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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의문의 던전 -3
피올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하긴… 어디까지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그 때, 길드원 목록을 확인하던 카윈이 헤르스를 불렀다.
“헤르스형, 형 지금 레벨 곧 90 되지?”
헤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제 내일 정도면 90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명성은?”
“명성은… 19만이네.”
카윈은 뒷 머리를 긁적였다.
“헐…. 어림도 없네?”
이번에는 헤르스가 피올란을 보며 물었다.
“피올란님은 명성 몇이세요?”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명성이 궁금해서 확인하고 있던 피올란은 곧바로 대답했다.
“전 16만 조금 넘네요.”
“그렇군요.”
이안 다음으로 길드 내에서 ‘사냥 광’ 이었던 피올란은 역시 명성이 비교적 낮은 편이었다.
“그런데 헤르스님 말고 다른 사람이 명성이 높은 게 의미가 있어요? 어차피 영주는 길드마스터가 조건 맞춰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헤르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 확인해 봤었는데, 길드원 중 누구든 조건에 맞으면 그 사람이 영주가 되어도 된대요. 길드장이 아니라고 해도요.”
“아하….”
“지금 우리 길드에서 명성이 제일 높으신 분이….”
길드 정보를 쭉 확인하던 헤르스가 어이가 없는 표정이 되었다.
“뭐야, 이거 오류 아니야?”
헤르스의 격한(?) 반응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아졌다.
피올란이 물었다.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헤르스는 어이없다는 듯 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지금 우리 길드에서 명성 제일 높은 사람이… 클로반 형이잖아요.”
카윈과 피올란이 짐짓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네? 정말요?”
“에엑, 저 양아치 같은 형이?”
헤르스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악명 높게 생겨가지고 명성이 제일 높다니….”
그들의 놀림에 클로반이 눈을 부라렸다.
“뭐라고? 이것들이 진짜?”
클로반이 발끈했지만, 헤르스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형 명성 27만이 넘네요? 대체 뭘 하고 다녔기에 명성이 이렇게 높아요?”
이번에는 놀리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헤르스는 정말 놀란 눈치였다.
“계속 사냥만 하고 계셨던 것 같은데….”
피올란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놀라는 그들을 보며 클로반이 어께를 으쓱 했다.
“이 몸의 명성에 다들 놀란 건가?”
카윈이 깐죽거렸다.
“헤르스형, 악명을 명성으로 잘못 본 건 아니지?”
“뭐 인마?”
카윈가 클로반이 투닥거리는 동안, 헤르스와 피올란은 200명이 넘는 길드원들의 명성치를 하나하나 다시 꼼꼼히 살폈다.
하지만 클로반보다 명성이 높은 길드원은 아무도 없었다.
클로반이 자신의 명성이 높은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50레벨 때, 투기장 루키 리그에 참가한 적이 있었거든.”
“오, 그래요?”
“응. 여기 길드 들어오기 전인데, 그 때 대진운이 좀 좋아서 4강까지 올라갔었어. 그때 5만 명성 받았고, 나머지는 직업퀘스트를 좀 열심히 했었고.”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확실히 루키 리그라면….”
투기장은 매달 초에 한 번 열리는 1:1 pvp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50레벨 이하인 유저들끼리만 따로 경쟁하는 루키리그가 따로 존재했다.
클로반이 초고수의 반열에 들 만한 유저는 아니었지만, 루키리그 정도에서 준결승에 올라가는 정도는 불가능한 수준이 아니었다.
헤르스가 클로반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클로반 형이 영주가 될 확률이 제일 높은 건가요?”
피올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나머지 길드원들 이랑은 거의 10만이 차이가 나니까요.”
헤르스는 동의했다.
“그러게요…. 신기하네요. 루키 리그에서 받은 5만 명성을 빼더라도, 명성차이가 왜 이렇게 많이 나는 거지…?.”
피올란이 어께를 으쓱 하며 말했다.
“뭐, 그건 클로반님만 아시겠죠.”
“어휴… 저 형은 산 도적같이 생겨서 27만이 넘는 명성이라니….”
헤르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한편, 뿍뿍이를 등에 멘 이안은 끝없이 생성되는 유령 몬스터들과 싸우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죽이고 죽여도 끝없이 나오는 유령도마뱀들.
‘고스트 드레이크’가 아니라 그보다 조금 약한 50레벨 중반 정도의 ‘고스트 리자드’ 였기 때문에 경험치는 조금 적었지만, 오히려 더 좋은 상황이었다.
너무 많은 숫자 때문에, 고스트 드레이크 였다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돌아 나가야 했으리라.
퍽-!
이안은 둔탁한 타격음에 힐끗 자신의 뒤를 쳐다 보았다.
[소환수 ‘뿍뿍이’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뿍뿍이’의 생명력이 1 감소합니다.]
이안의 뒤쪽을 노린 고스트 리자드의 공격을 뿍뿍이의 등껍질이 대신 방어해 준 것!
치명적인 공격이 발동되었음에도 1의 피해밖에 입지 않은 뿍뿍이의 위엄에, 이안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크, 역시 사람은 머리를 써야 된다니까?’
비록 닌자거북(?)같은 우스꽝스러운 외모가 되었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피하기 힘든 공격이 날아올 때 마다 살짝 등을 돌려주면 뿍뿍이의 등껍질이 완벽하게 피해를 막아주었다.
거의 방탄조끼 수준의 방어력!
절대방어에 가까운 뿍뿍이의 등껍질 덕분에, 이안이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고, 이는 전투력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떡대 하나에게 쏠리던 적들의 공격이 분산되면서 좀 더 안정적으로 사냥을 할 수 있게 된 것.
수상해 보이는 거대한 철문 안쪽으로 들어온 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났고, 그동안 끝없이 고스트 리자드 들이 생성되었지만, 이안은 돌아 나갈 생각이 없었다.
‘끝을 봐야지. 분명 이 방이 던전의 끝은 아닐 텐데.’
이안은 들어온 문의 반대편에 있는 바위벽을 힐끔 보았다.
그 쪽에도 들어온 곳에 있던 철문과 비슷하게 생긴 철문이 존재했다.
이 끝없이 나오는 도마뱀들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잡다보면 언젠가는 저 문이 열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초기화 전에 이런 방식으로 몬스터 웨이브가 끝없이 이어지는 던전을 경험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래서 대충 어떤 식으로 대처하면 되는지 알고 있었기에 무척이나 여유 넘쳤다.
‘이제 슬슬 몬스터 웨이브가 끝날 때도 됐는데….’
이안은 마지막 남은 고스트가 라이에게 물려 쓰러지는 것을 보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웨이브가 끝이 아니라면 또 새로운 리자드들이 나타날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패턴으로 공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웨이브가 끝났군. 뭐가 나오려나?’
우우웅-!
석실 내부에 커다란 소리가 울리면서, 파란 빛이 바닥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소환 마법진…?’
보통 던전의 보스가 소환될 때 나타나는 패턴.
이안은 긴장하며 석실의 중앙에 모이는 푸른 빛을 응시했다.
“라이, 공격할 준비 하고 있어!”
크르릉-!
석실 중앙에서 소환마법진이 발동되며, 서서히 실루엣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을 지켜보던 이안의 눈이 살짝 커졌다.
거대한 보스 몬스터가 등장할 것을 예상했던 소환마법진에, 왜소한 노인이 나타난 것이었다.
새파란 빛으로 이루어진 몸체에, 하얀 빛이 일렁이는 지팡이를 쥐고 있는, 노인의 형상을 한 유령이었다.
이안이 당황하고 있을 때, 유령노인(?) 이 말을 걸어왔다.
[호오… 그대는 소환술사로구만.]
이상한 노인네가 등장해서 말까지 걸어오자 잠시 당황했던 이안이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만… 누구세요?”
그래도 노인공경(?)은 할 줄 아는 이안인지라, 몬스터일지도 몰랐지만, 일단 존대는 했다.
하지만 이안의 물음에 아랑곳 하지 않고, 노인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이 오클리의 시험에 처음 도전하는 이가 소환술사라니… 이것도 운명인 것인가….]
“할아버지 이름이 오클리예요?”
이안의 퉁명스러운 물음에, 그제야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다네. 내 이름이 오클리지.]
“할아버지는 왜 여기 계신 건데요?”
잠시 고민하던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아직 알려줄 수 없다.]
“네?”
이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뜬금없이 나타나서 시험이니 어쩌니 갈수록 알 수 없는 소리만 해 대니, 이안의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이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인이 들고 있던 새하얀 지팡이를 치켜들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전자여… 나의 시험을 통과한다면, 이 비동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이안이 본능적으로 전투자세를 잡았다.
쿠쿵- 쿠쿠쿵-!
던전 전체가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체 뭐가 나오려고 이러는 거야? 불안하게….’
불안해하는 이안을 향해 지팡이를 치켜든 오클리는 커다란 목소리로 소환주문을 외쳤다.
[혼돈의 드레이크여, 나의 부름에 응답하라…!]
그리고 그의 말과 함께, 그의 앞에 새하얀 빛이 터져 나오며, 거대한 드레이크가 나타났다.
이안이 던전 1층에서 상대했던 고스트 드레이크들과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크기가 2배 가까이 더 컸으며, 새하얀 몸체를 갖고 있던 고스트 드레이크들과는 달리 짙은 회색빛을 띄고 있는 드레이크.
그 압도적인 위용이 이안을 위축시켰다.
그리고 그 위압적인 외형이 다가 아니었다.
‘레벨이 75…?! 게다가 영웅등급?’
이안은 절망했다.
아무리 이안이 날고 기어도 아직 그와 그의 소환수들은 40레벨 초반 대.
가장 레벨이 높은 떡대의 레벨이 45였는데, 75레벨의 영웅등급 몬스터를 이길 방법은 없는 것이었다.
‘이게 말이 돼? 60레벨 대 사냥터에 있는 던전에서 70렙이 넘는 보스라니!!’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욕이 절로 나왔다.
이런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높은 등급의 연계퀘스트가 맞물려 있는 던전이거나, 히든피스와 관련된 던전의 경우 평균 레벨이 60~70정도 밖에 되지 않는 던전에서 보스로 95레벨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운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이었다.
‘으… 초기화 하고는 한 번도 죽지 않으려 했는데… 여기서 죽어야 되는 건가?’
이안은 라이와 떡대를 슬쩍 응시했다.
‘죽을 것 같으면 소환수들부터 역 소환 해야겠어.’
소환수는 죽는다고 해서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레벨에 비례해서 일정 시간동안 다시 소환할 수 없었는데, 40레벨 정도의 소환수가 죽고 나면 4일 정도는 소환할 수 없었다.
게다가 소환수 또한 레벨다운 패널티를 받는 것은 물론이었고.
‘죽어도 나만 죽는다.’
캐릭터의 게임오버 페널티가 1레벨 다운과 24시간 접속불가였으니, 이안이 죽더라도 소환수는 어떻게든 살려야 했다.
죽는 것이야 가슴 아프지만, 소환수만 살려 놓으면 데스 페널티가 끝나자마자 다시 사냥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든 소환수들이 죽는 걸 왠지 보고 싶지가 않았다.
크아아오!!
노인이 소환한 카오스 드레이크가 크게 울부짖었다.
드래곤 피어에 비하면 장난 수준이라 할 수 있었지만, 레벨이 40대에 불과한 이안에게는 제법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카오스 드레이크’의 피어에 몸이 위축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10분동안 5% 감소합니다.]
이안은 주먹을 강하게 말아 쥐었다.
게임오버 될 때는 되더라도, 쉽게 죽어줄 생각은 없었다.
이안이 투지를 불태우자, 노인이 빙긋 웃으며 지팡이를 내뻗었다.
[혼돈의 드레이크여 저 자를 공격하라!]
크르르르-!!
그의 명령에 카오스 드레이크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것을 본 이안의 동공이 살짝 확대되었다.
‘뭐야, 저놈은 브레스도 써?!’
저 준비동작은 분명 브레스를 발사하기 위한 사전 동작이었다.
이안은 앞으로 뛰어들며 떡대와 라이에게 소리쳤다.
“떡대, 라이, 양 옆으로 흩어져!”
그 말과 동시에 카오스 드레이크의 입에서 시커먼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화아아악-!
그리고 이안은 재빨리 몸을 돌려 등을 가져다 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