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215화 (215/218)

< 매니지먼트사업부 4팀, 팀장 (4) >

데구륵, 초능력자 제작사 회의실에 모인 이들이 눈알을 굴렸다. 예상치를 훌쩍 넘긴 홍보효과를 보고 있으니 샴페인을 따도 부족하건만, 분위기는 몹시 우중충했다. 상석에서 눈을 부라리는 차재호 감독 때문이었다.

-차꼬장, 왜 또 개꼬장이야?

여직원이 옆 직원의 다이어리에 메모를 휘갈겼다. 옆 직원이 말없이 테이블 밑으로 핸드폰을 내밀었다. 기사 헤드라인이 떠 있었다.

[도시정글 크라우드, 펀딩 1시간 만에 완판 ‘역대 최고 갱신’]

눈빛을 교환한 제작사 직원들이 차재호 감독을 열심히 치켜세웠다.

“감독님, 도시정글을 뭐 그렇게 신경 쓰세요? 우리랑은 체급이 다른데.”

“맞아요. 우린 손익분기점이 420만에다가 천만관객이 목표고, 저쪽은 관객수 400만 명 들면 초대박이라고 잔치 날 영화잖아요!”

“감독님 네임밸류부터 비교가 안 되고요. 이쪽은 거장, 저쪽은 아장아장.”

“우리가 견제해야할 건 외화죠, 외화! 도시정글은 신경 쓰지 마세요.”

“솔직히 그건 정선우 아니었음 이만큼 회자 되지도 못했을 걸요?”

거장이라는 말에 기분이 좀 풀린 듯 하던 차재호 감독이 다시 비틀렸다.

“내가 어떻게 신경을 안 써! 그놈 때문에 혈압 올라 쓰러질 뻔 했는데! 정선우 그 놈이 나한테 뭐라고 나불거렸······!”

직원들이 귀를 바짝 기울였다.

W&U엔터 정선우와 차재호 감독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고, 그 때문에 정선우가 차재호 감독한테 된통 찍혔다는 건 쉬쉬하면서도 다들 아는 얘기였다. 감독이 촬영장에서까지 용트림을 해댔으니까.

“그놈, 그 시건방진 놈이 나한테······!”

입을 벙긋거리던 차재호 감독이 결국 욕지거리를 토했다.

그리고 이내, 번들거리는 눈을 홱 돌렸다.

“홍보담당자 어디 있어!”

***

-도시정글 펀딩 아직 안 시작한 거예요? 왜 투자가 안 되죠?

-이미 매진입니다, 고갱님. 나가시는 문은 왼쪽입니다.

-ㅋㅋㅋㅋ전 운 좋게 펀딩 오픈하자마자 신청했는데, 하마터면 놓칠 뻔!

-헐. 저는 방심하다가 놓쳤어요. 1분 만에 매진된 단콘 티켓팅도 성공하고 수강신청도 실패한 역사가 없는데 이걸 놓치다니, 어이가 음슴ㅠㅠ 내 돈을 가져가라는데 왜 받질 않냐고!

-원래 기간 일주일이었잖아요 목표액 증액하지 않을까요?

-다들 초능력자 얘기만 하길래 그쪽으로 갈아탔나 했더니. 그건 다 허가경의 팬들이 쓴 글이었던 거신가. 아니면 이런 사태를 대비해 경쟁자를 해치우려는 사람들의 빅픽쳐였던 거신가.

-전 이럴 줄 알았음. 크라우드 펀딩 이슈 된 게 정선우 때문이니까ㅋㅋㅋ

-근데 투자한 사람들은 다들 이익 날거라고 믿는 거예요? 정선우 영화라서? 지금까지 크라우드 펀딩한 영화중에 제대로 수익 난 건 몇 편 안되던데. 차라리 주식을 하지.

-전 십만 원 소액으로 했음. VIP초대장이랑 일반 예매티켓도 준다니까 원금 날려도 큰 손해는 아닐 것 같아서. 다른 커뮤니티도 보니까 십만 원씩 투자한 사람들 겁나 많던데요?

-저는 백만 원 투척! 솔직히 기대 반, 재미 반.

-전 이백만 원! 믿보 정선우 반, 이송하 팬심 반. 송하야 대박나자!

유리잔 안에 탄산이 차올랐다. 사이다를 받아든 직원들이 킬킬거렸다.

“다들 일만 없으면 확 샴페인 따는 건데!”

“자, 기분이라도 냅시다!”

사무실에서 가진 조촐한 축하파티였지만, 분위기만큼은 월드컵 우승현장을 방불케 했다. 사람들은 샴페인 잔에 사이다를 따라 마시면서 떠들었다.

“나는 피디님 연락받자마자 ‘저거 약 처먹었나?’ 그랬다니까요?”

“저거? 처먹어?”

“아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시작하자마자 끝났다는데!”

“영화 펀딩 역사에 획을 그은 거지! 정선우 효과 으마으마하네요, 진짜!”

“내가 그랬잖아! 배우 갖고 스타마케팅 하는 것보다 효과가 더 좋다니까?”

몇 갠지 모를 잔들이 내 잔에 부딪쳤다.

내가 갖고 있는 특수한 이미지, 거기에 ‘투자’라는 양념을 치면 꽤 그럴듯한 그림이 그려질 거라고 확신하긴 했지만, 이 정도의 반응은 기대이상이다.

나도 탄산음료를 단숨에 목으로 넘겼다. 초능력자 측의 언플을 지켜보는 동안 퍽퍽했던 뱃속이 시원하게 뚫렸다. 이쪽뿐만 아니라 W&U내부에서도 메시지가 쏟아졌다. 홍보팀 박 팀장은 자기도 투자타이밍을 놓쳤다며 낄낄거렸다.

“혹시나 싶어서 지인들한테 참여 좀 하라고 했는데, 쓸데없는 짓이었네요.”

영화사 숲의 대표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알콜이 들어간 것도 아닌데 그의 얼굴은 이미 벌겠다. 나는 그의 뒤로 보이는 영화사 숲의 직원 몇 명을 살펴보다가 물었다.

“오현경 감독님은 안 오셨어요?”

“아, 잠깐이라도 들르라고 얘기는 했는데, 오 감독이 한창 집중하는 중이라고 해서요. 내부시사 후에 나온 의견들 듣더니 조금 더 손본다고 했거든요. 정말 제정신이 아닌 거 같은··· 아주 말도 못 붙이겠다니까요.”

시사 때 봤던 영화를 떠올리고 있는데, SBE필름 대표와 기획피디, 월드아트 픽쳐스 부장이 다가왔다.

“플랫폼에선 증액할 생각 없냐던데요? 문의전화가 미친 듯이 온다고.”

SBE필름 기획피디가 떠보듯이 말했다.

월드아트 부장이 고개를 저었다.

“원래 3억이 맥시멈으로 생각하던 액수였잖아요. 더 욕심낼 필요 있어요?”

“뭐, 그렇긴 그런데. 대중이 워낙에······.”

“증액까지 하면 내부에서 부담스러워할 겁니다. 부분투자자들도 그렇고.”

SBE필름 대표가 입맛을 다시긴 했지만, 결국 증액은 안 하기로 했다. 어쨌든 한 시간 만에 목표액 돌파했다는 결과만으로도 원했던 홍보효과는 충분히 거두는 중이었으니까.

기획피디가 잔을 홱 들었다.

“어쨌거나 펀딩은 우리 압승입니다! 초능력잔지 무능력잔지 때문에 열불 터져서 밤에 잠 못 잔 사람들 여럿일 텐데, 이제 푹 잡시다!”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사무실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 승리자의 미소는 하루 만에 쩌적 갈라졌다.

[초능력자 vs 도시정글]

옥타곤에 올라가서 한판 붙어야할 것 같은 타이틀이 급격하게 퍼져나갔다.

제작규모로 따지면 초능력자와 경쟁구도를 만들어야 할 영화는 외화였다. 초능력자와 도시정글은 규모가 세배 이상 치아가 나니까. 기사를 써제끼는 기자들도 대중도 두 영화를 절대적인 관객수로 비교하는 건 아니었다.

수익금.

나란히 크라우드 펀딩으로 투자금을 유치한 두 영화중 어느 쪽이 손익분기점을 넘어 일반인 투자자들에게 수익금을 줄까. 사람들이 흥미진진하게 비교하며 떠드는 건 바로 그쪽이었다.

초능력자 측은 교묘하게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일반인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 또다시 관객들과 함께 만드는 영화니 어쩌니 떠들어대면서.

도시정글은 홍보규모가 적은대신 펀딩에 공을 많이 들이고 화제성을 끌어 모았는데, 거기에 혓바닥을 먼저 댄 걸로도 모자라 아예 빨대를 꽂아서 쪽쪽 빨아먹겠다는 거지같은 수작이었다.

양측 홍보팀은 처음보다 더 과격하게 부딪쳤다. 초능력자 측에서 던진 불씨는 금방 산 하나를 홀랑 태워먹을 만한 큰불로 번졌다. 양쪽 영화에 투자한 일반인들이 열성적인 마케터가 되어 여기저기 경쟁구도를 퍼뜨렸다.

경쟁이란 언제나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키워드니까.

거기다가 이송하가 초능력자의 여주인공 배역을 제안 받았다가 내 결정으로 도시정글을 찍게 됐다는 캐스팅비화가 다시 언론에 터지면서, 대중의 관심사가 폭발적으로 급변했다.

정선우의 차기작인 ‘도시정글’이 성공할 것인가 실패할 것인가에서.

‘도시정글과 초능력자’ 둘 중에 어떤 영화가 더 높은 수익을 올릴 것인지로.

*

“자기, 저번에 3scene 인터뷰한 거 있잖아.”

홍보팀 박 팀장이 다가왔다. 요즘 초능력자 홍보대행사쪽과 싸워대느라 전투력이 나날이 높아져가는 사람인데, 오늘따라 표정이 썩어있다.

“그 특집 기사요?”

3scene 대표적인 국내 영화 전문잡지다. 영화개봉을 앞둔 영화제작사와 홍보대행사들이 표지와 특집기사를 차지하려고 안달을 하는.

표지는 할리우드 시리즈 블록버스터로 일찌감치 확정됐다길래 포기하고, 우리 쪽에서는 이송하와 남조윤, 그리고 나와 오현경 감독이 나란히 화보사진을 찍고 촬영일지 특집기사를 개제하는 걸로 얘기를 끝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잡지 나왔어요?”

“나왔어. 나왔는데.”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문제가 ······ 있네.”

박 팀장이 들고 있던 잡지를 내밀었다.

표지에 ‘초능력자, 차재호 감독’이라는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박혀있다.

허가경의 화보사진과 함께.

“광고비를 엄청 때려 박았나봐.”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후에는 별안간 엄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선우야, 네 영화 도시, 도시, 뭐였지? 자꾸 제목을 깜빡깜빡하네.

“도시정글.”

-그래, 그건 TV에서 광고 안 하니? 엄마 미용실 갔었는데 거기 TV에서 초능력잔가 뭔가 개봉한다고 광고하더라. 머리하던 아줌마들이 그거보고 재밌겠다고, 개봉하면 보러가야겠다고 하더라고.

“우리도 TV광고 하긴 하는데.”

-했어? 왜 못 봤지?

“횟수가 많질 않아서. 타이밍이 맞아야 돼.”

-초능력자는 TV 틀면 나온다더라. 젊은 애들은 인터넷 보면 되지만, 나이 많은 사람들은 TV에서 광고를 해야 저런 걸 하는구나, 아는데. 많이 좀 하지 그랬어?

“그거 돈 엄청 들어, 엄마.”

-그래? 너 영화에 뭐 3억이나 모였다며? 네 형이 그러던데.

“그랬지. 근데 15초짜리 광고 며칠 내보내는데 몇 억 깨져.”

-······어머머. 도둑놈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바이럴 마케팅이나 입소문 마케팅은 우리 쪽이 강세였지만, 쏟아지는 물량으로 보면 초능력자에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벤트도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졌다.

초능력자 출연진과 함께하는 사인회, 전시회, 캠페인까지.

TV나 신문잡지뿐만 아니라 버스, 지하철, 극장배너, 온라인 포털 배너, 오프라인 거리 벽보까지 어딜 가나 초능력자의 광고가 눈에 뜨였다. 길을 걸어도, 차를 타고. 어딜 가나 꼴 보기 싫은 초능력자 판이었다.

그야말로 염병할 일이었다.

내가 차재호 감독을 다시 맞닥뜨린 건 신문사 주차장에서였다.

인터뷰를 하러 왔는지 번드르르하게 차려입은 차재호 감독이 나를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내 표정도 곱지는 않다. 이젠 겉치레고 나발이고 고운 말을 주도 받을 사이는 아닌지라, 서로 상소리로 인사했다.

“······이 경쟁구도가 도시정글에도 나쁘기만 한 건 아니잖아? 그 뭐야, 그래, 체급이 다른데 비슷한 급으로 쳐주는 거니까. 대중들도 관심 갖고 있겠다, 이참에 나랑 합동 인터뷰나 하나 하는 건 어때?”

차재호 감독이 지난번처럼 이죽거렸다.

내가 이 순간을 위해 준비했던 말을 쏟아 부으려고 막 입을 열었을 때였다.

벨소리가 울렸다. 내 핸드폰, SBE필름 기획피디였다.

뭐지, 이 데자뷔는?

1시간 만에 3억 목표액을 달성했다는 소식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번에도 희소식이기를 바라며 전화를 받았다. 저번처럼 핸드폰 건너편이 시끄럽다. 거의 난리법석이라 고막이 아플 정도였다.

“네, 피디님.”

나만 저번의 기억을 떠올린 게 아닌지, 차재호 감독의 표정이 똥 씹은 것처럼 구겨졌다.

나는 침을 꿀꺽 넘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차재호 감독을 보고 말했다.

“인터뷰는 혼자 하세요. 저는, 저희는 프랑스에 가야될 것 같아서.”

“프랑, 프랑스엘 왜?”

“초대장이 왔다네요. 칸에서.”

차재호 감독이 눈을 껌뻑거렸다.

내가 한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조금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물론 그걸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나도 지금 마음이 급해서.

“오늘도 얼른 가봐야겠네요. 인터뷰 편하게 하고 가세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차재호 감독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 매니지먼트사업부 4팀, 팀장 (4)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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