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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최초의 진화 -1
소무르 협곡을 가려면, 소무르 숲을 지나야했다.
소무르숲은 협곡보다는 낮은 레벨의 몬스터들이 출현하는 맵 이었지만, 그래도 이안이 방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출현하는 몬스터는 ‘코르쿤’이라는 이름의 맹수형 몬스터.
레벨은 30대 후반으로 반달곰보다 크게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무리지어 움직이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반달곰보다 훨씬 위험한 몬스터로 분류되었다.
코르쿤의 생김새는 현실의 동물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적갈색의 외피를 가지고 있는 재규어 같은 느낌이었다.
‘코르쿤도 잡아다 키우면 간지 좀 날 텐데. 라이 이 녀석은 간지가 좀 ….’
이안은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는 라이를 힐끗 봤다.
도저히 늑대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가공할 잠재력과 성장을 보이고 있는 녀석이긴 했지만, 솔직히 외형은 초라한 게 사실이었다.
어쨌든 낮은 레벨 사냥터 필드몬스터인 늑대의 외관 그대로였으니까.
그런데 그때, 졸졸 따라오던 라이가 문득 멈춰 섰다.
그에 이안은 속으로 찔끔 했다.
‘호, 혹시 내 생각이 공유되는 건 아니겠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 이안은 라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라이 인마, 형이 너 격하게 좋아하는 거 알지?”
힘들게 올려놓은 친밀도가 떨어질 까봐 노심초사하는 이안.
하지만 라이는 미동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에 이안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라이의 주변으로 희미한 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뭐, 뭐지?”
이안은 당황해서 라이의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곧 상황을 깨달았다.
[진화 중]
라이의 상태창에 항상 진화가능 이라 쓰여 있던 정보가 ‘진화 중’ 이라 바뀌어 있었으며, 붉은 빛으로 깜빡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드디어! 드디어 진화하는구나!’
수 십 번은 열어보았던 라이의 정보창에 ‘진화가능’ 이라는 정보가 항상 눈에 밟혔던 이안이었다.
내심 진화는 언제 하나 기대하고 있었던 이안은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갑자기 왜 진화를 하는 거지? 진화조건이 대체 뭐인 거야?’
이안은 라이의 정보창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곧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잠재력! 잠재력이 100이 됐어!’
이동시간 역시 허투루 낭비할 리 없는 이안이 계속 중급훈련 스킬을 주기적으로 돌리고 있었고, 그 덕에 잠재력이 100까지 채워진 라이가 진화하게 된 것이었다.
이안은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진화하면 외형은 당연히 바뀌겠지? 덩치도 좀 커졌으면 좋겠는데… 타고 다닐 수 있게….’
싱글벙글하는 이안과는 별개로 라이의 진화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다.
라이의 주변으로 모여든 빛이 눈이 부실 정도로 강해지며, 온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라이의 외형이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오….’
이안은 아예 넋 놓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크르릉-!
새하얀 빛으로 둘러싸인 라이의 몸집은 이전의 두 배 가까이 커지고 나서야 성장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후.
서서히 빛이 걷히기 시작하며, 이안을 기분 좋게 하는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띠링-
[늑대, ‘라이’ 가 핏빛 갈기 늑대로 진화했습니다.]
핏빛 갈기 늑대.
새로 진화한 몬스터의 명칭마저 이안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이안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크으….”
그리고 메시지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소환수가 성공적으로 진화하여, ‘중급훈련’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중급훈련’ 스킬이 LV2로 상승하였습니다. (다음 레벨까지 45.7%)]
[최초로 소환수 진화를 성공시키셨습니다. 명성이 1000 증가하며, 조련술과 통솔력이 30 증가합니다.]
[최초로 핏빛 갈기 늑대를 소환하셨습니다. 명성이 1500 증가합니다.]
연속으로 떠오르는 시스템메시지!
하나하나가 다 버릴 것 없는 메시지 알림 이었지만 이안을 가장 기쁘게 하는 건 라이가 진화한 개체가 지금껏 본 적 없는 유니크한 몬스터라는 점이었다.
“으하하하하!!!”
이안은 광소를 터뜨렸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적색의 풍성한 갈기.
어지간한 범과 비교해도 꿇릴 것 없는 덩치까지.
이안은 감격에 겨워 라이를 끌어안았다.
“크흑, 라이야 형이 격하게 사랑한다.”
기뻐하는 이안을 보며 라이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그의 볼을 할짝할짝 핥으며 몸을 부볐다.
감격이 잦아들자, 이안은 라이의 정보창을 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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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 -
레벨 : 20
분류 : 맹수형
등급 : 희귀
성격 : 용맹한
진화가능
공격력 : 235
방어력 : 97
민첩성 : 215
지 능 : 135
생명력 : 790/790
고유능력
- 적에게 입힌 피해의 15%를 자신의 체력으로 흡수하며,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면, 입힌 피해의 50%를 체력으로 흡수한다.
- 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면, 적을 ‘출혈’ 상태로 만든다. 적이 출혈 상태가 되면, 초당 공격력의 20%에 해당하는 고정 피해를 10초간 입히게 된다.
신비로운 붉은 갈기를 가진 흉포한 늑대이다.
무척이나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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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의 정보창은 그야말로 놀람의 연속이었다.
공격력과 민첩성은 장비를 풀 세팅한 이안보다 높아졌으며, 체력흡수와 출혈 등의 고유능력까지 생긴 것이었다.
방어력이나 체력이 비교적 낮은 편이긴 했지만, 높은 공격력과 체력흡수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수준으로 판단되었다.
‘등급도 일반에서 희귀로 바뀌었고….’
등급이 올라 통솔력 소모가 더 커졌지만, 이정도 능력치라면 통솔력 소모가 대수가 아니었다.
최초진화 특전으로 통솔력이 30 늘어나서 통솔력 여유분이 부족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쓸 데 없이 레벨만 높은 필드의 몬스터들이 일반 아이템 이라면, 라이는 거의 유일등급 아이템 급으로 생각될 정도.
게다가….
‘아직도 진화가능이네?’
라이의 가능성이 더 열려있다는 말이었다.
‘한번 더 진화하면 유일등급이 되는 건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상상!
일반 등급일 때도 어지간한 희귀등급 필드몬스터를 찜 쪄 먹을 수준의 능력치를 지닌 라이였는데, 유일등급까지 진화한다면 동 레벨 영웅등급 필드몬스터와 대등한 수준의 전투력을 갖게 될지도 몰랐다.
‘소환술사는 사기직업이었어!!’
정확히 말하자면 소환술사라기 보다는 ‘테이밍마스터’ 라는 이안의 히든클래스가 사기였다.
물론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은 일반 늑대들 사이에서 라이를 발견해 낸 이안의 능력도 뛰어난 것이었지만,
테이밍 마스터만의 스킬인 ‘중급훈련’ 이 아니었다면 라이의 진화는 아직도 요원했을 것이 분명했다.
어찌됐든, 덕분에 소무르 협곡으로 향하는 이안의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졌다.
멀리 무리 지어 어슬렁거리는 코르쿤을 보며, 이안은 잠깐 코르쿤의 외관을 부러워했던 자신을 질책했다.
‘코르쿤 따위, 백만 트럭 갖다 줘도 필요 없다. 우리 라이가 갑이지. 그럼 그럼.’
이안은 라이에게 다가갔다.
“라이야, 나 태우고 움직일 수 있겠어?”
크르릉-
이안의 말에 라이는 올라타라는 듯, 자세를 낮춰서 앉았다.
이안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곧바로 라이의 등에 올라탔다.
“오오, 라이 달려!”
라이의 등에 올라타서 신난 이안은 ‘달려’를 외쳤지만, 곧바로 후회할 수 밖에 없었다.
순간적으로 튀어나가는 라이의 속도에 볼썽사나운 모양새로 바닥에 내동댕이 쳐 졌기 때문이었다.
라이는 미안한 듯, 다가와 엎어져 있는 이안의 팔을 핥았다.
“으… 안장이라도 있어야하나. 안장 같은 거 올리면 폼이 안 나는데.”
이안은 다시 라이의 등에 올라탔다.
한번 굴러 떨어졌다고 해서 포기할 이안이 아니었다.
그러기엔 이미, 라이를 탄 자신의 모습에 필요 이상의 나르시즘을 느껴버린 이안이었다.
“움직여 봐 라이. 좀 천천히.”
그 말에 라이는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했고, 이안은 천천히 라이의 등에 적응해 갔다.
“좋아, 좋아.”
라이는 이안을 등에 태운 채 천천히 속력을 높였고, 덕분에 이안은 소무르 협곡에 생각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