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이안의 활약 -5 (2권 완) >
경기가 시작되자, 흑마법사 유저 ‘간지훈이’는 곧바로 스킬을 시전했다.
“어둠의 수렁!!”
역시 처음 보는 스킬.
그리고 경기장 전체의 바닥에 시커먼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간지훈이’ 유저의 ‘어둠의 수렁’ 스킬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스킬에 영향을 받는 동안 움직임이 20%만큼 느려집니다.]
이안 자신을 포함한 모든 소환수에 생긴 둔화효과.
이안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20% 둔화효과면 좀 짜증나는데….’
일전에 히메네스를 이겼던 방식대로 초반에 빠르게 선공을 가하려 했던 이안은 그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둔화효과도 걸림돌이었지만, 훈이는 히메네스와 다르게 시작부터 빠르게 소환수들을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속공 타이밍을 놓쳤다면, 이제 정공법으로 가야했다.
“라이, 앞에 놈부터 하나씩 잡자!”
크릉-!
이안은 떡대와 라이를 앞세워 훈이의 해골들과 맞부딪혔다.
대충 열 기 정도 되어 보이는 해골들.
일반적인 50레벨 정도의 흑마법사가 운용하는 해골이 20기가 넘는 것을 생각하면, 숫자는 많이 부족해 보였지만 크기도 더 크고 시커먼 색깔 때문에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언제나처럼 이안의 전류증식과 떡대의 아이스웨이브가 해골들의 발을 묶기 시작했다.
지지직-!
‘최대한 많은 해골들의 발목을 묶어야 라이를 흑마법사의 본체 쪽으로 접근시킬 수 있어.’
속공으로 흑마법사를 잡는 계획은 물건너 갔지만, 그렇다고 해골을 다 잡을 때 까지 그를 보고 있기만 할 생각은 아니었다.
“전류증식!”
이안은 양 손에 들어찬 전기 구체를 허공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전류 덩어리들은 정확히 두 마리의 해골에게 정확히 명중했다.
지지직- 팡-!!
그리고 갈라져 총 여덟 개가 된 전류덩어리들은 흩어지며 주변의 해골들에게 격중 되었다.
[‘간지훈이’ 유저의 소환수 ‘어둠의 해골전사’가 ‘마비’ 상태에 빠졌습니다. 움직임이 30% 느려집니다.]
열 마리의 해골 중 무려 일곱 마리의 해골에 전류증식 스킬이 격중되었으며, 그 중 세 마리가 마비상태에 빠졌다.
갈라지는 전류증식의 방향을 계산하여 후속공격까지 맞춰내는 이안의 컨트롤 능력은 거의 신기에 가까울 정도였다.
이안의 활약을 본 훈이는 질세라 다시 스킬을 시전했다.
이번에는 이안도 잘 알고있는 흑마법사의 기본 공격기술 이었다.
“어둠의 심판!”
훈이가 뻗은 손에서 한 줄기 시커먼 광선이 이안을 향해 발사되었다.
어둠의 심판은 ‘투사체’로 분류되는 공격스킬들 중에 최상위의 속도를 가진 기술이었지만, 이안은 허리를 살짝 비틀어서 그것을 피해 내었다.
투사체를 보고 피해낸 것이 아니라, 훈이의 손동작을 보고 광선이 쏘아질 경로를 예측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피잉-
어둠의 심판은 애꿎은 경기장 바닥만 때리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훈이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대단한 실력자구나! 하지만 오늘은 상대를 잘못 만났다! 크하하핫!”
이제 초딩 흑마법사의 오그라드는 대사에 어느정도 면역이 된 이안은 대꾸하지 않고, 계속해서 전류증식을 난사했다.
그리고 서너번 정도 전류증식을 뿌려대자, 대부분의 해골들에 마비 효과가 들어갔고, 라이는 한 마리의 해골을 거의 잡아가고 있었다.
그때, 이안의 눈이 반짝였다.
‘지금…!’
빈 틈 없이 훈이의 주변을 보호하고 있던 해골들의 사이로 틈이 보이자, 이안은 지체없이 라이에게 명령했다.
“라이, 들어가!!”
크르릉-!!
그리고 이안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라이는 허공으로 도약해 떡대의 어께를 밟았다.
탓-!
그리고 더욱 높이 도약한 라이는 뒤쪽에서 스킬을 시전하던 훈이에게로 달려들었다.
훈이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당황스러울 수 있는 상황.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예상했다는 듯 한쪽발을 뒤로 빼며 스킬을 시전했다.
“망자의 보복!!”
스킬 구동어를 들은 이안은 순간 긴장했다.
망자의 보복 또한 그로서는 처음 듣는 스킬이름 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라이의 이빨이 훈이에게 닿기 직전.
훈이의 온 몸에 시커먼 기운이 스며들었다.
크아앙-!!
하지만 라이는 그에 아랑곳 하지 않고, 훈이를 공격했다.
[소환수 ‘라이’가 ‘간지훈이’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간지훈이의 생명력이 2272 감소합니다.]
여지없이 발동하는 라이의 치명타 공격!
하지만 그 순간 이안의 시야에 당황스러운 메시지가 하나 더 떠올랐다.
[‘간지훈이’ 유저의 스킬 ‘망자의보복’이 발동하여 입힌 피해의 276%를 되돌려받습니다.]
[소환수 ‘라이’가 627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안은 순간 자신의 눈이 잘못된 줄 알았다.
‘미친…!! 6270이라고? 말도 안 돼!!’
이어서 라이의 고유능력인 출혈이 곧바로 발동되었지만, 이안은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6천이 넘는 피해를 입었다면, 라이의 생명력은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었기 때문!
게다가 라이의 고유능력인 흡혈이 발동한 뒤에 망자의 보복 효과가 적용되었다.
흡혈로 생명력을 빼앗아 오는 시점에는 생명력이 최대치였기 때문에 회복이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라이의 최대 생명력이 8천이 안 될 텐데!!’
그리고 그 순간, 훈이의 공격이 이어졌다.
퍼퍽-!
그의 스태프가 라이의 어깨를 강타한 것.
[소환수 ‘라이’가 759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이안은 황급히 라이를 불러들였다.
“라이, 소환해제!”
훈이가 후속 공격을 하려는 순간 라이의 몸이 하얀 빛이 되어 허공에서 사라졌다.
“크큭, 역시 공격력은 강하지만 맷집은 형편없는 늑대였군!”
훈이의 이죽거림.
하지만 이안은 뭐라고 반박할 정신이 없었다.
생각지도 못 한 상황!
그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제 라이는 30분간 소환이 불가능했다.
이 말은 곧, 이 전투가 끝날 때 까지는 라이를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라이 없이 싸우게 될 줄이야… 차라리 안전하게 앞에 해골들부터 제거했어야 하는 건데…!’
하지만 훈이가 피해를 되돌려주는 스킬을 가지고 있을지 이안이 어떻게 알았겠는가.
라이를 이용해 훈이를 기습한 것은 이안에게 있어서 최선의 선택이었다.
‘라이가 전투불능이 되기는 했지만, 놈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긴 했으니까.’
히메네스의 체력은 1만이 안 되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라이의 치명타 공격과 출혈로 인한 추가피해라면, 훈이도 6천이 넘는 생명력을 잃어버렸을 터.
아주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안의 예상대로 출혈의 효과가 지속되자, 훈이의 이름이 서서히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생명력이 반절 이하로 떨어졌다는 신호였다.
‘저 망자의 보복 이라는 스킬은 오래 지속되는 스킬은 아닌 것 같으니까, 전류증식으로 조금씩 체력을 갉아먹어야 겠어.’
지금 훈이에게 남은 생명력은 많아봐야 4~5천 정도일 것이었다.
망자의 보복을 계속해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생명력이 1만 이상 남아있는 이안으로서는 잡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훈이가 또다시 예상치 못 한 스킬을 시전 했다.
“영혼흡수!”
“…?!”
계속해서 발동되는 생소한 스킬명.
그리고 훈이가 사용한 ‘영혼흡수’ 스킬은 이안을 절망에 빠뜨렸다.
훈이의 손이 뻗어지자 네 마리의 해골이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며, 그의 생명력이 회복되어 버린 것!
“크큭, 이제 늑대도 없고, 나는 생명력을 모두 회복했다! 나를 어떻게 상대할 테냐! 으하핫!!”
“으음….”
확실히 엄청나게 불리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질 수도 있겠어.’
이번 투기장에 참여한 이후 처음으로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 최선을 다해볼 필요는 있었다.
“떡대, 아이스웨이브!”
이안은 훈이로부터 연속해서 날아드는 어둠의 심판을 피해내고 뿍뿍이로 막아내며 해골을 한 마리씩 차근차근 상대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십오 분 정도 이안과 훈이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관중들 또한 놀라운 컨트롤을 보여주는 두 사람의 전투에 감탄하며 경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전투는 모두의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한 것이었다.
“떡대, 소환 해제!”
그리고 치열한 전투 끝에, 이안은 결국 떡대마저 소환해제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동안 해골의 숫자도 많이 줄여놔서, 이제 단 한 기의 해골밖에는 남지 않은 상태.
두 사람은 공방을 멈추고 잠시 서로를 마주보았다.
“끈질긴 녀석!”
훈이의 말에 이안은 피식 웃었다.
“끈질기기는 인마. 그리고 형한테 자꾸 반말 할래 꼬마야?”
“꼬… 꼬마…?! 이 악당 녀석이!!”
꼬마라는 말에 분노한 훈이는 이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훈이와 스켈레톤이 이안을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음… 좋지 않은데….’
이렇게 구석으로 몰려버리면 컨트롤로 훈이의 흑마법을 피하기도 쉽지 않아진다.
이안이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꿈틀-
이안의 등 뒤에 매달려 있던 뿍뿍이가 움직였다.
“어…?”
뿍- 뿌뿍-
그리고 이안의 등에서 내려온 뿍뿍이는 쪼르르 기어가더니 훈이의 앞을 막아섰다.
뿍! 뿍뿍-!!!
순간, 이안은 감동했다.
‘뿍뿍이 이녀석…! 미트볼 때문에 나랑 같이 다니는 줄만 알았는데…!’
위기에 빠진 이안을 보호하기 위해 뿍뿍이가 용맹하게 앞으로 나선 것!
한편 뿍뿍이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모습을 본 훈이는 비웃었다.
“이 대두 거북이는 뭐야? 아직 소환수가 남아있었나…?”
훈이의 비아냥을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이안은 계속 경기에서 이길 방법을 구상했다.
그리고 이미 다 이겼다고 생각한 훈이는 여유넘치는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했다.
“이만 항복하는 게 어때? 우주최강 마법사를 상대로 이 정도 싸웠으면 너도 대단한 악당이라구.”
계속해서 이안을 도발해 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훈이는 분노했다.
“이 머리 큰 거북이부터 잡아주겠어! 어둠의 심판!”
훈이의 지팡이에서 어둠의 심판이 쏘아져 와 뿍뿍이를 향해 쇄도했다.
뿍-!
하지만 뿍뿍이는 날렵하게 껍질 안으로 쏙 들어갔다.
[‘어둠의 심판’ 스킬이 유저 ‘이안’의 소환수 ‘뿍뿍이’ 에게 명중합니다. 1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훈이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칫… 결계인가…!”
자신의 앞에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뿍뿍이를 보며, 훈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단단한 거북이, 너는 잠시 후에 처단한다.”
뿍-?
그리고 훈이는 해골과 함께 이안을 2:1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안은 등을 돌려 냅다 도망쳤다.
“푸하핫! 뭐냐! 그렇게 도망 다녀서 뭘 하겠다는 거야!”
훈이는 신이 나서 이안을 쫓아왔다.
그리고 그런 훈이를 이안은 경기장 외곽으로 유인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다른 이들이 보기에 이안이 확실한 열세에 빠져 어쩔 수 없이 훈이와 해골로부터 도망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이안은 생각이 있었다.
뿍뿍이가 시간을 끄는 동안 묘책을 생각해 낸 것!
이안과 훈이는 계속해서 공방을 주고받으며 경기장을 아예 한 바퀴 돌고 있었다.
그리고 이안과 훈이가 경기장 외곽 쪽에 있던 뿍뿍이를 지나치는 순간.
‘지금이다!’
이안은 회심의 스킬을 사용했다.
“공간왜곡!!”
스킬이 사용되자 이안과 뿍뿍이의 위치가 바뀌었고, 이안의 뒤를 바싹 쫓던 훈이는 순간적으로 이안이 사라지자 당황했다.
“뭐, 뭐야?!!”
그리고 훈이의 뒤로 이동한 이안은 달리던 관성을 이용하여 훈이의 등을 온 힘을 다해 밀쳤다.
퍼억-!
“아앗-!!”
기본적으로 몸이 가벼운 데다 흑마법사 클래스 특성상 힘 능력치가 현저히 낮은 훈이는 이안에게 밀릴 수 밖에 없었고, 심지어 자리가 바뀌어 그의 앞에 나타난 뿍뿍이의 등껍질에 발이 걸리고 말았다.
쿵- 쿠당탕-!
이안은 쾌재를 불렀다.
“됐다!!”
넘어진 훈이가 경기장 밖으로 굴러 떨어져 버린 것!
그리고 경기장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간지훈이’ 유저가 경기장 밖으로 이탈했습니다.]
[투기장 룰에 의하여 ‘장외 패’ 처리 됩니다.]
[‘이안’ 유저가 경기에서 승리했습니다.]
그 순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 정말 엄청나!!”
“진짜 생각지도 못한 역전승이야!”
“저 소환술사 컨트롤 봤어? 미쳤어 어떻게 그렇게 절묘하게 스킬을 쓰지?”
그 와중에 이안의 심기를 묘하게 건드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저 소환술사 그 아티팩트로 소환한 늑대 없이도 이기긴 이겼네. 실력이 좋긴 한 것 같아.”
조금 울컥 하긴 했지만, 그래도 질 번한 경기를 이긴 직후였기 때문에 기분은 좋았다.
이안은 훈이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어려운 한 판 이었어. 물론 다시 싸운다면 훨씬 쉽게 이길 자신은 있지만….’
훈이의 컨트롤 능력은 분명 뛰어났다.
하지만 이안이 질 번한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라이와 극상성인 훈이의 스킬 ‘망자의 보복’에 제대로 당했기 때문.
다시 싸운다면 훈이는 그대로 두고 해골들만 먼저 전부 잡아낸 다음 차근차근 훈이를 공격하면 될 일이었다.
한편 생각지도 못 한 장외 패를 당한 훈이는 서러움에 주먹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으… 으으…!!”
그 모습을 본 이안은 왠지 그를 놀리고 싶어졌다.
“꼬마야, 내가 이겼는데 어쩌지…?”
훈이의 두 눈에 눈물마저 그렁그렁 맺혔다.
“으아아!! 내가 이긴 거였어! 내가 이긴 거였다고!!”
좀 특이한 꼬마이기는 했지만, 이안은 실력으로 질 뻔 했다는 것을 속으로 인정하고 있기는 했다.
‘확실히 컨트롤도 그렇고, 엄청 대단한 꼬마였어. 그 흑마법사 랭킹 1위라는 허당 이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였지.’
눈물까지 흘리며 서러워하는 꼬마의 모습에, 이안은 아주 조금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울지 마, 꼬마야. 다음에 도전하면 내가 다시 받아줄게.”
하지만 이안의 동정에, 훈이의 서러움은 더욱 폭발했다.
“흐아앙!! 이 경기 무효야! 무효라고!! 경기 다시 해! 다시!”
하지만 꼬마 한 명이 떼를 쓴다고 해서 준결승 결과가 번복될 일은 없었다.
이안은 그렇게 큰 위기를 넘겼고, 무사히 루키 리그의 결승에 올라갈 수 있었다.
< (6). 이안의 활약 -5 (2권 완)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