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무슨 수를 써서든 (8) >
목구멍에 닭 뼈가 걸린 기분이었다.
“회사 대표 입장에서, 나는 ‘미다스의 손’이라는 타이틀에 전략적 가치가 상당히 높다고 판단했거든.”
“전략적 가치요?”
“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백한성 대표가 본인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사실 미다스의 손이라는 건 흔해빠진 표현이지. 그럴싸하게 포장할 수 있는 수식어라 연예부 기자들이 자주 써먹거든. 제작자든 기획자든,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들은 한 번씩은 다 달아봤을 거야. 나도 마찬가지고.”
그가 내 쪽으로 핸드폰을 밀었다. 그리고 보라는 듯, 화면을 손끝으로 툭툭 두드린다. ‘W&U대표 백한성, 연예계 미다스의 손 등극’이라는 헤드라인이 떠있다. 오래된 인터뷰 기사였다.
그의 말대로 지난 기사란에는 미다스의 손이라는 타이틀이 수두룩했다.
“그런데 그 수식어를 달아본 사람들 중에 정말 ‘손대는 것마다 성공시킨’ 사람은 드물지. 더군다나 정 팀장처럼 실패 없이 모조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는 경우는, 내가 알기론 없어. 우스갯소리로 정 팀장 스토리를 실화 영화로 만들면 현실성 없다고 욕먹을 거라던데.”
내 인생스토리가 현실성 없긴 하지.
태연스럽게 농담을 섞은 백한성 대표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요즘은 기자들이 그 타이틀을 잘 안 쓰더라고. 지금은 미다스의 손이 정선우 팀장의 대명사처럼 됐으니까. 그래서 그 흔해빠진 타이틀에 전략적인 가치가 생기는 거고. 그런데 말이야.”
그가 젓가락 하나를 식탁 위에 세웠다. 그리고 끄트머리를 누르고 있던 손끝을 뗐다. 젓가락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식탁 위를 나뒹굴었다.
“그 가치는 정 팀장이 실패한 적이 없는 동안에만 유효하거든. 실패하는 순간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거지.”
“그러니까, 저보고 그 타이틀을 계속 유지하라는 겁니까?”
무슨 수를 써서든?
“맞아. 더 정확히 말하자면, 회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정 팀장의 타이틀을 관리할까 하는데.”
“······관리요?”
“어감이 별론가?”
“엄청 좋진 않네요.”
“정 팀장이 넵튠이나 남조윤 같은 담당연예인을 매니징하면서 배우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처럼, 회사가 정 팀장을 매니징하겠다는 거야. 가능한 오랫동안 실패하지 않도록.”
회사의 관리를 받아라.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작품은 손도 대지 마라.
“앞으로 회사가 시키는 일만 하라는 말씀입니까?”
“내 말이 그렇게 들리나?”
그가 고개를 비딱하게 기울이며 말했다.
“팀장으로서, 회사가 바라는 일을 하라는 뜻이지.”
팀장. 그 팀장이라는 자리에 나를 올린 건지, ‘미다스의 손’이라는 타이틀을 올려놓은 건지도 헷갈린다. 그 타이틀이 내 가치를 결정하는 거라면, 실패를 겪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셈이니까.
“그 전략적 가치 때문에 제가 급속히 팀장이 된 겁니까?”
“영향이 없지는 않지.”
백한성 대표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적으로는 정 팀장한테도 좋은 얘기야. 회사의 역량을 동원해서 정 팀장에게 성공을 쥐어주고, 커리어에 금칠을 해주겠다는 거니까. 나중에도 그 커리어는 정 팀장한테 아주 좋은 밑천이 될 거고.”
그것 참, 말은 달짝지근하니 엿 같아서 좋긴 한데.
목줄기가 뻐근하다. 목줄이라도 채워진 기분이다.
입 밖으로 나오는 목소리가 탁했다.
“작품이 별로라서 반대하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실패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서 포기하고 넘겨야 한다는 건 쉽게 못 받아들이겠습니다. ‘실패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작품’들은 제 선택에서 무조건 걸러야 하는 겁니까?”
“말했다시피, 한번 실패하면 무너지는 모래성이니까.”
“제 눈에는 그 작품이 위험정도는 기꺼이 감수해야 할 만큼 가치 있는 작품으로 보여도요?”
“다른 팀 실장한테 넘겨. 그 작품이 성공하면, 정 팀장이 추천한 작품이라고 기사가 나갈 거야.”
백한성 대표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나는 호흡을 삼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제가 대표님께 제 안목을 믿어달라고 다시 설득하면.”
“그러면.”
고저 없는 목소리가 내 말을 잘랐다.
“내가 정 팀장에게 아주 실망하겠지.”
*
이래서였나?
이래서 내가 도시정글을 포기한 건가?
백한성 대표의 반응을 봤을 때 설득의 여지가 없는 건 분명하다. 그럼 나한테 선택의 여지는 얼마나 있을까. 있기나 한가. 그 양반의 ‘내가 실망하겠지’라는 말이 ‘네가 망하겠지’처럼 들리던데.
내가 도시정글을 포기한 후에 그 작품이 성공하면.
그럼 백한성 대표가 오늘 일을 후회하고 생각을 바꿀까? 아니지. 설득하려고 고양이 수호령도 팔고 다 팔았는데, 하나 더 성공한다고 바뀔 생각이면 애초에 도시정글을 이렇게 반대하지도 않았겠지.
그 사람은 나한테서 실패의 가능성을 모조리 배제하려는 모양인데.
이대로 가면 앞으로 도시정글 같은 작품을 몇 개나 더 놓치게 될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매미가 극성맞게 울어댄다. 그늘을 만들어줄 가로수 하나 없는 골목길 위로 삭막한 원룸촌이 보인다. 요즘은 뜸했지만, 작년 이맘때만 해도 열심히 드나들었던 동네다.
익숙한 문을 두드렸다. 곧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입에 손가락만한 땅콩 시리얼바를 문 남조윤이 나를 보고 놀란 눈을 한다. 그 위로 순식간에 걱정의 기색이 차오른다.
“무슨 일 있어?”
“아뇨. 형 점심 먹었나 싶어서 와봤어요.”
남조윤이 설핏 웃으며 문을 활짝 열었다. 원룸 안은 변함없이 살풍경했다. 싱글 침대와 앉은뱅이책상 위에 쌓여있는 대본과 시나리오, 그리고 노트북을 빼면 사람 사는 냄새가 안 난다. 이삿짐 내놓은 빈방이라고 해도 믿겠다.
“지금 막 먹던, 먹으려던 참이었어. 너는, 먹었어?”
“아뇨. 한 숟가락만 나눠줘요.”
더럽게 비싼 삼계탕을 먹긴 했지만,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허한 배를 문지르며 책상 위에 펼쳐진 시나리오를 훑어보고 있을 때였다. 싱크대 앞을 왔다 갔다 하던 남조윤이 곤란한 얼굴로 다가왔다.
“선우야, 밥이 없는데.”
“제가 할까요?”
“쌀이 없어. 어제까진 있었는데. 라면 먹을래?”
오늘은 시리얼바로 때울 생각이었겠구만. 안 봐도 훤하다.
“형. 어째 살림살이가 계약 전보다 더 안 좋아진 것 같은데.”
영화 출연료랑 전속계약금은 다 어디로 증발한 거지. 원룸을 전월세에서 전세로 전환했다고, 다달이 월세 안 나가서 좋다는 얘긴 들었는데. 그래도 삼시세끼 고기반찬 먹을 돈은 남았을 텐데.
내가 영화표를 뭉텅이로 보내니 옛날처럼 푯값이 나갈 일도 없고.
그런데 이 집안의 살림살이는 왜······.
“형, 지금 뭐해요?”
“물 끓이려고. 라면은 있어.”
“물을 왜 프라이팬에 끓이는데요. 냄비는 어디 가고?”
“밑바닥이 타서 버렸어. 새로 사려고 했는데.”
“했는데?”
“없어도 별로 불편하지가 않아서.”
미치겠네.
“금치산자 생활 좀 청산하라니까. 형 사생활 촬영해서 방송 내보내면 불우이웃돕기로 후원 들어오게 생겼어요.”
남조윤이 멋쩍게 목덜미를 문지르더니 웃고 만다.
그가 싱크대서랍 구석에서 라면봉지 두 개를 꺼냈다. 그래도 집에 라면은 있는 거 보니 굶어 죽진 않겠구나, 생각하다가 불현 듯 물었다.
“그거 유통기한 좀 봐요.”
“산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라면은 유통기한 길잖아.”
라면봉지 뒷면을 훑어 내리던 남조윤이 입을 다문다.
“설마.”
“지금 몇 월 달이지?”
그의 손에서 라면봉지를 낚아챘다. 그리고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맙소사.
“어떻게 하면 자취집에 있는 라면이 유통기한을 넘을 수가 있어요?”
“라면을 많이 안 먹어서.”
“형 식물이에요? 물만 먹고 살아요? 물은 마셔요?”
냉장고를 열어보니 생수도 없다.
“이러다 죽어요, 진짜.”
얼굴을 쓸어내리고 다시 말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난다.
“내가 뭔가를 엄청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형 살림살이 보니까 고민이고나발이고 현실감이 확 드네.”
복날이고 하고, 찜닭배달을 주문해놓고 남조윤과 마주앉았다.
남조윤이 앉은뱅이책상 겸 밥상 위를 치우며 물었다.
“심각한 고민이 뭐였는데?”
“그냥 회사일이요. 형은 오늘 뭐했어요?”
“시나리오 봤어.”
그럴 줄 알았다. 어제도 그제도 지난주에도 지난달에도, 늘 푸른 소나무처럼 시나리오만 봤으니까. 내 손에 들어온 시나리오나 대본은 가능한 남조윤한테도 보내는데, 그때마다 생일선물 받는 것처럼 기꺼워하는 사람이다.
“밥도 안 먹고 볼만큼 재밌는 작품이에요? 아니, 형한테는 재미가 있건 없건 시나리오 탈만 쓰고 있으면 밥보다 우선이긴 하죠. 그래도 매일 보는데도 매일 재밌어요?”
“나한테 제일 재밌는 일을 매일 하는데, 매일 재밌지.”
제일 재밌는 일이라.
남조윤이 아슬아슬하게 쌓여있는 시나리오 탑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 만나기 전에는 보고 싶어도 못 봤거든. 구하기가 어려어서. 그때는 온라인 시나리오 마켓에 올라오는 작품들이나, 개봉하고 나서 풀리는 시나리오 기다렸다가 받아보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네가 구해준 시나리오들이 이렇게 손닿는 곳에 쌓여 있으니까, 보기만 해도 좋다.”
집구석에 먹어도 되는 거라고는 시리얼바랑 수돗물밖에 없을 정도로 먹고사는데 무심한 양반이, 시나리오 얘기를 할 때만큼은 저렇게 배부르고 생기가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남조윤한테 꾸역꾸역 찜닭 한마디를 다 먹였다.
그리고 회사에 들러 넵튠 앨범활동 스케줄회의를 하고, 한밤이 되고서야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남조윤의 원룸처럼 내 오피스텔도 사방에 시나리오와 대본 탑이 쌓여있다. 먼지 쌓인 시놉박스에서 발굴한 것도 있고, 배역 다 정해져서 유출 안 된다는 걸 겨우 설득해서 받아온 것도 있고.
하지만 남조윤처럼 보기만 해도 좋진 않다.
이 중에 어떤 작품이 잘될까, 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봤었으니까.
이 바닥에 들어오기 전에는 나도 남조윤처럼 좋아하는 영화 시나리오나 드라마 대본을 찾으려고 온라인을 쥐 잡듯이 뒤졌었는데. 시나리오를 보면서 재미있어서 두근거렸던 게 언젠지 가물가물하다.
도시정글을 볼 때는 어땠지?
두근거리긴 했다. 이게 흥행대박치고 칸 영화제에 간 작품이구나, 하면서.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을 보니 회의하느라 확인 못한 메시지들이 가득하다. 대부분이 넵튠의 음원 줄세우기 달성에 대한 축하와 스케줄 문의였다. 하나씩 답장을 보내다가 익숙한 번호와 맞닥뜨렸다.
오현경 감독.
장문의 메시지였다. 복날인데 좋은 것 드셨냐는 인사말로 시작해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는 넵튠앨범 리뷰를 거쳐, 나를 비롯한 W&U소속 연예인들 안부를 빠짐없이 물은 다음에, 혹시 남조윤이 도시정글의 시나리오를 보았나, 하는 조심스러운 질문으로 끝을 맺은.
핸드폰 키패드에 손을 올려놓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불을 홱 걷어내고 일어났다. 어차피 열대야라 잠도 쉽게 안 올 것 같으니까. 가방에서 서류봉투에 곱게 담긴 시나리오를 꺼냈다.
커피를 한잔 내리고, 침대로 돌아와 스탠드조명을 켰다.
다시 도시정글 시나리오의 첫 장을 넘겼다.
세상을 메마른 사막처럼 느끼던 괴팍한 예술가가 어느 날 평범하지 않은 여자와 맞닥뜨린다. 여자를 따라 경험한 범죄와 폭력에서, 예술가는 선명한 자극과 영감을 발견한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 속으로 들어간다.
다 합쳐서 백 씬도 안 되는 시나리오를 되새김질하듯 한참을 우물거리며 삼켰다. 어떤 씬에서는 오싹해져서 형광등을 환하게 켰다가, 어떤 씬에서는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거실을 돌아다니며 읽기도 했다.
시나리오의 텍스트들이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살아나 움직였다.
언제부턴가 여자의 얼굴은 이송하였다.
그리고 예술가의 얼굴은 남조윤이 돼 있었다. 그게 당연한 것처럼.
*
전화는 이번에도 음성메시지로 넘어갔다.
부재중 연락처로 메시지를 하나 넣어놓고 곧장 차를 몰았다. 영화사 숲. 오현경 감독이 도시정글을 함께 제작하는 중이라고 언급했던 제작사는 충무로의 한 귀퉁이 건물 5층에 간판을 달고 있었다.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내가 5층에 도착했을 때 맞닥뜨린 건, 당황한 얼굴로 움츠러들어있는 직원들과 잔뜩 격양된 세 사람이었다.
미리 인터뷰기사로 사진을 찾아봤던 영화사대표.
그리고 오현경 감독과, 주재찬 감독.
그 세 사람이 서로 멱살잡이라도 할 것처럼 격하게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무슨 수를 써서든 (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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