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라이의 성장 -3
‘잠재력! 잠재력에 비밀이 있었어!’
훈련 스킬로 인해 라이의 잠재력은 조금씩 상승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재력의 10의 자리수가 바뀔 때 마다 라이의 레벨업 당 능력치 상승폭도 오르고 있었다.
‘역시, 초급훈련 스킬이 사기스킬이었어!!’
카일란 커뮤니티에서 히든직업은, 일반직업보다 좋은 직업이라는 인식보다는, 좀 다르고 희귀한 직업 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딱히 히든직업을 가진 유저들이 일반 직업의 유저들보다 강하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이안은 줄곧 그것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었다.
히든직업을 얻었으면 그에 맞는 연구와 고민을 하고 최적화된 육성을 해야 하는데, 히든직업을 얻고도 일반 직업처럼 똑같이 키우니 평범해 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그리고 직접 히든직업을 키워보며, 이안은 자신의 짐작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중이었다.
‘모든 몬스터는 고유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이 잠재력에 따라서 레벨업 당 상승하는 능력치 폭이 정해지는 거였군.’
그런 잠재력이 올라간다는 것은, 몬스터의 클래스 자체가 높아진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잠재력을 올릴 수 있는 스킬이 바로 ‘훈련’ 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이안은 곧바로 스킬창을 열었다.
그리고 일전에 쓰지 않고 아껴두었던 스킬 포인트를 모조리 ‘초급훈련’에 투자했다.
통솔력 부족으로 곰을 잡을 수 없어 ‘초급 전술’에 투자해 버릴까 잠시 유혹이 있었지만, 그것을 참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모든 스킬포인트를 ‘초급 훈련’에 투자합니다.]
[‘초급 훈련’의 스킬레벨이 5가 되어 ‘중급 훈련’으로 강화됩니다.]
이안은 흡족한 표정으로 스킬 창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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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급 훈련 -
분류 - 엑티브 스킬
스킬레벨 - lv 0
숙련도 - 0%
재사용 대기 시간 - 25분
15분간 지정한 소환수를 ‘훈련’ 상태로 만듭니다.
‘훈련’ 상태의 소환수는 평소보다 명령에 대한 이해도가 증가하며, 명령을 학습합니다.
훈련을 거듭할수록 소환수의 ‘잠재력’이 증가합니다.
‘중급훈련’의 스킬레벨이 높아질수록 잠재력 증가폭도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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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기분이 좋아졌다.
정보창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분명 훈련시간당 잠재력 증가폭도 늘어났을 것이었고, 무엇보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10분이나 줄어들었다.
방금 획득한 ‘칠흑의 목걸이’ 에 붙어있는 재사용 대기시간 감소 옵션까지 적용되면, 20분에 한번 씩 쓸 수 있었다.
큰 호기심 하나를 해결한 이안은 흡족한 표정으로 수첩을 다시 품 속에 집어넣었다.
‘이제야 속이 좀 후련하네.’
묵은 변비를 해결한 사람처럼, 이안의 표정은 무척이나 해맑았다.
다시 사냥을 시작하기 전, 이안은 라이의 잠재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지금 잠재력이 94네. 곧 100 찍을 수 있겠어.’
십의단위가 바뀔 때마다 성장폭의 변화가 있었으니 아예 자릿수가 늘어나는 시점이 되면 어떤 변화가 있을지 이안은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젠장,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날려먹었잖아.”
시간을 확인한 이안은 투덜거리며 다시 활을 들었다.
지치지 않는 무한사냥도 재능이라면, 이안은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의 레벨도 20에 도달했다.
* * *
진성은 정해놓은 점심시간에 맞춰 접속을 해제하고, 간단하게 식빵과 우유를 섭취했다.
딸깍- 딸깍-
물론 이 시간에도 한손으로는 마우스를 쥐고 열심히 카일란에 대한 정보들을 검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지금쯤 아마 판검사나 의사 하고 있겠지?”
아무 의미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진성은 식빵을 한 입 베어 물면서 영상을 하나 보고 있었다.
이번 업데이트와 함께 공개된 신규직업 중 하나인 흑마법사의 전투영상이었다.
지금까지 커뮤니티에 올라온 흑마법사중 가장 고레벨인 18레벨의 유저였다.
“오, 해골바가지도 생각보다 귀엽네.”
열심히 마우스를 딸깍거리던 진성은, 우유를 다 마시자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캡슐에 앉을 시간이었다.
“이제 접속해볼까?”
그런데 그 때, 진성의 스마트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위잉- 위잉-
‘뭐지? 전화 올 데가 없는데….’
마치 슬라임 잡아서 드래곤 아머가 나올 확률만큼이나 희귀한 상황.
의외의 상황에 잠시 움찔 했던 진성은 발신번호를 확인했다.
‘이거 모르는 번혼데… 학자금 대출도 다 갚았고, 관리비는 저번에 납부했는데… 대체 어디서 전화가 온 거지?’
진성은 그냥 끊어버릴까 잠시 고민했지만, 너무 오랜만의 전화라 한번 받아보기로 했다.
“여보세요?”
[네, 진성학생 전화번호 맞죠?]
심지어 가늘고 고운 여성의 목소리.
진성은 약간의 설레임을 느꼈다.
“네 그런데요?”
[저 한국대학교 가상현실학과 과 사무실 조교 이지현입니다.]
“아 네, 조교님 안녕하세요.”
설레임은 잠시. 조교라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 진성은 긴장했다.
한학기가 지날 동안 어떤 교수도 자대 학생인 것을 모를 만큼 불성실한 학과생활을 했던 진성으로서는 캥기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네, 다른 게 아니구요 이진욱 교수님 아시죠?]
이진욱 교수라면 진성도 알고 있었다.
과 주임교수였기 때문.
“네. 알죠.”
[교수님께서 전화 좀 달라고 하시네요.]
“전화… 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네.]
“이유… 혹시 알 수 있을까요?”
[아마 진성학생 성적 때문인 거 같은데….]
진성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뭐지? 학사경고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학고인가? 아니야 그래도 가상현실의 이해는 출석은 다 했으니까 D는 주셨겠지.’
불안한 마음을 가다듬은 진성은 입을 열었다.
“저… 조교님.”
[네?]
“만약 교수님께 전화 안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 맞다. 진성학생 교수님께 전화 안 드리면 성적표 집으로 발송하신다고… 물론 여기서 집이 자취방은 아닌 거 아시죠?]
진성의 동공이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럴 순 없었다.
성적표가 집으로 가는 순간 터져 나올 아버지의 진노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20세 꽃다운 나이에 강제로 귀농 당할지도 몰라.’
귀농보다 더 무서운 것은 캡슐을 팔아버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다.
‘으….’
진성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전… 화 드려야겠네요.”
[호호, 잘 생각하셨어요. 다음 학기에 만나요 진성학생.]
뚝-
전화가 끊어지고 진성은 세상 다 산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오랜만에 받은 전화가 이런 커다란 정신적 데미지를 입힐 줄은 몰랐다.
“하… 그래 전화… 해야지. 이진욱 교수님 전화번호는 있나?”
다행히 번호는 있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때 저장해 뒀던 것 같았다.
“후….”
심호흡으로 불안한 마음을 달랜 진성은 곧바로 교수에게 전화했다.
[예, 이진욱입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박진성 입니다. 절 찾으셨다고….”
전화기 넘어로 칼칼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비오는 날 주문 밀려있는 중국집 철가방 아저씨 같은 목소리였다.
[박진성? 아 그래, 이번 신입생. 맞아 내가 전화하라고 했지.]
“예, 어쩐 일로 찾으셨는지….”
[그걸 지금 몰라서 묻나?]
‘모르는데요’ 라고 하고 싶은 욕구를 겨우 억제한 진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제 성적 때문인가요?”
[그래. 자네 집안에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아니면 여자 친구한테 차였다거나… 대체 왜 학과생활은 하나도 안하고 첫 학기부터 학사경고를 받는 건가?]
학사경고 라는 말에 진성은 다시 움찔 했다.
“학사…경고요? 저 F학점 두 개… 아닌가요?”
진성이 다니는 한국대학교는 한 학기에 F학점이 세 개가 나오면 학사경고였다. 학사경고가 두 번이면 제적이었고.
학점이 낮은 것은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진성이 학사경고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여기 있었다.
[그래. 자네 지금까지 F학점이 두 개더군. 그래서 지금 내가 세 번째 F학점을 줄까 하는데 말이야.]
명백한 협박!
진성의 두 손이 부르르 떨렸다.
‘제게 원하시는 게 뭡니까 교수님.’ 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진성이 그 정도로 간이 큰 학생은 아니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될 까요 교수님….”
[일단 대체 왜 학과생활을 등한시 하는지 이유나 좀 들어보지.]
사실 고등학교도 아니고 대학교에서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교수가 직접 연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한국대학교에 가상현실과는 이번에 신설된 학과였다.
특히 이진욱 교수는 학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남달라서 진성의 불성실함을 용납할 수 없었다.
한편 진성은 뭐라 대답해야할지 잔머리를 열심히 굴리고 있었다.
‘게임하느라 어쩔 수 없었어요… 라고 하면 미친 놈 소리 들을까?’
일단 진성은 슬쩍 이진욱 교수를 떠 보았다.
“교수님 제가 이 가상현실과에 들어온 이유는 말이죠.”
[말해보게.]
“제가 ‘가상현실’ 에 대해 예전부터 적지 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대해 동경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가상현실’ 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카일란’ 이라는 게임 때문 아닙니까?”
[사실이지.]
진성은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아무래도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진욱 교수는 눈치가 빨랐다.
그는 곧바로 진성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챘다.
[그래서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느라고 학교 생활을 잘 못했다…?]
“한낱 게임을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교수님. 카일란에 구현되어있는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인 가상현실 세계를 좀 더 가까이서 연구하고자….”
진성의 궁색한 변명에 이진욱이 일침을 날렸다.
[그래서 레벨이 몇인데?]
“…!!”
[레벨 몇이냐니까?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 한국 서버 랭킹 안에는 들어 있겠지?]
순간 진성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온 몸이 굳어버리는 것을 느꼈다.
왠지 억울해서 눈물도 찔끔 나올 것 같았다.
‘초기화만 안했더라면…!!’
처음으로 캐릭터 초기화가 후회되었다.
초기화가 아니었다면 여기서 당당하게 ‘저 랭커입니다’ 라고 말했을 터였다.
“저… 그게요… 교수님.”
[왜 말을 못하나?]
하지만 뭐라고 변명해야할지 도무지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자기 자신에게 묻고 싶었다.
‘진성아 왜 말을 못하니….’
그래서 결국 거짓말보다 더 거짓말 같은 사실을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제가 원래 93레벨 이었는데… 얼마 전에 초기화를 해서… 지금은 20…인데요….”
뒤로 갈수록 진성의 말꼬리는 흐려졌고,
그 말에 당연히 교수는 어처구니가 없을 수 밖에 없었다.
[뭐라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지만 진성이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진짜에요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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