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190화 (190/218)

< 적성에 맞는 길로 (2) >

한강이 온통 붉었다. 2팀장은 반쯤 내린 차창너머로 강물을 내다봤다. 석양 때문인지, 미팅 중에 입가심으로 마신 와인 때문인지, 낯이 불콰하게 물들어 있다. 턱수염 위로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운전대를 잡은 조병환 실장이 웃으며 말했다.

“모처럼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팀장님.”

“모처럼? 내가 언젠 기분이 안 좋았나?”

2팀장이 오만상을 찌푸리고 다니던 게 바로 얼마 전 일이다. 그리고 2팀장의 기분을 풀어줄 말을 나불거리느라 혀가 닳은 사람이 바로 조병한 실장이었다. 그의 표정이 떫어졌다.

“아니 뭐, 더 좋아 보이신다고요.”

“정선우 그놈이 눈앞에 안 보여서 그런가.”

2팀장이 속내를 풀었다. 조병환 실장이 버릇처럼 말을 받았다.

“걔는 이송하 집 한번 건드린 것 가지고 놀랬나, 그 뒤로 쑥 들어갔네요. 이렇게 금방 꼬랑지 내릴 거면서 팀장실엔 뭐하러 쳐들어왔나 몰라요. 팀장님 들이박기라도 할 기세더니만.”

“들이박아?”

2팀장이 코웃음을 치더니 느긋하게 말했다.

“배짱이 없는데 들이박긴 뭘 들이박아. 그놈 그거, 생긴 거랑 다르게 이런 쪽으론 몸을 많이 사려. 회사에선 복덩이니 뭐니 하면서 애지중지 키웠지, 밖에서도 미다스의 손이라고 치켜세웠지, 어디 제대로 된 신경전이나 해봤겠어?”

“그래도 왜, 예전에 남조윤이랑 박 감독 문제에선 일처리 칼 같던데요.”

조병환 실장이 옛일을 끄집어냈다.

“언론 움직여서 압박하고, 박 감독 앞에서 계약서 찢었었다면서요.”

“박 감독은 만만했던 모양이지.”

술기운이 올랐는지, 그가 창문을 더 열었다. 그리고 드센 바람소리 사이로 중얼거렸다.

“내가 그때 남조윤 치우려고 했던 것도 제 딴엔 심증은 굳힌 모양인데. 엄포나 놓지 제대로 대거리를 못하더라고. 그놈은 더 신경 쓸 거 없겠어.”

2팀장은 한참을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놈이 조용하니까 내가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어. 장염이 싹 나았다니까? 인호 데뷔도 술술 잘 풀리지. 지준이 그놈도 작품 안 고르고 속 썩이더니, 제가 알아서 기획안 미팅 해보겠다고 약속 잡고 나갔고.”

“그러게요. 지준이 이러다 채영이 꼴 나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미팅 잡는 거 보면 일할 마음은 있나보네요. 작품이 마음에 들었나? 이거 서병희 감독에 조은혜 작가죠?”

“그렇지. 미팅이 몇 시부터랬지?”

“어디보자, 8시요. 곧 시작하겠네요.”

“거기 잠깐 들르자.”

“네?”

조병환 실장의 눈이 커다래졌다.

“거길 팀장님이 직접 가시게요? 이봉준 실장 말로는 외주사 대표랑 작감 만나서 가볍게 기획안 설명 듣는 자리라던데요. 거기 팀장님이 가시면 우리 쪽이 너무 적극적으로 보일 텐데.”

“계속 있을 필요는 없고, 인사나 하고 오자고. 채영이 문제도 있으니까.”

“채영이 문제요?”

2팀장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내가 채영이 설득하려고 서 감독한테 기획안 받았었잖아. 작가가 여주인공으로 윤정아 찍어놓은 상태라 여배우들한텐 기획안도 안 돌렸는데, 채영이 내세워서 받았었다고. 그런데 애가 거들떠도 안보고 깠잖아, 그걸.”

“아. 서 감독 쪽에선 유감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니까 잠깐 들러서 털고 가자고.”

차가 왔던 길을 거슬렀다. 미팅장소는 가까운 여의도였다. 레스토랑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조병환 실장이 이봉준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W&U 이 팀장님 아니에요?”

두 사람이 걸음을 우뚝 멈췄다. 카운터에서 누군가 반색을 하고 다가왔다. 어지러운 무늬의 반팔셔츠가 인상적인 중년 남자였다. 목에는 UBS방송국 로고가 붙은 사원증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2팀장과 조병환 실장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갔다.

“신 부장님도 오셨어요?”

“방송국 코앞이라 잠깐 얼굴들만 보고 가려고 들렸죠.”

“저도 근처 지나가다가 들렀는데, 오길 잘했네요.”

부장이 듣기 좋은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신인 한명 키우시느라 바쁘다고 들었는데. 송인호였나? 물건이라고 벌써부터 소문이 파다해요.”

“이제 시작이죠, 뭐.”

2팀장의 웃음이 짙어졌다.

“이번 영화 잘되면 브라운관 데뷔도 해야죠. 서 감독 작품, 이대로 도장 찍으시고 신인한테 괜찮은 조연배역 하나 만들어주면 되겠네. 한솥밥 먹는 선배랑 첫 작품 같이 찍으면 부담 없고 좋잖아요. 촬영장 분위기도 좋을 거고.”

서지준이라는 먹음직스러운 먹잇감 때문인지, 부장의 태도는 몹시 친근했다. 목소리에서 달짝지근한 꿀과 침이 줄줄 흘렀다. 2팀장의 반응이 나쁘지 않자 부장이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지뢰 위로.

“고양이 수호령 때 서지준 씨랑 이송하 씨가 같이 찍었던 것처럼. 어때요?”

“······그건 지준이랑 얘기 좀 해봐야겠네요.”

2팀장이 한 호흡 늦게 웃었다. 아까와는 달리 빛바랜 웃음이다. 동시에 앞장서서 안내하던 직원이 프라이빗룸 앞에서 멈췄다. 문이 닫혀있는데도 안에서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이고, 안에 분위기 좋은가보네요.”

부장이 웃으면서 문을 활짝 열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있던 사람들이 줄줄이 일어나 부장을 맞았다. 외주제작사 AA스튜디오의 대표와 직원들. 서병희 감독과 조은혜 작가. 그리고 서지준과 이봉준 실장까지.

황급히 다가와 인사한 AA스튜디오 대표가 2팀장을 보고 흠칫 놀랐다.

“이 팀장님! 부장님만 오시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같이 오십니까?”

“오시는 줄 알았으면 미리 준비했을 텐데, 자리가······.”

“저, 저희가 일어나겠습니다.”

AA스튜디오 직원들이 허둥지둥 움직였다.

“어, 팀장님. 여기는······.”

허둥거리는 건 이봉준 실장이 더했다. 드는 포크를 든 채로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2팀장의 시선은 한곳에 멈춰있었다. 룸 안으로 들어온 뒤로 줄곧, 그는 웃음기가 흔적도 없이 날아간 얼굴로 한곳만 주시했다. 조병환 실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심지어 헛것이라도 보이는 것처럼 눈을 비볐다.

사람들이 앞 다투어 말을 걸어왔지만, 2팀장은 뿌리치듯 성큼성큼 걸었다.

서지준의 바로 옆자리.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천천히 일어나는 사람에게로.

“안녕하세요, 2팀장님.”

“······정선우. 넌 지금, 여기서 뭐해?”

2팀장이 겨우 긁어모은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선우가 태연히 대답했다.

“일하는 중이죠.”

조병환 실장과 이봉준 실장이 동시에 숨을 삼켰다. 그들은 심지어 한걸음씩 물러서기까지 했다. 시한폭탄에서 멀어지려는 것처럼. 하지만 UBS부장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다가왔다.

AA스튜디오 직원이 눈치를 보며 끼어들었다.

“정 팀장님께 시놉시스 말씀드리는 중이었습니다. 어, 정 팀장님 다른 일정 있으셨어요? 가셔야 되면 저희가 더 빨리 얘기를······.”

“아뇨. 다른 일정 없습니다. 천천히 하세요.”

정선우가 고개를 저었다. 둘의 대화를 듣는 동안 2팀장의 이마에 굵은 핏줄이 꿈틀거렸다. 움켜쥔 주먹에도 뼈가 툭툭 불거졌다. 그가 겨우겨우 태연을 가장한 얼굴로 말했다.

“밖에서 얘기 좀 하자.”

2팀장의 성급한 발길이 멈췄다. 프라이빗룸에서 조금 떨어진 화장실 앞이었다. 안까지 들어갈 여유도 없는지, 그가 시퍼런 눈길을 돌렸다. 사람들 앞에선 꾸역꾸역 누르고 있던 노성이 터졌다.

“너 뭐 하자는 거야!”

“일하는 중이라니까요. 보셨잖아요.”

정선우가 천연덕스럽게 어깨를 들썩였다.

“네가 왜 지준이 미팅자리에 딱하니 따라와 있냐고! 내 허락도 없이1”

인내심이 끊어진 2팀장이 정선우의 멱살을 붙들었다. 부랴부랴 쫓아오던 조병환 실장과 이봉준 실장이 그 모습을 보고 도로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망보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얘기를 하자시더니.”

혀를 찬 정선우가 2팀장의 손을 뜯어냈다.

“지준 씨 미팅에 따라온 거 아닙니다.”

“뭐, 인마? 그럼 누굴······!”

“나 따라 왔어요.”

불쑥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여자화장실 안쪽에서, 손채영이 페이퍼타올로 손을 닦으며 걸어 나왔다.

2팀장은 목구멍에 뭐가 턱 걸린 사람처럼 입을 벙긋거렸다. 서지준의 옆에서 정선우를 발견했을 때보다 더했다. 조금 전에 느낀 게 당혹스러움과 분노였다면, 지금은 의문이었다. 현실도피에 가까웠다.

그는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을 목도한 것처럼 눈만 껌뻑였다.

그리고 멍청하게 물었다.

“채영이, 넌 왜 여깄어?”

***

손채영이 말했다.

“그럼 이제 가서 얘기해요. 손채영이 차기작 한다고 했다고.”

손에 든 주스 잔으로 내 잔을 툭 건드린다. 그러더니 아, 하고 덧붙였다.

“그런데 내가 차기작을 할 마음이 생긴 거랑, 바로 차기작 결정하는 거랑은 또 다른 문젠데. 난 마음에 안 드는 작품은 안 해요.”

“안 한다고 버티면서도 작품 많이 봤잖아요. 그중에 마음에 드는 거 없습니까?”

뭔가를 떠올리는 듯, 손채영의 눈이 그믐달처럼 가늘어졌다.

“서병희 감독님 알아요?”

“압니다.”

방송사 드라마국마다 유명한 감독들이 몇 명씩 있는데, 서병희 감독은 UBS에서 그림 예쁘게 찍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20부작 미니시리즈를 영화 때깔로 뽑는다. 연출력이야 두말할 것 없고.

“내가 서 감독님 연출 좋아하거든요. 이번에 신작 준비 중이래요. 기획안도 나왔는데 꽤 괜찮고.”

서병희 감독 신작이라면 나도 분명 눈여겨봤을 텐데.

기억에 없다.

“작가가 여주인공에 윤정아 생각하고 있대요.”

아, 그래서 기획안을 밖으로 안 돌린 건가?

“2팀장님은 내가 한다고 하면 서 감독님 설득해서 그 작품 가져올 수 있다고 했는데. 그쪽은 어때요?”

손채영이 한가롭게 턱을 괴며 웃었다.

“그거 가져올 수 있어요?”

-아······. 조금만 더 일찍 연락주시지.

전화기 너머에서 서병희 감독이 안타까운 숨을 터뜨렸을 때.

나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미 여주인공이 윤정아로 확정됐을 수도 있다. 2팀장이 2팀장이 손채영에게 서병희 감독의 기획안을 보여준 뒤로 시간이 꽤 흘렀으니까.

캐스팅이 확정됐다면, 난 품을 더 팔더라도 다른 작품을 찾아봤을 거다.

그랬을 거다. 아마도.

하지만 상황은 좀 다른 방향으로 진전돼 있었다.

-작품 편성 뺏기기 직전이에요, 지금. 주연배우 캐스팅 다 엎어져서.

곧바로 움직였다. 작품 제작을 맡은 건 UBS방송국 본사가 아니라 외주제작사인 AA스튜디오였다. 주소를 받아 찾아가보니, 노후한 건물 2층에 간판 하나 달랑 붙은 회사였다.

근래 자주 들락거렸던 웰메이드 프로덕션이나 SBE 필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열악했다. 내부는 신생 제작사였던 판 프로덕션보다도 어수선했다.

종이뭉치와 구겨진 종이컵, 먹고 내놓은 짬뽕 그릇 따위가 시선 닿는 곳마다 너절하게 늘어져있다. 그리고 직원들은 다들 책상에 머리를 박고 엎어져있었다. 꼴이 엉망이라 밖에서 간판을 다시 확인하고 들어왔을 정도다.

비쩍 여윈 남자가 다가왔다. 분홍색 목베개를 두른 모습이 목도리 도마뱀을 연상케 했다.

“뭔 일로 오셨어요?”

“캐스팅 얘기 좀 하고 싶어서요.”

“누구요?”

“손채영 씨요.”

그가 하품을 하다말고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직원들이 무덤에서 기어 나온 시체들처럼 벌떡벌떡 일어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테이블 하나를 치우고, 멀쩡한 종이컵을 구해다가 커피를 타왔다. 그리고 기획안을 가져왔다. 나는 시놉시스와 등장인물 소개를 읽고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에 목도리 도마뱀, 아니, 본인을 대표라고 소개한 남자가 앉아있다.

온몸에 꽂히는 시선들을 무시하며 물었다.

“서병희 감독님 작품, 캐스팅 엎어졌다고 들었는데요.”

“그거요.”

대표가 날 힐끔 쳐다보더니, 음침하게 말했다.

“저희가 무덤 팠죠. 그게, 원래 윤정아 씨랑 거의 구두계약까지 된 상태였는데요. 저번에 그쪽, W&U 이 팀장님이 기획안 받아가셨잖아요. 손채영 씨가 서 감독님 연출 좋아해서, 기획안 한번 봤으면 좋겠다고.”

목소리에 자책과 답답함이 뒤섞였다.

“그 다음에 손채영 씨가 준비가 덜돼서 안 되겠다고 연락이 왔었는데, UBS쪽에서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하더라고요. 윤정아 씨보다는 손채영 씨가 해줬으면 좋겠다고. 솔직히 회사 입장에서도 욕심이 났고요.”

대표가 부스스한 머리를 더 헝클었다. 거의 쥐어뜯다시피 했다.

방송국과 제작사 입장은 이해가 간다. 윤정아도 원톱 여주인공감이긴 하지만, 손채영하고 비교하면 빛이 바래니까. 중국 수출까지 생각하면 무게추가 더 기울고.

“왜, 손채영 씨가 휴식기가 길었잖아요. 슬슬 복귀할 타이밍이고, 다른 작품 물망에 올랐다는 얘기도 안 들리고 해서 저희끼리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헛짓을 했죠. 그런데 그게 윤정아 씨 귀에 들어가는 바람에.”

“아.”

“저희가 까였죠. 까일만 했어요.”

제작진이 배우 여럿을 물망에 올리고 접촉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한쪽을 구두계약으로 잡아놓고 다른 배우를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들켰으면 뒷발로 까여도 할 말이 없다. 자존심에 살고 죽는 게 연예인인데.

“남자주인공 얘기 중이던 배우도 윤정아 씨랑 같은 소속사라 한꺼번에 날아가고, 부랴부랴 캐스팅 새로 하려고 했는데 UBS쪽에서 홀드 시키더라고요. 다른 프로덕션에 주연배우 세팅된 작품이 하나 있는데, 편성 그쪽으로 넘길 수도 있다고. 제작시간이 좀 촉박하거든요.”

말하면서 대표가 절박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듣고 싶은 말이 뻔히 보여서, 더 시간 끌 것 없이 말했다.

“편성을 아예 뺏긴 건 아니시죠?”

“예, 아직. 근데 이대로 가면 시간문제죠. 당장 오늘 뺏길지도 모릅니다.”

“손채영 씨가 이 작품에 관심 있다고 해도요?”

대표의 얼굴에서 먹구름이 싹 밀려나갔다. 사무실 곳곳에서 내 쪽을 힐끔거리던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엎어졌다고 생각한 작품이 기사회생할 가능성을 봐선지, 열광적인 눈빛이다. 그들이 떡진 머리를 맞대고 떠들었다.

“손채영 씨랑 논의 중이라고 하면, UBS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UBS에 당장 손채영 씨랑 미팅 잡는다고 하고, 시간부터 벌자.”

“근데 저쪽은 당장 내일이라도 촬영 들어갈 수 있다잖아요. UBS국장님 생방 촬영 질색하셔서 그냥 세팅 끝난 쪽에 편성 넘길 수도 있어요. 우리도 금방 세팅 끝낼 수 있다고 어필을 해야······.”

“그럼 남자주인공 임시로 누구 좀 세우면 어때요? 논의 중이라고. 일단 시간만 벌어놓으면, 그 다음에 캐스팅 무산된 걸로 하고 다른 배우 다시 캐스팅하면 되잖아요.”

“그걸 당장 누구한테 부탁해? 조연도 아니고 주연인데, 친한 배우 있어?”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말을 던졌다.

“보여주기 식으로 밥 한 끼 먹는 정도면······ 서지준 씨는 어때요?”

음소거를 누른 것처럼, 소리가 뚝 멈췄다. 누군가 튕기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없이 끄덕였다. 직원들 면면을 쭉 돌아봤다. 굳이 대답을 안 들어도 될 것 같은 표정들이다.

나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바로 미팅 잡죠.”

*

2팀장이 나와 손채영을 번갈아 쳐다봤다.

내가 몇 년간 봐온 것 중 가장 얼빠진 표정으로, 그가 물었다.

“채영이, 넌 왜 여깄어?”

손채영이 나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웃었다.

“내 매니저 따라왔죠.”

< 적성에 맞는 길로 (2) > 끝

ⓒ 장우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