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강적, 그리고 레벨업 -3 >
24레벨의 소환술사 카노엘은 20레벨 중반대의 사냥터인 나르한 늪지대에서 레벨을 올리기 위해 사냥 중이었다.
늪지대의 평균 레벨은 26정도로, ‘페라곤’ 이라는 도마뱀 형태의 몬스터가 등장하는 사냥터였다.
평범한 유저라면 레벨에 비해 약간 난이도가 높은 수준의 사냥터.
하지만 카노엘은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심각하게 고전하고 있었다.
“곰탱아! 거기서 그렇게 팔을 휘두르면 어떻게 해! 아오!!”
[소환수의 충성심이 낮아 명령을 거부합니다.]
쿠어어어-
카노엘의 소환수인 반달곰의 레벨은 29.
반나절이 걸려 겨우 포획한 녀석이었지만, 친밀도와 충성도가 낮아 말도 잘 듣지 않았고, 전투력도 영 시원치 않았다.
‘아, 정말 쓸모 없는 녀석이네….’
겨우겨우 페라곤들을 사냥하던 카노엘은 세 마리의 페라곤들에게 둘러싸이자 결국 도망을 선택했다.
“소환해제!!”
반달곰을 소환해제한 그는 잽싸게 마을을 향해 내달렸다.
그가 ‘빙의’ 스킬을 이용해 민첩성을 극대화 시켰기 때문에, 그나마 달아나는 것은 수월했다.
비행 타입의 몬스터 중에서도 민첩이 빠르기로 유명한 화이트 레이븐을 빙의시킨 덕분이었다.
“후, 이렇게는 도저히 사냥 못 하겠다.”
카노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현실세계에서 SH전자의 상속자 중 한명 이었다.
소위 말하는 재벌 2세.
그렇기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떠받듦 속에서 자란 그는 무척이나 자존심이 강했다.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도움 받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게임을 플레이해야 가장 즐겁게 플레이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소환술사 라는 직업도 그래서 선택한 것이었다.
모두에게 육성하기 어렵다는 평을 듣는 소환술사가 그의 정복욕을 자극했던 것.
‘남자는 마이웨이지.’
그 때문에 그는 카일란의 공식 커뮤니티조차 들어가 보지 않았다.
남이 써 놓은 공략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하루 종일 게임만 해도 오르지 않는 레벨을 보고 있자니 드디어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그리고 그는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카노엘 : 란마, 내 계좌로 500만 골드만 보내줘.]
500만 골드라면, 일반적인 20레벨대의 유저라면 구경조차 해 보지도 못 했을 정도의 거액.
하지만 카노엘에게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금액이었다.
날이 쌀쌀해서 길거리 매장에 들어가 조금 비싼 명품 귀마개를 구입하는 수준!
그리고 잠시 후, 곧 메시지가 돌아왔다.
[란마 : 오, 도련님. 이제 제 도움을 받기로 하신 겁니까?]
[카노엘 : 응. 끝까지 혼자 해보려고 했는데, 너무 재미가 없네.]
재미가 없다고 하기 보단 그의 무능과 소환술사에 대한 정보부족의 탓이 컸지만, 카노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그의 참을 성 없는 성미에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고 소환술사를 24레벨 까지나 키운 것이 기적에 가까운 일일수도 있었다.
[란마 : 예, 도련님. 잘 생각하셨습니다. 지금 바로 송금하겠습니다. 혹시 사냥이 어려우시면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카노엘 : 아니,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그냥 돈만 보내도록 해.]
‘그래도 내가 버스까지 탈 순 없지.’
그것은 그의 마지막 자존심 이었다.
[란마 : 예 알겠습니다. 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카노엘 : 알겠어 란마.]
대화를 마친 카노엘은 늪지대에서 벗어나자마자 귀환석을 이용해 마을로 귀환했다.
그리고 그가 향한 곳은 경매장이었다.
‘후, 일단 소환수부터 한 마리 사야겠어. 500만 골드 정도면 큰 돈은 아니지만 당분간 쓸 만한 괜찮은 놈 정도로는 살 수 있겠지?’
카일란에서 소환수는 봉인마법 주문서에 봉인된 채로 거래되고 있었다.
얼마 전 경매장 시스템이 업데이트되면서, 소환수의 거래량은 부쩍 늘었다.
봉인 주문서를 경매장에 올려 놓으면 대상 소환수의 능력치 정보까지 구매자가 확인할 수 있게 되는 방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이 모두 많아진 것이었다.
그는 갖고 있던 소환수 중, 반달곰을 계약해제 해 봉인서에 봉인해 버렸다.
팔아봐야 3천 골드 받기도 힘든 몬스터였지만, 굳이 봉인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해제해서 풀어줘 버리면 충성심이 낮기 때문에 자신을 공격할 지도 몰랐기 때문.
“어지간하면 직접 포획한 몬스터를 데리고 사냥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경매장에 도착한 카노엘은 곧바로 소환수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검색하기 시작한 소환수는 ‘늑대’ 형태의 소환수들 이었다.
“아니 뭐 이렇게 가격이 다 싸? 심지어 붉은 늑대가 10만 골드라고?”
사실 붉은 늑대의 가격으로 책정되어있는 10만 골드는 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잖이 거품이 끼어있는 비싼 가격 이었다.
붉은 늑대는 희귀 등급의 몬스터였지만 최 하위 레벨의 필드에서 잡을 수 있는 몬스터였기 때문에 흔한 편이었던 것.
사실 늑대 종류 소환수들의 값에 거품이 낀 이유는 이안 때문이었다.
이안이 루키리그에서 보여줬던 붉은 갈기 늑대 ‘라이’의 활약 덕분에 늑대 소환수들의 인기가 급상승 한 것이었다.
이번 루스펠 제국의 투기장 루키리그 영상이 방송된 뒤, 모든 늑대 형태의 소환수들의 가격이 20% 이상 올랐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보에 무감한 카노엘이 이안과 라이의 활약을 알 리 없었으며, 시세에 대한 감이 전혀 없는 카노엘이 보기에는 한 없이 싼 가격일 뿐이었다.
‘진작 경매장에서 소환수를 구해볼 걸 그랬어.’
차근차근 소환수를 살피던 카노엘은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른 소환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능력치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 가격이 싸서 그런지 뭐 죄다 이렇게 허접한 소환수들 밖에 없어? 아예 비싼 가격 순으로 검색해 볼까?”
카노엘은 검색조건을 바꿔서 최고가격 순으로 소환수들을 검색했다.
그러자 무지막지한 가격이 매겨져 있는 소환수들이 주르륵 나열되었다.
그리고 카노엘은 가장 윗 줄에 있는 소환수의 정보를 열어 보았다.
“음… 라바 드레이크(Lava Drake)…? 이건 뭔데 천오백만 골드나 매겨져 있는 거야? 한번 구경이나 해 볼까?”
카노엘은 정말 ‘구경’만 할 생각으로 정보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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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바 드레이크(Lava Drake) -
레벨 : 32
분류 : 드레이크
등급 : 유일
성격 : 난폭한
(재사용 대기시간 30분)
진화불가
공격력 : 395
방어력 : 175
민첩성 : 125
지 능 : 105
생명력 : 4950/4950
마 력 : 2470/2470
고유능력
- 화염 속성의 피해를 30%만큼 덜 받는다.
- 화염 속성의 브레스를 발사하여 전방에 공격력의 475% 만큼의 피해를 입힌다.
(재사용 대기시간 30분)
뜨거운 용암 속에서 태어난 ‘라바 드레이크’ 이다.
화염 속성의 공격에 특화되어 있으며, 무척이나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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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이크의 정보 창을 쭉 읽은 카노엘은 순간 말을 잃었다.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능력치였으니까.
“마… 말도 안 돼…!”
그가 방금 전까지 소환수로 데리고 다녔던 반달곰의 능력치는 이 드레이크에 비하면 너무 하찮은 수준이었다.
“반달곰이랑 레벨이 3밖에 차이나지 않는데, 어떻게 공격력이 세 배가 넘는 거지?”
방어력이나 체력은 반달곰과 비교했을 때 별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었지만, 395 라는 공격력 수치는 정말 가공할 수준이었다.
‘가… 갖고 싶다…!’
카노엘은 일단 드레이크의 정보창을 닫고 다른 몬스터들의 정보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방금 확인했던 드레이크 만큼의 능력치를 가진 몬스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좀 비싸긴 하지만… 그만한 투자할 가치는 있어 보이니까….”
이안이 들었다면 답답함에 화병이 났을 지도 모를 정도로 멍청한 판단을 하고 있는 카노엘!
사실 이안이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라바 드레이크의 가격은 말도 안 되게 비싼 수준이었다.
안타깝게도 카노엘의 마음을 앗아간 라바 드레이크는 판매자가 호구를 저격하기 위해 올려놓은 매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유일등급이라 하더라도 ‘진화불가’ 개체의 가격은 최근 경매 시장에서 그렇게 비싼 편이 아니었으니까.
지금 경매장에 올라오는 소환수들 중 가장 인기 있는 매물은 ‘진화가능’ 옵션이 붙어있는 개체들이었다.
아직 진화에 성공한 유저가 공식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경매장에 올라오기가 무섭게 사라질 정도로, 진화 가능 개체들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500만 골드가 카노엘이 아닌 정보에 빠삭한 다른 소환술사 유저의 손에 쥐여져 있었다면, 아마 반달곰이나 골렘류의 진화가능 개체를 찾기 위해 열심히 경매장을 뒤질 터였다.
지금 500만 골드로 구매 가능한 ‘진화가능’ 개체들 중 가장 상 등급의 몬스터들이 반달곰과 골렘류 였으니까.
하지만 카노엘은 그런 세부적인 정보는커녕, 진화가 가능한 개체가 있다는 것 조차 모르고 있었다.
카노엘은 단지 라바 드레이크의 멋진 비주얼과 강력한 공격력에 이미 마음을 뺏겨 버렸다.
‘그래, 500만 골드 쓰나 1500만 골드 쓰나 그게 그거지 뭐.’
일반 유저가 들었다면 탄성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만한 생각을 한 카노엘.
그는 망설임 없이 란마에게 메시지를 보내어 모자라는 금액을 추가로 송금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라바 드레이크’가 봉인된 주문서를 구매해 버렸다.
“으흐흐…!!”
입 꼬리가 귀에 걸린 카노엘은 서둘러 구매한 라바 드레이크와 계약하기 위해 봉인주문서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의 눈 앞에 절망적인 메시지가 떠올랐다.
[통솔력이 부족하여 ‘라바 드레이크’와 계약할 수 없습니다.]
“으… 으아아…!!!”
온 몸에 힘이 다 빠지는 기분.
카노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니, 샀는데 왜 쓰질 못 하니…!!”
그는 고심 끝에 마지막 남은 소환수 화이트 레이븐 마저 계약해지를 하고 다시 주문서를 사용했다.
하지만….
[통솔력이 부족하여 ‘라바 드레이크’와 계약할 수 없습니다.]
안타까운 시스템 메시지가 다시 속절없이 울려 퍼지고 말았다.
“제기랄….”
카노엘은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일어선 카노엘은 다시 경매장을 열었다.
“통솔력 올려주는 아이템으로 온 몸을 도배하면 되겠지?”
그리고 그는 다시 란마에게 메시지를 보내어 추가로 돈을 더 뜯어 내었다.
한번 쓰기가 어렵지, 쓰기 시작하니 주머니가 마치 자동문처럼 열렸다.
‘으… 이정도 액수면 아버지도 조금 뭐라고 하시긴 할 텐데….’
하지만 지금 손 안에 있는 라바 드레이크를 당장 써보지 못 하면 직성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천만 골드에 육박하는 거액을 다 써 버린 카노엘은 자기합리화를 시전했다.
“흠, 그래도 이 정도 돈 써서 게임 더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으면 그게 이득이지 뭐. 누가 사기 전에 빨리 사 버리길 잘했어.”
과연 카노엘이 아니었다면 누가 사기는 했을까 싶은 매물이었지만, 원하는 소환수를 얻은 카노엘은 해맑았다.
‘모르는 게 약’ 이랄까….
그렇게 오늘도 카일란의 경매장에서는 한 명의 유저가 자신의 합리적인(?) 소비에 뿌듯해 하고 있었다.
< (1). 강적, 그리고 레벨업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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