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23화 (5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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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고블린 야영지 -1

고블린 야영지 퀘스트를 위해 길드원들과 함께 토벌대를 따라 온 루킨은 휑하니 비어있는 소무르 협곡의 입구를 보며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뭐야, 그 많던 정찰병들 다 어디 갔어?”

그의 동료인 팔콘과 밀런 또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게, 오늘 아침에 정찰병 퀘 할 때만 해도 빼곡하게 있지 않았냐?”

“그러니까 말이야. 정찰병들 경험치도 짭짤한 편인데…. 어떤 할 일 없는 랭커가 지나가다 심심해서 쓸어버렸나?”

일반적인 사냥터의 몬스터들은 각각의 리젠 시간이 있어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정해진 위치에 생겨난다.

하지만 고블린 야영지 맵에 있는 고블린 몬스터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일종의 이벤트성 몬스터들이었기 때문에, 야영지 퀘가 한번 전부 끝나고 족장까지 죽어야 몇 일 뒤 다시 리젠되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루킨의 일행은 매우 당혹스러웠다.

“너 오늘 이거 한 바퀴 다 돌아도 랩 업 못할 수도 있겠다?”

사실 팔콘과 밀런은 야영지 퀘가 주 목적이 아니었다.

그들은 루킨의 레벨업을 도와주기 위해, 소위 말하는 버스기사의 역할로 루킨을 따라 소무르 협곡에 온 유저들이었다.

루킨의 레벨은 34였고, 팔콘과 밀런의 레벨은 50대 초반 정도였다.

“그러게… 오늘 35레벨은 찍었어야 하는데…. 너희들도 제사장 퀘스트 까지는 힘들지?”

제사장 퀘스트는 일종의 숨겨진 퀘스트였다.

고블린 야영지를 소탕한 후, 자경단에 돌아가기 전에 야영지 후미에 있는 터널을 따라 들어가면 발생하는 히든 퀘스트.

“글세, 그렇게 힘들진 않을 거 같은데? 내 기억에 고블린 제사장 레벨이 55 정도였는데, 제사장이 강하다기 보단 그 앞에 고블린 전사들이 좀 많아서 힘든 거 거든. 야영지 퀘 하는 중에 미리 고블린 전사들만 끌어와서 자경단원들이랑 같이 잡아 놓으면 충분히 가능할거야.”

“맞아. 고블린 전사만 미리 처리해 놓으면 제사장이야 둘이서 충분하지.”

“그래? 그나마 다행이네. 거기서라도 경험치 좀 메꿔야지.”

하지만 정찰병들의 막대한 경험치가 생각나자 다시 속이 쓰렸다.

“쩝.”

루킨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걸음을 돌렸다.

“일단 정찰병 없다고 보고나 하러 가자. 퀘스트 진행은 해야지.”

루킨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돌아가자.”

세 사람은 토벌대장 NPC인 휴고에게 돌아가 상황을 보고했다.

“토벌대장님, 정찰병이 몇 남아있지 않습니다. 곧바로 본진을 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휴고는 반색을 하며 일어섰다.

“오호, 그런가? 좋아 좋아. 우리 자경단의 피해를 최소화 시킬 수 있겠군. 어서 가지!”

루킨은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경험치 덩어리들이 다 없어졌는데 뭐가 좋아? 짜증만 나는구만.’

루킨은 짜증나는 것과는 별개로, 경험치를 조금이라도 더 챙겨야 했기에, 선봉을 자처했다.

“저희 셋이 전투의 선봉에 서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휴고는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일세. 정말 그래줄 수 있겠나?”

“예, 저희가 앞장서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휴고는 흡족한 표정이 되었고, 루킨을 비롯한 셋은 빠르게 움직여 부대의 선두에 섰다.

그리고 휴고는 그 뒤를 따라 백 명이 넘는 자경단원 NPC들을 이끌고 고블린 야영지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때 한 NPC 자경단원이 휴고를 불러 세웠다.

“대장님, 저기 새로운 용병 자원이 도착했습니다.”

그 말에 휴고는 잠시 멈춰 단원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돌아보았다.

새로운 용병은 다름 아닌 이안과 하린이었다.

두 사람이 지척에 도달하자, 휴고는 손을 내밀었다.

“오, 새로운 지원군이로군. 한 사람이라도 힘을 보탤수록 토벌은 더 쉬워지겠지.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맙네.”

이안은 휴고의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당연한 일을 하는 것 뿐 입니다.”

이안은 퀘스트가 시작되기 전,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 왔더라면 라이를 타고 애초에 도착했겠지만, 하린과 함께 오는 바람에 예상보다 많이 늦어진 것이었다.

“자, 오늘 소무르 협곡의 고블린들의 씨를 말릴 것이다! 전군 앞으로!!”

휴고가 명령을 내리자, 자경단원들이 기합을 내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전방에는 마찬가지로 새까맣게 많은 고블린 전사들이 야영지에서 달려 나오고 있었다.

얼핏 봐도 수백은 넘어 보이는 고블린 전사들의 위용에, 하린은 살짝 질린 모습이었다.

“저기 이안님… 괜찮을까요?”

하지만 하린과 달리 이안은 저 고블린들이 전부 경험치 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괜찮을 겁니다. 아까 오면서 저랑 얘기했던 대로만 하시면 돼요.”

“정말 그래도 될까요? 그렇게 하면 정말 이안님 혼자 싸우실 텐데요.”

“에이, 아니죠. 기본적으로 버프 걸어주실 거고 쉴드로 어그로 끌어주시는 것만 해도 큰 도움이에요.”

사제의 스킬 중에는 광휘의 방패 라는 스킬이 있는데, 이 스킬은 사제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최고의 방어스킬이었다.

광휘의 방패는 사제의 신성력을 일정 비율로 쉴드로 변환해서 신성력이 전부 소모되기 전엔 체력이 떨어지지 않게 해주는 스킬이었다.

단점은 자기 자신한테만 쓸 수 있는 스킬이라는 것 이었는데, 그런 만큼 신성력 대비 쉴드 비율이 무척이나 효율적이어서 사제가 모든 신성력을 광휘의 방패에 쏟아 부으면 어지간한 탱커 뺨치는 몸빵을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안은 겁이 많은 하린의 성격 상 이 스킬의 숙련도가 높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고, 역시나 광휘의 방패는 하린의 주력 스킬이었다.

심지어는 비상식적으로 광휘의 방패의 숙련도만 높은 상태였다.

그래서 두 사람이 세운 전략은 단순했다.

하린은 모든 신성력을 광휘의 방패로 자신을 보호하는 데만 이용하고, 이안과 라이에게는 쿨타임 마다 버프만 걸어주는 것이었다.

한 단어로 요약하면 죽지 않는 버프셔틀.

그리고 이게 다가 아니었다.

이안은 지금 하린을 끌고 최전선에서 싸우려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어차피 하린님 레벨은 고블린 야영지에 오기엔 비교적 높은 레벨이야. 게다가 광휘의 방패 숙련도는 거의 60레벨 수준이고.’

다시 말해 자기방어에만 모든 노력을 쏟아 부으면 아무리 게임을 못해도 하린이 여기서 죽을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하린 님을 탱커로 써야겠어.’

그냥 후방에서 자경단원들과 함께 편하게 싸우면 아마 십중팔구 하린은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될 것이었다.

‘그냥 전투해도 상관은 없지만…,’

기왕에 하린을 데려온 거, 그녀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사냥 효율을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뽑아내 보자는 게 이안의 생각이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최전방에 하린을 던져놓고 어그로가 쏠리면 라이와 함께 경험치를 주워 먹겠다는 계획.

이 작전에서 하린의 역할은 말 그대로 ‘고기방패’ 였다. 그리고 하린이 생각보다 더 게임을 못하거나, 예상했던 범주를 넘어서는 어그로가 쏠리면 죽을 확률도 없진 않았다.

“알겠어요. 이안님만 믿을게요.”

이안의 계획을 들었음에도 그 핵심은 눈치 채지 못한 하린은 그저 고개만 주억거렸다.

그리고 이안은 약간 양심에 찔렸는지 먼 산을 바라보며 라이를 쓰다듬었다.

“저 말고 이 녀석 믿으시면 됩니다.”

이안은 자기합리화를 시전했다.

‘하린님도 죽지만 않으면 막대한 경험치를 가져갈 수는 있는 작전이니까….’

절대로, 라이가 자신보다 맛있는 걸 먹어서 꽁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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