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214화 (214/218)

< 매니지먼트사업부 4팀, 팀장 (3) >

얌체 같다, 얄밉다, 얍삽하다, 아니, 이건 지나치게 달달한 표현이다.

이런 거지같은 작자들을 봤나.

[올해 영화계 핫키워드, 크라우드 펀딩에 관심 쏠려]

[크라우드 펀딩 시도하는 두 영화 ‘도시정글 · 초능력자’]

[초능력자, 8억 목표 크라우드 펀딩 오픈 ‘역대 최대 금액’]

······영화 초능력자 차재호 감독은 “주인공인 허가경 씨가 먼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관객 분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회의 결과 좋은 프로젝트라고 판단해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펀딩 시기가 겹치게 된 도시정글(오현경 감독, 이송하 · 남조윤 주연)에 대해서는 “먼저 펀딩을 기획한 정선우 팀장과는 인연이 깊다. 그가 차기작선택에 대한 부담으로 방황했던 시기에 내 시나리오를 보내기도 했다”며, “이렇게 경쟁작으로 만났지만, 두 영화 모두 좋은 결과를 얻어서 국내 영화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하하. 어처구니가 없다.

초능력자 쪽은 저희들 홍보에 우리 머리끄덩이를 질질 끌고 다니고 있었다.

펀딩 관련 보도자료에는 어김없이 도시정글이 언급됐고, 나와 이송하의 이름도 아낌없이 끼얹어져 있다. 도시정글이나 우리 정보를 얻으려고 검색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초능력자의 정보까지 얻어가도록.

“이러다가 도시정글 연관검색어에 초능력자 뜨게 생겼어요!”

“와, 매너는 똥통에 처박았나? 이건 좀 아니지 않아요?”

내가 집나간 어처구니를 찾는 동안, 홍보팀 여직원 남직원, 3팀장을 비롯한 사람들이 컴퓨터 모니터를 둘러싸고 떠들었다. 촬영감독은 심상찮은 분위기에 슬금슬금 물러나더니 카메라 들고 사라진지 오래였다.

“허가경이 먼저 관객 분들과 뭐? 욕먹을까봐 배우 앞세우는 것 좀 봐요!”

“먹히긴 먹혔네요. 댓글들 반응 보면. ‘가경 오빠 관객사랑이야 유명하죠. 천만 찍읍시다, 파이팅!’ 이러고 있는데요. ‘초능력자 어떤 영환가 찾아봤는데 제작비 150억쯤 되는 블록버스터네요. 한번 투자해볼까’ 이런 사람도 있고.”

성의민 실장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박 팀장님은요?”

내 물음에 홍보팀 여직원이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초능력자 홍보대행사에 전화하셔서 지랄, 항의하고 계세요!”

“방황? 차기작 부담으로 방황?! 정선우가 방황하는 거 봤어요?!”

과연, 박 팀장은 지랄을 하고 있었다.

핸드폰을 귀에 갖다 붙인 그녀가 괄괄하게 소리치며 다가왔다.

“도시정글 홍보는 내 소관 아니어도 정선우 홍보는 내 소관이에요! 기자한테 다이렉트로 인터뷰한 것도 아니고, 차재호 감독님이 그렇게 코멘트를 했어도 보도자료에서 걸렀어야죠! 이거 예민한 문젠 거 몰라요?! 안 그래도 기자들이 뭐 뜯어먹을 거 없나하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억수처럼 퍼붓고, 박 팀장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만 죄송하시고, 앞으론 조심 좀 해주세요. 이런 문제로 다시 통화할 일 없었으면 좋겠네요.”

전화를 뚝 끊은 박 팀장이 한숨을 쉬었다. 3팀장이 떨떠름히 말했다.

“너무 과한 거 아냐?”

“여기 알바 써서 경쟁작 평점 테러 한다고 소문난 회사예요. 좋게좋게 말로하면 우습게 본다구요. 이렇게 지랄을 해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알지.”

박 팀장이 내 쪽을 홱 돌아봤다.

“자기는 차재호 감독한테 뭐 안 좋은 말 들은 거 없어? 저쪽에서 자기 이름으로 언플하려고 하면, 이쪽에서도 으름장을 좀 놔야할 것 같은데.”

“안 좋은 말이라.”

잠깐 기억을 되짚다가 말했다.

“일 참 미련하게 한다, 이송하보다 한서연이 훨씬 낫다, 뭐 이런 거요?”

“뭐? 설마 그런 말을 듣고만 있었어?”

“듣고만 안 있었죠.”

“그렇지?”

“초능력자 폭삭 망할 것 같은데, 굳이 내 배우 넣어서 같이 망할 필욘 없잖느냐고 했던 것 같은데.”

“······.”

주위가 조용해졌다. 박 팀장이 입을 달싹이다가 말을 돌렸다.

“크라우드 펀딩 건은 SBE필름 쪽 홍보담당자랑 얘길 좀 해봐야겠다. 그쪽도 뒤집어졌을 거야. 반년동안 자기 이름 팔아서 펀딩에 대한 관심도랑 기대감 올리고 쎄빠지게 밥상 차려놨는데, 초능력자에서 숟가락만 들고 와서 먼저 처먹었으니.”

그녀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더 성질나는 건, 이걸로 초능력자가 홍보효과를 톡톡히 볼 거라는 거지.”

정말로 톡톡히 봤다.

실검을 휩쓴 건 말할 것도 없고, 초능력자의 크라우드 펀딩이 화제가 되자 관심가진 일반인 투자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뭐, 객관적으로만 보면 매력적인 조건들이긴 하다. 스케일 큰 대형 블록버스터. 이름 있는 감독에 탑스타 주연배우, 조연들도 다들 명품조연으로 유명한 사람들이니까.

투자자수와 펀딩 모금액은 거침없이 올라갔다.

그리고 단 하루만에 2억을 돌파했다.

기자들은 이런 추세라면 초능력자가 국내 영화 크라우드 펀딩 역사상 최고금액을 충분히 달성할 것이라고 기사들을 써 올렸다. 대형포털의 ‘많이 본 뉴스’섹션에는 초능력자 기사가 며칠째 헤드라인만 바꿔가며 걸려있었다.

초능력자 펀딩에 참여한 일반인들도 스스로 마케터가 돼서 초능력자의 정보를 여기저기 물어다 날랐다.

그러는 동안, 도시정글 제작진은 단체로 병증에 시달렸다.

배 아프고, 속 쓰리고, 짜증나는 증상을 동반한.

울화병이었다.

SBE필름의 기획피디는 나한테 매일같이 전화해서 배가 아프다 못해 내장이 비틀리는 것 같다며 아우성쳤다. 잠잠한 사람은 편집실에 틀어박혀 있는 오현경 감독뿐이었다.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도 도시정글의 홍보는 예정대로 착착 진행됐다.

“네! 금주의 문화창고! 이번 주는 정선우 씨와 함께 화제의 개봉예정작인 도시정글, 소개해 드렸고요. 다음 주에도 풍성한 소식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정보 프로그램의 리포터가 클로징 멘트를 외쳤다. 스텝들이 스튜디오로 올라가 다음코너를 준비했다. 음향팀 스텝에게 마이크를 건네고 내려가자, 피디와 메인작가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정 팀장님! 다음에 배우 섭외전화 드리면 한번 도와주시는 거죠?”

“그럼요.”

“저희 녹음했어요. 진짜 전화합니다!”

넉살좋게 웃던 메인작가가 덧붙였다.

“아참! 도시정글 펀딩 지금쯤 시작했겠네요?”

“네. 시작한 지 한 시간쯤 됐네요.”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대답했다. 오늘이 대망의 크라우드 펀딩 오픈 날이다.

지금쯤이면 도시정글 제작진들은 모두 펀딩 플랫폼에 매달려있을 거다. 집계결과를 눈 빠지게 기다리면서. 펀딩에 참여하겠다는 피디작가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짐을 찾으러 대기실에 들어갔을 때.

다시 가출하려는 어처구니를 간신히 붙잡아야 했다.

“감독님! 저 연기에 관심 있는데 다음에 단역으로 한번 써주시면 안돼요?”

“언니도요? 저도 예전에 연기레슨도 받았었는데.”

“사실 저도 개그맨 겸 연기자를 목표로······!”

낯선 연예인들이 남의 대기실에서 친목도모 중이었다. 신인 걸그룹하고 개그맨이었다. 내가 대기실을 잘못 찾았나 하고 문을 확인했는데, ‘정선우님’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이름이 붙어있다.

“잠깐, 잠깐. 대기실 주인 왔네.”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저절로 이맛살이 구겨졌다.

연예인들 사이에 차재호 감독이 앉아있었다.

“어,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연예인들이 화들짝 놀라 인사했다.

곧장 차재호 감독이 그들을 쫒아내듯 내보냈다. 대기실에 단둘이 남은 후에야 그가 다시 말했다.

“라디오 게스트로 왔는데, 마침 정 팀장이 녹화중이라길래. 인사나 하고 가려고 들렀지.”

“뭘 굳이?”

우리사이에?

생각이 그대로 입 밖으로 나갔다. 차재호 감독의 눈썹이 들썩였다.

“정 팀장 덕분에 영화계에 크라우드 펀딩 바람이 분거 아냐. 이게 생각보다 홍보효과가 상당히 좋더라고. 투자금도 모이고. 증권사 말로는 모금액수도 그렇고, 모금속도도 역대 최고라던데.”

얼씨구.

“우리가 먼저 역대기록을 깡그리 갱신해버려서 어쩌나, 이거. 도시정글한테도 뭘 좀 남겨줘야 될 텐데. 도시정글도 오늘 펀딩 오픈 했다면서?”

차재호 감독이 이죽거렸다. 꼴 보기가 싫어서 그런지 이목구비 하나하나가 거슬린다. 굵은 미간 주름에는 쓸데없는 옹고집이 가득해 보이고, 얇은 입술은 성미 고약해 보인다.

“여기 시비 걸러 오셨습니까?”

내가 묻자, 차재호 가독이 소파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현실을 짚어주려고 온 거지. 네가 망할 것 같다는 내던진 내 영화는 상업성하고 흥행 필수요소를 다 갖춘 작품이야. 천편일률적이니, 상업성에 영혼을 팔았느니 떠들어대도 결국 관객들 발길은 이쪽으로 오게 돼 있어. 판 깔아주자마자 우르르 몰려와서 투자하는 거 보면 몰라?”

그의 눈빛이 흥분으로 번들거렸다. 그가 검지로 내 어깨를 턱턱 밀었다.

“이제 좀 어때? 괜한 객기로 선택 잘못했다, 인정할 때도 됐잖아? 그걸 아직도 못 깨달았으면 답이 없는데.”

이 바닥에 들어와서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나’하고 생각했던 경우가 여러 번 있었지만, 개중에서도 저 양반이 제일 황당하다. 자기 시나리오 거절했다고 이렇게 끈덕지게 꼬장을 부리는 양반이 영화계 유명인사 중 한명이라니.

지금도 저 양반 얼굴엔 ‘네가 감히 내 작품을 까? 내가 누군 줄 알아?’라고 쓰여 있다. 맙소사. 내 입에서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 눈깔이 삐었었죠.’라는 말이 나와야 만족하려나.

그건 못 하겠는데.

답을 안했더니 차재호 감독의 기세가 험악해졌다.

“······내 영화가 망할 것 같아서 까? 내가 감독인생 이십년 만에 그런 개소리는,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으면 내가 그걸 꿈으로까지 꿨어!”

듣던 중 기분 좋은 소리네.

“어딜 연예인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던 놈이 함부로 지껄여, 지껄이길!”

“듣기 좋은 말로 잘 말씀드렸더니 상스런 말로 갚으시길래. 저도 감독님 취향대로 상스럽게 말씀드린 건데. 별로 마음에 안 드셨나 봅니다. 그리고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도시정글이 없었더라도 초능력자는 안 찍었을 걸요.”

“이 새끼가!”

“제가 새끼는 아니죠. 올해 나이 앞자리도 바뀌었는데.”

나를 노려보던 차재호 감독이 빈정거렸다.

“아직 모가지가 꼿꼿한 거 보니까 영화가 꽤 잘 빠졌나본데. 나도 그거 시나리오 봤거든. 어쨌거나 경쟁작이니까. 뭐, 괜찮았어. 그런데 영화 아무리 예술 적으로 만들어봤자, 우리나라 관객들? 어렵고 어두운 영화 안 좋아해.”

아예 확신하는 투였다.

“한계가 명확하다고. 영화 좋다고 소문나봤자 최대 200만이야. 처음엔 월드아트에서 상영관 잡아줄 거고, 사람들이 궁금하니까 우르르 몰려가겠지만 그것도 잠깐이라고. 개봉 일주일 만에 상영관 수 반 토막 날걸?”

“아, 미래가 보이시나 봅니다. 신기한 능력이네요.”

“안 봐도 뻔하지. 영화시장 한정된 파이 놓고 이전투구 하는 건데, 대중이 외면하는 영화가 블록버스터 틈에서 얼마나 버틸 것 같아?”

그때. 불쑥 내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SBE필름 기획피디였다.

차재호 감독을 세워두고 전화를 받았다. 시끌시끌한 소음이 확 터져 나왔다.

-팀장님! 끝났습니다! 우린 끝났어요!

끝?

가슴이 덜컹했다.

“······뭐가요?”

-크라우드 펀딩이요!

“펀딩 한 시간 전에 오픈했잖아요. 무슨 문제 있어요?”

-끝났다니까요! 목표액 3억 돌파했어요! 한 시간 만에!

이 양반이 속쓰림 약을 과다 복용하더니 부작용이 생······ 겼을 리는 없고.

펀딩이 끝났다고? 한 시간 만에 3억이 모였다고? 하루도 아니고?

그게 가능한 건가?

일단 핸드폰을 내렸다. 마른침을 삼키고 고개를 들었다.

차재호 감독이 팔짱을 끼고 서 있다. 기획피디의 목소리가 밖으로 새진 않은 모양이었다. 차재호 감독은 내 말만 듣고 펀딩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거드럭거리며 펀딩 얘기를 들먹었다.

“도시정글은 목표액이 3억이랬나? 나도 한 이백 쯤 투자해볼까 하는데.”

“안 되겠는데요.”

나는 서둘러 소파 한쪽에 뒀던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왜, 내 돈은 받기 싫어? 그런데 우리 홍보대행사에서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 기삿감으로.”

“받기도 싫지만 받을 수도 없네요. 펀딩이 끝나서.”

“뭐?”

“펀딩이요. 집계현황 파악했는데 이미 끝났답니다.”

“뭐가··· 끝나?”

“한시간만에 3억 다 찼다네요.”

차재호 감독이 눈을 껌뻑거렸다.

좀 전에 내 표정도 딱 저랬겠지.

“그래서 얼른 가봐야겠습니다. 아, 감독님은 편하게 쉬다 가세요.”

당황한 채 입술만 들썩이는 그를 내버려두고 대기실을 나왔다.

뒤에서 우당탕, 탁자가 엎어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 매니지먼트사업부 4팀, 팀장 (3)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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