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186화 (186/218)

< 뒤통수치는 것들은 (5) >

“정 팀장님! 왜, 왜 이래요? 이렇게 쳐들어가서 뭐라고 하려고요?”

그러게.

이성을 붙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화가 나는 건 당연하다. 개소리를 전해 들었으니까. 하지만 이러고 들어가서 어쩌려고. 2팀장 멱살 잡고 수작부리지 말라고 깽판이라도 치려고? 턱수염 쥐어뜯으면서 욕이라도 해? 아, 그건 좀 괜찮은데.

아니지,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 내가 이장현 실장에게 들은 말이라곤, 나한테 뒤통수를 맞았다고 착각한 2팀장이 이송하랑 나를 한데 묶어서 작당모의를 했다는 것뿐이다.

확실한 증거도 없고, 뭐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까 침착하자. 가던 길 멈추고 잠깐 참자고.

생각부터 정리한 다음에 계획을 세워야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2팀장한테 꿍꿍이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 거기 대비할 방법을 찾고, 수작을 받아넘겨서 오히려 저쪽 뒤통수를 깨뜨릴 방법도 찾고.

이성은 그렇게 말하는데,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진다.

충동조절장애란 게 이런 건가? 마치 이성과 충동이 쩍 분리된 기분이다.

온 몸이 들끓었다. 뱃속을 활활 태운 불길이, 발버둥치는 이성마저 불싸질렀다. 머릿속도 금방 그을음으로 가득 차 못쓰게 됐다.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으로 매캐한 탄내가 올라온다.

그래, 침착은 개뿔. 참긴 뭘 참아. 사리라도 만들려고?

이송하랑 나를 갈라놓고 내 뒤통수를 어째?

이건 참을 만한 일이 아니지.

거칠게 비상구 문을 열고 나갔다. 흡사 미래예지를 볼 때처럼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기분이다. 허둥지둥 따라오던 이장현 실장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숨는다. 마침 조 실장이 2팀장실 문을 열고 나오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그가 흠칫 놀란다.

“2팀장님 안에 계시죠?”

“무슨 일인데?”

바로 문을 두드렸다.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뭐야?

“정선웁니다.”

-뭐? 누구?

“말씀드릴 게 좀 있어서요.”

문 안쪽이 잠잠해진다. 조 실장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쳐다본다.

-들어와.

나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

네댓 명의 실장들이 2층 복도에서 서성거렸다. 누군가 팝콘과 콜라 대신 믹스커피를 탄 종이컵을 날라 왔다. 그들은 커피를 홀짝거리며 굳게 닫힌 2팀장실 문을 곁눈질했다. 그 앞에는 조실장이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정선우 뒤풀이 파티 날부터 둘이 분위기 쎄하더라니.”

“쎄한 건 한참 됐지. 2팀장님이 전부터 정선우 눈엣가시 취급했잖아. 그게 뒤풀이 날 펑펑 터진 거지. 대표님이 대놓고 정선우 팀장 운운해서 한번, 서지준이랑 임주원 그러고 나타난 거에서 또 한 번.”

“왜, 안 그래도 남조윤 일 때문에 2팀장님 감 떨어진 거 아니냐는 얘기 많았잖아. 이제 서지준이랑 임주원 스케줄도 정선우한테 물어봐야 되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니까?”

“소속 연예인들도 들썩거리고. 팀장님도 이번엔 완전 꼭지 돌았을 걸?”

“두 바퀴는 돌았을 거다. 연예인들 보고 맨날 내 새끼, 내 새끼, 하는 사람인데. 우리한테 맡겨놓고도 시어머니처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잖아. 정선우가 그걸 건드리면 진짜 전쟁 터지는 거지.”

실장들의 눈이 다시 2팀장실 문에 꽂혔다.

누군가가 말했다.

“정선우가 어떻게 나오느냐가 관건이네.”

***

“네가 나한테 할 얘기가 뭐가 있어?”

2팀장이 물었다. 날 역병 보듯이 쳐다보면서.

나는 소파 한쪽에 앉으며 되물었다.

“제가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십니까?”

“뭐?”

기막힌 표정을 짓더니, 급기야 코를 킁킁거린다.

“너 술 마셨냐? 정신 나갔어? 난데없이 들이닥쳐서 뭐라는 거야?”

묻는 거지. 아까는 멱살을 잡을까, 꼴 보기 싫은 턱수염을 쥐어뜯을까를 고민했었는데. 정신 나간 건 그런 거고. 지금은 정신이 나갈락 말락 하는 거지.

“한번 짚고 넘어가고 싶어서요.”

그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저는 2팀장님이랑 원수질 만한 짓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팀장님은 저를 그 수준으로 싫어하시는 것 같아서. 당하는 입장에서는 이유가 궁금한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한번 들어나 보자고.

“이유를 알면. 고치기라도 하게?”

“제가 독불장군도 아니고, 납득이 될 만한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죠.”

솔직히 말하자면, 개도 안 믿을 거짓말이었다. 뭘 들어도 납득 못할 테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런 일을 당할 만큼 잘못한 기억은 없거든.

2팀장이 비웃듯이 말했다.

“어떻게 마음에 들겠냐. 햇병아리 주제에 버르장머리 없고.”

그놈의 햇병아리, 햇병아리. 이제 중닭취급 정도는 해주지.

“주제넘은 일을 예사로 벌이고. 곱게 보려고 손 내밀었더니 엿 먹으라고 대들지를 않나. 입사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하는 짓마다 사사건건 거슬리는데, 어떻게 마음에 들겠냐고.”

역시 납득이 안 되는데.

내 기억으론 성도원의 담당제의를 거절했을 때 미운털이 박혔고. 손채영과 심경택 선생 사건 이후 눈엣가시가 됐고, 2팀으로 들어와서 손채영을 맡아보라는 2팀장의 엿 같은 제안을 거절했을 때부터는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지.

남조윤 때는 한술 더 떴고.

이 정도면 유감이 있어도 내가 있어야지.

그래야 맞는 거 아닌가?

“그거뿐이야? 너 인마, 보란 듯이 내 새끼 빼돌려서 내 뒤통수치려는 놈 아냐. 보란 듯이 지준이 옆에 들러붙어서.”

확신과 악의에 찬 목소리다.

“너야말로 나한테 앙심 품고 지금 수작부리는 거 아냐?”

“앙심이요?”

“너 남조윤이 때문에 나한테 쌓인 거 많잖아.”

내 표정을 살피면서, 그가 천연덕스럽게 어깨를 들썩였다.

“아니야? 작년 여름에 남조윤이 영화 하나 불발된 거. 내가 무슨 수작 부렸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어처구니가 없으려니까. 알아보니 그 친구가 감독이랑 현장에서 트러블이 있었던 모양이던데.”

카운트다운을 하는 기분이다.

셋. 둘.

간당간당하게 목 매달린 이성이 말했다.

“아, 그 영화요. 그건 그렇게 불발된 게 천만 다행이었죠. 개봉했을 때 가서 봤는데, 촬영하면서 시나리오를 얼마나 뜯어고쳤는지 제가 알던 내용이 아니더라고요. 제작비 백억이라 손익분기점이 350만쯤 되던데, 한 30만 명 들었나?”

그 중에 내 표도 있지. 무려 세 번이나 봤다. 남조윤이랑 같이 한번, 나 혼자 두 번. 메이킹필름 때문에 기력이 쇠했을 때였는데 그걸 보고나니까 영양제 맞은 것처럼 피로가 싹 풀리더라고.

“그게 불발돼서 얼라이브 찍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전화위복이죠.”

2팀장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진다.

그가 했던 것처럼 어깨를 들썩이고 다시 말했다.

“그리고 2팀장님이 오해하시는 게 있는데, 저 서지준 씨 빼돌리려고 수작부린 적 없습니다. 왜 그렇게 확신하시는지 모르겠네요. 뒤풀이 날은 서지준 씨가 단순히 축하하려고 온 자리였습니다. 그 정도 친분은 있으니까요.”

차라리 서지준이 아니라 송인호를 거론했으면 움찔했을 거다.

내가 송인호를 탐낸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단순히 2팀장의 뒤통수를 치기 위한 건 아니었다. 그런 거였으면 진작 손을 썼지. 어떻게 2팀장의 관계를 파탄내지 않으면서 송인호를 데려올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거다.

만약에 송인호가 2팀에서 괴로워하지 않았다면. 거기서 문제없이 잘 적응했다면. 2팀장이 날 싫어하지 않았더라면. 나를 합리화하도록 도와준 몇 가지 조건들이 없었다면, 욕심을 뿌리째 뽑아버렸을 거다.

나는 ‘나쁜 짓’을 결벽스럽게 느껴질 만큼 경계하고 있었으니까.

“수작부린 게 아니라고?”

“그럴 생각 없었습니다.”

대답하자마자 2팀장이 코웃음을 쳤다. 귓등으로도 안 듣는 눈치다.

“아, 그럴 생각이 없었어?”

“없었는데. 자꾸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시네요, 팀장님이.”

툭 말했다. 다시 속이 끓기 시작한다.

멈칫한 2팀장이 나를 쏘아봤다. 마주보며 다시 말했다.

“2팀장님 말씀대로 조윤 형 일로 쌓아놓은 게 많습니다. 그러니까 팀장님도 조윤 형이든, 넵튠이나 송하든, 두 번은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뭐라고?”

“전 가능한 평화롭게 일하고 싶어서요. 제 일하는데 쏟아 부어도 부족한 힘을 싸우는데 쓰고 싶지도 않고, 탐장남아랑 죽네 사네까지 가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야, 인마.”

내 목을 조를 것처럼 살벌하던 2팀장이 갑자기 피식거렸다.

“내 안목이 떨어졌네, 어쩌네, 주변에서 떠드니까 내가 정말 눈병신이라도 된 줄 알아? 네가 지금 나랑 잘해보자고 말하려고 들어온 얼굴이야? 이제 제대로 한판 해보자고, 도화선에 불붙이러 들어온 얼굴이지?”

도화선에 불붙이러 온 얼굴?

손으로 입가를 더듬었다. 웃고 있다. 웃으면서 하고 들을 얘긴 아니었는데.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웃고 있었지?

가슴이 기묘하게 울렁거린다.

2팀장에 대한 화 때문인지. 아니면 뭔가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나는 거칠게 입술을 문질렀다. 그리고 일어나며 말했다.

“그렇게 보이셨으면, 도화선에 불을 안 붙이시면 되겠네요.”

2팀장은 대답이 없었다.

그저 기분 나쁘게 웃었다.

*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프리티, 프리티, 프리티걸입니다!”

대기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붕어들의 고개가 오십 번쯤 꺾였다. 눈앞에 사람이 보이면 연예인이든 스텝이든 가리지 않고 인사한다. 심지어 벽에도. 기합이 바짝 들어간 건 이태신 실장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인사를 받아주지만, 같은 걸그룹 같은 경우는 프리티걸을 마뜩찮게 보기도 했다.

나랑 넵튠 애들도 저랬었지.

“안녕하세요, 정 실장님!”

“야, 팀장님, 팀장님.”

“헉! 안녕하세요, 팀장님!”

낯익은 보이그룹이 줄줄이 다가와 인사했다. 나도 마주 인사했다. 그 뒤로도 연예인 출연자와 매니저들, 그리고 방송국 스텝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프리티걸 멤버들을 소개시키면서.

복도를 쭉 가로질러 VIP대기실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얼굴만 빼꼼 내밀던 매니저가 내 얼굴을 보더니 문을 활짝 연다. 오늘 메인MC인 박태평이 귀찮은 얼굴로 돌아봤다. 예전 스타매니저 촬영할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에 흐릿한 반가움이 스친다.

“이게 누구야?”

“오랜만에 봬요.”

인사하면서 프리티걸 애들 등을 떠밀었다. 국내에서 한손가락 안에 꼽히는 MC를 두고 바짝 얼어있다. 정재이가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운을 떼고 나서야 반복구호가 대기실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이고, 귀청이야! 나한테 잘 부탁하지 말고 그냥 알아서 잘해!”

비뚤어진 대답에 애들이 더 굳는다.

이태신 실장에게 애들을 맡기고, 박태평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오늘 살살 좀 해주세요. 얘들 공중파 떼토크는 처음인데.”

“야이씨, 출연자 매니저들이 차례대로 와가지고 우리 애들 분량 좀 만들어주라, 하고 찔러대는 것도 지겨워 죽겠다! 근데 초짜 애들 뒤치다꺼리까지 해야겠냐? 원래 신인 때는 편집도 당하고 하면서 배우는 거지!”

박태평이 테이블에 다리를 척 올려놓고 엄살을 떤다.

나도 한 마디 했다.

“전에 스피드 퀴즈 한다고 송하 전화연결 좀 해달라고 하셨을 때, 제가.”

“야! 걔 한 문제도 못 맞췄어!”

“방송은 재밌게 나갔잖아요. 고맙다고 SNS에 올리신 것도 봤는데.”

듣는 사람 기분이 나빠지지 않을 만큼, 살살 구슬렸다. 곧 박태평이 나랑 프리티걸 애들을 주욱 돌아봤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묻는다.

“어이고, 그래. 이 바닥이 이렇게 주고받는 정으로 돌아가는 거지. 너 녹화 내내 스튜디오에 있을 거야?”

“아뇨. 지금 다른 스케줄 미뤄놓고 왔어요. 오늘 녹화 MC가 형님이라고 해서 직접 인사하고 부탁드리려고.”

“그럼 리액션 컷 하나 따놓고 가. 네 얘기 하면서 애들 더 살려볼 테니까.”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윤솔이 우렁차게 외치며 인사했다. 다른 애들도 엉겁결에 허리를 숙였다. 앞장선 윤솔을 따라 다들 주 주먹을 꽉 쥐고 있어서인지, 걸그룹이 아니라 조폭을 보는 듯한 자세다.

“야, 너 메이필에서 성대모사 했던 애지? 하지 마, 채널 돌아가.”

“저 정선우 실, 팀장님 성대모사 준비 중인 거 있는데 기회를······!”

오연두와 이화인이 윤솔의 옆구리를 쑤셨다. 박태평이 실실거렸다.

“그건 해. 개떡 같을수록 좋아.”

< 뒤통수치는 것들은 (5)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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