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통수치는 것들은 (7) >
불쾌하게 상쾌한 아침이다.
다른 때라면 잡히는 대로 입고 나갔겠지만, 오늘은 모처럼 옷장 앞에서 시간을 투자했다. 정장에 넥타이는 너무 전투복 같고. 티셔츠는 너무 해이한 느낌이고. 절충해서 얇은 슬랙스에 빳빳한 남색 와이셔츠를 입고 집을 나섰다.
11시 십분 전.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넵튠 숙소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현관문 앞은 썰렁하다. 늘 마중 나와서 ‘오셨어요?’하고 묻던 이송하의 목소리가 주방에서 들려온다. 거실에 보이는 건 부담스러울 만큼 큰 과일바구니 뿐이다. 임서영과 엘제이, 이태희까지 모두 주방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문 열리는 소리도 못 듣고 뭘 하나 했더니 이미 선객이 있다.
“조막만한 냉장고에 무슨 외국 향신료가 이렇게 많니? 음식 많이 해먹니?”
중년여자가 냉장고 안에 머리를 박고 물었다.
임서영이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대답했다.
“아뇨, 어머니. 향신료 같은 건 엘제이네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거예요.”
“그래? 어머나, 김치도 종류별로 있네? 이런 건 마트에서 사먹니?”
“어, 그건 저희 엄마가 얼마 전에 보내주셨어요.”
“아······ 그래? 그럼 이 마른반찬도 다 서영이네 어머님 솜씨야?”
“그건 태희언니네 집에서 보내신 거예요. 선우 오빠가 가져온 것도 있고.”
중년여자, 이송하 어머니가 냉장고 문을 닫았다. 이송하와는 그리 닮지 않은 얼굴위로 곤란한 빛이 스친다.
“다른 엄마들이 고생 많으셨네.”
“안녕하세요, 어머니. 일찍 오셨네요.”
가까이 다가가며 인사했다. 식탁에 앉아있던 이송하가 벌떡 일어난다. 살림살이 검사라도 받는 것처럼 서있던 애들 얼굴에도 반가움이 핀다. 동시에 나를 돌아본 이송하 어머니가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웃었다.
“우리 정 실장님은 점점 더 훤칠해지네요. 이번에 또 승진한다면서요? 아들이 이렇게 일도 잘하고, TV에도 나와서 유명해지고, 정 실장님 부모님은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르시겠네.”
“그런 걸로 치면 어머니는 평생 배부르셔야죠. 이송하가 딸인데.”
“아, 그렇게 되나? 난 아직도 쟤가 연예인이라는 게 실감이 잘 안 나요.”
교양을 겹겹이 두른 말투. 머리는 미용실에라도 다녀온 듯 잔머리하나 없이 단정하다. 귓불에 매달린 엄지손톱만한 진주귀걸이가 눈에 띈다. 옷차림은 구김 하나 없는 고상한 투피스. 저쪽은 제대로 전투복장이다.
“자주자주 애 들여다보고 해야 하는데, 내가 그동안 너무 정신이 없었어요. 작년엔 우리 둘째 유학 보내놓고 신경 쓰느라 정신없었고, 재작년엔 넷째 대입 때문에 또 정신없었고. 올해는 첫째가 혜문여대 졸업했거든요. 그 애 취업 때문에 또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엄마.”
이송하가 말허리를 끊었다.
“내 방으로 가.”
“얘는, 엄마 얘기하는데.”
“언니들 스케줄 준비해야 돼서 바빠. 들어가.”
목소리에 살얼음이 꼈다. 하지만 이송하 어머니는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한 듯 다른 멤버들과 사근사근한 인사까지 나누고서야 방으로 들어갔다. 애들이 한숨을 쉬며 소파에 늘어졌다.
임서영이 내 셔츠자락을 덥석 움켜쥐었다.
“오빠, 갑자기 뭐예요? 무슨 얘기 하러 오신 거예요? 뭔 일 있는 거예요?”
“일은 무슨. 그냥 송하 보러 오신거야. 너희 부모님도 자주 오시잖아.”
거짓부렁 말라는 듯, 애들이 가느다란 눈으로 쳐다본다. 애들은 유난히 이송하 어머니를 어려워했다. 그녀가 예전에 이송하를 넵튠에서 탈퇴시키는 게 어떠냐고 물었던 사실을 전혀 모르는데도.
시선을 뒤로하고, 생강차 세잔을 챙겨 이송하 방으로 들어갔다.
모녀가 침대 밑 러그에 앉아 대화하는 중이었다.
“다른 엄마들이 김치나 반찬 챙겨주시면 엄마한테도 얘길 해줘야지.”
“뭐하러.”
“엄마가 알았으면 뭣 좀 챙겨서 보냈을 거 아냐.”
“됐어.”
정확하게는 이송하 어머니가 말하고, 이송하가 흘려듣는 중이다.
“애가 왜 이렇게 무신경하니. 엄마가 정신없어서 신경 못쓴다고 너까지 얻어먹고만 있으면 어떡해? 이송하 엄마는 애 숙소에 보내놓고 신경도 안 쓴다고 흉봤겠다. 다른 애들 뭐 좋아하니? 엄마가 갈비찜 좀 만들까?”
“됐다니까. 우리 거의 외식해. 있는 것도 다 못 먹어.”
“다 못 먹으면 버리더라도, 챙길 건 챙겨야지.”
이송하가 한숨처럼 웃었다. 내 쪽을 힐끔 보더니, 시선을 바닥에 처박는다.
두 사람 사이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차 좀 드세요.”
“고마워라. 정 실장님도 자취하죠? 갈비찜 좀 넉넉하게 해서 보낼까요?”
“전 괜찮습니다. 저도 집에서 밥 해먹어본 지 오래됐어요.”
“결혼해야겠네. 주변에 괜찮은 여자 없어요? 가만있어봐. 우리 집에 딸만 넷인데, 우리 첫째 딸이랑 네 살 차인가?”
“다섯 살이야.”
이송하가 생강차를 마시다말고 탁 내려놨다. 표정이 냉랭하다.
“내 얘기 하러 왔으면 내 얘길 해. 자꾸 언니 얘기 하지 말고.”
“알았어, 알았어. 스물둘이나 됐는데 아직도 애 같아가지고.”
찻잔을 문지르며 둘을 바라봤다. 이년동안 넵튠을 담당하면서 애들 가족도 수차례 만나봤는데, 이송하의 가족들은 유달리 복잡하다. 흔히들 말하는 극성맞은 가족들은 아닌데. 오히려 멀리서 보면 그림처럼 화목한 가족 같아 보이는데.
한 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위화감이 느껴진다.
이송하가 더 깡깡 얼어붙기 전에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아, 우리 송하 차기작 말이에요. 혹시 결정됐어요?”
이 정도는 괜찮다.
자식을 맡겨놓은 부모 입장에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한 건 당연하니까.
“꾸준히 검토 중입니다. 작품이 워낙 많아서요. 송하한테 가장 잘 맞는 작품으로, 신중하게 골라야죠.”
“휴식기가 너무 길면 안 좋다던데.”
“그런 건 일이년씩 쉬는 배우들 얘기고요. 로열패밀리는 끝난지도 얼마 안됐고 이소희 캐릭터가 여전히 반응이 괜찮아서, 차기작을 급하게 결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바로 이어서 작품하면 시청자들이 캐릭터를 헷갈려 해요.”
이송하 어머니가 내 말을 경청하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송하는 한쪽 무릎을 세워 턱을 괴어놓은 채, 관찰하듯 제 어머니를 주시했다. 곧 이송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기획안 들어온 거나 시나리오 같은 거, 나도 좀 같이 봐도 될까요?”
이 정도도 괜찮다.
실제로 자식의 작품을 미리 살펴보는 부모는 많다. 여배우의 경우 작품에 노출 씬이 있으면 집에서 반대하는 경우도 많고. 전문적인 조언은 아니더라도, 가족들의 응원이 배우에게 자신감을 주는 경우도 많으니까.
“갑자기 그게 왜 보고 싶어졌는데?”
이송하가 불쑥 물었다.
“갑자기가 아니라 진작부터 보고는 싶었지. 애엄마가 너무 간섭하면 치맛바람이라는 소리 들을까봐 가만히 있었던 거지. 그런데 들어보니까 다른 배우들 엄마도 시나리오 검토 정도는 다 하신다더라. 작품 결정할 때 매니저랑 상의하기도 하고. 그죠, 실장님?”
신인이나 무명 배우의 경우엔 대체적으로 회사의 목소리가 크다. 배우나 배우의 가족들도 회사의 결정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경우가 많고.
하지만 탑급 배우쯤 되면 작품 선택 시 배우의 목소리가 커진다. 계속 매니저에게 결정을 맡기는 경우도 있지만, 배우가 일방적으로 작품을 낙점하는 경우도 많고. 그 과정에서 배우의 가족들 의견이 크게 반영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매니저와 연예인 가족 사이에 의견충돌도 일어나고.
둘 중에 한쪽이 머저리거나 또라이면 박 터지게 싸우는 거고.
“······그런 경우도 있고. 회사 믿고 맡기시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도 기왕이면 어머니가 제 안목을 믿어주셨으면 좋겠는데. 작품 선택 문제로 의가 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걱정되네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내숭 떠는 거야 이제 이골이 났다.
“어머, 내가 정 실장님 안목 못 믿어서 이러는 건 아니에요!”
이송하 어머니가 황급히 손사래를 친다.
“우리 정 실장님 의견이야 내가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죠. 지금까지 송하한테 골라주신 작품들이 다 성공했는데. 그리고 나도, 실장님 의견 무시하고 무조건 내가 고른 작품 해야 된다고 우기는 짓은 안 해요. 무식한 짓이지, 그건.”
“그럼 안심이고요.”
“그냥, 엄마가 돼서 애한테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작품은 오빠 의견이 최우선이야.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댔어.”
이송하가 딱 잘라 말했다.
이송하 어머니가 머쓱한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
“엄마도 알아. 설마 엄마가 너 잘못되라고 염불하겠니?”
그리고 다시 내 쪽을 돌아본다.
“실장님, 그냥 얘한테 그동안 너무 신경을 못 쓴 것 같아서 그래요. 촬영장에도 따라가서 감독님들한테 인사하고 그러는 엄마들도 있다던데, 그건 또 너무 극성인 것 같고. 작품 보는 것 정도는 괜찮죠?”
“그럼요. 괜찮죠.”
괜찮은데.
그게 2팀장이 부추겨서 하는 일이라면, 그건 안 괜찮지.
“저희 2팀장님이 이런저런 얘길 많이 하셨나 보네요.”
“아, 그게.”
이송하 어머니가 조금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내가 먼저 주책 떨고 그런 건 아니에요. 그분이 안부전화를 주셔서, 인사하고 몇 마디 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얘기가 길어진 거지. 그분이 궁금한 것도 많이 알려주시고······.”
“궁금한 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묻지 말고.”
이송하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이송하 어머니가 아까보다 더 무안한 표정으로 입을 달싹였다.
“회사 팀장님이 왜 이 사람 저 사람이야?”
“좀 조심스러워서 그렇습니다.”
내가 곤란한 티를 내며 말했다.
“같은 회사라고 해도 팀이 달라서요. 그쪽 팀에도 여배우들이 있다 보니까, 아무래도 서로 경쟁 심리도 좀 있고. 송하처럼 잘 나갈 때는 당사자나 부모님이나 가능한 몸을 사리시는 편이 좋습니다. 별거 아닌 한마디가 악성루머로 변하니까요. 특히 연예인 가족 관련된 루머는 오래가기도 하고.”
“어머. 어머나.”
이송하 어머니의 표정이 확 달라진다. 안절부절 가만히 있질 못하면서, 2팀장과의 통화중에 말실수한 건 없는지 기억을 되짚느라 바쁘다. 나는 이송하와 잠깐 눈을 맞췄다. 그리고 미지근하게 식은 생강차를 마셨다.
어쨌든 그동안 잠잠하던 호수에 돌이 떨어진 건 분명하다.
싸늘한 머릿속에, 차근차근 앞으로의 계획을 채워 넣었다.
*
“안에 2팀장님 계시죠?”
“어, 예, 계시긴 한데. 지금 통화중이시니까 좀 기다······!”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시사평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잘······.”
직원의 말대로 통화중이던 2팀장이 날보고 멈칫한다. 나는 팀장실 안을 둘러보다가 2팀장 정면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2팀장이 이맛살을 구겼다. 통화 계속 하시라고 손짓을 하고, 테이블에 놓인 것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VIP배포용 시사회 티켓과 팜플렛, 포스터 따위가 가득하다.
‘러브어게인’
내가 어젯밤 시사회로 보고 온 송인호의 데뷔작이다.
“아, 갑자기 불청객이 들이닥쳐서. 그럼 매거진 평론도 잘 부탁해요.”
말은 불청객이지만 표정은 산타클로스라도 만난 것처럼 즐거워 보인다. 나한테 효과적으로 엿을 먹였다고 생각해선지, 아니면 송인호의 데뷔작 시사회 반응이 좋아선지. 입에 귀에 걸렸다.
2팀장이 금방 전화를 끊었다.
“이 자식이, 이제 노크도 없이 막 들어오네? 넌 인마, 경우도 없냐?”
“송하 어머니랑 연락하셨던데요. 그것도 뭐, 썩 경우 있는 일은 아니죠.”
포스터를 들고 송인호의 얼굴을 살펴보며 대답했다.
흥얼거리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인호 데뷔작 나온 건 알지?”
“어제 봤습니다.”
“그래?”
무슨 생각을 했는지, 2팀장의 웃음이 더 짙어진다.
“관심 없는 척 하더니 신경이 쓰이긴 했나보네. 시사회 뜨자마자 가서 감상하고. 시사회 표는 홍보팀에 가서 구했냐? 나한테 얘기했으면 좋은 자리로 하나 빼줬을 텐데.”
책상위에 다리를 얹고 있던 그가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 앉아 VIP시사회 티켓을 집는다.
“안 그래도 표가 남아서 소속배우 가족들한테 선물로 몇 장씩 돌렸거든. 송하 어머님한테도 이것 때문에 전화 드렸지. 회사 식구 좋은 게 뭔데. 이런 건 좀 챙겨드리고 해야지.”
아. 식구.
“그런 일이면 저한테 주시죠. 뭘 직접 전화까지 하십니까?”
“너 요즘 바쁘잖아. 다른 애들 집에 연락하는 김에 한꺼번에 했지.”
기분 나쁜 티를 좀 냈더니, 2팀장의 목소리가 한층 더 밝아진다.
그가 다리를 꼬아 올리며 물었다.
“너 이송하 첫째 언니가 혜문대 나온 건 아냐? 둘째 언니는 전도유망한 미대생이고, 막내는 국가대표 될지도 모른다던데. 자매들이 분야별로 재능이 출중하더라고. 성격들은 어떤지 몰라도.”
“저 엿먹어보라고 송하 가족까지 끌어들이시는 겁니까?”
“선물 때문에 전화 한통 한 걸 가지고 뭘.”
2팀장이 어깨를 들썩였다. 얕잡아보는 기색이 역력하다.
나 같은 애송이는 날고 기어도 제 맞상대가 안 될 거라고 확신하는 눈빛.
“왜, 기분 나쁘냐?”
“그럼 좋겠습니까?”
“이젠 내 새끼, 내 심기 그만 건드리고 네 일이나 신경 써.”
“서지준 씨 문제는 제가 분명히 해명했던 것 같은데. 왜 2팀장님 별명이 시어머닌 줄 알겠네요. 시집도 안 갔는데 시집살이하는 기분이네.”
2팀장의 뺨이 꿈틀거렸다. 험상궂은 눈이 나를 쏘아본다.
“애초에 해명이 필요한 일은 하질 말아야지. 이 바닥은 이런 일에 예민하거든. 뒤통수치는 것들이 워낙 많아서.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잘 배우라고. 뭐, 정 기분 나빠 못 견디겠으면 대표님한테 가서 하소연이라도 해 보든가.”
그가 다시 피식거리며 말했다.
“하소연할 거나 있나 모르겠지만. 네가 지금까지 대표님 유한 면만 봐서 혹시 착각할까봐 하는 말인데. 대표님이 별것 아닌 하소연 들어줄 분은 아니야.”
“하소연할 생각 없습니다. 백한성 대표님 방식은 저도 좀 알고요.”
일을 하나 처리하면,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주는 사람이라는 건 알지.
그리고 일단 입 밖으로 꺼낸 말은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일어나며 말했다.
“송인호 씨 영화, 잘 됐으면 좋겠네요.”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2팀장이 코웃음을 쳤다. 나는 송인호의 영화 팜플렛을 한 장 집었다.
“그럼요. 회사 식군데.”
2팀장실을 나와 라운지로 올라갔다. 사람들 틈에서 지난번에 매니저 명함을 들이밀었던 블랙아웃팀 실장이 다가왔다.
“어, 뭐 먹었어요?”
“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싹 없어졌는데? 컨디션도 좋아 보이고. 3팀장님이 뭐 좋은 거 구해줬어요? 붕어? 미꾸라지?”
“글쎄. 뱀이요?”
블랙아웃팀 실장이 식겁하며 물러난다. 웃으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책상에 얼굴을 박고 있는 김현조에게 말했다.
“실장님, 저 오후에 밖에 좀 나갔다올게요.”
“왜, 미팅 잡혔냐?”
“아뇨. 손채영 좀 만나려고요.”
김현조의 표정이 뜨뜻미지근해진다.
“야, 너 손채영 차기작 건은 이제 손 떼는 게 낫지 않겠냐? 그냥 대표님 부탁이니까 구색만 맞추기로 한 거 아니었어?”
“그랬죠.”
그래서 첫날 까인 이후로는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았고.
백한성 대표가 내건 대가는 탐났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손채영한테 매달리면서까지 그걸 얻어내고 싶진 않았으니까. 좀 천천히 돌아가더라도 내 팀은 내 손으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뭐?”
그 대가가 당장 필요해졌거든.
들고 있던 송인호의 팜플렛을 접어 주머니에 넣고, 발길을 돌렸다.
이번엔 내 적성에 맞는 길로 가보지 뭐.
< 뒤통수치는 것들은 (7) > 끝
ⓒ 장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