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175화 (175/218)

< 누가 그의 사람인가 (7) >

이장현 실장이 헐레벌떡 문을 열었다.

W&U 야외 흡연실. 정원 한편에 놓인 벤치 테이블에 2팀 소속의 실장들 몇 명이 둘러앉아 있었다. 우중충한 분위기였다.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공동묘지의 비석처럼 잔뜩 솟아있다.

이 실장이 숨을 몰아쉬며 그들 사이에 끼어 앉았다.

“뭐야, 우리 열시부터 회의 아니었어요? 왜들 여기 나와 계세요?”

“피난. 팀장님이랑 손채영이랑 또 한바탕 붙었어.”

“에라이.”

곧 한사람 분의 담배연기가 늘어났다.

“어떻게 일주일을 맨날 이 지랄이야. 이제 지칠 때도 안됐나?”

“우리 오늘 회의 안하겠죠? 팀장님 분위기 살벌하실 텐데.”

담배연기보다 짙은 한숨들이 뿜어졌다.

“요즘은 그 소문이 진짜였으면 싶다니까.”

“소문? 뭔 소문?”

“매니지먼트사업부 확대 개편된다는 소문.”

여러 쌍의 눈동자가 바쁘게 돌아갔다.

“그거 말이에요. 신빙성 있는 소문이에요?”

“1팀 민 실장하고 통화해봤는데 미국 활동 접고 들어오게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 사업부 확대 개편되는 거랑, 신설팀이 생기는 건 얼추 맞는 것 같은데. 중요한 건 그거지. 누가 거기 팀장으로 올라가느냐.”

연차가 높은 실장들이 헛기침했다. 비슷한 연차 중에 팀장 직함에 관심 없어 보이는 건 이봉준 실장뿐이었다.

“봉준이 넌 관심 없냐?”

“없어, 없어. 난 지준이 하나 감당하는 걸로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다.”

이봉준 실장이 손을 휘휘 저었다.

그때 이장현 실장이 눈치를 보고 끼어들었다.

“정선우 낙점이라는 소문도 있던데요? 그건 뭐예요?”

“야, 너 헛소문 유포할래? 팀장님 귀에 들어가면 이거야, 이거.”

다른 실장이 양손으로 목을 조르는 시늉을 했다.

“헛소문이지. 걔 위에 선배가 몇 명인데. 팀 맡기엔 너무 이르잖아.”

“이미 맡고 있잖아. 프로젝트팀.”

이봉준 실장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이 바닥이 뭐 연차순으로 승진하는 것도 아니고.”

“너보고 정선우 새 팀에 들어가서 일하라고 하면 할 수 있겠냐? 새파란 놈한테 팀장님이라고 부르면서 비위 맞춰야 된다고 생각해 봐. 오장육부가 다 오그라들겠구만!”

“난 걔한테 본부장님이라고 불러본 적도 있는데. 오장육부 멀쩡하더라.”

한참 킬킬거린 이봉준 실장이 둥그런 어깨를 들썩였다.

“옮기면 나 휴가나 자주 줬으면 좋겠네.”

“지준이는 2팀에서 절대 안 놔줄걸요. 저랑 주원이면 또 몰라도.”

여우처럼 얇은 눈매의 남자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임주원을 담당하는 성의민 실장이었다.

“주원이가 우리 회사랑 전속 계약한 거에 정 실장님 영향이 컸으니까요.”

“아, 그랬나?”

“지금도 차기작 얘기하면 무조건 정 실장님한테 먼저 보여주자고 그래요.”

“지준이도 그래. 어, 근데 이렇게 묶이면 딱 그 멤번데? 전에 중국출장 때 호텔에 같이 묵었던.”

“그러네요?”

짝짜꿍이 맞아서 떠드는 둘을 보고, 다른 실장들이 혀를 내둘렀다.

그때 중국행을 함께 했던 실장이 중얼거렸다.

“그때 손채영도 같이 갔는데. 손채영도 데려가면 되겠네.”

“근데요.”

호기심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손채영이랑 정선우랑 친하다는 소문도 있지 않았나?”

“그 루머 참 오래간다.”

“루머예요? 손채영이 로열패밀리 카메오 출연도 해줬잖아요.”

“웬 변덕이었는지 몰라도, 조 실장님 말로는 친한 건 아니래. 헛소문이야.”

듣고 있던 이봉준 실장과 성의민 실장의 표정이 묘해졌다.

몇몇이 헛바람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럼 그렇지. 손채영은 친한 사람 없어. 누가 붙어있겠냐? 몇 년을 같이 일한 조 실장님하고도 그 모양 그 꼴인데.”

“정선우 걔도 손채영 같은 애 한번 떠맡아봐라. 학을 떼고 때려치울 거다.”

“하긴. 고생 없이 꽃길만 걸은 놈인데. 손채영처럼 골치 아픈 애들 만나면 감당이 되겠어?”

순간, 야외 흡연실 문이 덜컹 열렸다. 떠들던 2팀 실장들이 움찔했다.

먼저 보인 건 왜소한 체격의 김현조였다.

그리고 그 뒤로, 머리 하나는 더 커다란 정선우가 들어왔다.

***

내 얘기 중이었구만.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쭉 훑어봤다. 나한테 붙어있던 시선들이 송사리 떼처럼 뿔뿔이 흩어진다. 남은 시선은 둘 뿐이다. 이봉준 실장과 성의민 실장. 내가 두 사람과 인사하는 동안, 김현조도 선배 뻘인 사람들과 알은척을 했다.

더럽게 눈치 없는 누군가가 빈 의자 두 개를 가져왔다.

“태근이가 자꾸 클럽에 들락거려서, 사고 날까 봐 불안해 죽겠다니까.”

“룸살롱보단 클럽이 낫지. 이건 이미지 작살나잖아.”

“요즘은 차라리 연예인끼리 만나는 게 뒤처리가 편해. 서로 조심하잖아.”

“그 정도만 돼도 양반이지. 최유정은 빌딩 살 돈 모자란다고, 매니저한테 중국 재력가 생일파티 가자고 졸랐다더라. 개런티 현찰로 받기로 했다면서.”

“하는 꼬라지가 오래 못가겠다, 걔는.”

분위기는 어색했지만 머릿수가 많다보니 대화는 술술 이어졌다. 기자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만한 사건사고들이 쏟아진다. 나는 그 대화에서 한 발짝 물러나 서지준과 임주원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누군가 말을 걸어오기 전까진.

“정 실장님은 이런 화제에는 얘깃거리가 없죠?”

이름이 이장현이었나?

조 실장하고 같이 다니는 모습을 몇 번 봤다.

“라운지에서 파티 하는 거 봤는데, 넵튠이랑 프리티걸 멤버들 엄청 사이 좋아 보이더라고요. 직원들한테도 잘하고. 정 실장님이 맡은 애들은 다 착하고 얌전한 것 같아요.”

“네, 뭐.”

그렇지. 넵튠도, 남조윤도, 프리티걸도 대형 사고를 친 적은 없으니까.

근래 있었던 사건사고래봤자 이송하가 밥을 남겼다거나, 남조윤이 쉰 밥을 먹었다거나, 임서영이랑 엘제이가 옥신각신하다가 애먼 인형 모가지가 뜯어졌다거나. 뭐 이런 것들이다.

남들이 들으면 그게 무슨 사건사고냐고 비웃을 일이니, 참 평화롭긴 하다.

새삼 흐뭇해져서 웃고 있는데 이장현 실장이 다시 물었다.

“정 실장님은 로드 때부터 쭉 넵튠 담당이었죠?”

“네.”

“거기다 남조윤, 프리티걸. 진짜 꽃길만 밟으셨구나.”

내가 마음에 안 드나본데.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유명세를 치르는 건지, 메이킹필름 나가고 난 다음부턴 저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꽤 늘었다. 특히 같은 업종인 매니저들. 이러다가 진짜 계단에서 등 떠밀리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장현 실장이 내 쪽을 힐끔거린다.

못마땅하고 억울한 표정이다. 내가 제 앞길에 압정이라도 뿌렸나?

헛웃음을 지었더니, 다른 2팀 실장들이 한마디씩 거든다.

“우리 때랑 비교하면 진짜 넵튠은 일도 아니다. 일도 아니야.”

“스케줄 빡세서 몸이 힘든 것보다, 애들이 속 썩여서 스트레스 받는 게 더 힘들잖아요. 난 이송하 같은 애랑 일하면 과로로 쓰러져도 행복하겠네.”

“진상 떠는 애들도 한 번씩은 겪어봐야 돼. 그래야 경험도 쌓이고, 노하우도 생기는 거지. 막말로 손채영 한 번 겪고 나면 그 뒤로 누가 무섭겠냐?”

“맞아요. 내 매니저 인생에 걔보다 더 힘든 애는 없을 거 같아.”

옆에서 불쾌한 한숨소리가 들린다. 김현조가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원체 인상 자체가 어두워서 눈치를 못 채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신경 쓰지 않는 건지. 2팀 실장 몇 명은 계속 웃으며 떠들었다.

김현조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말했다.

“일도 아니면 우리가 하는 건 뭔데요. 우린 뭐 맨날 노나?”

“그런 뜻이 아니고. 정 실장도 남들처럼 가시밭길 한 번 밟아봐야 더 배우는 게 있지 않나, 싶어서 그런 거지. 이 바닥엔 꽃길보다 가시밭길이 더 많잖냐.”

“오지랖도 참. 우리 팀에서 알아서 합니다.”

내가 눈살을 찌푸리기도 전에 김현조가 쌀쌀하게 대꾸했다.

2팀 실장이 손사래를 쳤다.

“그래, 그래. 그 ‘팀’ 소문 때문에 시끄럽길래 한 번 해본 말이다.”

소문?

신설팀이랑 새로운 팀장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다더니.

그것 때문에 날 보는 눈초리가 껄끄러운 건가?

“뭐, 헛소문이긴 하겠지만······.”

2팀 실장이 말꼬리를 집어먹었다. 진동과 함께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내 거다. 테이블 위에서 올려둔 핸드폰을 집는데, 수신화면을 본 김현조가 화들짝 놀란다. 맞은편에 있던 2팀 실장 몇 명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손채영인가?

아니지. 손채영은 이 구역의 미친년으로 저장돼 있어서 못 알아볼 텐데.

생각하며 핸드폰 화면을 봤다.

‘백한성 대표님’

하마터면 핸드폰을 재떨이에 빠뜨릴 뻔 했다.

뭐지? 이 양반이 왜 또 직통으로 전화를 걸었지?

벨은 이미 한참 울리고 있었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장님, 저 전화 좀.”

“어, 가, 가, 빨리 가서 받아.”

김현조가 황급히 손을 휘저었다. 다른 실장들에게도 눈인사를 하고 뒤돌았다. 여럿의 시선이 등짝에 매달리다시피 하며 따라온다. 그 시선들은 정원 모퉁이를 돌고 나서야 사라졌다.

“예. 대표님.”

-음. 슬슬 얘기 좀 했으면 좋겠는데.

“얘기라면······.”

프리티걸? 아니면 신설팀? 그것도 아니면, 손채영?

마지막 것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손채영.

젠장.

*

회사 대표와 단 둘이. 고급 식당에서.

키워드만 보면 꽤 그럴싸한데. 정작 앉아보니 소고기가 입구멍으로 들어가는지 귓구멍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맞은편에서는 백한성 대표가 느긋하게 젓가락질을 하고 있다. 예약이 필요한 식당에 데려와서 값비싼 음식을 먹이는 걸 보면, 분명 나한테 손채영을 떠밀려는 것 같은데.

손채영의 말이 아니었더라도 어차피 거절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어떻게 거절하는 게 최선인가, 이건데. 최대한 우회적으로······.

“그렇게 싫어?”

“네.”

우회는 개뿔.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의견을 물었으니, 내 의견을 말했다.

“싫습니다.”

“이송하랑 엮인 일 때문에?”

“그것도 그렇고. 같이 일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저도 어차피 백로는 못될 것 같고, 그럼 비둘기라도 돼 보자고 노력중인데. 손채영 씨랑 일하면 까마귀가 될 것 같아서요.”

“팀은 생각해봤어?”

“네?”

백한성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프로젝트팀 말고 정식 팀 말이야. 같이 일하고 싶은, 네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직원들. 가수나 배우들. 그 구성원 정도는 이미 생각해봤을 것 같은데.”

해봤다. 당연히.

“채영이가 차기작을 정하게 해봐. 그럼 그대로 들어줄 테니까.”

***

“이거 서병희 감독 신작이야! 일단, 일단 기획안이라도 봐!”

“싫다니까요.”

“손채영!”

핏줄이 불거진 손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벌써 세 번째였다. 간신히 버티던 찻잔 두 개가 기어코 엎어졌다. 손채영은 맞은편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끓는 2팀장과 달리, 손채영은 고요했다.

“작가가 여주인공으로 윤정아 생각하고 있다는데. 너만 오케이하면 바로 가져올 수 있어. 채영이 너 서 감독 연출 좋아하잖아!”

“좋아해요.”

손채영의 손에서 기획안이 툭 떨어졌다. 쏟아진 찻물이 종이를 적셨다.

“그래도 안 해요.”

“너 대체 왜 이래!”

2팀장이 소파를 박차고 일어났다. 움켜쥔 주먹에 몇 번이나 힘이 들어갔다.

“혹시 정선우 그놈 때문이야?”

“그 이름이 왜 나와요?”

“너 전에 그놈 매니저로 달라고 했었잖아. 네가 이렇게 버티면 대표님이 그 자식 너한테 붙여줄 것 같아서 이래?”

곧, 손채영의 입술 끝이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그랬었나? 너무 오래전이라.”

“그것도 아니면 대체 왜 이래! 어? 언제까지 이럴 거야! 내가 너한테 안 해준 게 뭐야. 해달라는 거 다 해줬는데 왜 이렇게 사람을 못 괴롭혀서 안달이야! 무조건 싫다고 하지 말고 말을 해.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

“팀장님.”

말허리를 뚝 끊고, 손채영이 물었다.

“지금 내가 팀장님 괴롭히려고 이러는 것 같아요?”

“아니면 뭐야!”

“싸우고 있는 거잖아요, 대표님이랑.”

“뭐?”

손채영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저랑 대표님 싸움에 팀장님이 끼어서 등 터지고 있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쓸데없는 소모전 그만하고 싶으시면 대표님한테 가서 못하겠다고 하세요. 저건 설득이 안 된다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그렇게 얘기 하시라구요.”

사금파리를 씹은 것처럼 날카로운 목소리가 덧붙였다.

“팀장님이 아니라 누가 와서 매달려도, 저 이 회사에서 차기작 안 찍어요.”

< 누가 그의 사람인가 (7)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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