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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최초의 진화 -3
[카윈 : 형 접속중이지? 지금 대화할 수 있어?]
고블린을 열심히 때려잡던…
아니, 고블린에게 열심히 두들겨 맞던 이안은 카윈의 메시지에 전투를 중단했다.
[고블린 정찰병을 처치했습니다. 1250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라이야 여기까지만 하자, 이리와.”
크르릉-
고블린을 다 잡고 다음 고블린 무리를 향해 달려들려던 라이는 이안의 말에 얌전히 돌아왔다.
“정말 수고 많았다. 이거 먹어.”
이안은 라이에게 인벤토리에 쟁여뒀던 반달곰 고기를 던져주고는 메시지 창을 켰다.
[이안 : 응, 할 수 있어. 말해.]
[카윈 : 짐작했겠지만, 그 친구한테 연락이 와서. 지금 접속했거든.]
[이안 : 아, 그래? 뭐라시냐? 할 수 있대?]
[카윈 : 응, 하겠대.]
이안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카윈의 친구가 안 된다고 했으면, 또 사람 찾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안 : 그래, 고맙다. 친구 분 아이디가 뭐야?]
[카윈 : ‘하린’ 이야. 바로 메시지 한번 보내봐.]
[이안 : 오키오키.]
이안이 대화가 끝났다는 생각에 새로움 메시지창을 키려할 때, 카윈이 한마디 더 했다.
[카윈 : 형 근데…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얘 전투력 제로 라고 생각하고 해야 해.]
이안은 피식 웃었다.
원래도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라이가 진화까지 한 지금 무서울 게 없는 이안이었다.
[이안 : 야, 걱정 붙들어 매라. 형 지금 솔플로 소무르 협곡 털고 나오는 길이다.]
[카윈 : 소무르 협곡이 어디더라… ]
너무 오래 전 사냥하던 사냥터라 기억이 가물가물한 카윈이었지만, 곧 기억을 끄집어 내고는 경악했다.
[카윈 : 뭐? 혼자서 소무르 협곡을 털었다고? 거기가 고블린 야영지 아니야?]
[이안 : 응. 맞아. 전진기지에서 고블린 정찰병만 죽어라 잡았어 반나절동안. 레벨도 다섯 개나 올렸다.]
[카윈 : 뭐야, 형 무슨 치트나 버그 같은 거 쓰는 건 아니지? 그러다 영구정지 먹고 엉엉 울어도 모른 척 할 거다.]
카윈의 입장에서는 놀라 자빠질만한 소리였다.
레벨 20 찍은 지 얼마나 됐다고, 40레벨 사냥터를 쓸고 다닌다는 말인가.
게다가 반나절 만에 레벨을 5개나 올렸다니.
원래 20레벨 때에서의 레벨업은 하루에 1업, 많아야 2업 정도 잡는 것이 보통이었다.
괴물이 따로 없었다.
[이안 : 버그는 무슨. 아무튼 걱정할 거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라.]
[카윈 : 그… 그래. 형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뭐. 알겠어.]
[이안 : 오냐.]
[카윈 : 하하… 이형 진짜 금방 우리 레벨 다 따라 오겠네 이거.]
이안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이안 : 딱 두 달만 기다려라.]
[카윈 : ….]
지금 로터스 길드의 주력 길드원의 레벨은 거의 80대라고 보면 되었다.
얼마 전에 피올란이 레벨업을 하여 길드의 유일한 90레벨이었고, 나머지 유저들은 전부 85~88 사이의 레벨.
이안이 경험해본 바로, 90레벨부터 레벨업은 보통 1업에 일주일 정도를 잡아야 했다. 그것도 일주일 내내 미친 듯이 레벨업만 했을 때.
그가 예상하기로, 두달 뒤 길드원의 레벨은 95 정도에 옹기종기 모여 있을 것이었다.
‘두 달 안에 100레벨 찍어 버린다.’
두 달 이면 방학이 끝날 시점.
이안은 자신 있었다.
이진욱 교수와의 내기인 초기화 전 레벨의 복구, 즉 93레벨 달성에 불안해하던 그가 아니었다.
라이의 진화는 그만큼 이안에게 힘이 되었다.
‘앞으로 보름 안에 50. 그리고 80까지 또 보름. 그리고 100까지 남은 한달.’
이안의 마스터플랜이었다. 모든 조건이 이전보다 좋은데다, 이미 한번 걸었던 길을 또 걷는 상황.
라이도 진화했고, 교수와의 내기라는 동기부여까지 생겼다.
‘오히려 교수님이랑 한 내기가 나한테 더 득이 될 지도 모르겠어. 이 내기, 무조건 이긴다!’
그런 의미에서 당장 퀘스트를 시작해야했다.
이안은 카윈과의 메시지 창을 끄고 함께 퀘스트를 진행할 ‘하린’ 이라는 유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안 : 안녕하세요, 카윈 친구분이시죠?]
대답은 곧바로 돌아왔다.
[하린 : 네 맞아요. 반가워요.]
이안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안 : 지금 위치가 어디신가요?]
[하린 : 루카인 마을 대장간에서 장비 수리하고 있어요.]
[이안 : 아하, 마침 루카인에 계시네요. 대장간에 계세요 제가 10분 안으로 가겠습니다.]
[하린 : 네 좋아요.]
* * *
라이를 타고 순식간에 루카인에 돌아온 이안은 곧바로 대장간을 찾았다.
그리고 대장간 앞에 서있는 하린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안입니다.”
하린은 날렵한 몸매에 무척이나 아름답고 하얀 얼굴을 가진 여성유저였다.
하지만 약간의 외형변경이 가능한 카일란에서, 여성유저의 외모를 믿는 것은 얼마나 미련한 일인지 이안은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이 묘해서, 아주 조금만 고쳐도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하린이에요. 카윈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카윈이 친구신가봐요?”
“아뇨, 친구는 아니고… 친한 누나에요.”
“아….”
분명히 카윈이 친구라고 했었던 것 같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기에 이안은 별 생각 없이 넘어갔다.
“전 준비 다 해놔서 곧바로 퀘스트 출발해도 될 것 같아요. 이안님은요?”
“예, 저도 바로 출발하면 됩니다.”
이안은 하린의 시원시원함이 자신의 성향과 맞는 것 같아 다행이라 여겼다.
이안이 제일 싫어하는 파티원이 엉덩이 무겁고 굼뜬 유저들이었다.
“하린님은 혹시 야영지 퀘스트 하시는 이유가 따로 있으세요?”
이안은 별 생각 없이 물어본 것이었지만, 하린은 의외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제가 받고 싶은 퀘스트가 있는데, 그게 야영지 퀘스트를 깨야 진행할 수 있더라구요. 원래 카윈이나 다른 고 레벨 친구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하려 했는데, 마침 이안님이 그 퀘스트 하신다고 해서….”
그 말에 이안은 문득 그 내용이 궁금해졌다.
“야영지 퀘스트랑 연계되는 퀘스트인가요?”
하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제가 받고 싶은 퀘스트가 트레핀 공작성 주방장에게 받아야 하는 임무인데, 공작성에 들어가기 위해선 이 퀘스트를 깨야 하잖아요?”
‘아 맞다 그랬지.’
야영지 퀘스트를 주는 라페르는 공작성의 치안관리대장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그래서 라페이에게 부탁하면 공작성으로 들어갈 수가 있게 되어 있었는데, 그러려면 라페이와의 친밀도를 올려야 했고, 이 야영지 퀘스트는 필수였다.
“그렇군요. 그런데 주방장한테 무슨 퀘스트를….”
말을 하던 도중 이안은 카윈에게 들은 하린의 생산직업이 떠올랐다.
“아, 요리사라고 하셨지.”
하린은 반색했다.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카윈이가 얘기했나?”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카윈이한테 들었어요. 생산직업이 요리사 시라구요.”
“맞아요. 전 현실에서도 요리 전공이에요.”
“아하. 생산직업이 키우기 힘들다던데, 원래 전공도 요리시면 조금 수월하시겠네요.”
“그렇더라구요. 더 재미도 있구….”
카일란에서는 전투 뿐만 아니라 요리, 대장장이 등의 생산직업도 실질적인 유저의 실력이 반영되었다.
현실에서의 손재주가 게임 내에서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대장장이 같은 경우는 그래도 실질적으로 아이템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시스템의 힘이 작용하기는 하지만, 요리의 경우는 정말 현실에서 요리하는 과정과 90% 이상 방식이 똑같다고 들었다.
현실보다 불을 좀 세게 피어 올릴 수 있다거나, 현실의 오븐이나 믹서기 같은 요리 기구를 좀 더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게 되어있다는 점 정도를 제외하면 완벽히 똑같다는 의견도 많았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 요리사는 더 유저들에게 외면 받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그만큼 어려웠으니까.
“무튼, 지인 중에 요리사는 처음이네요. 다음에 맛있는 요리한번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
하린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