 떡대의 높은 체력을 생각한 이안은 찝찝한 마음을 애써 무시했다.
“떡대, 아이스 웨이브!”
쿠쿵-!
아이스 웨이브가 터지고, 둔화 효과까지 걸리자, 산적들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안의 전류 증식 공격이 이어졌다.
피이잉- 지지직-!
< (2). 두 번째 진화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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