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이안의 활약 -2 >
첫 번째 경기를 지켜보는 내내 이안은 암살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와, 예선 첫 경기부터 이 정도라니…. 저 암살자 제법이네. 역시 카일란에는 숨은 고수들이 많아. 긴장해야겠어.’
이안은 암살자를 보고 놀란 반면, 그를 상대한 전사유저인 플리오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친구는 하루 빨리 게임을 접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지 않을까…. 어떻게 암살자가 투명화 된 상태에서, 상대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대검을 휘두를 생각을 하지?’
대검은 거의 모든 무기들 중 가장 공수전환이 느리고, 공격 실패 시 리스크가 큰 무기였다.
급습과 암습의 상징이랄 수 있는 암살자의 앞에서 함부로 대검을 휘두르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할 수 있었다.
‘헤르스랑 클로반 형한테 갑자기 좀 미안하네….’
이안은 초기화 전 길드 사냥을 나설 때 컨트롤이 후지다며 항상 헤르스와 클로반을 놀리곤 했었다.
그런데 방금 본 전사에 비하면 두 사람이 고수라 느껴질 정도였으니….
하지만 이 모든 평가는 이안의 기준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지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평범하게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은 이안처럼 치밀하게 생각하면서 게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안이 모든 유저들을 자신의 기준에서 생각해 버리니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경기를 더 관전하던 이안은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경기 수준이 너무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아… 내 눈…. 설마 썩고있는 건 아니겠지…?’
이안은 아예 고개를 돌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루키리그 투기장 예선전 안 본 눈 삽니다….’
이안은 초기화 전까지 통틀어서 투기장에는 아예 처음 와봤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게임에 있어서만큼은 자존심이 강한 이안이었기에, 기본적으로 상위에 랭크될 만한 성적을 거둘 자신이 없다면 이런 대회에 아예 참가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초기화 전에는 50레벨 즈음 일 때 루키리그와는 일정이 맞지 않았고, 90레벨 정도일 땐 메이저급 리그에 나가야 하는데 거기에서 최상위 랭커들과 겨루어봐야 승산이 없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투기장은 엄두도 낸 적이 없었던 것.
‘여기가 루키리그인데다 예선전이라서 수준이 이런 거겠지?’
이안은 남이 전투하는 것을 별로 본 적이 없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가는 길드사냥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솔플만 했었던 이안인지라, 길드원을 제외한 다른 유저가 싸우는 모습을 본 일이 별로 없었던 것.
이안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경기장에서 이안을 호명하는 음성이 울려 퍼졌다.
[다음 예선전 경기는 ‘이안’님과 ‘히메네스’님의 경기입니다.]
[호명된 두 분 유저는 속히 대기실로 내려와 주시기 바랍니다.]
메시지를 들은 이안은 천천히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드디어 그의 차례가 온 것이었다.
* * *
경기장에 올라선 그는 상대를 마주보았다.
상대의 클래스는 흑마법사.
이안은 라이와 뿍뿍이를 소환하고 전투를 치룰 준비를 마쳤다.
짹짹이도 소환되어 이안의 주변을 정신사납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소환되지 않은 소환수는 떡대 뿐.
‘떡대는 히든카드로 써야지.’
그런데 그 때 사방에서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란 함성이 울려 퍼졌다.
“와아아…!!!”
‘뭐, 뭐지…? 다들 이 몸을 알아보는 건가?!’
이안이 뿌듯해 하려던 찰나.
사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그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흑마법사 랭킹 1위 히메네스님이다!!”
“히메네스님, 소환술사 따위 발라버려요!!”
이안은 상대 흑마법사를 응시하며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갑자기 솟아나는 유치한 경쟁심리가 그를 자극했다.
‘흑마법사 랭킹 1위라고…?’
이안은 ‘나는 소환술사 랭킹 1위다!’ 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이진욱 교수에게 캐릭터 초기화했다는 이야기를 해야 할 때 만큼은 아니었지만, 속에서 열불이 났다.
‘흑마법사 따위…!’
하지만 상대가 흑마법사 랭킹 1위라고 해도 이안은 자신 있었다.
‘암살자라면 모를까, 흑마법사를 상대 못 할 이유가 없지.’
이안은 알고 있는 흑마법사에 관한 정보들을 찬찬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뼈 감옥이랑 광역 디버프 스킬만 조심하면 돼. 해골전사야 크게 위협될 거 없을 것 같고. 해골 마법사는 최대 3개체 정도라고 들었으니까….’
이안은 시작하자마자 거세게 몰아칠 생각이었다.
흑마법사의 생명력은 마법사나 궁사보다도 허약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소환된 언데드들이 힘을 쓰기 전에 뼈 감옥과 같은 이동방해기술이나 광역 둔화 저주 같은 스킬만 잘 피해서 본체를 삭제해 버릴 생각이었다.
“후후, 이안님 이시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히메네스는 거만한 표정으로 웃으며 이안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어쩌면 이미 비호감으로 찍힌 얼굴이었기 때문에 거만해 보이는 것일지도 몰랐다.
‘뭐 이렇게 느끼하게 생긴 놈이 다 있어?’
이안은 히메네스가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일단 손을 맞잡으며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네, 히메네스님.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5초 후, 경기가 시작됩니다.]
이안은 라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라이야, 시작하자마자 저 흑마법사만 노리면 돼. 알겠지?”
크릉- 크릉-
[5… 4… 3….]
분명 전투가 시작되면 상대도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었다.
‘보나 마나 나한테 모든 화력을 집중시키겠지.’
소환술사도 흑마법사와 마찬가지로 소환수들이 힘을 쓰기 전에 본체를 잡아버리면 맥없이 게임아웃 되어버리는 클래스 였으니까.
하지만 그에게는 뿍뿍이가 있었고, 비상시 탈출할 수 있는 공간왜곡 스킬이 있었다.
‘전류증식으로 마비를 걸고, 떡대의 아이스 웨이브까지 쓰면 버틸 수 있겠지.’
이안은 생각을 마치고 튀어나갈 준비를 했다.
[2… 1… 시작!!]
‘간다…!!’
카운트다운이 끝남과 동시에, 이안과 라이는 히메네스를 향해 뛰어들었다.
“뭐, 뭐야?!”
당연히 초반에는 소환수들과 언데드들의 난전이 될 것으로 경기가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던 히메네스는 최전방에서 뛰어드는 이안을 보며 당황했다.
“뼈 감옥!!”
히메네스의 주문과 함께 곳곳에서 뼈가 솟아올랐다.
하지만 이미 그것을 예측하고 바닥을 주시하며 달리던 이안은, 바닥에 생성되는 어두운 기운을 보며 손쉽게 스킬을 피해내었다.
이안의 움직임은 히메네스의 예측범주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50레벨대의 일반적인 유저들보다 스텟이 월등한데다, 전투 스텟이 거의 민첩에 몰려있는 이안이었으니, 어지간한 암살자에 비견될 만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었다.
어느새 히메네스의 지척까지 다다른 이안은 그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약점포착’ 스킬이 발동됩니다. 대상의 약점이 표시되며 명중률이 20% 상승하고 치명타 확률이 25% 증가합니다. 약점을 공격할 시 추가로 110%의 피해를 더 입힙니다.]
이제는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라이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았다.
[소환수 ‘라이’가 광폭화 스킬을 사용합니다.]
[15분간 소환수 ‘라이’의 공격력과 민첩성이 30% 증가합니다.]
[15분간 소환수 ‘라이’의 방어력이 30% 하락합니다.]
버프는 미리 걸어놓은 상태였다.
이제 당황한 상대에게 계획대로 공격을 성공시키기만 하면 된다.
“막아! 막으라고 이 해골바가지들아!!”
당황한 히메네스는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이안이 히메네스에게 다다르기 직전, 그의 앞에 열 기가 넘는 해골들이 소환되었다.
하지만 예측범주 밖이 아니었기에, 이안은 당황하지 않았다..
“떡대 소환!”
이안은 떡대를 꺼내들었다.
움직임이 느린 떡대였기에, 이안은 일부러 히메네스에게 최대한 접근한 뒤 소환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소환해 놓으면 떡대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멀리서 멀뚱멀뚱 라이와 이안이 싸우는 모습을 구경만 해야 했을 테니까.
그리고 마침 해골이 막아서는 타이밍과 절묘하게 떡대의 소환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다.
“아이스 웨이브!!”
떡대는 소환되자마자 아이스웨이브를 터트렸고, 이안은 그 위에 하던 대로 전류증식 스킬을 사용했다.
쿠쿵- 지지직!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아이스웨이브와 전류증식으로 인해, 대여섯 기의 해골이 순식간에 굼벵이가 되어 버렸다.
“오오오…!!”
관중석 여기저기에서 함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경기가 시작된 지 30초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탐색전도 없이 벌써부터 직접 뒤엉켜 싸우고 있었기 때문.
반면에 히메네스는 그렇지 않아도 하얀 얼굴이 더욱 창백해져 있었다.
“으아아…!!”
해골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이안의 발목만 잡아놓을 수 있었을 뿐, 라이는 떡대의 몸을 타고 도약하여 자신에게 곧바로 달려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육체적 전투능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히메네스가 라이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소환수 ‘라이’가 ‘히메네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히메네스의 약점을 공격하자 치명공격이 여지없이 발동되었다.
[히메네스의 생명력이 2576 감소합니다.]
이어서 라이의 고유능력인 출혈이 곧바로 발동되었고, 광폭화 스킬이 활성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추가로 공격력도 상승하였다.
[히메네스가 ‘출혈’ 상태가 되어 10초간 초당 515의 피해를 입습니다.]
[소환수 ‘라이’가 ‘히메네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혀, ‘라이’의 공격력이 5초간 추가로 상승합니다!]
버프의 중첩과 치명타 공격.
히메네스는 당황했다.
‘이, 미… 미친 늑대새끼!! 뭐야, 어떻게 루키리그의 소환술사가 부리는 늑대가 3천 데미지 가까이 띄우는 거야?!’
70~80레벨대의 ‘쉐도우 울프’ 의 공격력이라 해도 믿어질 만한 엄청난 공격력.
그리고 극대화된 라이의 공격력을 버텨내기엔 히메네스의 생명력과 방어력은 너무도 보잘 것 없었다.
[히메네스의 생명력이 3157 감소합니다.]
[히메네스의 생명력이 3381 감소합니다.]
“어… 어어…!?”
당황한 탓에 히메네스는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해 보지 못했다.
심지어는 흑마법사의 고유 스킬 중 하나인 다크쉴드도 발동시키지 못한 것.
순식간에 9천이 넘는 어마어마한 생명력이 빠져나갔고, 히메네스는 뭔가 해 볼 새도 없이 경기장에서 아웃 당했다.
순간적으로 보유한 마력량에 비례하여 피해를 흡수시켜주는 다크쉴드만 발동했더라도 아웃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히메네스 선수의 생명력이 5% 이하가 되어 경기장에서 아웃됩니다.]
[이안 선수가 경기에서 승리합니다.]
[퍼펙트 게임으로 승리하여 승점을 두 배로 획득합니다.]
그리고 경기장 내에 소환되었던 거의 20기에 가까운 해골들은 그 자리에서 가루가 되며 무너져 내렸다.
예선전 첫 경기.
암살자 림롱과 전사 플리오의 경기 때 처럼, 장내는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아니, 오히려 그 때보다 관중들의 충격은 더 컸다.
흑마법사 랭킹 1위인 히메네스는 이번 대회에서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말… 도 안 돼….”
관중들 뿐 아니라, 경기 중계를 위해 현장에 나온 게임방송국의 관계자들도 잠시 해설을 잊을 정도의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 (6). 이안의 활약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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