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첫 번째 죽음 -4 >
진성은 약속장소로 걸음을 옮기며 하린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생각했다.
‘음… 되게 어색할 것 같은데….’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같은 학교의 학생이기는 했지만, 뭔가 게임에서 알게 된 지인을 바깥에서 만나는 것이 일단 처음이었다.
게다가 또래의 여자사람과 뭔가를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진성이었다.
진성은 슬슬 하린과의 만남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해야 되지? 만나는 김에 요리스킬에 대한 정보나 이것저것 물어볼까?’
모든 것이 카일란으로 귀결되는 모솔 게이머 진성!
누가 들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만한 생각이었지만, 그 자신은 흡족한 표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 만나서 하린님 좋아하는 요리스킬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하면 하린님도 좋아하실 거고, 나도 얻는 정보들이 많을 거야. 같이 요리스킬에 대해 연구하는 것도 재밌겠지.’
자취방에서 약속장소는 무척 가까운 곳에 있었고, 진성은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음… 하린님은 아직 안 오셨나?’
그런데 약속장소에 하린은 보이지 않았고, 왠 예쁜 원피스를 입은 낯선 여대생이 진성의 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피부에, 깊은 쇄골과 양쪽 어깨가 살짝 드러난 베이지색 민소매 원피스.
군더더기 없는 몸매에 흠 잡을 곳이 한 군데도 없는 아름다운 외모의 여대생을 보며, 진성은 속으로 감탄했다.
‘와… 우리학교에 이렇게 예쁜 사람도 있었나?’
평소에 여자에 별로 관심이 없던 진성임에도 시선이 강탈당할 정도로, 편의점 앞 여대생은 아름다웠다.
그녀는 화장도 별로 하지 않은 것 같은 수수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 외모가 너무 비현실적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진성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예쁘지? 연예인인가?’
가까이 갈수록 더 빛이 나는 것 같은 외모.
양 옆으로 살짝 쳐진 눈매마저 선한 인상으로 느껴졌다.
진성은 아예 대놓고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기에,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별 생각 없이 그녀의 옆에 섰다.
하린을 기다리기 위해서.
그런데 그 때.
“이안님, 이안님 맞죠?!”
진성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의 옆에 서 있던 여신(?)이 말을 걸었기 때문!
진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말문이 막혔다.
엄마, 그리고 마트 아주머니 외에는 여자사람과 두세마디 이상 대화를 나눠본 일이 없었는데….
초면에, 그것도 이렇게 예쁜 여자가 말을 걸다니.
순간 온 우주가 정지한 느낌이랄까.
잠시 후, 진성은 겨우겨우 입을 떼었다.
“으억…! 혹시 하… 하린님…?”
여신(?) 하린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와아, 이안님은 게임 속이랑 완전 똑같이 생기셨네요! 캐릭터 생성하실 때 커스터마이징을 하나도 안 하셨나 봐요.”
진성은 무척이나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린의 실제 외모는 카일란 내에서의 캐릭터와 너무 달랐던 것.
‘카일란의 캐릭터도 엄청 예쁘긴 했지만… 절대로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하지만 하린이라 생각하고 자세히 보니 그 얼굴이 조금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진성은 말을 더듬으며 겨우 입을 떼었다.
“네, 저… 저는 외형에 큰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라서… 커스터마이징은 안 건드렸어요.”
그리고 속으로 하린에게 묻고 싶었다.
그러는 그쪽은 대체 왜 이런 외모를 그렇게 망쳐(?) 놓았는지.
그리고 하린은 진성이 말하지도 않았는데, 묻고 싶었던 질문의 대답을 이야기했다.
“후훗, 저는 좀 예뻐지고 싶어서 커스터마이징으로 여기저기 손 좀 많이 댔는데… 그래서 못 알아보셨죠?”
“….”
예뻐지고 싶어서 커스터마이징을 했다니.
진성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혹시 실망하신 거 아니에요? 게임에서 볼 때보다 좀 별로… 긴 하죠?”
“….”
‘혹시… 하린님 시력이 많이 안 좋으신 건가…?’
진성은 대체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화제를 전환했다.
“하, 하린님. 일단 점심부터 좀 먹으러 갈까요? 제가 아침도 대충 먹었더니 배가 엄청 고프네요.”
그 말에, 하린은 방긋 웃으며 진성의 손을 잡아끌었다.
“좋아요! 저쪽에 제가 아는 분식집 있는데 진짜 맛있거든요. 거기로 가요!”
그리고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한쪽 손을 내준 진성.
‘으아악, 하린님은 대체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러는 거야…!’
진성은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또래의 여자사람의 손 자체를 처음 만져보는 그였다.
하물며 그 손이 어지간한 연기자와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하린의 손이었으니….
진성은 머릿속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지는 듯 한 착각을 받았다.
[‘마비’ 상태에 걸렸습니다. 온 몸이 경직되어 움직임이 30% 느려집니다.]
[1시간 동안 말을 더듬게 됩니다.]
‘으으….’
진성은 거의 하린에게 끌려가다시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두 사람을 본 거리의 행인들은 눈을 떼지 못하였다.
순식간에 모아지는 주변의 관심!
‘저 놈은 분명 전생에 우주를 구했을 거야.’
‘와… 저렇게 예쁜 여자 손을 잡고 있으면 무슨 느낌일까?’
거의 진성을 시기 질투하는 뭇 남성들의 시선이 대다수였다.
‘무슨 육포 말린 것 같이 생긴 놈이 저런 여신님의 손을 잡고 있다니…!’
그리고 평균 이상의 준수한 외모를 가진 진성의 얼굴이, 옆에 있는 하린으로 인해서 마치 오징어처럼 보이는 효과도 있었다.
눈치 없는 진성도 길가에 있는 거울을 본 뒤, 그것을 인지하고는 괜히 억울해졌다.
‘내 얼굴에 디버프를 걸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광역 어그로를 끌다니… 헉, 역시 탱킹 형 힐러인가….’
그리고 속으로, 역시 게이머 다운 엉뚱한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맞닿아있는 하린의 체온이 자꾸만 신경 쓰여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반면에 굳어있는 진성을 본 하린은 의아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이안님, 혹시 분식 안 좋아하는 건 아니죠?”
진성은 반사적으로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아, 아뇨! 저 떡볶이 엄청 좋아해요. 튀김… 이라던가 순대라던가… 다 좋죠.”
“역시 그렇죠? 떡볶이만큼 맛있는 게 없다니까요! 이안님 뭘 좀 아시네요.”
하린이 한번 웃음 지을 때 마다 진성은 움찔 움찔 해야 했다.
‘하… 이것도 고역이네.’
그렇게 진성은 하린의 손에 이끌려 학교 앞 분식집으로 향했다.
* * *
“으… 으으….”
하린과의 데이트(?) 후 집으로 돌아온 진성은 의자에 힘 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일주일간 쉬지 않고 게임해도 지치지 않는 그의 체력이 겨우 서너 시간 만에 방전되어 버린 것.
‘으… 여자사람은 정말 무서운 존재야….’
하린은 그렇게 말이 많은 스타일의 여성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성공포증(?) 비스무리 한 것이 있는 진성으로서는 하린이 한마디 할 때마다 움찔 움찔 했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심했던 것.
진성은 자신의 천직은 역시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하린님 아니었으면 언제 여자사람이랑 밥을 먹어 보겠어… 학교 여자 동기들도 다 날 피하는데.”
사실 진실을 말하자면 여자동기들이 진성을 피한다기보다, 진성이 모두를 피하고 있는 것이었다.
혼자 나머지 모두를 왕따 시키는 능력자 진성!
‘으, 오늘 하루 한 달 할 말을 다 해 버린 것 같아….’
하린과 떡볶이를 먹으면서 할 말이 없었던 진성은 자신이 뿍뿍이 덕분(?)에 자살하게 된 구구절절한 스토리를 얘기했다.
그리고 그 얘기를 들은 하린은 너무나도 행복한 표정으로 웃어댔다.
‘무슨 개그프로 라도 보는 줄 알았지….’
그래도 마지막은 무척 훈훈했다.
똑똑한 하린이 진성이 생각지 못한 부분을 알려줬던 것!
‘난 아직 부족해 역시. 하린님이 생각하는 부분을 생각지 못하다니….’
하린이 말한 내용은 간단히 요약하면 이런 것이었다.
진성이 데스 패널티로 인해 1레벨이 다운되었지만, 소환수들의 레벨은 그대로라는 것.
그래서 24시간 후 재접속한 뒤 또 99%까지 올리면 스킬 숙련도도 더욱 높일 수 있고, 소환수들의 레벨은 더 높아지지 않겠냐는….
진성은 자책했다.
원래의 치밀했던 자신이라면 절대 놓쳤을 리 없는 부분이었다.
‘좀더 긴장할 필요가 있어. 이번 일은 뿍뿍이한테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일이군. 뿍뿍이가 아니었다면 99% 경험치를 만든 후에 투기장이 열릴 때 까지 띵가띵가 놀았겠지.’
데스 패널티가 끝난 뒤에 접속해도 남은 시간 꼬박 사냥하면 충분히 99%에 근접한 경험치를 다시 만들 수 있었다.
오히려 전화위복(?) 인 상황!
잠시 의자에 앉아 쉬던 진성은 어기적어기적 걸어서 캡슐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 맞다 아직 접속 못하지….”
아직 접속하려면 15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한 진성은 망연자실했다.
“흐으… 그래도 왠지 여기 앉아있으니까 마음이 좀 안정되는데…?”
데스 페널티가 아직 남아있어서 접속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진성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 할 게 없네…. 잠이나 좀 잘까…?’
이안은 푹신한 캡슐 안에서 등을 기대었다.
그리고 곧 스르륵 잠이 들었다.
* * *
24시간이 지나자마자 칼같이 접속한 이안은 곧바로 사냥터로 직행했다.
50레벨 0%가 된 경험치를 다시 99%에 근접하게 끌어올려야 했기 때문.
그 어느 때 보다 잠도 푹 잔 상황이었기 때문에, 컨디션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좋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전류증식 스킬 숙련도도 최대한 끌어 올린다.’
지금 전류증식의 스킬레벨은 초급 2레벨.
그리고 15%정도까지 숙련경험치가 차 있었다.
남은 이틀 바짝 사냥하면 3레벨 까지는 올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훈련스킬도 중급이 된 이후로는 숙련도 정말 안 오르네.’
이제는 캐릭터 초기화 이후 초반부터 가지고 있던 스킬들은 대부분 중급의 숙련도까지는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여러 가지 조건들로 인해 레벨업을 너무 빠르게 해서 레벨에 비해 숙련도가 많이 떨어질까 걱정했던 이안이었지만, 오히려 이정도면 높은 축에 속하는 숙련도였다.
이안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모든 스킬들을 재사용 대기 시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계속 사용한 결과였다.
개미굴에 도착한 이안은 곧바로 사냥을 시작했다.
이제 몸에 스킬도 익었고, 거대개미들의 공격패턴과 맵의 형태도 완벽하게 파악했기 때문에 24시간의 데스 패널티를 받기 이전보다 더욱 효율적이고 빠르게 사냥이 진행되었다.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났다.
[전류증식의 숙련 경험치가 100%가 되었습니다.]
[전류증식의 스킬레벨이 상승하여 3레벨이 되었습니다.]
[전류증식 스킬의 모든 피해량이 30% 증가합니다.]
[전류증식 스킬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5초 감소합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하며, 이안은 씨익 웃었다.
“좋아! 죽어라 전류증식만 써댄 보람이 있네.”
전류증식은 이안이 가진 다른 스킬들보다 재사용 대기시간이 훨씬 짧은 편이어서 비교적 빨리 숙련도를 올릴 수 있었다.
‘경험치는 이제 몇 정도 됐으려나.’
경험치가 몇 퍼센트이던, 이제 움직여야 할 시간이었다.
투기장이 열릴 시간이 다 된 것이다.
“으아, 이제 92%네. 그래도 이정도 복구했으면 만족한다.”
99%까지는 못 만들었지만, 92% 정도면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는 수치였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이안은 뿌듯한 마음으로 사냥을 정리하고 뮤란으로 향했다.
라이의 레벨은 거의 52가 다 되어갔고, 뿍뿍이는 50레벨, 떡대는 무려 54레벨 이나 되었으니, 뿌듯할 수 밖에 없던 것.
게다가 정령력이 1000까지 다 차면 진화한다는 짹이의 정령력도 300이 넘게 찬 상황이었다.
이안이 얼마나 열심히 전류증식 스킬을 사용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준비는 이 정도면 만족스럽고… 이제 등록을 하러 가 볼까?”
투기장의 위치는 뮤란의 중앙광장 이었다.
평소에는 드넓은 공터여서 유저들의 휴식공간으로 사용되는 곳이었지만, 투기장이 열리는 기간 동안 이곳은 무대가 된다.
아침 일찍부터 투기장에 도착한 이안은 출전신청을 해 놓고 가장 명당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투기장에 괜히 일찍부터 온 게 아니었다.
‘적을 알아야 그에 대한 대비를 하지.’
이안은 예선전부터 모든 경기를 지켜볼 생각이었다.
자신과 싸우게 될 적에 대해 미리 파악을 해놓는 다는 이유가 가장 주된 것이긴 했지만, 그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얻는 것이 많았기 때문.
‘다른 소환사들이 어떻게 육성해서 어떤 방식으로 전투를 풀어 가는지… 그리고 다른 신규클래스들의 장단점은 어떤 건지… 정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야.’
명당 자리에 아예 영역표시까지 해 가며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이안은, 경기를 관전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하, 그나저나 또 두 시간 정도 할 게 없네.’
슬슬 그의 옆자리에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차기 시작했다.
딱히 할 게 없음을 인지하자 피로도 조금씩 몰려왔다.
“후우….”
그리고 이안은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 (5). 첫 번째 죽음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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