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규모 업데이트 -2
피이잉-!
바람을 찢는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새파란 빛을 머금은 투사체가 쏜살같이 허공을 갈랐다.
푸슉-
크아아아-
냉기를 가득 머금은 화살에 미간을 정확히 직격당한 오우거가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쿵-!
[오우거를 처치했습니다. 5910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진성, 아니 이안은 숨을 고르며 천천히 오우거의 사체를 향해 다가갔다.
“좋아 이제 좀 속도가 붙는군.”
이안이 손을 가져다 대자 오우거의 사체가 회색빛으로 변하며 사라졌다.
[‘오우거’ 로부터 745골드를 획득합니다.]
[‘질긴 오우거의 가죽’을 획득합니다.]
이안은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하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10만골드만 채우고 좀 쉬어야겠어.”
이안이 지금 사냥하고 있는 클리크산 중턱은 유저들 사이에서 ‘오우거밭’ 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오우거가 많이 서식하는 사냥터였다.
오우거들의 평균 레벨은 80정도.
현재 93레벨인 이안에게 쉬운 사냥터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파티사냥일 때의 이야기였다.
솔로플레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클리크산은 상위랭커들도 까다로워하는 사냥터 중 한 곳 이었다.
오우거는 동 레벨대의 몬스터들에 비해 체력과 파괴력이 월등히 강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레벨업을 위해서라면 고레벨 사냥터에 파티를 모아 들어가는 것이 더 효율적인 선택이었지만, 이안이 클리크산에서 솔로플레이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곳이 바로 그가 생각하는 최적의 골드 노가다 장소였기 때문.
카일란은 게임 자체적으로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환전해주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구매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팔기도 했다.
현실세계의 은행이 운영되는 것과 거의 비슷한 원리로 투명하게 시스템이 운영되다보니, 카일란에서의 재화는 거의 현금과 다름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 카일란 환전시스템 기준 골드의 현금 시세는 1:2 정도였는데, 오우거가 주는 골드의 양은 평균적으로 800골드 정도였다.
오우거 한 마리당 1600원 정도를 버는 셈이었다.
한 시간 정도면 100마리 이상은 가뿐히 잡아내는 이안의 사냥속도라면 시급 20만원에 가까운 알바를 하는 셈이었다.
이안은 캡슐을 사고 나서도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버릇이 남아있어서 요즘도 접속하면 한 시간 정도는 골드 노가다에 시간을 투자했다.
“다시 움직여 볼까….”
주변에 남은 오우거가 없는 것을 확인한 이안은 사냥터를 옮기기 위해 걸음을 떼었다.
지난주 드레이크 레이드에 참여해서 얻은 ‘다크 컴포짓 보우’ 덕에 사냥 속도가 빨라진 것이 체감이 되어 이안은 흥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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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lv 93 79954300 / 98500000 (81.2%)
종족 - 인간
직업 - 궁사 ( 숙련된 명사수 )
칭호 - 드레이크 사냥꾼
명성 - 158920 (명성이 0 이하로 떨어지면 악명으로 변환됩니다.)
생명력 - 2420 (+ 5600)
힘 - 150 (+ 75)
민첩 - 275 (+ 305)
지능 - 75 (+ 25)
체력 - 105 (+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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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을 한번 확인한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후, 지난주부터 오우거를 몇 마리나 잡았는데 6%밖에 안 올랐네.”
경험치를 말하는 것이었다.
레벨 90이 넘고 나서부터는 정말 레벨 하나 올리는 데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했다
“뭐 어차피 랩업 하려고 이놈들 잡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너무하네.”
한 차례 투덜거린 이안은 궁사의 특수기술인 호크아이를 통해 주변 몬스터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안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뭐지? 클리크 산에 오우거킹을 제외하고 영웅 등급 몬스터가 출몰했었나?’
호크아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유저로부터 일정 범위 내의 몬스터의 위치와, 등급 정도가 전부였다.
어떤 몬스터인지는 직접 찾아가 두 눈으로 확인해야한다.
‘영웅 등급 몬스터라면 조금 위험할 수도 있긴 한데….’
클리크 산의 유일한 영웅 등급 몬스터로 알려진 오우거킹은 무려 레벨이 95였다. 물론 이안 또한 오우거킹을 잡아본 적이 있었지만, 혼자서는 아니었다.
‘어쩌지….’
이안은 고민했다. 지정된 자리에 등장하는 필드보스를 제외하고, 이렇게 영웅 등급 몬스터를 발견할 수 있는 경우는 무척이나 희귀했다.
필드에 랜덤으로 등장하는 영웅 등급의 몬스터는 좋은 아이템을 드랍할 확률이 무척이나 높다는 것도 거의 정설이었다.
“일단 고!”
죽기라도 한다면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가 초기화되며 이안의 일주일이 허공으로 증발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이런 좋은 기회를 포기하는 것은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 아니었다.
모든 스킬의 쿨타임이 돌아 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한 이안은 천천히 영웅 등급 몬스터의 위치가 표시된 곳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시야에 나타난 몬스터는 일반 오우거보다 몸집이 3배 이상 거대한 트윈헤드 오우거였다.
‘뭐지 이런 녀석도 있었나?’
이안은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희귀한 몬스터의 등장에 더욱 투지가 불타올랐다.
이안은 침착하게 트랩을 꺼내어 적당한 위치에 몇 군데 설치했다. 영웅 몬스터를 잡기 위해 사두었던 고가의 소모성 아이템이었다.
‘쩝, 이걸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이야.’
쓰려고 산 물건이건만, 왠지 쓰려니 아까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무려 개당 5만골드 짜리 최상급 트랩이었기 때문이었다.
“뭐, 오우거 워리어 세트 중에 한 부위만 나와 줘도 이득이니까….”
오우거 워리어 세트는 가장 싼 부위인 신발이 130만골드 정도의 시세가 형성되어있는 아이템이었다.
오우거 워리어 세트가 떨어진다면 그냥 이득 정도가 아니라 대박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완벽히 설계를 끝낸 이안은 활을 꺼내어 들어 오우거의 머리를 조준했다.
[‘약점포착’ 스킬이 발동됩니다. 대상의 약점이 표시되며 명중률이 40% 상승하고 치명타 확률이 37% 증가합니다. 약점을 공격할 시 추가로 255%의 피해를 더 입힙니다.]
[‘맹독화살’ 스킬이 발동됩니다. 적중 시 10초간 대상의 움직임이 10% 둔화되며,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감소시킵니다.]
피이잉-!
이안의 손을 떠난 화살이 오우거의 이마에 정확히 명중했고, 이안을 발견한 트윈헤드 오우거는 분노에 찬 괴성을 내지르며 그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쿠어어어-!!
집채만한 몸집임에도 날랜 움직임으로 달려드는 상대를 보며 이안의 두 눈이 조금 커졌다.
‘일반적인 오우거랑 확실히 다르다. 빨라…!!’
심지어는 킹 오우거도 오우거라는 종족특성 때문인지 움직임 자체는 무척이나 둔한 편에 속했었다.
영웅 등급의 몬스터답게 체력과 공격력은 다른 오우거에 비해 월등했지만.
그래서 트윈헤드 오우거도 느릴 것이라 지레짐작했던 이안은 조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이안은 연사 스킬을 이용해 빠르게 화살을 날리며 오우거를 트랩 쪽으로 유인했다.
쿵- 쿵- 쿵-
중독으로 인한 지속 데미지 때문에 피해를 조금 입기는 했는지, 오우거의 표정은 살짝 일그러져 있었다.
타탓-!
목적지까지 거의 오우거를 끌어온 이안은 빠른 몸놀림으로 나무를 타고 올라가 다시 활 시위를 당겼다.
[‘폭발화살’ 스킬이 발동됩니다. 화살이 대상에 명중한 뒤 1초 뒤에 폭발을 일으키며 공격력의 300%의 피해를 추가로 입힙니다.]
이안의 손을 떠난 화살이 약점포착 스킬로 인해 빨갛게 표시된 오우거의 약점에 여지없이 명중했다.
궁사 직업특성과 스킬로 인해 명중률이 보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절로 감탄이 나올만한 궁술 실력이었다.
콰아앙-!
오우거의 가슴팍에 틀어박힌 이안의 화살이 폭발하며 뛰어들던 오우거는 잠시 움찔 했다.
치명타와 약점포착, 그리고 폭발로 인한 데미지 증폭으로 인해 한방에 20배로 뻥튀기된 데미지를 입었으니 아무리 영웅 몬스터라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으리라.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우거는 어느새 뛰어와 이안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오우거의 몽둥이가 이안을 향해 쇄도했다.
쾅-!
굉음과 함께 이안이 앉아있던 나무는 폭삭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미 이안은 몸을 빼고 난 뒤였다.
오우거의 나무몽둥이가 보여준 위력에 이안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쩌면 단 한방만 허용해도 사망할 수도 있다…!’
이안은 마른침을 삼켰다.
조금 더 긴장할 필요가 있었다.
오우거의 공격을 피하느라 이안이 바닥을 구르는 동안 오우거가 드디어 이안의 첫 번째 트랩을 밟았다.
철컥-!
둔탁한 쇳소리와 함께 오우거가 포효하기 시작했다.
[상급 둔화의 트랩이 발동됩니다. 10분간 대상의 이동속도가 30% 하락합니다.]
맹독화살의 효과와 중첩되어 총 40%의 둔화효과가 적용된 상태.
확실히 눈에 띄게 움직임이 느려진 오우거를 보며 이안은 다시 활 시위를 당겼다.
[‘신속’ 스킬이 발동됩니다. 15분간 모든 움직임이 50% 빨라집니다.]
피이잉- 핑- 핑-
신속 스킬로 인해 보정된 빠른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화살 세 발을 날린 이안은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오우거가 다시 지척까지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후우…”
이안은 크게 숨을 몰아쉬며 지속적으로 원거리에서 오우거를 괴롭혔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안이 쉽게 오우거를 농락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이안의 트윈헤드 오우거 사냥은 거의 외줄타기 수준으로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단 한방만 허용해도 골로 갈 수 있는….
사실 궁사는 마법사와 함께 솔로플레이가 무척이나 힘든 직업으로 알려져 있었다. 기본적으로 근접전이 되면 속수무책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오우거와 쫓고 쫓기는 싸움을 하던 이안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신속’ 스킬의 지속시간이 1분 남았습니다.]
“크으음….”
이안은 낮게 신음성을 흘렸다.
신속 스킬의 효과가 끝나고 나면, 전투를 더 이상 진행하기에 큰 무리가 있었다. 어떻게든 1분 안에 승부를 봐야 했다.
‘남아있는 트랩은 하나. 기절트랩….’
이안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에 결론을 내린 그는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 몸을 날렸다.
“이쪽이다 이 징그러운 새끼야.”
이안은 오우거를 도발하며 연달아 화살을 날렸고, 둔화효과가 풀린 오우거는 맹렬히 이안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철컥-!
마지막 트랩이 발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상급 기절의 트랩이 발동됩니다. 5초간 대상이 기절하며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트랩이 발동하는 순간 이안은 한쪽 무릎을 굽히고 단단히 자세를 잡았다.
트랩에 걸린 오우거는 기절 상태가 되어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고, 이안은 빨갛게 빛나는 오우거의 약점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었다.
[‘치명타 강화’ 스킬이 발동됩니다. 공격이 치명타로 명중하면 피해량이 300% 증가합니다.]
[‘저격’ 스킬이 발동됩니다. 10초간 움직일 수 없으며, 공격력이 400% 증가합니다.]
[‘집중’ 스킬이 발동됩니다. 활 시위를 당긴 상태에서 목표물에 집중하는 시간에 비례하여 공격력이 증가합니다.(최대 증가량 - 500%)]
이안이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버프스킬과 강화스킬을 총 동원했다.
‘이제 단 한발에 모든 게 달렸다…!’
이 화살이 정확히 오우거의 약점을 관통한다면 놈은 쓰러질 것이라 확신했다.
쓰러지지 않더라도 최소 빈사상태는 만들 수 있을 터.
‘저격’ 스킬까지 사용한 이상, 이안은 이제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제대로 명중시키지 못해 생명력이 남은 오우거가 기절 상태에서 풀린다면, 그 후로도 5초는 발이 묶여있어야하는 이안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초를 세며 집중 스킬의 효율까지 최대로 끌어낸 이안은 활 시위를 놓았다.
쐐애애액-!
허공을 찢는 듯 한 파공음이 울려 퍼졌고, 동시에 오우거의 기절효과가 끝이 났다.
하지만 오우거가 움직이기 전에 이미 이안의 화살은 그의 심장 앞에 도달해 있었다.
퍽-!
이안의 혼신의 힘이 담긴 화살이 그대로 오우거의 약점에 틀어박혔고, 이안의 후속공격이 두발 더 같은 위치에 날아들었다.
그리고 생명력이 다했는지, 트윈헤드 오우거의 거대한 몸집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쿵-!
거구가 바닥에 쓰러지며 둔중한 소리가 울려퍼졌고, 기분 좋은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트윈헤드 오우거를 처치했습니다. 98500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후우, 후….”
거의 30분간의 사투 끝에 트윈헤드 오우거를 쓰러뜨린 이안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30분 내내 뛰어다니느라 진이 빠진 것이었다.
‘자, 어떤 아이템을 떨구셨는지 확인해볼까…?’
최후의 일격을 날릴 때 보다도 긴장되는 순간…!
이안은 오우거의 사체에 손을 가져다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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