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첫 번째 죽음 -1 >
척-
이안이 황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다다르자, 경비병 두 명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안은 순간 당황했다.
초기화 전에도 루스펠 제국의 황성에는 들어와 본 적이 없었기 때문.
‘음… 보여줄 증표 같은 것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잠시 고민하던 이안은 일단 생각나는 대로 입을 열었다.
“소환술의 선지자 이안입니다. 황제폐하께서 저를 찾으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뵙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말투는 최대한 공손하게!
괜히 건방진 말투를 썼다가 경비병과 친밀도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한편 이안의 말을 들은 경비병은 고개를 살짝 갸웃 하더니, 뒷머리를 긁적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경비대장님께 여쭤보고 오겠습니다.”
“네, 기다리겠습니다.”
두 경비병 중 한명이 빠른 걸음으로 성문 안으로 들어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안쪽에서 한 사내가 허겁지겁 뛰어 나왔다.
그 뒤에는 방금 들어간 경비병이 함께 있었다.
“오, 선지자님이 오셨군요. 제가 경비병들에게 미리 말해놓지 않아 실례를 범했습니다.”
남자는 성문을 지키는 경비대장 인 듯 했다.
이안은 생각지도 못한 극진한(?) 대우에 몸 둘바를 몰랐다.
카일란을 하면서 NPC가 친밀도를 쌓기도 전에 이렇게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음… 뭐지. 황제의 퀘스트여서 이런 반응인 건가?’
사실 한낱 경비병들 입장에선 황제가 찾은 손님이었으니, 어려워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안은 그에 대한 자각이 없었다.
“아니… 뭐…. 괜찮습니다. 저 그럼 들어가도 되죠?”
경비대장은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안님. 안쪽으로 제가 모시겠습니다.”
경비대장이 앞장서자, 굳건히 닫혀 있던 성문이 열렸고, 이안은 그를 따라 천천히 들어갔다.
‘그런데 저 경비대장은 레벨이 몇이나 될까?’
고블린 야영지 퀘스트를 줬던 자경단장 라페르의 레벨은 90 중반 정도였었다.
문득 궁금해진 이안은 경비대장의 정보를 슬쩍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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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올린 -
레벨 : 115
직책 : 경비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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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과 직책을 제외한 모든 정보가 비공개로 되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이안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무슨 외곽 성문 지키는 경비대장 레벨이 115나 돼? 아직 레벨랭킹 1위 레벨도 120이 안 됐을 텐데….’
이안은 당황했다.
높아봐야 자경단장 라페르와 비슷한 수준의 레벨일 것이라 생각했었기 때문.
‘어디보자, 그럼 병사들 레벨은 몇이려나.’
병사들의 정보를 확인한 이안은 더욱 기가 막혔다.
이안의 뒤를 따라오는 병사 둘의 레벨은 각각 104와 107 이었기 때문이었다.
‘하… 최상위 랭킹 길드들이 그 엄청난 전력을 가지고도 콜로나르 대륙 거점지는 건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네….’
한낱 병사가 100레벨인 제국의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길드 전체가 아작 나 버릴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로터스 길드에서 이번 북부원정으로 거점지를 하나 점령한 것이 정말 더 값지게 느껴졌다.
‘내가 빨리 레벨을 올려서 거점지 영역확장을 도와야 겠어.’
이안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일행은 점점 황궁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크루피아 설산의 최정상 카룬봉우리.
양 손에 날카롭게 휘어진 단검의 형태를 한 무기를 쥔 남자가 홀로 아이스 트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크오오-!
트롤은 괴성을 내지르며, 남자를 향해 거대한 곤봉을 휘둘렀다.
콰앙-!
하지만 트롤의 커다란 곤봉은, 사내의 옷자락도 건드리지 못하고, 애꿎은 바위만 가루로 만들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남자가 상대하고 있는 트롤은 일반적인 아이스 트롤이 아니었다.
보통의 아이스 트롤보다 1.5배 이상 커다란 몸집과, 시퍼런 한기가 피어오르는 커다란 몽둥이.
트롤은, 영웅 등급의 몬스터이자 카룬 봉우리의 보스급 몬스터인 ‘아이스트롤 워리어’ 였다.
타탓-
무척이나 가벼운 발놀림으로 트롤을 농락하듯, 남자는 모든 공격을 흘려내며 트롤의 지근거리까지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하지만 트롤은 그것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곤봉을 쥐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남자의 어깻죽지를 움켜쥐었다.
아니, 움켜쥐는 듯 보였다.
스르륵-
순간, 남자의 신형이 마치 신기루처럼 허공에서 사라진 것.
그에 당황한 트롤은 순간적으로 무방비상태가 되었고, 어느새 트롤의 뒤쪽에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그만 좀 죽어라….”
날카로운 예기를 흘리는 그의 쌍수 단검이 트롤의 등허리를 훑고 지나갔다.
크아아악-!!
트롤은 고통에 찬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사내는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흐읍-!”
짧은 기합성과 함께, 순간적으로 그의 단검에 시커먼 기운이 연기와 같이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기를 모조리 빨아들인 단검은, 한 점의 빛도 반사되지 않는 시커먼 칠흑빛이 되어 트롤의 심장부를 파고들었다.
푹-!
결정적인 공격을 허용한 아이스 트롤 워리어의 낯빛이 시커멓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트롤의 심장부에 박힌 단검에서 시커먼 기운이 사방으로 폭사되었다.
그것을 끝으로, 트롤의 몸은 회색 빛으로 변하며 서서히 사라졌다.
“휴, 진짜 멧집 하나는 엄청난 놈이었어.”
트롤의 사체에서 아이템을 회수한 사내는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50레벨까지는 이제 반나절 정도 더 걸리려나…?”
놀랍게도 65레벨의 유일 몬스터인 ‘아이스 트롤 워리어’를 잡아낸 남자의 레벨은 49였다.
그리고 그의 직업은 신규클래스인 ‘암살자’ 였다.
“내가 아직 49레벨인데… 벌써 몇 일 전에 50레벨이 된 신규직업 유저가 있다 이거지?”
그는 한쪽 입 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게다가 소환술사라…. 후후 기대되는데.”
남자는 단검을 고쳐 쥐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투기장이 열리기까지는 아직 4일 정도가 남았으니까… 조금 여유 있게 움직여도 되겠지.”
그는 깎아지듯 가파른 절벽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놀랍게도 절벽 아래쪽으로 몸을 던졌다.
그 순간.
화르륵-
남자의 몸이 새까만 매의 형태로 변하더니 봉우리 사이로 유유히 날아서 사라졌다.
* * *
“오, 자네가 이안이로구만.”
셀리아스 황제를 만난 이안은 잔뜩 긴장했다.
황제는 모든 정보가 비공개로 되어있어 레벨을 알 수 없었지만, 앞에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를 생각했는데… 되게 젊잖아?’
얼핏 보기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셀리아스 황제는, 황제의 이미지라기 보단 강인한 대장군의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는데….”
이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셀리아스가 대답했다.
“그렇다네. 우리 루스펠 제국에 자네같이 뛰어난 인재가 생겼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어찌 찾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안은 떨떠름한 표정이 되어 대답했다.
“그… 그런가요.”
그리고 이안의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제한시간 내에 셀리어스 황제를 만났습니다.]
[‘소환술의 선지자’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명성이 1250 증가합니다.]
단지 황제를 만나기만 했을 뿐인데, 단숨에 명성이 1250이나 증가했다.
‘역시 제국퀘스트는 다르네.’
이안이 속으로 감탄하고 있을 때, 셀리아스 황제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우리 루스펠 제국에 카이몬 제국보다 먼저 높은 수준의 소환술사가 나왔다는 데 대해 무척이나 고무적이라네.”
황제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홀짝였고, 이안은 잠자코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예전부터 나는 능력 있는 소환술사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려 왔기 때문이지.”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왜요?”
이안의 격식 없는 말에, 황제의 옆에 있던 근위기사가 눈을 부라렸다.
“놈, 어느 안전이라고 말을 그리 짧게 하느냐!”
순간 이안은 움찔 했다.
‘으, 좀 조심했어야 했는데….’
조심스레 황제의 눈치를 봤지만, 다행히 그는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니었다.
“하하, 헬라임. 괜찮네, 괜찮아. 황실의 예법을 잘 모르는 모험가가 아닌가.”
“하지만….”
“어허, 괜찮대도.”
황제가 제지하자, 근위기사는 살짝 못마땅한 표정이 되어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휴, 다행이네.’
이안은 안도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아마 저 대검이 휘둘러졌으면 한방에 골로 갔을 거야.’
이안의 시선이 근위기사의 대검에 잠시 머물렀다.
딱 봐도 귀티가 팍팍 흘러넘치는 최상급의 무기였다.
정신을 차린 이안은 셀리아스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제가 예법을 몰라서… 죄송합니다.”
셀리아스는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괜찮아.”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다.
“아무튼, 내가 능력 있는 소환술사를 기다려 온 이유를 말해 주겠네.”
이안은 무척이나 공손한(?) 자세로 황제의 말을 경청했다.
“이안, 자네 혹시 루스펠 제국을 상징하는 신수가 뭔지 알고 있나?”
이안은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황제가 앉아있는 태사의 바로 뒤편에 큼지막하게 수놓아진 동물이 곧바로 눈에 들어왔기 때문.
“그리핀 아닙니까?”
루스펠 제국의 상징은 신수 그리핀이었다.
용맹한 독수리를 닮은 머리와 날개 그리고 앞다리를 가졌으며, 황갈색의 몸통과 뒷다리는 사자의 모습을 한 전설속의 동물.
“좋아, 좋아. 모르는 이들이 많은데, 자네는 잘 알고 있구만.”
흡족한 미소를 짓는 셀리아스 황제를 보며, 이안은 어이가 없었다.
‘저 뒤에 저렇게 대문짝만하게 그려져 있는데 모르면 그게 바보 아닌가?’
하지만 멍청하게 그 말을 밖으로 내뱉는 실수를 또다시 범하지는 않았다.
“무튼, 이야기를 계속 하도록 하지.”
황제의 말이 이어졌다.
“반년 전 쯤, 황실에서는 시카르 사막을 횡단하기 위해 정예 기사단을 파견 했었다네.”
시카르 사막은 콜로나르 대륙 중심부에 있는 사막지대였다.
유저들 사이에서는 죽음의 땅이라 불리기도 하는 곳.
그곳이 죽음의 땅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시카르 사막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평균 레벨대가 130이 넘었기 때문이었다.
그 어떤 유저도 아직 시카르 사막에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할 수준.
잠시 뜸을 들인 셀리아스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때, 기사단을 이끌던 기사단장 헬라임이 사막 중심부에서 그리핀의 둥지를 발견했지.”
그 말을 들은 이안은 당황했다.
‘뭐? 그리핀이 실제로 존재하는 몬스터였어?’
놀라는 이안과는 별개로 셀리아스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기사단은 전력을 다해서 그리핀들과 싸운 끝에 그리핀을 처치하고 그 알을 손에 넣었다네.”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헉, 심지어 이겼어….’
죽음의 땅이라 불리는 시카르 사막.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된 전설의 몬스터.
두 눈으로 보지 않아도 무지막지한 전투력을 가졌을 것이 분명한 그리핀을 기사단이 잡았다니, 제국기사단의 무력이 실감되었다.
“나는 우리 루스펠 제국의 상징인 그리핀을 부화시켜서 황실 내원에 기르고 싶은데….”
이안은 속으로 생각했다.
‘황제가 제정신이 아니야… 무슨 그런 괴물을 황궁 내부에 길러?’
이안은 슬슬 무슨 퀘스트가 나올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반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그리핀의 알이 부화하지 못하고 있다네.”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더 홀짝인 셀리아스는 이안을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자네가 이 그리핀의 알을 부화시킬 방법을 찾아줬으면 좋겠는데…. 어떤가, 한번 해 보겠나?”
그리핀의 알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조금은 예상이 되었던 퀘스트 내용.
이안은 울상이 되었다.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소환수의 알 같은 건 구경도 해 본 적 없는데…!’
하지만 이안이 당황하던 말던, 퀘스트 알림창은 여지없이 그의 시야에 떠올랐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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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핀의 알 (제국 퀘스트)-
셀리아스 황제의 제국 기사단은, 반년 전 시카르 사막의 중심부에서 그리핀의 알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기사단은 황실로 그리핀의 알을 가져왔고, 황제 셀리아스는 제국의 상징인 그리핀을 황실에서 키우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아직 아무도 그리핀의 알을 부화시키는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셀리아스 황제는 뛰어난 소환술사인 당신이 그리핀의 알을 부화시켜주길 바랍니다.
퀘스트 난이도 : -
퀘스트 조건 : 없음
제한 시간 : 알 수 없음
보상 - 황궁 서고에 있는 소환술 스킬북 중 하나.
퀘스트를 거부하면 황제 셀리아스의 친밀도가 떨어집니다. (친밀도가 없다면 적대치가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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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의 내용을 읽어갈수록, 이안의 낯빛이 시커멓게 죽어갔다.
‘하… 내가 그리핀 엄마도 아니고 그리핀 알을 어떻게 부화시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 기상천외한 퀘스트!
‘게다가 제한시간은 없음도 아니고 알 수 없음이네? 대체 알 수 없는 건 뭐야?’
퀘스트 제한시간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건 이안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지금 당장 퀘스트 실패가 떠도 이상하지 않다는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퀘스트를 거부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퀘스트 거부로 인해 황제와의 친밀도와 명성이 떨어지나, 퀘스트 실패로 인해 떨어지나 다를 게 없었기 때문.
그렇다면 일단 받아놓기는 해야 했다.
“예, 제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이안의 눈 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
‘휴우….’
이안은 속으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 (5). 첫 번째 죽음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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