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고블린 야영지 -2
팡- 파앙-!
경쾌한 파동음과 함께, 하린을 공격하는 고블린들의 몽둥이가 튕겨나갔다.
하린의 주변을 빈틈없이 두르고 있는 광휘의 방패 쉴드 때문.
“하린님, 신성력 얼마나 남았어요?”
쉴 새 없이 날아드는 고블린의 공격을 막아내며, 이안이 물었다.
“아직 십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하린은 생각보다 잘 버텨 주었고, 이안의 작전은 제법 성공적이었다.
‘생각보다는 잘하는데? 그래도 40레벨은 넘은 유저인데 내가 너무 걱정했나.’
사실, 이안이 하린을 필요 이상으로 걱정 했다기 보다는, 지금 하린이 하고 있는 컨트롤이 너무 쉬운 것이었다.
가끔 한 번씩 이안과 라이에게 버프 걸어주는 것만 빼면, 시종일관 자신의 체력만 확인하면서 쉴드건 힐이건 자신에게 몰빵하는 상황이었는데, 이정도의 컨트롤은 사제를 처음 하는 사람이라도 할 수 있을 수준이었다.
원래 사제는 기존의 전투 직업들 중에 최상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직업으로 유명했다.
세밀한 컨트롤이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전장을 전체적으로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해서, 시야가 좁으면 제대로 역할을 못 해내는 그런 포지션.
‘하린 님은 여유 있는 것 같고.’
이안은 상대하던 고블린을 처치한 뒤 이번에는 라이를 힐끗 바라보았다.
물론, 라이는 미친 듯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크르릉- 크릉-
고블린 정찰병 보다는 강한 전투력을 가진 고블린 전사들 이었지만, 라이가 서너 번 물어뜯으면 여지없이 회색빛이 되어 사라졌다.
방어력과 체력이 약한 라이의 체력은 마치 곡예를 타는 것처럼 오르락내리락 하는 중이기는 했지만, 하린의 버프 중에 방어력 버프가 있어 그렇게 위험한 수준은 아니었다.
[고블린 전사를 처치했습니다. 910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고블린 전사를 처치했습니다. 925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
:
하린은 물론 라이까지 나누어 먹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양의 경험치가 쏟아져 들어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27레벨이 되었습니다.]
전투가 시작한지 이제 세 시간 정도 지났을 뿐이었는데, 레벨이 또 하나 올랐다.
‘이 맛이지!!’
이안은 연속된 사냥으로 인한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고블린 야영지 퀘스트는 크게 세 파트로 나눌 수 있었다.
첫 파트가 몰려드는 고블린 전사들과 자경단원의 격돌 이었는데, 이 파트가 끝나는 데만 빠르면 5시간, 오래 걸리면 7시간까지도 걸렸다.
그 이상으로 오래 걸리면 실패한다고 보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 첫 번째 파트 때문에 고블린 야영지 퀘는 막대한 경험치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없는 것이었다.
거의 반나절 동안의 쉴 새 없는 전투!
이안 같은 노가다와 끝없는 사냥에 재미를 느끼는 변태가 아닌 이상 기피할 수 밖에 없는 퀘스트였다.
그리고 첫 파트가 끝나면, 두 번째 페이즈는 조금 수월한 편이었다.
자경단장이 고블린 족장과 싸우는 동안 숨어서 화살을 날리는 고블린 레인저를 전부 찾아서 잡아내면 클리어.
그리고 마지막은 자경단장을 도와 고블린 족장을 죽이고 나면 모든 퀘스트가 끝나는 것이었다.
첫 번째 파트에서 얼마나 많은 고블린 전사들을 잡아내느냐에 따라 두 번째, 세 번째 파트의 난이도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었다.
이안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여기서 최소 30 찍고 나간다.”
빠른 성장을 향한 결연한 의지.
그리고 라이의 활약상을 지켜봤을 때, 이안의 계획은 충분히 실현 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더 이상 좋을 게 없어 보이는 이 상황에서도 이안은 아쉬움이 생겼다.
자경단원들에 의해 사냥당하는 고블린 전사들의 경험치 마저 아까웠던 것.
‘라이한테 광역 공격기 같은 게 있으면 더 좋을 텐데….’
광역 공격기의 장점은 한입씩 침만 발라놔도 약간의 경험치는 챙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순간 이안의 뇌리에 스쳐지나가는 몬스터가 있었다.
‘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사냥터는 아니었지만, 마법사들이 빙결마법을 배우기 위해 40레벨이 되기 전에 꼭 거쳐야 하는 장소.
심연의 호수.
심연의 호수는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거대한 호수였다. 그리고 그 호수 한 가운데에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섬이 있었는데, 이 섬에 빙결마법서를 얻을 수 있는 퀘스트가 있어서 유명한 곳이었다.
섬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반달곰과 비슷한 레벨대의 아이스골렘들 이었는데, 개체수가 많지도 않고, 레벨에 비해 상대하기 까다로워서 사냥터로는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곳이었다.
‘고블린 퀘 끝나자 마자 아이스골렘 잡으러 간다.’
이안이 떠올린 것은 아이스골렘들의 고유 스킬이었다.
‘아이스 웨이브’
꽤 넓은 범위의 광역 공격마법.
충격파 형식의 기술이었는데, 데미지가 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넓은 범위에 얼음속성 데미지를 입히며 둔화 효과까지 노릴 수 있었으니 효용이 대단할 게 분명했다.
게다가 아이스골렘은 체력이 상당해서 화염계열 마법만 조심하면 훌륭한 탱커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로 영입할 소환수까지 정하고 나니, 이안은 더욱 힘이 났다.
그리고 이안과 라이의 활약에 힘입은 건지, 야영지 퀘스트의 첫 번째 파트가 무려 4시간 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끝나버렸다.
* * *
루킨은 지금 너무 당황스러운 경험을 하고 있었다.
‘대체 저 놈은 뭐지? 소환술사가 벌써 이 여기 올 수준으로 레벨이 높지는 않을 텐데…?’
그는 전투하는 것도 잊고 붉은 늑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오늘 레벨업을 하기 위해 길드원 두 명에게 수고비까지 쥐여 줘 가며 고블린 야영지 퀘스트를 독식할 생각으로 소무르 협곡에 왔었다.
그런데 웬 2인 파티가 50대 초반 레벨이 두 명이나 끼어있는 자신들의 파티만큼이나 고블린 전사들을 빠르게 잡고 있었다.
루킨은 분통이 터졌다.
‘저 늑대 전투력만 봐선 최소 60레벨대는 되어 보이는데… 대체 뭐지….’
그리고 곰곰이 생각한 결과 나름의 결론을 도출해 내었다.
‘특정 소환물을 소환할 수 있는 아티펙트를 가진 게 분명해!’
루킨의 추정은 제법 그럴 듯 했다.
카일란에는 몬스터를 부릴 수 있는 봉인마법이 걸려 있는 아티펙트가 간혹 있었다.
그래서 소환술사 라는 직업이 나오기 전에도, 간혹 유저들이 소환수를 부리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저레벨의 몬스터가 봉인되어있는 아티펙트라 하더라도 무척이나 희귀했기 때문에 그 가격이 어마어마했고, 그래서 일반 유저들은 구경도 해 보지 못한 것이 보통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루킨은 욕심이 났다.
첫 번째 파트의 전투가 끝나가자 루킨은 자신의 동료 두 사람을 불렀다.
“팔콘, 밀런. 잠깐 이리 와 봐.”
“왜 루킨. 무슨 일이야?”
밀런의 대답에 루킨은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 저쪽 유저들이 쓰는 몬스터 봤지?”
“봤다. 붉은 늑대 말하는 거지?”
“그래. 넌 어떻게 생각하냐.”
루킨의 말에 밀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뭘 어떻게 생각해? 소환술사인가보지.”
밀런의 답답함에 루킨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아니, 너 저거 전투하는 거 봤어? 여기서 사냥하는 소환술사라면 최소 40레벨 이상은 되었다는 소린데… 늑대 전투력만 보면 60도 넘을 수도 있어보이고.”
팔콘과 밀런이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자, 루킨은 말을 이었다.
“소환술사 직업 열린 게 얼마나 됐다고 레벨 40이 될 수 있었겠어? 아무리 잘 해 봐야 20? 그 이상은 힘들거야.”
루킨의 말이 끝나자 팔콘과 밀런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들은 루킨과 달리 별 생각 없이 고블린만 때려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생각해보니 그러네?”
“그러게. 맞아! 나 커뮤니티에서 봤는데 지금 소환술사 직업게시판에 인증한 사람중에 최고랩이 17인가 18 이었던 거 같아!”
루킨의 눈이 빛났다.
“그렇다면 저 유저가 부리는 붉은 늑대는 정체가 뭘까?”
팔콘이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몬스터 소환 마법이 걸려있는 아티펙트…?”
밀런도 놀란 표정이 되었고, 루킨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 생각이 바로 그거야.”
루킨은 잠시 주변의 눈치를 봤다.
이제 첫 번째 파트가 끝나고 있었고, 사방으로 고블린 궁수들이 뛰어가는걸 보니 두 번째 파트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싸우는 걸 대충 보니까, 사제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년이고, 늑대만 아니면 저 지팡이든 놈도 별 거 없어. 무기는 지팡인데, 근접전을 하더라고. 위협적인 마법같은 것도 없는 것 같아.”
팔콘과 밀런은 루킨의 말이 뭔지 정확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