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그의 사람인가 (11) >
등 터지게 생긴 걸 빼돌려놨다고?
“왜요?”
물끄러미 보며 물었다. 손채영이 심란한 얼굴로 이쪽을 돌아본다. 말문이 콱 막힌 사람처럼 입술만 들썩이더니, 별안간 소리친다.
“뭘 자꾸 알려고 해요! 나한테 관심 꺼요!”
“제 일이니까요. 그리고 관심은 없습니다.”
활활 타던 손채영이 삽시간에 눅눅해졌다.
턱을 들고 나를 내려다보더니, 돌연 비스듬히 웃는다.
“이건 그거죠. 도와준 거잖아요. 도와줬다고. 도와준 거라고요, 내가!”
세 번이나 쏘아진 말이 화살처럼 내 머리통에 꽂힌다.
도와줬다. 나를. 손채영이.
머릿속에 형체를 잡아가는 것을 흩어버리고, 다시 물었다.
“왜요.”
“도와준 거라는데 또 무슨 이유가 궁금해요! 팀장님도 스트레스성 장염에 시달리는 판국인데, 그쪽처럼 새끼손가락만 한 새우가 사이에 끼면 등짝이 남아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 등짝을 왜 손채영 씨가 신경 쓰느냔 말입니다.”
“신경 쓰이니까 쓴 거죠!”
손채영이 시퍼런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그쪽 등짝 걸레짝 되고 나면, 결국엔 내 탓 할 거잖아요! 지금도 이송하 때문에 나랑은 얘기하기도 싫다면서요. 그땐 아예 날 천하에 다시없을 막돼먹은 년 취급 할 거 아니냐고요! 그 꼴 보면 더 짜증날 것 같아서 내가 신경 좀 썼어요. 왜요!”
입을 반쯤 열었다가 도로 닫았다.
또 물어보면, 이번에야말로 뱃속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돌덩어리 하나가 굴러들어올 것 같아서. 이미 목구멍은 돌 부스러기와 흙먼지로 꽉 막힌 기분이다.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돌렸다.
“그만하죠, 오늘은.”
“안 잡으니까 가라고 아까부터······!”
핏대를 세우며 쏘아붙이던 손채영이 멈칫했다.
“오늘은?”
“아까 말했잖습니까. 설득하는 척은 해야 될 것 같다고. 어쨌거나 도와··· 준 건 고맙지만 제 등짝은 멀쩡할 겁니다. 제가 손채영 씨 담당 매니저도 아니고, 누구처럼 설득해 내겠다고 호언장담하고 나선 것도 아니니까요.”
“그건 뭐.”
“그리고 손채영 씨한테도 나쁜 얘기는 아닐 겁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달달 볶아대던 2팀장님보다는, 제가 덜 끈질길 테니까.”
느리게 말하면서 한 가지 명확한 것을 되새겼다.
미래의 나는 아쉬워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손채영의 매니저가 되는 일은 없을 거다.
과거의 일이 지저분한 오물처럼 신발 밑창에 들러붙어 있으니까.
혹시, 만약에 손채영이 이송하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날이 온다면. 지금으로선 상상이 안가는 일이지만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지. 그 가능성을 부정하면 내 가능성도 부정해버리는 게 되니까.
그런 날이 오면, 그럼 발 밑창의 오물도 씻겨나가겠지.
하지만 그래도 찌거기는 남을 거고, 나는 손채영을 내가 담당하는 다른 식구들처럼 대하진 못할 거다. 무엇보다 나와 이송하, 손채영이 손에 손잡고 웃는 모습은 상상할 수가 없다. 서로 멱살잡이하는 모습이라면 모를까.
그러니까 돌덩어리가 뱃속으로 굴러 들어와서 박히는 일은, 애초에 없는 게 낫다.
이제부터 내가 하려는 건 어디까지나 한시적인 적과의 동침이다.
아니, 동침은 아니고. 동거, 도 아니고. 동승. 그래. 동승 정도로 하자.
적과의 동승.
미래의 내가 품은 미련을 좀 해소해서, 반복되는 미래예지가 해결되든 지쳐 나가떨어지든 정리될 때까지.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뚝 떨어진 미래예지 능력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중심을 잡았을 즈음 손채영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어쨌든 뭐, 좋은데, 회사에선 나한테 친한 척 하지 마요.”
“제가 손채영 씨한테 친한 척을 왜 합니까.”
동승하자고 마음먹자마자 차 세우고 싶어진다.
혀를 차다가, 문득 확인해야 할 게 떠올랐다.
“그런데 혹시 임신했습니까?”
“뭐?”
꼬아져있던 손채영의 다리가 주륵 미끄러진다. 눈썹이 치켜 올라간다. 곧이어 손채영이 벌떡 일어났다. 헐렁한 셔츠자락을 붙잡더니, 가슴 아래까지 쭉 끌어올린다. 잘록한 허리와 배가 훤히 드러났다.
“나 참, 이게 임신한 배로 보여요?”
“진짜 아닙니까?”
“내가 성모마리아예요? 뭐가 있어야 임신을 하지!”
뭐 그런 양심도 없는 비교를.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혹시 어디 안 좋은 데 있습니까? 정신이라든가.”
“말을 그 모양으로 하는데 매니저 일 어떻게 해요? 그쪽이야말로 뭐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전 문제 많습니다. 인간불신증에 냉소주의에.”
손채영이 곧 어깨를 들썩였다.
“데뷔 십년 넘은 연예인 중에 정신병 없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요?”
뭐가 있긴 있단 얘기네. 하긴 성질머리만 보면 저 여자는 걸어 다니는 정신병원이지. 손채영을 정신과 의사 앞에 데려가면 병명이 쏟아질 거다. 성격 파탄부터 시작해서 어쩌면 반사회적 인격 장애까지.
“그런 건 왜 물어봐요! 나한테 관심도 없다면서!”
“뭐, 그런 이유로 일을 안 하는 건가 해서요.”
테이블 한쪽을 보며 대답했다. 시나리오와 대본 같은 것들이 몇 개 굴러다닌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건 나도 얼마 전에 본 시나리오다. 한창 주인공 캐스팅중인 작품.
저런 걸 집에 챙겨놓고 있는 걸 보면, 작품이 하고 싶긴 한 모양인데.
손채영이 혀를 찼다.
“신경 꺼요. 일은 전속계약 끝나면 나가서 할 거니까.”
“정말 W&U에서 나갈 생각입니까?”
“왜. 백 대표님이 그럴 일은 없을 거래요?”
백한성 대표는 연례행사 같은, 어린애 투정으로 치부하던데.
글쎄. 손채영의 반응은 투정이라기엔 너무 날카롭게 벼려져있다.
“나도 하나 묻겠는데.”
눈을 가늘게 좁히고, 손채영이 말했다.
“아까 이송하. 반응 보니까 그쪽이 내 일을 맡은 거 아는 눈치던데. 이송하가 이 결정을 얌전히 두고 봤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난데? 회사 뒤집어졌다는 얘긴 못 들었는데.”
“회사가 왜 뒤집어집니까. 송하가 손채영 씨도 아니고······.”
“혹시 걔 백 대표님 만났어요?”
말꼬리를 삼켰다. 내 표정을 보고 손채영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무슨 얘기 했대요?”
“그게 왜 궁금합니까?”
“말하기 싫으면 말든가. 뻔하지, 뭐.”
손채영의 입가에 웃음이 짙어진다. 백한성 대표와 이송하의 독대를 떠올리니 다시 불쾌감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드라이브를 하면서 몇 번이나 물어봤지만 이송하의 대답은 같았다.
정산문제로 얘기하던 중에, 백한성 대표가 가볍게 말을 꺼냈을 뿐이라고.
정말일까. 나한테 거짓말을 할 때는 꼭 티가 났었는데, 이번엔 모르겠다.
사실은 줄곧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사진.
이송하가 자고 있던 나를 만지다가 찍혔다고 했던. 백한성 대표가 직접 데일리 팩트의 기자와 만나 스캔들을 정리하고 묻어버렸던 사진. 지금은 그의 손아귀에 있을 그 사진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충고 하나 해 줄까요?”
손채영이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말했다.
“이 바닥은 약점 잡히면 오래가요. 지긋지긋할 만큼, 오래.”
*
색색의 물감이 번진 것처럼 눈앞이 어수선하다. 내 머릿속 같다.
지하 연습실에 발을 들여놓았다. 프로젝트팀원들과 메이킹필름 제작진이 알은척을 해온다. 나를 담당하는 VJ감독이 재빨리 다가와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내가 지금 잘 웃고 있나?
“오빠으아!”
상체가 앞으로 휙 넘어갔다. 누군가 양손으로 등을 내리쳤다.
돌아보니 임서영이 상기된 얼굴로 찰싹 달라붙어있다. 커다란 눈이 힐끔 VJ감독과의 거리를 가늠한다. 밖으로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을 하고선 복화술로 속삭인다.
“왜 이래요, 아마추어처럼? 저희 때보다 더 긴장한 거 아니에요?”
“내가?”
“어제오늘 오빠 분위기 완전 살벌하거든요? 프리티걸 음원 상위권에 차트인 못하면 모가지를 똑똑 딸 분위기거든요? 애들이 으엄청 눈치보고 있는데. 연두는 오빠 앞자리에서 점심 먹다가 체해서 지금 얼굴 똥색이에요!”
살벌하다고?
머릿속은 개판이어도 표정관리에는 꽤 신경 썼는데.
손으로 얼굴을 더듬었다. 굳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입꼬리를 밀어 올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전면거울 앞에서 인터뷰중인 이송하가 보인다. 미리 준비한 인터뷰긴 하지만, VJ감독을 상대하는 모습이 능수능란해 보인다.
어쩐지 좀 낯설게 느껴질 만큼.
젠장, 아니지. 저쪽 말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카메라와 조명기기가 잔뜩 설치된 연습실 중앙. 작년 봄 넵튠이 노트북을 둘러싸고 매달려있었던 그 장소에, 오늘은 프리티걸 멤버들이 둘러앉아 있다. 다들 입은 웃는데 눈알이 뱅글뱅글 돈다.
애들이 슬쩍 내 쪽을 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돌린다.
내가 지금 문제가 있긴 있구나.
오늘같이 중요한 날에. 특히 프리티걸 애들은 부담감이랑 불안으로 정신이 오락가락 할 텐데, 불안을 덜어주진 못할망정 보태놨네. 한숨을 쉬며 복잡한 머리를 싹 비웠다. 그리고 프리티걸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
“다들 좀 어때. 많이 긴장돼?”
“네?”
오연두가 흠칫 놀라 대꾸했다.
“긴장 되느냐고.”
“네?”
“아냐.”
“네?”
애가 눈동자에 초점이 없다. 윤솔이나 이화인도 그렇고. 정신은 빼놓고 숨만 할딱거리고 있다. 저번에 공연할 때는 팔다리는 달달 떨려도 겉으로는 씩씩한 척 하더니. 오늘은 그런 모습을 꾸며낼 겨를도 없는 모양이다.
맏언니인 정재이를 바라봤다. 그나마 이쪽은 대답할 정신이 있어 보인다. 얼굴은 노트북 화면보다 더 창백하게 질렸지만, 어떻게든 나와 시선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태신 실장님은 어디 가셨어?”
“아, 위층에 핸드폰 충전기 구하러 가셨어요. 배터리가 닳아서.”
그러고보니 애들이 전부 자기 핸드폰을 꽉 움켜쥐고 있다.
뭐야, 부적이야?
“핸드폰은 왜들 그렇게 붙잡고 있어?”
“······통화연결중이에요. 엄마나, 아빠랑.”
“지금? 통화중이라고?”
확실히 핸드폰 화면에 전화가 연결돼 있다.
정재이가 불안에 젖은 눈으로 대답했다.
“저희끼리 있으니까 마음이 안정이 안 돼서요. 이렇게 하면 긴장이 좀 풀릴 것 같아서, 음원 공개될 때까지만 이러고 있기로 했어요. 혹시 이러면 안 되는 거면···.”
“안 되는 건 아닌데. 그렇게까지 해야 될 정도로 떨려?”
묻자마자, 얼굴이 새빨개진 윤솔이 허겁지겁 핸드폰을 귓가에 댔다.
“엄마! 엄마! 숨을 못 쉬겠어! 내 목소리 듣고 있지? 끊으면 안 돼!”
그 정도로구만. 윤솔이 터지니 다른 두 명도 덩달아 터졌다. 저마다 핸드폰을 끌어안고 엄마아빠를 부르짖는다. 정재이는 핸드폰을 쥔 손을 파르르 떨며, 애타는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핸드폰을 귀에 붙인다.
“아빠. 아직 계세요?”
누가 보면 추락하는 비행기 승객들인 줄 알겠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유수영 피디가 엄마미소를 짓고 있다. 감독들이나 프로젝트 팀원들도, 이쪽을 보는 사람들 모두가 흐뭇하게 웃고 있다.
애들이 숨통이 트인 얼굴로 핸드폰을 내린다. 좀 전부터 주변을 기웃기웃하던 임서영이 다가왔다. 쟤도 넵튠 멤버들 사이에서는 독보적으로 요란스러운 성격인데, 붕어들 앞에서는 유독 선배다워 보이려고 애를 쓴다.
동생 앞에서 어른 행세하는 첫째 같다고나 할까.
“얘들아, 진정해! 이런 때일수록 더 침착해야 돼!”
저쪽에서 엘제이가 코웃음 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우린 저번 앨범 더블타이틀곡 11위랑 14위로 진입하고 완전 축제분위기였는데, 너흰 그거보다 더 위에 있을 걸?”
“선배님······! 만약에, 공개되고 차트에 딱 떴는데, 없으면 어떡하죠?”
“야! 인터넷 안 봤어? 지금 음원사이트 켜놓고 대기타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인데! 너흰 지금 걱정하는 게 아니라 기대를 해야 되는 상황이라니까?”
임서영이 소리쳤지만, 붕어들 얼굴은 진정할 기미가 안 보인다.
윤솔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몇 달 동안, 운이 너무 좋기만 했잖아요. 그래서 더 불안한 것 같아요. 꼭 나쁜 일은 마지막에 오니까요.”
“액땜! 액땜이라도 할 걸! 누가 나 좀 한 대 대려봐!”
오연두가 헛소리를 했다. 다른 애들이 합세한다. 음원이 공개되기 전에 빨리 액땜을 해야 한다고 서로 꼬집고 팔뚝을 찰싹찰싹 때리고 난리가 났다.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진다.
그러는 동안 분침은 꾸준히 움직였다.
시끄럽던 소음이 점차 잦아든다. 곳곳에 퍼져있던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든다. 프리티걸 애들은 숨을 멈추고 노트북을 들여다봤다.
나도 음원사이트가 켜진 화면을 주시했다.
그리고 마침내.
“음원 떴습니다!”
< 누가 그의 사람인가 (1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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