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번 휘둘리기 시작하면 (5) >
“투자 말인데요.”
기획피디가 전화를 끊고 다가왔다.
“정 팀장님. 잠깐 시간 빼주실 수 있으세요? 저희 대표님이 월드아트 픽쳐스랑 투자배급 얘기중인데, 그쪽에서 정 팀장님이랑 같이 논의하고 싶다고 했다는데요.”
“월드아트 픽쳐스요?”
시름시름 죽어가던 영화사 숲의 대표가 먼저 반응했다. 월드아트 픽쳐스면 국내에서 손꼽히는 메이저 투자배급사다. 얼라이브의 메인투자배급을 맡았던 곳이기도 하고.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가시죠.”
월드아트 픽쳐스 건물은 강남 한복판에 있었다. 먼저 도착한 SBE필름 대표가 널찍한 미팅룸을 혼자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수그린 채로, 음산한 기운을 흩뿌리면서.
“표정이 왜 그러세요? 같이 얘기해보자는 거면 청신호 같은데.”
기획피디의 물음에 SBE필름 대표가 눈을 치떴다.
“아니지. 얼라이브 때는 시나리오 전달하고 1시간 반 만에 전화 왔어. 투자심사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투자 결정됐다고. 그런 게 청신호지.”
“상황이 다르잖아요. 얼라이브는 최성원 감독님 작품이고, 이기환이랑 박세령까지 세팅된 상태였는데. 도시정글은······.”
떠들던 기획피디가 나와 오현경 감독을 의식하고 말을 돌렸다.
“어쨌든 잘 꼬드겨봐야죠. 얼라이브로 돈도 많이 벌었는데 설마 문전박대하겠어요?”
자리에 앉자마자 기획피디가 질문을 돌렸다.
“감독님, 대표님. 도시정글 순제작비 얼마쯤 생각하셨어요?”
“제작비요?”
“계산기 두드려보셨을 거 아니에요.”
오현경 감독과 영화사 숲의 대표가 서로를 쳐다봤다. 곧 오현경 감독이 대출심사라도 받으러 온 사람처럼 대답했다.
“30억, 에서 25억 정도요.”
“25억이요?”
기획피디가 헛웃음을 흘렸다.
“시나리오 봤는데, 25억 가지곤 턱도 없겠던데요?”
“촬영일수를 최대한 줄이고.”
“번갯불에 콩 볶아드시게요? 예산 너무 낮게 잡고 들어갔다가 중간에 제작비 초과하면, 투자자들 바짓가랑이 붙잡고 돈 더 달라고 사정사정해야 돼요. 그냥 처음에 계산해서 나온 금액 말씀해보세요.”
“······가능하면 35억이요.”
오현경 감독이 조심스럽게 액수를 올렸다. 기획피디가 턱을 긁적였다.
나는 직원이 가져다준 커피를 마시며 돈 애기를 들었다.
최대 35억. 상업영화 평균 순제작비를 밑도는 금액이다.
하긴, 내가 첫 영화를 총제작비 300억이 넘는 얼라이브로 경험해서 그렇지, 그런 블록버스터는 극소수다. 시선을 내려 보면 제작비가 없어서 저예산으로 만들어지는 영화가 훨씬 많으니까.
“저기······.”
영화사 숲의 대표가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엔트 캐피탈 황 이사랑 다시 한 번 애기를 해보면 어떨까요?”
“아까 알아서들 잘 해보라고 비아냥거렸던 그 사람이요?”
“그래도 50억 투자 얘기가 나왔었던 곳인데······.”
기획피디가 단박에 고개를 저었다.
“나가리된 거 미련두지 마세요. 그리고 어차피 엔트 캐피탈에서 50억 다 안줬을 거예요. 거기가 방식이 좀 악질적이거든요.”
“예?”
“메인투자사로 들어와서 제작비 전액 투자할 것처럼 해놓고, 계약 들어갈 땐 예산을 팍 줄이거든요. 그래야 지분도 차지하고 입맛대로 휘두르기도 쉬우니까. 제작사랑 감독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예산가지고 찍는 거고.”
영화사 숲의 대표가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기획피디가 다시 말했다.
“35억에 P&A비용 더해서 총제작비는 최소 50억 정도라고 잡고. 투자배급사에서 3, 40프로, 부분투자 6, 70프로정도가 일반적이긴 한데. 월드아트 픽쳐스만 붙잡으면 부분투자로 제작비는 메꿀 수 있을 거······.”
그가 말꼬리를 삼켰다.
고전적인 안경을 쓴 남자가 어깨로 미팅룸 문을 열고 들어왔다. 월드아트 픽쳐스 한국영화제작부 부장. 얼라이브 언론배급 시사회 때 본 얼굴이었다. 양손에는 수첩과 파일, 그리고 도시정글 시나리오를 들고 있었다.
SBE필름 대표가 득달같이 캐물었다.
“회의는 어떻게 됐어요?”
“대표님, 일단 앉고 애기합시다, 앉고.”
“앉으셔야죠. 회의는 어떻게 됐어요?”
성급한 악수가 오갔다. 마지막으로 내 손을 붙잡은 부장이 물었다.
“주인공 바꾸실 생각은 없으세요?”
“그게 회의결과입니까?”
되물었다.
부장이 미팅룸에 있는 면면을 쭉 돌아보고 다시 나를 봤다.
“감독님이나 시나리오 가지고도 말이 많았는데, 남주인공 배우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이 제일 많네요. 이송하 씨 주연에 SBE필름 제작이면 남주인공 급을 조금만 높여도 투자는 붙을 영환데. W&U소속 다른 배우는······.”
“이미 시나리오 보여주고 배우가 오케이까지 한 상탠데. 그걸 엎고 그 배역을 소속사의 다른 배우한테 넘길 수는 없죠. 그렇게 해본적도, 그런 제안을 받아본 적도 없고요.”
기분이 꽤 묘하다.
넵튠이 중고신인 딱지를 떼고, 이송하가 한류스타 타이틀을 달고 나서부터는 어디서 이렇게 천덕꾸러기 매니저 취급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하긴, 원래 이런 곳이었지.
내가 W&U팀장이 아니고 나한테 다른 배우들이 없었다면. 내가 그냥 배우 남조윤의 매니저였다면 이런 권유도 없었을 거다. 회의결과만 눈 빠지게 기다려야 했겠지. 주인공 배우가 바뀌었다는 통보를 들었을지도 모르고.
입맛이 써야 할 상황인데 희한하게 입가에는 웃음이 떠오른다.
열의가 솟는다.
영화를 성공시키고, 남조윤에 대한 박한 평가를 바꾸겠다는 열의가.
“이거, 이거, 최성원 감독님이 보고 괜찮다고 한 시나리오예요.”
SBE필름 대표가 도시정글 시나리오를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남주인공 예술가 역이 남조윤 씨라고 했더니 그 양반이 그러더라고. 지금 시나리오 작업 중인 차기작에 남조윤 씨한테 맡기고 싶은 배역이 있는데, 도시정글 흥행하면 확 뜰 것 같으니까 미리 구두계약이라도 받아야겠다고.”
어쩐지 SBE필름 쪽이 생각보다 빨리 넘어왔다 싶었는데.
최성원 감독한테는 따로 감사인사를 해야겠다. 그 김에 구두계약도 하고.
“······그래요?”
월드아트 부장이 뺨을 긁적였다. SBE필름 대표가 다시 치고 들어갔다.
“백억 대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이거 총제작비 50억이에요. 엄청 부담스러운 사이즈도 아니구만. 어차피 박형일 감독 작품 엎어져가지고 내년 라인업도 펑크 났다면서요.”
“그건 그런데.”
“에이스나 AK엔터는 라인업 보니까 전부 그 나물에 그 밥이던데, 월드아트는 다양성이 모토 아니었어요? 라인업에 완성도 높은 액션느와르 하나 들어가면 좋잖아. 적은 투자로 가능성에 한번 걸어봅시다.”
SBE필름 대표와 기획피디가 월드아트 부장을 살살 꼬드겼다. 오현경 감독도 주인공 역할은 무조건 남조윤에게 맡기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윽고 월드아트 부장이 반쯤 녹은 얼굴로 말했다.
“되더라도 예산은 넉넉하진 못할 거예요. 다들 제작비 더 달라고 난리라.”
“창투사랑 금융회사도 계속 알아봐야죠. 이송하 씨 간판으로 세우고.”
기획피디가 슬쩍 내 쪽을 보며 말을 이었다.
“또 정선우 팀장님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기로 하셨으니까, 더 혹하는 팔랑귀들 있을 겁니다. 얼라이브 때도 정 팀장님 덕분에 홍보 쏠쏠하게 했잖아요. 지금은 그때보다 더 화제성이······.”
“아, 그거 말인데요.”
월드아트 부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제가 좀 전에 회의하다가 들은 얘긴데.”
“얘기요?”
“정선우 팀장님이 그, 차기작 부담 때문에 공황장애 생기셨다고.”
손에서 미끄러지는 커피잔을 겨우 잡았다. 다른 사람들이 날 보는 눈초리가 해괴해졌다. 저놈의 헛소문은 바퀴벌레도 아니고, 회사에서 겨우 잠잠해졌다 했더니 왜 밖에서 돌고 있는 거지.
“누가 그런 얘길 합니까?”
“감독이랑 제작자들 사이에서 얘깃거리로 도나보던데요? 정선우 팀장님 얘기야, 업계 제일가는 관심사잖아요. 특히 차재호 감독님이 사석에서 얘기를 여러 번 하셨다고 하고.”
차재호 감독?
“지금 초능력자 준비하시는?”
“예. 차 감독님이 이송하 씨한테 많이 공들였다면서요. 거절당하고 나서 기분이 상하셨나. 공황장애 애기 듣고, 어쩐지 정 팀장님이 판단력이 떨어졌더라는 애기까지 하셨다는 것 같던데요. 주연인 허가경 씨도 거들고.”
이 양반들이 보자보자하니까.
“그건 헛소문입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헛소문이, 크든 작든.”
월드아트 부장이 혀를 찼다.
“투자자들한테 영향을 미칠 거라는 거죠.”
*
월드아트 픽쳐스가 투자를 검토하는 동안, 나는 SBE필름 쪽에서 잡은 투자자 미팅에 여러 번 참석했다. 무명감독과 조연급 주인공을 보고 단박에 고개를 젓는 곳도 많았지만, 꽤 긍정적인 곳들도 있었다.
그리고 진담으로든 농담으로든 투자자들은 꼭 한 번씩 공황장애 얘기를 꺼냈다. 초능력자를 비롯한 굵직한 작품이 아니라, 하필 도시정글을 차기작으로 선택했다는 게 헛소문에 신빙성을 높인 모양이다.
정신이 멀쩡하다는 의사소견서를 들고 다닐까 고민스러울 지경이었다.
심지어 기자들의 문의전화까지 왔다. 홍보팀에서 조치한 덕분에 헛소문이 언론으로까지 퍼지진 않았지만,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미다스의 손이라는 타이틀을 이용해먹고자 했던 계획에는 살짝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렇게 도시정글의 제작비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한편으로는 다른 배우들의 차기작 문제도 본격적인 궤도로 진입했다.
마음을 달리 먹었기 때문인지, 이젠 다른 작품들이 국밥으로 보이진 않았다. 실장들과 검토해서 추린 시나리오와 대본들을 각각 배우들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배우들의 의견을 물었다.
처음은 서지준이었다.
“저 그 시나리오 봤어요.”
이봉준 실장과 함께 회의실에 들어온 서지준이 대뜸 말했다.
“무슨?”
“도시정글이요.”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시나리오 재밌더라고요, 그거. 그래서 말인데요.”
서지준이 느리게 입술을 문질렀다.
“저 그 영화에 투자 좀 해볼까 싶은데.”
어깨에 힘이 탁 풀렸다. 뒤늦게 심장이 뛰었다. 그 짧은 순간에, 서지준이 도시정글 주인공 역할에 관심을 가지면 어떻게 대처할까를 이십 가지 정도 생각했던 것 같다.
“출연에는 큰 관심 없고요. 진지한 역할은 많이 했으니까, 당분간은 웃으면서 연기할 수 있는 작품이 끌려서. 그런데 시나리오는 재밌으니까 투자라도 해볼까 하고요. 다른 배우들도 가끔씩 좋은 작품 있으면 한다길래.”
“······어느 정도 생각하는데요?”
“많이는 아니고, 한 5억 정도?”
“얼마요?”
“5억이요.”
이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데요. 잘못하면 본전도 못 찾을 수도 있어요.”
“그럼 뭐, 제가 시나리오를 잘 못 본거고요.”
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옆에서 이봉준 실장이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서지준의 투자 건은 SBE쪽과 얘기해 보가로 하고, 본격적으로 차기작 문제로 넘어갔다.
투자얘기를 할 때 잠깐 반짝했던 서지준의 눈빛이 흐려졌다.
“이거 연기하고 싶다, 하고 확 끌리는 게 없어서.”
“너 내가 보여준 대본들 꼼꼼하게 보지도 않았잖아, 인마!”
이봉준 실장이 눈을 부라렸다. 딴청을 피우던 서지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팀장님. 내가 2팀장님 계실 때는 이런 얘길 못했는데요.”
“얘기하세요, 편하게.”
“내가 여태껏 개처럼 일했거든요. 이젠 좀 쉬면서 해도 되지 않을까······.”
“되죠.”
앞에서 두 사람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당황한 이봉준 실장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서지준이 반색했다.
“정말이에요?”
“네. 잠깐 쉬시면서 군대 좀 다녀오시면 좋을 것 같은데.”
말 떨어지기 무섭게 서지준이 벌떡 일어났다.
“가야죠, 군대. 한 작품만 더 찍고 가려고요.”
“안 쉬고요?”
“잘 나갈 때 개처럼 일해야지 쉬긴 왜 쉬어요. 대본 보러 가자, 형!”
킬킬거리는 이봉준 실장을 서지준이 질질 끌고 나갔다.
두 번째는 임주원이었다.
그는 회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웃옷을 훌렁 벗었다.
“팀장님, 이것 좀 봐요.”
“······뭘요?”
“뭐 감상 없어요?”
“어떤 종류의 감상을 원하는지 모르겠는데.”
임주원이 제 배를 가리켰다. 흐뭇해서 못 견디겠다는 얼굴로.
“복근 생겼잖아요, 복근! 이거 만들려고 헬스를 얼마나 했는데!”
“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옆을 돌아보자 성의민 실장이 부처의 얼굴로 웃고 있다.
“IBC 편성 받은 작품 있잖아요, 주인공이 복서인 거. 그게 하고 싶대요.”
“······굳이 그걸?”
우리가 긍정적으로 검토했던 작품도 아닌데.
보라는 대본과 시나리오는 어쩌고, 왜 그걸?
“굳이 그걸, 무조건 그걸 하고 싶대요.”
나는 못 말리겠으니 제발 좀 말려달라는 표정이었다.
임주원은 여전히 밋밋한 배를 자랑 중이었다. 로열패밀리에서 윤태경이 상의탈의 씬 찍을 때마다 그렇게 부러워하면서 벼르더니만. 일단 임주원에게 도로 웃옷을 입히고 말했다.
“그 역할은 몸매가 문제가 아닌데요.”
물론 몸매가 가장 큰 문제지만.
“여주인공이 이보연으로 세팅됐잖아요. 둘이 러브라인이면 케미가 하나도 안 살 텐데. 주원 씨가 동안이라서. 남자다운 이미지를 보여주기는커녕 오히려 역효과일 거예요.”
“······그래요?”
“이모조카로 보일걸요.”
사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심각하게 거울을 들여다보는 임주원을 성의민 실장이 질질 끌고 나갔다.
마지막은 송인호였다.
그는 재촬영에 추가촬영을 거듭하고 있는 독립영화 감독과 함께 왔다.
수염이 덥수룩한 감독은 호랑이굴에라도 들어온 듯 긴장한 표정이었다.
“어디 불편하세요?”
“아, 그게, 지난번에 W&U에 들어왔을 때는 조병환 실장님이 위약금 물어줄 테니까 인호 출연계약 파기하자고 해서, 그 뒤로 계속 피해 다녔거든요. W&U근처에도 안 오고.”
“이젠 괜찮아요, 감독님. 그런 날은 이제 다 지났어요.”
송인호가 감독의 팔을 붙들고 싱글싱글 웃었다.
내 안색을 살피던 감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인호가 확 뜨고 나서 갑자기 한푼 두푼 투자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생겨서요. 제작비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넘어갔던 씬들을 추가촬영하고 싶은데, 인호 스케줄을 딱 몇 번만 더 빼주시면······.”
“그러다가 유작 되시겠어요.”
“네?”
감독이 흠칫 놀랐다. 목숨의 위협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송인호가 걱정 말라는 듯이 말했다.
“농담하는 거예요. 형, 아니, 팀장님이 농담을 좀 살벌하게 하세요.”
“농담 아닌데.”
“······형?”
“방금 그것까지 농담이야.”
웃으며 덧붙였다. 그제야 분위기가 풀어졌다.
“다른 스케줄이랑 겹쳤을 때 조율만 잘 해주시면 됩니다. 드라마가 몇 개 들어와서 검토 중인데, 신인이라 촬영 들어가면 아무래도 촬영장에서 밤낮으로 대기해야 하는 날이 많을 테니까요.”
“그럼요. 그거야 당연히······!”
감독의 얼굴에서 근심이 싹 씻겨나갔다. 두 사람이 쎄쎄쎄라도 할 것 같은 얼굴로 나간 후에, 나는 홀로 회의실에 남아 생각을 정리했다. 손아귀 안에서 볼펜이 빙글빙글 돌았다.
*
월드아트 픽쳐스와의 두 번째 미팅.
지지부진하게 고민하던 부장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적은 투자로 가능성에 한번 걸어보기로 했어요. 총제작비의 20프로는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아직 반대하는 직원들이 있어서, 예산을 많이 빼지는 못했어요. 나머지 80프로는 부분투자로 채우는 걸로 하죠.”
“최대한 끌어모으는 중이에요.”
기획피디가 한 숨 돌린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잠자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가, 말을 꺼냈다.
“투자자 문제요. 저도 생각을 좀 해봤는데.”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일반 시민들한테도 투자를 받아보는 건 어때요?”
< 한번 휘둘리기 시작하면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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