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라이의 성장 -2
한참을 미친 듯이 사냥만 하던 이안은, 다음 사냥감을 향해 화살을 겨누던 도중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뭐지? 저 곰탱이는 왜 좀 크기가 큰 거 같지?’
그리고 안력을 집중해서 다시 확인해 보니, ‘칠흑의 반달곰’ 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올레!’
‘칠흑의 반달곰’은 희귀등급도 아닌, 무려 유일 등급의 보기 힘든 몬스터였다.
다른 유일등급 몬스터들과 달리 주변의 일반 반달곰들과 크게 생김새가 다르지 않아서, 잘 발견되지 않는 몬스터이기도 했다.
이안은 일단 포획이 가능한지부터 확인했다.
체력을 빼고 친밀도를 올리기 전이더라도, 통솔력이 부족하지 않으면 포획 스킬이 발동은 하기 때문이었다.
“포획!”
그리고 곧 실망스런 메시지가 울려퍼졌다.
[통솔력이 부족해 더 이상 포획할 수 없습니다.]
혹시나 해서 소환수 목록을 확인했지만, 일전에 잡았던 반달곰은 이미 방생한지 오래.
단지 칠흑의 반달곰의 몬스터 등급과 레벨이 일반 반달곰보다 높았기 때문에 포획이 안 되는 것이었다.
이안은 아까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에이, 이번에 마을 다녀올 땐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봉인마법서부터 두둑하게 챙긴다.’
이안은 내려뜨렸던 활을 다시 들어 칠흑의 반달곰을 겨누었다.
피이잉-!
이안의 공격을 신호탄삼아, 라이가 곧바로 곰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아앙-!
칠흑의 반달곰은 무려 38레벨의 유일등급 몬스터였지만, 이안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라이가 이제 거의 내 수준으로 잘 싸워주는 마당에 38레벨 정도야….’
그리고 이안의 생각대로, 칠흑의 반달곰은 그리 힘든 상대가 아니었다.
쿵-
10분 정도 치열한 공방 끝에 반달곰은 거구를 힘없이 늘어뜨리며 회색 빛으로 변해갔다.
[칠흑의 반달곰을 처치했습니다. 1045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동시에 라이의 몸이 하얗게 빛났다.
[소환수 ‘라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20레벨이 되었습니다.]
반달곰을 처치함과 동시에 라이의 레벨도 오르자 이안은 어께춤이라도 추고싶었다.
라이의 레벨업 메시지는 거의 이안 본인의 레벨업 수준으로 행복한 알림이었다.
게다가 20레벨은 카일란에서 꽤 의미있는 레벨이었다.
유저 캐릭터의 경우 20랩이 되는 순간 길드가입, 인스턴트던전 입장, 제국퀘스트 등, 오픈되는 컨텐츠가 많았다. 생 초보 라는 딱지를 떼는 레벨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안에게야 20레벨은 우스웠지만, 게임에 재능이 없고, 잘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 20레벨 찍는데만 2달씩 걸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이템이나 한번 확인해볼까?’
초기화 이후 처음으로 사냥한 유일등급의 몬스터였다.
유일등급 몬스터는 제법 괜찮은 아이템을 드랍하기도 하니, 이안도 약간의 기대는 되었다.
[‘칠흑의 반달곰’ 으로부터 75골드를 획득합니다.]
[‘반달곰의 고기’를 획득합니다.]
[‘곰 사냥꾼의 전투망치’를 획득합니다.]
[‘칠흑의 목걸이’를 획득합니다.]
‘오….’
곰 사냥꾼의 전투망치는 이안도 알고 있던 아이템이었고, 썩 좋은 물건도 아니었다.
이안의 관심을 끈 것은 ‘칠흑의 목걸이’ 였다.
그는 곧바로 식별 스크롤을 사용했다.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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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흑의 목걸이 -
분류 - 목걸이
등급 - 유일
착용제한 - 지능 35 이상
내구도 - 124/124
옵션 - 생명력 + 15%
모든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 -20%
유래를 알 수 없는 목걸이이다.
심연의 어두움을 담고 있는 흑요석을 세공하여 만든 목걸이로, 무척이나 귀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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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지금 착용하고 있는 목걸이도 경매장에서 구입한 좋은 아이템이었으나, 이 칠흑의 목걸이가 더 괜찮아 보였다.
‘능력치 열 개 정도 포기하고 생명력이랑 재사용 대기시간에서 이득을 볼 수 있다면… 이편이 나은 것 같네.’
이안의 스킬 중에 지금 재사용 대기시간이 있는 스킬은 ‘초급훈련’ 하나 뿐이었다.
하지만 초급훈련을 더 자주 사용할 수 있다는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옵션이라 생각했다.
‘초기화 이후 첫 득템이라 해야하나.’
이안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아이템은 이정도면 만족스럽고… 어디, 라이 능력치가 얼마나 올랐는지 한번 볼까?”
이안은 품 속에서 왠 수첩 하나를 꺼내었다.
그리고 그 수첩 안에는 이안만 알아볼 수 있는 숫자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공격력이 4 올랐고, 방어력은 2, 순발력은….”
이안이 수첩에 적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라이의 능력치였다.
자타 공인 ‘게임연구가’ 인 이안은 라이가 레벨업 할 때 마다 그 능력치를 꼼꼼히 기록해서 비교해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 이제 레벨 20이 되었으니 그동안 미뤄왔던 분석 작업을 한번 해 볼까?’
일반적인 유저들이 본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내두를 만한 광경.
하지만 이런 연구와 분석이야말로 이안이 가장 즐거워하는 분야였다.
“라이, 앉아서 잠깐 쉬어라. 이거나 뜯어먹고 있어,”
이안은 인벤토리에서 반달곰을 잡아 얻은 고기를 라이에게 던져주었다.
크릉- 크릉-
라이는 기분이 좋은지, 마치 강아지처럼 꼬리를 살랑거리며 이안이 던져준 고기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 사이 이안은 자신의 수첩에 집중했다.
이안이 분석을 시작한지 5분 정도가 지났을까, 갑자기 그의 두 눈이 커졌다.
‘뭐지 이거? 원래 몬스터의 레벨 당 능력치 성장폭이 갈수록 커지는 건가?’
놀랍게도 라이는 레벨이 높아질수록 레벨업 시 획득하는 능력치의 폭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안이 대충 게임을 플레이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절대 찾아내지 못했을 요소였다.
그는 라이의 능력치 상승폭이 계속 증가하는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했고, 계속 수첩에 적어놓은 수치들을 비교분석했다.
그리고 기록을 살핀 결과 항상 증가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증가하지 않은 구간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안은 혼란스러워졌다.
‘으…, 대체 공식이 뭘까? 이놈은 능력치가 왜 들쑥날쑥 오를까? 분명히 밑도 끝도 없는 랜덤수치로 해놓지는 않았을 건데….’
이미 밝혀진 사실이었지만, 유저 캐릭터의 경우에는 레벨업 당 총 능력치 상승이 5~6으로 항상 고정되어 있었다. 그 능력치의 배분은 직업, 유저의 플레이 성향 에 따라 달라지지만 상승수치의 평균을 내보면 결국 5.5에 수렴했던 것.
전직하고 나면 직업의 고유 스킬에 따라 레벨업당 추가로 주어지는 능력치가 있었지만, 그 부분을 계산해서 제외하면 항상 5.5였다.
그래서 이안은 몬스터도 그럴 것이라 짐작하고 라이의 능력치 성장폭이 궁금해서 기록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예상과 달리 라이의 능력치 성장률은 들쑥날쑥했다.
‘이거 내가 찾아내고야 만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공격력 방어력 민첩성 등의 주요 능력치만 비교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자, 이안은 세부능력치가 어떻게 상승했는지 까지 비교하기 시작했다.
“흐으음….”
이안이 앉아서 수첩을 들여다보기 시작한지 어느새 30분이 지났고, 고기를 다 뜯어먹은 라이는 이안의 옆에 엎드려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때, 뭔가를 발견한 이안이 벌떡 일어났다.
‘잠재력! 잠재력에 비밀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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