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그의 사람인가 (12) >
앨범 커버가 음원사이트 메인화면에 올라왔다. 연습실이 술렁였다.
“어이구, 화력 죽이네! 앨범에 댓글수가 미친 속도로 올라가는데요?”
“온라인도 ‘드디어 떴다’는 반응입니다! 불판 후끈후끈해요!”
“진입 순위는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무조건 삼위 안에는 들겠다!”
“있어봐, 지금 상위권 음원들 콘크리트라서 의외로 뚫기 힘들 수도 있어.”
사람들이 음원사이트와 온라인 실시간 반응들을 관찰하며 소란스럽게 떠들었다. 진입 순위에 대한 예측이 사방에서 거론됐다. 들뜬 흥분이 연습실 안을 흠뻑 적셨다.
“내기할까요? 전 2위로 진입한다에 만원 겁니다!”
“나는 3위권 밖으로 진입해서 1위까지 올라간다에 만원 건다!”
“정 실장님! 아니, 팀장님은요?”
스타일리스트가 물었다.
나는 바닥에 앉아 노트북을 들며 대답했다.
“일단.”
수십 쌍의 시선이 내 쪽으로 몰려든다. 주위 눈치만 살피던 프리티걸 멤버들의 시선도 나를 졸졸 쫓아온다. 마우스를 움직여 앨범을 클릭했다. 앨범 커버가 커진다. 프리티걸이 나무가 울창한 숲속을 맨발로 해매는 사진이다.
아티스트, 프리티걸.
기획사, W&U엔터테인먼트.
디지털 싱글 앨범, 네버랜드.
재생버튼을 눌렀다.
“일단 올라온 곡부터 들어보고. 순위는 그 뒤에 확인하죠.”
노트북 스피커에서 네버랜드의 전주가 흘러나온다.
촬영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물리도록 들은 곡이다. 나도 그랬으니 직접 연습하고 녹음한 프리티걸 애들이야 더하겠지. 하지만 애들은 처음 듣는 곡인 것마냥 노트북에 찰싹 달라붙었다. 꿈꾸는 것처럼 몽롱한 얼굴로.
“······나왔네. 앨범.”
댓글창을 열어주고 정재이에게 마우스를 건넸다. 애들이 허겁지겁 댓글창을 둘러본다. 프리티걸의 앨범제작기를 함께 지켜본 메이킹필름 시청자들, 프리티걸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앨범이 공개되자마자 찾아와 올려놓은 댓글.
지금도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댓글들은 대부분 비슷한 내용이었다.
음원이 나오길 눈 빠지게 기다렸다. 기대했던 만큼, 곡이 너무 좋다.
그동안 고생했다. 앞으로도 힘내라.
“고생했어. 이제 긴장 풀고 숨 좀 쉬어.”
내 말에, 프리티걸 애들이 머뭇거린다.
오연두가 작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근데, 아직 순위는 안 나왔는데요?”
“앨범이 나왔고, 곡이 좋다는 칭찬도,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많고. 결과적으로 프리티걸 해체 위기도 극복했고. 나는 이만하면 이번 프로젝트는 넘칠 만큼 성공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순위는 뭐, 보너스 같은 거고.”
“저, 정말이요? 성공한 거예요?”
“사실, 사실은 저희는 차트 백 등 안에만 들어도 좋을 것 같은데.”
“근데 상위권에 못 들면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큰일 날 게 뭐 있어. 순위가 높으면 당연히 좋은 거지만, 좀 낮다고 너희가 실패한 건 아니잖아.”
순위가 낮을 리 없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목이 근지러운 것을 간신히 참고 말을 덧붙였다.
“고생했고, 잘 했어.”
긴장이 녹기 시작했는지, 줄곧 경직돼 있던 애들 입가에 비로소 웃음이 떠오른다. 홀로 냉가슴을 앓았었던 정재이가 제일 빠른 속도로 녹았다. 눈동자가 금세 물기에 푹 잠긴다. 울컥 쏟아질 것만 같은 눈물이 아슬아슬하다.
눈가의 눈물점이 일그러진다. 결국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걸 시작으로, 애들이 납죽 절하다 시피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실장님! 팀장님! 사장님!”
“사장은 아니고.”
“앞으로 정말 착하게 잘 살겠습니다!”
“어, 뭐.”
인사로 모자라 손끝을 꼼지락거리며 다가온다.
“음. 나머지는 이태신 실장님이랑 하고.”
바통을 넘기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한 걸음 빠져나와 넵튠 애들 곁으로 다가갔다. 작년 생각이라도 했는지 다들 감회어린 표정들이다.
“가서 축하해줘.”
등을 떠밀자, 임서영이 기다렸다는 듯 다른 멤버들까지 데리고 달려갔다. 프리티걸과 이태신 실장이 만든 감격과 환희의 현장에 넵튠이 합세했다. 그 주변으로 따듯한 소란이 일어났다.
메이킹필름의 촬영기간 동안 프리티걸 멤버들은 시종일관 밝았다. 임서영 앞에서 긴장이 풀려서 대성통곡했던 걸 빼면., 눈물 보인 일이 드물었다. 시청자들이 감성 팔이 방송이 아니라 웃음 팔이 방송이라고 불렀을 만큼.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참기 힘들었는지 결국 울음이 새나왔다. 붕어들답게 삽시간에 눈이 빨갛게 무른다. 아직도 통화가 연결돼 있는 부모님들과 통화하고 나서는 대성통곡으로 접어든다.
넵튠 애들이 대신 전화기를 넘겨받아 인사하고 사정을 설명해야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메이킹필름의 카메라들이 빠짐없이 촬영했다.
나를 따라오려는 VJ감독에게 고개를 젓고, 유수영 피디에게 다가갔다. 유수영 피디가 메이킹필름 기획안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은근한 눈빛이 나를 돌아본다.
“엔딩 그림 나왔네요.”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이거 아쉬워서 어쩌나. 정 팀장님은 좀, 방송 체질인 것 같은데요?”
“별로 반가운 체질은 아니네요.”
“방송용은 끝났으니까 우리도 비방용 얘기 좀 해볼까요?”
유수영 피디가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보너스는 두둑해야 제 맛이죠. 전 진입 1위에 만원 걸게요.”
“전 지붕까지 올라갈 것 같은데요.”
어깨를 가볍게 들썩이며 대답했다.
우리 둘의 대화를 들은 팀원이 손을 흔들었다.
“차트! 5분 차트 확인해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몇 명이 동시에 손가락을 움직였다.
다음 시간대의 실시간 차트 순위를 5분 단위로 미리 엿볼 수 있는 차트. 넵튠 미니앨범 때도 확인했었는데, 그때는 넵튠의 이름을 찾지 못했다. 예상차트에 그래프가 뜨는 건 차트 1위부터 3위까지 만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어, 어, 있다! 예상차트에 떴어요!”
손놀림이 가장 빨랐던 직원이 소리쳤다. 삑사리가 난 목소리로.
“몇 위예요? 몇 위?”
“이, 1위요! 그리고······!”
연습실 안이 뒤흔들렸다. 울고 있던 프리티걸도, 촬영 팀도 놀라서 돌아볼 만큼 요란한 환호성이었다. 이관우가 재빨리 노트북을 내 앞에 내밀었다. 점유율 그래프가 보인다. 바닥부터 시작해서 멈추지 않고 쭉 뻗어있다.
그래프 천장까지, 시원하게.
앨범공개 한 시간 후. 프리티걸의 신곡은 1위로 차트에 진입했다.
순위 집계 그래프는 시작부터 천장을 걷어찼다. 집계된 데이터 수치가 너무 커서 그래프 상으로 다 나타내지 못하는, 가요계 관계자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그림이다.
보도자료가 풀렸는지 봇물 터지듯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축포대신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당사자인 우리뿐 아니라 수많은 연예부기자들, 그리고 온라인의 이름 모를 사람들이 함께 밤을 새하얗게 불태웠다.
축하의 글도 많았지만, 어떻게든 깎아내리려는 악의적인 글도 많았다.
방송 인지도 빨이니 몇 시간은 지켜봐야 정확하다.
새벽 지나면 순위 떨어질 거다.
뭐, 이런 것들.
하지만 5분 예측 차트에 있는 프리티걸의 그래프는 단 한 번도 발을 헛디디는 일 없이 지붕 위를 걸었다.
두 시간. 세 시간. 그리고 아침 해가 밝아올 때까지.
그리고 그 해가 다시 떨어질 때까지, 계속.
***
“이게 웬 난리야?”
2층으로 내려가는 층계참. 2팀 실장 한명이 계단 위쪽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드는 소리, 유리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경을 쓴 다른 실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프리티걸 뒤풀이 한다고, 정선우가 4층이랑 5층 통째로 전세 냈잖아.”
“뒤풀이를 하려면 식당이나 홀을 빌리든가, 우린 다 그렇게 하잖아. 왜 정선우만 회사를 통째로 전세내고 지랄이냐고. 상대적 박탈감 느껴지게. 이래도 되는 거야?”
“되지. 대박 났잖아. 그리고 메이킹필름 덕분에 W&U 가족적이고 따듯한 회사라고 이미지메이킹도 제대로 했고. 지금도 위에 카메라 있더라. 방송 에필로그용 그림 찍는다고.”
“염병. 될 놈은 뭘 해도 되는구만.”
“직원들은 편하게 와서 먹고 마시라던데, 가서 구경이나 할까?”
“아서라, 아서.”
또 다른 2팀 실장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팀장님한테 걸리면 눈총을 바가지로 받을 걸? 말이 프리티걸 뒤풀이지, 저거 알맹이는 정선우 뒤풀이라더라.”
그가 입맛을 다시며 덧붙였다.
“정선우 팀 프로젝트, 성공기념 뒤풀이.”
***
“선우 씨! 축하해요! 여기 한잔!”
“아, 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하며 샴페인 잔을 비웠다. 그리고 손닿는 곳에 놓인 카나페 하나를 입에 넣었다.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 정신이 없긴 한가보다.
그간 축하할 일은 많았지만, 뒤풀이를 이렇게 거창하게 하는 건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넵튠 숙소에서 애들이랑 치킨과 맥주, 산삼주를 마시는 정도였으니까. 좀 그럴싸하게 하는 경우도 식당이나 호프집이었고. 그랬는데.
지금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4, 5층을 거의 백번쯤 오르내린 것 같다.
손 안에서 낭창거리는 샴페인 잔이 영 어색하다.
수많은 사람들한테 축하를 받고 인사를 나누느라, 정작 넵튠이나 프리티걸 애들하고는 제대로 얘기도 못 나눴다. 김현조와 3팀장, 이관우도 어디쯤 있는지 모르겠고.
벌써 불콰하게 술기운이 오른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넵튠이나 프리티걸을 찾으려고 했는데, 반갑지 않은 턱수염을 발견했다.
2팀장이 샴페인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다가왔다.
“축하한다.”
축하하는 얼굴이 아닌데.
나한테 덕담 해주려고 왔을 양반은 아니고.
태연히 웃으며 대꾸했다.
“아, 감사합니다.”
“채영이 설득은 어떻게 돼가? 첫날 가서 만나더니, 이틀 동안 그냥 손 놓고 있는 모양이던데. 나섰으면 제대로 하는 척이라도 해야지. 네 식구 일 아니라고 너무 늑장부리는 거 아냐?”
그럼 그렇지. 잔칫상에 재 뿌리러 오셨구만.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요. 시간제한을 둔 적도 없고.”
“안 되겠으면 일찌감치 포기해. 괜히 붙들고 끙끙거리다가 병나지 말고.”
더 환하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2팀장님. 장염에는 바나나가 좋다던데요.”
“뭐?”
“스트레스성 장염이시라는 얘길 들어서요. 건강이 제일 중요하죠.”
2팀장의 표정이 팍 찌그러졌다. 보는 눈도 많고 저쪽엔 카메라까지 있는데, 잔칫상을 엎진 못하겠지. 느긋하게 생각했을 때였다.
갑자기 4층이 크게 술렁였다. 혹시 나랑 2팀장이 유치한 기싸움을 하는 걸 들킨 건가 싶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하마터면 죄 없는 샴페인 잔을 박살낼 뻔 했다.
서지준이 계단을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손에 장미 꽃다발을 들고. 새빨간 장미 꽃다발. 그러니까, 장미 꽃다발.
맙소사. 촬영을 하다 왔는지 옷은 멋스러운 정장이다. 정장에 장미 꽃다발을 들고, 무슨 레드카펫을 걷는 것처럼 다가오고 있다. 나와 2팀장 쪽으로 거침없이. 그 와중에 졸졸 따라붙는 사람들에게 손 인사까지 하면서.
서지준의 뒤에서 흐뭇한 얼굴로 따라오던 이봉준 실장이 멈칫했다. 지진 난 것처럼 흔들리는 눈빛이 나와 2팀장을 번갈아 본다. 그가 황급히 손을 휘저었지만, 서지준은 이미 내 코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정 실장님, 축하해요. 프로젝트 성공 파티 한다길래 잠깐 왔는데.”
“그건······ 고마운데. 꽃다발은 뭡니까.”
“이상해요? 백합만 아니면 되는 거 아닌가?”
서지준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번엔 2팀장을 바라본다. 2팀장은 이미 서지준을 응시하고 있었다. 잡아먹을 것 같은 시선으로. 건드리면 금이 쩍 갈 것처럼 싸늘한 얼굴이다.
“지준이 너······.”
2팀장이 입을 떼자마자. 이번에는 계단 위쪽이 술렁거렸다.
서지준이 등장했을 때만큼이나 요란한 반응이다.
또 연예인이라도 왔나? 더 올 사람이 누가 있지?
곧 계단위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왔다. 3팀장이나 김현조, 그 외의 익숙한 팀원들도 보인다. 방금 전까지 찾아 헤매던 넵튠과 프리티걸 애들도 그 속에 끼어있다. 쟤들은 처음부터 있었으니 새삼 술렁거릴 일은 아니고.
설마 서지준을 보겠다고 대이동을 하는 건 아니겠지?
생각했을 때. 이송하가 누군가와 함께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백한성 대표였다.
< 누가 그의 사람인가 (1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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