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최초의 진화 -2
끼룩-끼룩-
음침한 까마귀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소무르 협곡에 들어서자마자 이안의 몸에 음산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
“카일란은 쓸데없이 이런 것 까지 현실감 있게 만들어놨단 말이지.”
이안은 투덜거렸지만, 이런 디테일한 요소들 때문에 사람들이 카일란에 열광하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퀘스트 내용이 고블린 정찰병 10마리 처치였나?’
원래는 정찰병 10마리만 깔끔하게 처리하고 마을로 돌아가려했던 이안은 생각이 바뀌었다.
‘라이가 멋지게 진화까지 했는데 그럴 수 없지.’
고작 10마리 잡고 돌아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감칠맛이 나는 것 같았다.
“라이야, 한번 신나게 놀아보자.”
이안은 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지금 이안의 설레임은, 배기량 1500cc짜리 소형차를 몰던 운전자가 몇 년 꼬박 모은 돈으로 구입한 배기량 4000cc 이상의 슈퍼카에 시동을 걸 때의 설레임에 비견될 정도였다.
일단 이안은 라이의 등에서 내려와 버프스킬들을 시전했다. [‘바람의 축복’을 사용하셨습니다. 민첩성이 37% 증가합니다. 소환수 ‘라이’의 민첩성이 37% 증가합니다.]
[‘야만전사의 축복’을 사용하셨습니다. 공격력이 33% 증가합니다. 소환수 ‘라이’의 공격력이 66% 증가합니다.]
숙련도가 올라 버프스킬들의 능력치 증가량도 조금씩 올랐다.
특히 야만전사의 축복 같은 경우, 소환수에게 두 배 효과로 작용하니 라이의 공격력 수치가 155나 상승하여 390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대자연 아이템 효과 때문에 보이지 않는 능력치 상승도 있을 테지.’
이안은 지팡이를 치켜들며 어색한 자세로 라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라이, 저기 고블린 세 마리 어슬렁거리는 거 보이지? 먼저 공격해봐, 내가 뒤따라 들어갈게.”
크릉- 크릉-!
낮은 그로울링(growling)으로 알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라이는 망설임 없이 고블린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안은 뒤에서 잠시 그 모양을 지켜보았다.
‘지금 버프 받은 라이의 능력치는 고블린보다 떨어질 게 전혀 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고유능력도 두 개나 생겼고… 전투 ai는 일반 필드 몬스터와는 비교도 안 되게 뛰어나졌을 테니….’
이안의 치밀한 분석능력(?)으로 미루어볼 때, 지금의 라이는 고블린 정찰병 세 마리 정도는 혼자서도 상대가능한 수준이라 여겨졌다.
그래도 노파심에 약점포착 스킬을 활성화시키고, 시스템 메시지의 알림 범위를 좀 더 넓혔다.
이제 라이의 전투에 관련된 메시지도 알림메시지가 울릴 것이었다.
[‘약점포착’ 스킬이 발동됩니다. 대상의 약점이 표시되며 명중률이 14.5% 상승하고 치명타 확률이 22% 증가합니다. 약점을 공격할 시 추가로 91%의 피해를 더 입힙니다.]
이안은 여차하면 라이를 도울 생각으로 라이와 고블린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지팡이를 든 지금, 전투에 끼어봤자 라이에게 짐만 될 것 같다는 생각은 애써 무시하는 중이었다.
아우우-
하울링과 함께 라이는 엄청난 속도로 고블린 정찰병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르륵. 늑대, 붉은늑대다!”
“취이익- 췩- 늑대가 공격한다!”
고블린들이 달려드는 핏빛 늑대를 발견하고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라이를 발견했을 때, 이미 라이는 한 마리 고블린 정찰병의 목덜미에 이빨을 쑤셔 넣고 있었다.
[소환수 ‘라이’가 고블린 정찰병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고블린 정찰병의 생명력이 1075(총 체력의89%) 감소했습니다.]
[고블린 정찰병이 ‘출혈’ 상태가 되어 10초간 초당 215의 피해를 입습니다.]
연이어 떠오르는 메시지에 이안이 놀라기도 전에, 또다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출혈’로 인해 고블린 정찰병이 사망합니다.]
[고블린 정찰병을 처치했습니다. 1210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생명력이 11%밖에 남지 않았던 고블린 정찰병이 1초 후에 출혈 데미지로 인해 사망해 버린 것이었다.
출혈 데미지가 원래 데미지의 20% 데미지를 매 초마다 추가로 입히는 효과였으니, 바로 사망하는 것이 당연했다.
‘뭐, 뭐야 이거? 무슨 한방에 40레벨 몬스터가 사라져?’
퍽-!
이번에는 고블린의 몽둥이가 라이의 등짝에 작렬했다. 일대일의 상황이었다면, 그리 날렵한 편이 아닌 고블린에게 쉽게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겠지만, 여럿이서 동시에 공격하니 다 피해내는 것은 라이로서도 무리였다.
[소환수 ‘라이’가 고블린 정찰병으로부터 294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공격력은 무시무시했지만, 방어력이 약한데다 방어관련 버프도 없었으니, 들어오는 데미지도 엄청났다.
방금 정도의 데미지라면, 라이도 서너 방이면 사망하는 수준.
하지만 라이에게는 또 다른 고유능력이 있었다.
[소환수 ‘라이’가 고블린 정찰병에게 495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피해량의 15%인 75의 체력을 회복합니다.]
“그렇지!”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추임새를 넣었다.
그리고 연이은 공격과 함께 라이는 순식간에 잃은 체력을 거의 다 회복했다.
[피해량의 15%인 73의 체력을 회복합니다.]
[피해량의 15%인 76의 체력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세 마리의 고블린 정찰병 중 두 마리가 회색빛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안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며 멍하니 전투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 뒤로 라이는 하나 남은 고블린에게 다시 일격을 허용했다.
하지만….
[피해량의 50%인 523의 체력을 회복합니다.]
곧바로 터진 치명타와 함께 최대 체력을 전부 회복해 버리는 라이!
치명타가 터지니 2배 이상 높은 데미지가 터진데다, 회복률도 50%로 상승하면서 한방에 최대 체력의 70%에 육박하는 막대한 양을 회복해 버린 것이었다.
순식간에 이안의 명령을 수행하고 돌아온 라이가 마치 칭찬해달라는 듯, 이안에게 다가와 꼬리를 흔들었다.
“…라이 너…!”
이안은 감격했다.
“버스 고맙다 인마!!”
그 뒤로 이안의 사냥은 일사천리였다.
고블린 정찰병들은 많아야 4~5개체 정도가 무리지어 다니는 수준이었기에, 라이는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
이안은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멍하니 서 있는 게 다였고, 지속시간이 다 될 때 마다 버프스킬 다시 돌려주는 게 유일한 이안의 할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라이의 흡혈 능력 덕분에 ‘응급처치’ 스킬은 쓸 필요도 없는 상황.
유일한 불만(?)은 이안 자신이 너무 심심하다는 것이었다.
보고만 있어도 배부르기는 했지만.
‘이러면 다 좋은데, 응급처치 숙련도를 올릴 수가 없네?’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집착남 이안!
이안은 결국 응급처치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 자신이 몸빵(?)을 서기로 했다.
“라이야, 이제부턴 내가 먼저 들어가서 어그로 끌 테니까, 넌 조금 늦게 들어와.”
잠깐 라이가 ‘왜 그러는 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듯 한 착각이 들었지만, 이안은 애써 무시하고 고블린을 향해 뛰어들었다.
다행히 소환수인 라이는 이안의 명령을 잘 따랐고, 그렇게 이안이 생각하는 완벽한(?) 사냥이 순조롭게 진행되어갔다.
그 뒤로 무아지경 속 이안의 사냥은, 카윈에게서 귓속말이 올 때 까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