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3화 (36/1,027)

(1). 대규모 업데이트 -3

[트윈헤드 오우거를 처치했습니다. 98500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후우, 후….”

거의 30분간의 사투 끝에 트윈헤드 오우거를 쓰러뜨린 이안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30분 내내 뛰어다니느라 진이 빠진 것이었다.

‘자, 어떤 아이템을 떨구셨는지 확인해볼까…?’

최후의 일격을 날릴 때 보다도 긴장되는 순간…!

이안은 오우거의 사체에 손을 가져다 올렸다.

[영웅 몬스터 ‘트윈헤드 오우거’ 로부터 9845골드를 획득합니다.]

[‘오우거 워리어의 견갑’을 획득합니다.]

[‘오우거 워리어의 신발’을 획득합니다.]

[‘뮤란의 크리스탈을 획득합니다.’]

획득한 아이템을 확인한 이안은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우거 워리어 세트가 두 개나 나오다니! 한달 치 운을 오늘 다 쓴 거 아니야?’

오우거 워리어 세트는 오우거 킹을 10번 잡으면 한번 드랍될 까 말까 한 아이템이었다.

다른걸 다 떠나서 신발과 견갑을 현금화 하면…

“으하하하하!!”

이안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못해도 500만원 이상을 고작 30분만에 벌어들인 것이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뮤란의 크리스탈? 이건 뭐지…?”

제법 아이템에 관해 박식한 이안도 듣도 보도 못 한 물건이었다.

이안은 곧바로 감정스크롤을 이용해 뮤란의 크리스탈을 감정했다.

-뮤란의 크리스탈-

영롱한 오색 빛이 담겨있는 크리스탈이다.

전직 NPC에게 가져가면 특수한 전직 퀘스트를 받을 수 있으며, 아직 전직을 하지 않은 ‘비기너’ 만이 사용할 수 있다.

계정귀속아이템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한 이안은 순간 얼어붙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런 미친…!!”

그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이게 왜 지금 나오는 거야! 으아악!!”

이안은 아무도 없는 허공에 괴성을 질렀다.

히든클래스를 확정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아이템이 드랍 되었다.

히든직업에 관련된 부분은 커뮤니티에도 거의 정보가 없을 정도로 희귀했다.

엄청난 득템인 것은 분명 확실한데… 지금의 이안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아이템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이안은 이미 한국랭킹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갈 정도로 레벨이 높은 상황.

그리고 전직은 레벨 10 이하인 ‘비기너’들만의 권리였다.

욕이 나오지 않으면 이상한 상황인 것이었다.

‘게다가 계정귀속이라니. 이거 팔면 부르는 게 값일텐데…!!’

이안은 머리가 어질어질 했다.

‘아… 하늘이시어 대체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카일란에는 부케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안이 뮤란의 크리스탈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캐릭터 초기화 뿐이었다.

“하, 일단 좀 쉬자.”

이안은 가방에서 귀환 스크롤을 꺼내었다.

‘일단 오우거 워리어 세트부터 처분하고 뮤란의 크리스탈에 대해 생각해봐야겠어.’

이안의 신형이 하얀 빛으로 둘러싸여 허공으로 흩어졌다.

*          *          *

“자, 이제 안 오신 분은 없죠?”

새하얀 빛깔의 풀 플레이트 메일을 온 몸에 두른 기사 유저가 좌중을 둘러보며 인원체크를 했다.

그는 다름 아닌 이안의 절친한 친구이자, 로터스 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한유현이었다.

그리고 그의 카일란 아이디는 헤르스였다.

“네 다들 오신 것 같네요.”

“그럼 출발할까요?”

그때, 귀여운 외모에 파란색 로브를 입은 여성유저가 유현을 불렀다.

“헤르스 님.”

“네, 피올란님.”

“오늘은 이안님은 안 오시나요? 지금 접속중 이시긴 한 것 같은데.”

그녀의 질문에 파티원 전체의 시선이 헤르스에게로 쏠렸다.

“아, 그 녀석 오늘은 솔로 플레이 할 생각 인가봐요. 지금 아마 클리크산에 있을 거예요.”

“에엑 클리크산요? 거기 오우거밭 아니에요?”

“맞아요.”

“무슨 궁사가 오우거밭에서 솔로플레이를 해요? 이안님이 괴물인 건 알고 있지만….”

헤르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걔는 신경 안 써도 알아서 잘 하는 놈이니 뭐… 그러려니 해요.”

“아니, 제가 아쉬워서 그러죠. 이안님만 파티에 있어도 사냥속도가 배는 빨라질 텐데….”

옆에서 듣고만 있던 전사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맞아요. 확실히 이안님이 단일 화력 하나는 죽여주는데.”

지금 던전공략을 위해 구성된 로터스 길드의 파티의 평균 레벨은 80 정도였다.

확실히 93레벨인데다, 동 레벨 대에서도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로 화력이 뛰어난 이안이 파티에 합류하면 엄청난 전력이 되었기에 파티원들이 하나같이 아쉬워하는 것이었다.

“아, 오늘은 이안님 버스 못 타겠네. 어쩔 수 없죠 뭐.”

유현, 아니 헤르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오늘은 나가 신전 들어갈 거니까 이안이 없이도 어렵지 않을 겁니다. 준비 되셨으면 들어갈까요?”

나가 신전은 몬스터 평균 레벨이 80대 초반 정도인데다 군집형 몬스터도 아닌지라 로터스 길드의 구성원 정도면 무난한 사냥터라 할 수 있었다.

“전 세팅 끝났슴돠!”

“저도요!”

헤르스가 던전 입구 석판에 손을 올리는 순간, 낯익은 아이디로부터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이안-

[ - 야, 던전 도는 중이냐? 다 끝나면 연락해라. 보여줄 게 좀 있다.]

‘뭐지? 궁금하게스리….’

헤르스는 이안이 보여줄 것이라는 게 뭔지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일단 던전이 우선이었기에 던전 입구로 발을 내딛었다.

*          *          *

이안이 경매장에 내놓은 오우거 워리어 세트는 등록한지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빠르게 팔려 나갔다.

순식간에 인벤토리에 400만골드 라는 거금이 쌓였음에도, 그의 표정은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아, 난제로다. 박진성 카일란 인생 최대의 난제로다….’

이안은 지금 대학입학원서를 넣을 때 보다 더 진지했다.

‘차라리 뮤란의 크리스탈인지 뭔지 나오지나 말지…. 그냥 오우거워리어 세트만 나왔으면 마냥 실실거리면서 기뻐했었을 텐데….’

사실 신규 업데이트 소식만 아니었더라도 뮤란의 크리스탈이 좀 아깝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고민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한데, 대규모업데이트와 함께 새로 생기는 두 가지의 신규직업이 문제였다.

지금까지 공개된 히든직업들은 사실 새로운 직업이라기 보단 기존의 직업들의 강화판, 혹은 다른 버전 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가장 많이 알려진 히든직업 ‘광전사’의 경우로 예를 들자면, 시스템 표기도 ‘전사(광전사)’ 이런 식으로 되어있으며, 기존의 전사 직업에서 좀 더 공격적인 포지션으로 변형된 느낌의 직업이었다.

대규모 업데이트가 적용되고 나면, 분명 새로운 직업의 전직 NPC가 등장할 것이었고, 뮤란의 크리스탈을 가져다 주면 신규직업과 관련된 히든직업을 최초로 얻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 중요한건 ‘최초’ 였다.

카일란을 오픈날부터 플레이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었던 이안에게 ‘최초’ 라는 단어는 너무도 메리트 있게 다가오는 부분이었다.

‘으어… 이거 너무 끌리는데….’

뭐랄까, 이안에게 있어서 뮤란의 크리스탈은 계륵이었다.

먹음직한 살은 없지만 그냥 버리자니 아까운, 닭의 갈빗살 같은 존재.

캐릭터 초기화를 한다고 해서 가지고 있던 아이템과 재화까지 초기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레벨, 스텟, 칭호 등의 캐릭터의 능력과 관련된 부분만 초기화되는 것.

결론적으로 이안의 고민은,

첫째로 ‘네 달 동안 밤낮없이 플레이하여 성장시켜놓은 궁사 캐릭터의 레벨 및 능력치’의 가치.

둘째로 ‘최초의 히든직업이라는 타이틀 및 그로 인한 포텐’의 가치.

이 둘 사이의 저울질이라 할 수 있었다.

‘캐릭터 초기화… 초기화라….’

그런데 이안의 게임플레이 성향은 이안에게 히든직업을 포기하지 말라며 계속 속삭이고 있었다.

‘그래, 박진성 게임인생에 평범함은 어울리지 않지. 일단 지르고 보는 거다.’

이안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기합리화를 시전하기 시작했다.

‘막말로 지금 내가 레인저 계속 판다고 해서 세계랭킹 순위권에 들 수 있어?’

물론 이안의 게임능력은 최상급에 속했다. 그랬기에 2달이나 늦게 시작했음에도 한국랭킹 천위권이라는 가공할 성적을 뽑아낸 것이었고.

하지만 여기가 한계라는 걸 이안은 느끼고 있었다.

어찌어찌 하다보면 한국랭킹 100위권 까지는 운이 따랐을 때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세계랭킹 100위권 안쪽은 불가능이었다.

‘좋아, 못 먹어도 고!’

원래는 유현이 던전을 돌고 나오면 크리스탈을 보여주고 만나서 상의해볼 생각이었지만, 이안의 마음은 이미 기울어버렸다.

마지막까지 걸리는 것은, 초기화를 하는 순간 매일 골드노가다 및 아이템 파밍으로 벌어들이던 수익이 한동안 끊길 것이라는 부분이었는데….

‘뭐, 그동안 벌어서 통장에 쟁여놓은 돈도 제법 되고… 한동안 생활에는 지장 없겠지.’

이안에게 있어서 게임의 재미는 결코 물질적인 부분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의’가 ‘통보’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          *          *

“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진성의 자초지종에 대한 설명과, 통보를 전부 들은 유현의 첫마디는 이거였다.

“왜 인마, 뭐가 문젠데?”

적잖이 당황했는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현과는 달리 진성은 무척이나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뭐가 문제긴…! 아깝지도 않냐? 네 레벨이 지금 93이야. 한국랭킹 1000위 권 안에 들어가는 최상위 랭커라고! 게다가 궁사 랭킹으로 좁히면 거의 100위권에 근접하는 수준인데… 그걸 그냥 날려버리겠다고?”

유현이 흥분하는 것도 일리가 있었다.

막나가는 놈이라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의 파격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나라고 안 아깝겠냐? 근데 무려 신규직업 관련 최초의 히든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라고. 이걸 그냥 버리라고?”

유현은 진성을 잘 타이르듯 다시 입을 열었다.

“너도 공개된 히든직업들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알거다. 우리 길드만 해도 저격수 한분 계시는 거 알지?”

저격수는 궁사의 히든클래스였다.

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저번에 같이 사냥도 해봤지.”

“너 저격수 봤을 때 일반 궁사에 비해 크게 좋아 보인다거나 하는 부분 느꼈어?”

잠시 생각한 진성은 말을 이었다.

“글세… 나랑 레벨 차이가 좀 많이 나서 정확히 판단은 못 하겠지만, 궁사랑 비교해 보면 장단점이 확실히 있긴 했지. 사정거리가 말도 안 되게 긴 점이야 두말할 것 없는 장점이고, 한방 데미지가 강력한데 속사는 힘들고, 최단점이라면 잡 몹 몰렸을 때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는 점… 정도?”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받았다.

“그래, 맞아. 히든직업이라고 해서 막 사기적으로 강하다거나 하진 않을 거라는 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요지다.”

진성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아.”

“알아? 아는데 그걸 위해서 93랩 궁사를 버리겠다고? 적당한 데 자리 잡고 파밍만 해도 하루에 백만원씩은 우습게 벌어들일 수 있는 네 캐릭터를?”

그 말에 진성은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유현아.”

“응?”

“넌 카일란 왜 하냐?”

뜬금없는 그의 물음에 유현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대답을 했다.

“재밌으니까 하지.”

진성은 씨익 웃었다.

“거기에 답이 있네.”

“뭐?”

어이없어하는 유현을 보며 진성은 한 마디 더했다.

“겁나 재밌어 보이는데… 다른 이유, 더 필요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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