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숨겨진 직업 -1
진성이 10레벨을 달성하는 데는 한 시간 정도가 더 걸렸다.
사냥시간이 문제라기보다는, 유저가 많아서 그런지 여우의 개체수가 너무 적어서, 찾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자, 이제 2일 동안 뭐하지.”
일이 너무 잘 풀려도 탈이었다.
하지만, 진성은 그렇다고 해서 허송세월을 보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스킬 숙련도를 올릴까?”
열 마리의 여우를 사냥하는 동안, 초기화 이전에 가지고 있던 패시브 스킬들 중 몇 가지를 다시 습득했다.
지금 이안의 스킬 목록에 등록되어 있는 스킬은 총 세 개.
[약점포착], [치명타 강화], [속사]
‘숙련도를 올려놓으면 쓸 데야 있긴 하겠지만… 내가 다시 궁사를 할 것도 아닌데….’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뭔가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낼만한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그 때, 이안의 머릿속을 스치는 괜찮은 생각이 하나 있었다.
‘트럼본 마을에도 수련관이 있었지?’
수련관은 각종 전투능력을 단련할 수 있도록 무술교관NPC가 배치되어있는 훈련장이었다.
훈련장에서 일정 시간 이상 훈련하면 훈련한 방식과 시간에 따라 보너스 능력치도 획득할 수 있다.
하지만 훈련으로 스텟을 얻는 것은 무지막지한 노가다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레벨 올리는 것이 어려운 고레벨 유저들이 주로 수련관 노가다를 하곤 했다.
1레벨이라도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사냥할수록 유리한 이안이었기에, 그에게는 능력치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마음을 정한 이안은 빠르게 움직였다.
‘시간은 금이지.’
칼림푸스 언덕에서 나와 금방 트럼본에 도착한 이안은, 능숙하게 수련관을 찾았다.
초기화 전에 수십 번 이상 들낙거렸던 곳이었기에, 위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수련관을 이용하고 싶습니다.”
이안의 말에 수련관 관리인NPC는 그의 몸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보아하니 ‘비기너’ 로군.”
“그렇습니다.”
“수련을 하고자 하는 열정은 무척이나 바람직하지만, 비기너는 전직을 해서 모험을 하는 게 더 빨리 강해지는 길일세.”
수련관 NPC는 친절하게 이안의 진로(?)에 관한 조언을 해 줬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유저들에게나 도움이 되는 조언이었다.
“저는 세상에 나가기 전에 좀 더 확실한 준비를 하고 싶습니다.”
이안은 NPC와의 대화가 귀찮았지만,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빨리 입장이나 시켜주지 오지랖은….’
맘에 있는 소리를 그대로 내뱉었다간, NPC와의 친밀도가 하락할 것이고, 카일란에서 그것은 곳 불이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흠,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군. 알았네. 입장시켜주지. 비기너는 무료로 수련관을 이용할 수 있다네.”
“감사합니다.”
수련관에 들어선 이안은 먼저 수련용 목검을 손에 쥐었다.
‘소환술사를 플레이하는데 가장 중요한 능력치가 뭔지 아직 모르니까… 닥치는 대로 수련한다…!’
그야말로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의 최선의 수련법 이기도 했다.
이안은 초기화 전에 익혔던 동작들을 무한정 반복하기 시작했다.
끝없는 노가다의 시작이었다.
[반복훈련으로 인해 근력이 증가했습니다. 힘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반복훈련으로 인해 유연성이 증가했습니다. 민첩성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검을 내려치는 같은 동작의 끝없는 반복으로 힘과 민첩 능력치가 조금씩 상승하고 나면….
[한계치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버텨 내었습니다. 체력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오랜 시간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능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수련관의 교관들에게 얻어맞으면서 체력을 기르고, 명상을 통해 지능 스텟을 올렸다.
정말 시간이 남아돌 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무식한 수련을, 이안은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지켜보던 NPC들은 탄복했다.
“진정한 강함을 추구하는 모험가로구나!”
“이제껏 이렇게 독한 수련생은 처음이다!”
이안의 집념은 대단했다.
능력치가 한 개 오를 때 마다 없던 힘도 샘솟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이안은 자신이 설계해 놓은 최상의 레벨 업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끝없는 노가다를 감행했다.
그리고 드디어 대규모 업데이트 날이 다가왔다.
수련관에 앉아서 명상에 잠겨있던 이안은 들려오는 시스템 메시지에 눈을 떴다.
[오랜 시간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능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그는 시간을 확인했다.
‘서버 점검 까지는 4시간 정도가 남았군.’
업데이트를 위한 서버점검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4시간이면 수련으로 능력치 1개도 올리기 빠듯한 시간이었다. 수련을 하면 할수록 능력치가 오르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늘어난 탓이었다.
‘업데이트에 걸리는 시간이 6시간 정도라 했으니, 업데이트 후 서버 오픈까지 총 10시간이 남아있다.’
이안은 계획을 세웠다.
‘일단 접속 종료해서 며칠 동안 먹을 수 있는 장을 봐야겠어. 오는 길에 은행에 들러서 관리비 납부도 하고, 부모님께 안부전화도 한번 드리고… 그리고 8시간정도 푹 자고 일어나야지.’
최대한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오랜 시간 게임을 하기 위한 체력 안배와 동선 단축은 필수였다.
이안은 수련관에서 나와 게임을 종료했다.
잠도 자지 않고 수련을 한 탓에, 눈은 퀭했고 피부는 푸석푸석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만족스런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홍채인식 완료. ‘이안’님 카일란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서버가 열리자 마자 이안은 칼같이 게임에 접속했다.
‘그 어느 때 보다 컨디션은 최상이다!’
새 하얀 빛 무리가 사라지며, 이안의 눈 앞에 마법사 길드의 현판이 보였다.
단 1초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이안이, 직업길드가 모여 있는 장소까지 와서 로그아웃을 했던 것이었다.
이안은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곧 원하는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소환술사 길드! 찾았다!’
이안은 망설임 없이 길드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소환술사 길드 안에는 한명의 유저도 없었다. 이안이 최초였던 것이다.
이안은 길드 건물 안쪽에 있는 전직NPC를 찾았다.
모든 직업 길드의 건물 구조는 비슷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안은 곧바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이름은 카인이었다.
“소환술사로 전직하고 싶습니다.”
카인은 이안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대답했다.
“흠, 소환술사로의 길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지. 사나운 몬스터를 길들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힘든 만큼 멋진 직업이라 생각합니다.”
이안의 아부에 카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고 말고.”
그는 이안의 눈을 응시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좋아, 자네는 전직을 위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군! 마지막으로 묻겠네, 정말 소환술사로 전직하겠는가?”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물론입니다.”
‘지금쯤 건네주면 되겠지?’
말을 하면서, 이안은 인벤토리에서 뮤란의 크리스탈을 꺼내었다.
그리고 이안의 예상대로, 크리스탈을 발견한 카인의 동공이 살짝 확대되었다.
“아니… 이것은…!”
“이 물건을 알고 계십니까?”
이안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드디어 히든직업을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대륙의 영웅 뮤란이 남긴 크리스탈이 아닌가!”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자네는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이었군!”
이안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서, 히든직업을 내 놓아라!’
그리고 카인은 이안이 듣고싶었던 말을 꺼내었다.
“그렇다면 혹시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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