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캐릭터 초기화 -1
가볍게 유현을 설득(?) 한 진성은 무려 세 시간 이라는 기록적으로 짧은 시간 만에 캡슐에서 나와 책상에 앉았다.
물론 공부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자 이제 계획을 한번 짜볼까?”
마음은 확실히 굳혔으니 이제 마스터 플랜을 짤 시간이었다.
진성의 게임인생에 ‘되는대로’ 라는 말은 없었다.
진성은 어떤 게임을 하던, 그 게임의 시스템에 대해 연구해서 가장 효율적이고 최적화된 자신만의 방식을 찾는 것을 좋아했다.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건… 역시 정보수집이겠지?”
진성은 컴퓨터를 켰다.
그가 처음으로 찾은 것은 홍보영상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규모 업데이트와 함께 새로 만들어지는 신규직업의 트레일러 영상이었다.
진성은 암살자의 플레이 영상부터 눌러봤다.
“음… 역시 은신에 최적화 되어있고… 말 그대로 자객인거 같은데….”
플레이 영상은 충분히 화려하고 멋있기는 했지만, 뭔가 끌리지 않았다.
영상 안의 암살자는 빠른 몸놀림과 습격으로 증폭된 데미지를 짧은 시간에 몰아넣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와, 한방 데미지는 진짜 세긴 하네. 스킬 다 쓰고 나서 현자타임이 한번 오는 거 같긴 하지만….’
진성은 계속 영상을 집중해서 보았다.
‘근데 왜 별로 끌리지가 않지?’
그리고 진성은, 그 이유를 곧 찾아 내었다.
“궁사랑 겹치는 부분이 좀 있네.”
민첩 위주의 스테이터스로 구성된 직업 특성상, 액티브 스킬은 몰라도 패시브나 유틸성 스킬들은 궁사와 닮은 부분이 많았다.
게다가 트랩설치 같이 보조스킬들도 진성이 궁사를 플레이할 때 자주 쓰던 스킬들이었다.
“암살자는 패스.”
기왕에 새로 시작하는 거 완벽히 다른 클래스를 경험해보고 싶었기에, 암살자는 망설임 없이 후보에서 제외시켰다.
진성은 곧바로 다음 영상을 클릭했다.
흑마법사의 트레일러 영상이었다.
잠시간 가만히 영상에 집중해있던 진성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번엔 네크로멘서네.”
수많은 언데드를 부릴 수 있는 지휘관과 같은 느낌의 클래스.
진성은 어릴 적 했던 pc 게임에서 이런 느낌의 네크로멘서를 즐겼던 경험이 있었다.
흑마법사는 진성이 알고 있는 그 네크로멘서 라는 클래스와 많이 닮아 있었다.
십 수 마리의 해골들이 유저의 지휘에 따라 전투를 펼치고 있는 영상을 보며, 진성은 암살자를 볼 때와는 다르게 흥미가 동하는 것을 느꼈다.
마치 하나의 파티를 운영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솔로플레이 좋아하는 나 같은 놈이 하기에 괜찮아 보이긴 하는데….”
잠시 고민하던 진성은 일단 결정을 보류하고 다음 영상으로 시선을 옮겼다.
괜찮아 보이긴 했지만, 아직 보지 못한 트레일러 영상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은 소환술사였다.
“소환술사면, 정령술사 같은 느낌인가?”
영상을 보던 진성의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오, 정해진 몬스터를 소환하는 게 아니라 필드의 몬스터를 테이밍 해서 계약하는 방식이네?”
영상속의 유저는(아마 GM이겠지만) 저랩 존의 몇 안 되는 유일 등급 몬스터로 유명한 붉은늑대를 테이밍하고 있었다.
“테이밍 가능한 몬스터의 등급 제한은 없는 건가? 영웅이나 전설등급 몬스터도 테이밍이 가능한가?”
당연히 들 수 밖에 없는 의문.
그리고 진성의 중얼거림을 듣기라도 했는지, 곧 영상에서 자막으로 설명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저는 모든 등급의 몬스터를 테이밍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다만 퀘스트 도중 등장하는 이벤트성 몬스터, 인스턴트 던전 안에 존재하는 보스몬스터는 테이밍할 수 없습니다.]
진성의 입에서 나지막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오….”
[하지만 등급이 올라갈수록 테이밍의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갑니다. 영웅등급 이상의 몬스터 부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난이도라고 보셔도 좋습니다.]
진성은 피식 웃었다.
“불가능은 무슨. 전설등급 몬스터 정도는 끌고 다녀야 간지가 나지.”
카일란에 등장하는 모든 몬스터와 아이템에는 등급이 있었다.
가장 흔히 출몰하고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하는 ‘일반’ 등급부터 시작해서, 희귀, 유일, 영웅등급 까지가 현재 대부분의 유저들이 알고 있는 몬스터와 아이템의 등급체계였고, 본 사람은 몇 없었지만, 그 위에 전설등급도 존재한다는 정보가 있었다.
카일란은 아직 출시한지 반년도 되지 않은 신생게임인지라, 알려지지 않은 정보가 훨씬 더 많았고, 진성은 전설등급 위에도 알려지지 않은 등급이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영상은 보면 볼수록 흥미진진했다.
흑마법사나 암살자에 비해 전투 자체의 화려한 맛은 좀 떨어지는 편이었으나, 컨텐츠의 구성 자체가 다른 직업들에 비해 다채로왔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소환수로 쓸 수 있는 몬스터가 무척이나 방대하다는 점이었으며, 같은 몬스터라도 유저가 성장시키는 방식에 따라 능력치가 달라진다는 점도 흥미를 끌었다.
영상이 끝나자마자 진성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이거다!”
진성은 마음을 굳혔다.
소환술사라는 직업은 자신의 게임성향과 너무도 잘 맞아떨어졌다.
진성이 게임을 하는 방식은 조금 특이했다.
그는 아이템 하나, 스킬 하나를 고를 때도 아무렇게나 고르지 않았다. 게임의 모든 요소들을 분석하고 최고 효율을 찾아내는 것에 쾌감을 느꼈으며, 작은 정보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항상 메모해서 정리해 두었다.
이것이 그가 2개월이나 게임을 늦게 시작하고도 상위 랭킹에 랭크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다.
일례를 들자면, 일전에는 방어력과 공격력이 어떤 식으로 상호 작용하는지, 공식을 구하기 위해 같은 몬스터를 수천 대 때려 보면서 모든 데미지를 분석한 적도 있었다.
그런 진성이 보기에 소환술사는 매력이 넘치는 직업이었다.
카일란에 존재하는 셀 수 없이 많은 몬스터들을 연구할 생각에 벌써부터 몸이 근질거렸다.
소환술사로 방향을 정한 진성은 우선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소환술사에 관한 정보들을 모조리 섭렵하기 시작했다.
“업데이트 날까지는 정확히 일주일이 남아있고….”
진성은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보통 전직가능 레벨 달성하는데 1~2일 걸리지만 중간에 시험도 하루 끼어있고 초기화된 스텟에 적응할 시간도 필요하니 3일 정도는 빼놓는 게 좋겠고…?”
진성은 업데이트날짜가 되기 전 레벨 10을 만들어놓고 업데이트가 되자마자 전직 NPC를 찾아갈 계획이었다.
“그럼 4일정도가 남는데… 지금부터 주말까지 일단 미친 듯이 파밍만 하면 되나?”
계획은 얼추 세워졌다.
캐릭터 초기화를 하고 나면 한동안 게임에서의 수입이 끊길 테니, 그 전에 바짝 벌어놔야 한다.
냉장고를 열어 대충 허기진 배를 채운 진성은 곧바로 다시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골드 노가다의 시작이었다.
‘초기화 전에 딱 5백만 더 벌어보자.’
일 분 일 초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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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캐릭터 초기화 -2
그리고 3일 뒤.
“으아! 드디어 해방이다!”
무사히 1학기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돌아온 진성은 곧바로 게임에 접속하여 경매장을 확인했다.
“얼마나 팔렸으려나…?”
[오우거 워리어의 흉갑 - 220만 골드]
[나가퀸의 서리목걸이 - 153만 골드]
[천둥새의 깃털 - 12만 골드]
:
:
[심연의 사파이어 반지 - 135만 골드]
“좋아, 좋아. 한두 개 제외하면 다 팔렸군.”
이안은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어디, 정산을 한번 해 볼까?”
팔린 물품을 전부 정산한 뒤 인벤토리에 쌓여있는 골드를 본 이안은 입이 귀에 걸렸다.
“예상보다도 더 많이 벌었네. 이정도면 앞으로 한동안은 걱정 없겠는데?”
이안의 인벤토리에 찍혀있는 골드는 1800만 골드 정도였다.
물론 1900만 골드를 3일 만에 벌어들인 것은 아니었다. 기존에 창고에 쌓아뒀던 아이템들을 팔아 처분한 것이 800만 골드 정도. 원래 보유하고 있던 골드가 500만 골드 정도에 3일 동안 벌어들인 골드 및 아이템이 나머지 600만 골드를 차지했다.
지금 당장 카일란 공식 환전 시스템을 통해 현금으로 환전해도 수수료 떼고 3500만원에 육박하는 거액!
유저를 통해 직거래로 판매하면 수수료까지 아낄 수 있었으니, 실 수령액이 4천만원에 가까워질 것이었다.
“아직 생활비는 넉넉하니까, 한 천 만원 정도만 환전해 놔야겠어.”
골드는 많이 남겨놓을수록 좋았다.
처음 궁사를 키울 때야 빈곤한 아이템을 들고 근성으로 사냥했지만, 초기화 이후에도 그럴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매장을 이용해서 필요한 물건은 아낌없이 사서 쓸 생각이었다.
“이제, 캐릭터 초기화만 남은 건가…?”
이미 모든 준비는 다 끝내놓은 상태였지만, 막상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니 기분이 싱숭생숭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카일란에서 케릭터를 초기화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시스템 안에서 지원하는 ‘계정초기화’를 통해 초기화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환생의 비약’ 이라는 아이템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보통 캐릭터를 초기화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레벨이 낮은 초보 유저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보통 이런 초보 유저들이 캐릭터를 초기화 하고자 하는 이유로는, ‘닉네임을 바꾸고 싶어서’ 또는 ‘전직을 했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서’ 와 같은 이유가 가장 많았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시스템에서 지원하는 계정초기화를 이용했다.
환생의 비약은 초보자들이 구매하기엔 너무 가격이 비쌌기 때문이었다.
이 경우 레벨과 능력치는 물론, 소지하고 있던 아이템까지 전부 초기화가 되며, 튜토리얼 부터 완전히 게임을 다시 시작해야하는 번거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 귀찮더라도 돈이 없는 초보들은 자신의 아이템과 골드를 지인에게 맡겨놓고 계정 초기화를 이용하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한데, 초기화하는 유저의 대부분이 초보라고 해서, 이안과 같은 고랩 유저가 캐릭터를 초기화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가장 많은 케이스는 쌓여있는 악명을 세탁하고자하는 유저들이었다.
카일란에는 명성이라는 시스템이 있었다.
유저를 PK(Player Kill)하거나 게임 내에서 악업을 쌓으면 이 명성이 깎이는데, 명성이 0 이하로 내려가면 명성 대신 악명이 쌓이게 된다.
한번 쌓은 악명은 다시 명성을 쌓더라도 사라지지 않으며, 악명이 높은 유저는 카일란 내의 대부분의 NPC로부터 적대 받으며, 다른 유저들에게도 악명이 노출되기 때문에, 이는 게임에서 엄청난 페널티였다.
보통 PK를 통해 다른 유저의 아이템을 강탈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자본이 어느 정도 모인 뒤 쌓인 악명을 세탁하기 위해 초기화를 선택하는데, 이들은 초보 유저들과 달리 일구어놓은 것이 많은 이들이었기 때문에 계정초기화를 이용하지 않고, ‘환생의 비약’을 이용했다.
환생의 비약의 장점은 우선 캐릭터를 초기화시키더라도 레벨과 스테이터스를 제외한 다른 부분들은 유지시켜 준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운이 좋으면 랜덤으로 소량의 스테이터스를 보너스로 받기도 하니, 고랩의 유저들은 아무리 비싸더라도 비약을 사용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그리고 환생의 비약에도 네 가지 등급이 존재했는데, 가장 낮은 등급의 비약이 20만 골드 정도. 가장 비싼 등급의 비약은 500만 골드 정도에 거래되고 있었다.
등급이 높을수록 스테이터스 보너스가 많아질 확률이 높다고 하니,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일전에 커뮤니티에 어떤 돈 많은 유저가 거금을 투자해서 상급의 비약을 다섯 번 연속해서 마셨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첫 번째 초기화시 받았던 보너스 포인트가 5개 였고, 그 뒤로 연거푸 마신 네 번의 경우 아무런 포인트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밝힌 사람은 없었지만, 비약으로 얻을 수 있는 보너스 스텟이, 초기화하기 전 유저의 레벨이나 스텟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었다.
“이제 비약을 사러 가볼까…?”
물론 돈이 부족하지도 않은 이안이 계정 초기화를 누를 일은 없었다.
이안은 비약을 사기 위해 경매장에서 나와 걸음을 옮겼다.
낮은 등급이야 경매장에서도 구할 수 있었지만, 최상급의 비약은 경매장에서 구입할 수 없었다.
널리 알려진 정보는 아니었지만, 이안은 최상급 비약을 구할 수 있는 경로를 알고 있었다.
* * *
말리크 대륙 남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트럼본.
트럼본은 남부대륙 뿐 아니라, 가상현실게임 '카일란'을 통틀어도 가장 번화한 도시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카일란에서 케릭터를 생성하면 처음 연고지로 고를 수 있는 세 곳의 도시 중 하나인데다, 지리적 요건도 무척이나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트럼본의 지하에는 남부에서 가장 큰 암시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처음 암시장에 발을 들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특유의 분위기에 멈칫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어두침침한 곳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바글바글했으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이질적인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나마 소란스러운 곳을 한 군데 꼽자면…
암시장 귀퉁이의 공터.
무슨 일인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한 노인을 둘러싸고 서서 뭔가를 구경하고 있었고, 노인의 앞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 사내가 진열되어있는 물품들을 심각한 눈빛으로 하나하나 관찰하고 있었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이윽고 사내는 진열되어있는 물건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검 자루 부분의 색이 옥빛으로 반짝이는 특이한 물건이었다.
“한번 고르고 나면 바꿀 수 없습니다. 물론 알고 계시겠지요?”
노인의 물음에 사내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곧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걸로 하겠습니다.”
노인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모든 물건의 가격은 전부 10만 골드입니다.”
사내는 떨리는 손으로 노인에게 10만 골드를 넘겨주었다.
착용하고 있는 장비나 그의 태도를 봤을 때, 그에게 10만골드는 제법 큰 돈임이 분명했다.
노인은 곧바로 그에게 검을 넘겨주었고, 그는 검을 받자마자 식별 스크롤을 꺼내어 들었다.
주변의 구경꾼들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감정!”
사내는 무척이나 상기된 표정으로 허공에 떠오른 검을 응시했다.
후우웅-
새하얀 빛이 그의 검을 감싸더니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허공에 그가 구매한 아이템의 정보가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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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맹한 고블린 전사의 장검 -
분류 - 한손 검
등급 - 희귀
착용제한 - 힘 50 이상
공격력 - 125~130
내구도 - 75/75
옵션 - 힘 +5
민첩 +5
용맹한 고블린 전사가 애용하던 장검이다.
품질은 좋은 편이나, 어느 대장간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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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하던 사람들의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대략적인 아이템 정보로 보아, 20레벨 정도의 초보가 사용할 만한 물건이었고, 심지어 좋은 옵션이 붙어있지도 않았다.
정말 많이 쳐 줘 봐야 5천골드 정도에 팔릴 싸구려 무기.
물건의 주인인 사내는, 얼굴이 빨개진 채, 장검을 인벤토리에 쑤셔 넣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모르긴 몰라도 몇 날 몇 일 사냥해서 모은 10만 골드임이 분명할 것이었다.
그 모양을 보던 노인은 피식 웃었다.
“또, 도전하고 싶은 모험가 있으십니까?”
공터노인의 이름은 플뢰르.
그는 카일란 공식 커뮤니티에서도 유명한 트럼본의 명물로, 유저들 사이에서 겜블노인 이라고 불리는 NPC였다.
그리고 구경꾼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조용히 서있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바로 진성. 아니, 이안이었다.
이안은 암시장 골목 끝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겜블 끝날 시간이 됐는데….”
고블린전사의 장검을 수백 배의 가격에 구매해 간 남자 이후에도 한 두 차례 겜블이 더 진행 되었다.
겜블에 성공한 유저는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마지막 유저가 본전을 건진 것이 가장 나은 성적.
이윽고 플뢰르는 좌판을 접고 어디론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안은 그 뒤를 따라갔다.
어슬렁어슬렁 걷던 플뢰르는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멈춰 섰고, 이안은 그런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안과 눈이 마주친 플뢰르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요?”
이안은 곧바로 대답했다.
"환생의 비약을 구하러 왔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플뢰르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리고 말투 또한 미묘하게 달라졌다.
“제대로 찾아오셨어. 운이 좋으시군. 마침 물건이 들어와 있거든.”
이안은 노인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운 비단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호리병을 노인으로부터 건네받을 수 있었다.
“가격은 대충 알고 찾아오신 거겠지?”
“물론입니다.”
“520만골드 주시게.”
살짝 비싼 가격이긴 했지만, 이안은 개의치 않고 곧바로 골드를 넘겼다.
“여기 있습니다.”
“시원시원해서 좋구먼.”
노인, 플뢰르는 씨익 웃었다.
이안은 비약을 받아들고 그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암시장을 빠져나왔다.
사실 곧장 비약을 마셔도 상관은 없었지만, 암시장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괜히 주의를 끌기 싫은 이안이었다.
사람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공터 바위에 걸터앉은 이안은 호리병을 꺼내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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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생수 -
분류 - 잡화
등급 - 영웅
고대의 연금술을 통해 만들어진 비약.
비약을 마시면 캐릭터가 초기화 됩니다.
레벨을 비롯한 모든 능력치를 초기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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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들에게는 사약이나 다름없는 정보창의 설명을 읽었지만, 이안은 거침이 없었다.
이안은, 병 마개를 딴 후, 망설임 없이 그것을 들이켰다.
그리고 새하얀 빛이 그의 온 몸을 휘감았다.
[환생수를 마셨습니다.]
[캐릭터의 레벨을 비롯한 모든 능력치가 초기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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