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그의 사람인가 (1) >
“왔노라, 보았노라, 터졌노라!”
홍보팀 박 팀장이 옆으로 다가왔다. 발걸음이 경쾌하다.
“대중문화평론가 한줄평이야. 메이필 2화랑 클립영상 보고 썼더라고.”
“봤어요. 시청후기도 호의적으로 써줬던데요.”
“자기 그새 모니터링도 했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서영이가 오 분마다 한 번씩 온라인 현황 보고중이거든요.”
애가 제정신이 아니다.
어젯밤 영상 수거할 때부터 정신줄을 놓더니, 클립영상이 공개되고 임서영의 이름이 실시간 인기검색어 1위에 눌러앉은 이후로는 ADHD를 의심케 하는 증세가 더 심각해졌다.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해서 엘제이가 묶어놔도 되냐고 물었을 정도다.
“실컷 흥분하게 내버려둬. 일등공신인데.”
홍보팀 박 팀장이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도 들었어? 오늘을 넵튠팬덤 대화합의 날로 정했다던데?”
“서영이가 떠들긴 하던데.”
“봐봐. 나 이거 보고 커피가 코로 나왔잖아.”
태블릿이 불쑥 다가온다. 걸으면서 훑어봤다.
넵튠의 공식홈페이지부터 조각조각 나눠진 개인 팬페이지까지, 모두 국기 게양하듯이 똑같은 메인사진을 띄우고 있다. 아침에 공개된 클립영상 캡처. 넵튠 멤버들이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서 웃고 있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다.
그 위에 굵은 글자가 새겨져있다.
‘대화합의 날, 팬심으로 대동단결!’
보자마자 웃음이 터졌다.
박 팀장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듯이 말했다.
“얘들 쌀 1톤 기부한다고 돈 모으는 것 같던데? 오늘을 기념일로 만들어서 매년 기부할거래. 송하 개인 팬들이 앞장섰다더라. 아주 기가 팍 죽어서 굽히고 들어왔다나 봐.”
“그간 애먹이더니, 한 큐에 안정되겠네요. 클립영상 보고 식겁했나 봐요.”
“송하 멘트가 좀 셌어야지. 솔직히 말해봐. 자기가 멘트 써줬어?”
“그럴 리가.”
어깨를 들썩이며 회의실 문을 열었다.
시장통처럼 소란스럽던 내부가 우뚝 멈췄다. 사람들이 벌떡벌떡 일어났다.
“팀장님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실장님!”
테이블 왼쪽은 홍보팀 직원들, 오른쪽은 매니지먼트팀 직원들이었다. 몰골들은 퀭했지만 분위기는 승전보라도 받은 것처럼 열광적이다. 나와 박 팀장이 빈자리에 앉자 회의실이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서영이가 이번에 제대로 터졌어요.”
“얘는 팬 끌어 모을 상이에요. 존잘도 씹덕은 못 이긴다잖아요.”
“게다가 다른 아이돌 팬들이 엄청 호의적이에요.”
홍보팀 남직원이 온라인 반응을 띄운 태블릿을 내밀었다.
-포털에 넵튠 클립동영상 본 사람? 댓글란 난리 났던데.
┖장난 아님. 순식간에 오십만뷰 넘게 찍히고 댓글 천개 돌파.
┖싸움 났나 했더니, 타팬들이 총출동해서 댓글란에서 울고 있넼ㅋㅋㅋ
┖임서영 셀프몰카 본방으로 봤는데, 본진 생각나서 더 짠하더라고요. 엄마랑 같이 봤는데 엄마도 짠하다고, 나한테 절대 연예인 하지 말라고 하심.
┖별 생각 없이 클립영상 봤다가 눈물 콧물 다 뽑았어요. 우리 본진 애들도 저런 생각들 하고 있겠구나 싶고. 앞으로 넵튠 세컨으로 파려고요. 이송하 말곤 관심 없었는데 애들이 참 괜찮아 보임.
┖전 어제 임서영보고 입덕해서 떡밥 뒤지다가 밤새웠음ㅋㅋㅋㅋ
┖멤버들 케미도 쩔던데. 제 안에선 이미지 되게 좋아졌어요.
-저거 누가 봐도 대본 아니에요? 그리고 임서영 그 나이 먹고 인형 안고 있는 거 꼴 보기 싫던데. 저만 그런가요?
┖너만 그래.
┖임서영 방에 인형 컬렉션 못 봤어요? 오타쿠는 존중해야 됨.
┖대본ㅋㅋㅋㅋ임서영 연기력으로 대본 소화가 되겠냐곸ㅋㅋㅋ
간간이 남의 잔칫상 엎으려는 이들이 보이긴 해도 ,대다수는 호의적인 반응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넵튠 전체의 이미지가 굉장히 좋아졌다. 가장 큰 소득은, 이송하한테 가려져있던 다른 멤버들의 인지도가 확 올라간 거고.
홍보팀 직원들이 다시 재잘거렸다.
“메이필 조연출이 시청률 알려주면서 미친 사람처럼 웃더라니까요?”
“웃어야지, 그럼! 11.8이면 거의 3포인트 가까이 오른 건데.”
“2주 연속 화제성 1위라서, 다시보기나 IPTV, 웹 제휴서비스 다운로드로 보고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도 많아요. 다음 주에는 본방 따라오는 시청자들도 더 늘어날 거 같던데요?”
“이런 프로는 온라인에선 난리가 나도 오프라인에선 잠잠한 경우가 많은데, 메이필은 온오프 전부 반응이 좋아요. 십대부터 중년층까지 관심 갖는 연령대도 넓고. 잘하면 팬덤에 대중성까지 다 잡겠어요.”
“IBC에선 벌써 한주쯤 연장하면 안 되겠냐고 말이 나왔다던데요?”
“PPL이랑 광고가 줄 섰을 텐데, 몇 주하고 끝내긴 아깝다 이거지.”
“IBC 음악방송에서도 프리티걸 컴백무대 신경 엄청 쓴다고 하더라고요.”
입을 헤벌리고 듣던 이태신 실장이 침을 삼켰다.
“컴백무대······ 그게, 아직도 안 믿기네요. 애들도 방송으로는 난리가 났어도 실감은 잘 못했었는데, 음악방송 컴백무대 갖고 인터뷰도 할 거라고 했더니 눈이 튀어나오더라고요.”
“음원 성적이 좋으면, 브릿지 소개영상 같은 것도 빵빵하게 들어갈걸요.”
이관우가 웃으며 말했다.
성적 이야기가 나오자 시선들이 내 쪽으로 몰렸다.
홍보팀 직원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음원 성적, 괜찮게 나오겠죠?”
“분위기상 차트 상위권으로 진입할 것 같긴 한데. 거기서 오래 버티는 게 문제죠.”
“순위 급락할 거 대비해서 그쪽 보도자료도 준비하고 있긴 한데.”
박 팀장이 말끝을 흐리며 나를 바라본다.
“자긴 성적 어느 정도로 예상하고 있어?”
“주간차트 1위요.”
웃으며 말했다. 박 팀장이 마른 입술을 핥는다.
“화제성이 압도적으로 높으니까 잘하면 1위 찍을 수도······.”
고개를 끄덕이던 박 팀장이 멈칫한다.
“잠깐, 주간?”
“네.”
손안에서 만년필을 빙글빙글 돌리며 대답했다. 이제 다른 직원들도 황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실시간도 아니고, 일간도 아니고, 주간차트 1위요?”
“적어도 한주는 1위에서 버틸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이왕이면 월간차트1위도 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덧붙였더니 직원들 표정이 더 희한해진다. 아마 김현조나 3팀장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한마디 하지 않았을까.
미친놈 또 시작이라고.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목표는 높아야죠. 그럼 본격적으로 회의 시작할까요?”
직원들이 퍼뜩 정신을 차린다.
맞은편에서 박 팀장이 은근히 웃으며 말했다.
“그럴까요, 정 팀장님.”
***
팀장실 안에 한파가 들이닥쳤다.
“매니지먼트사업부가 개편돼? 어디서 나온 소리야?”
2팀장이 쌍심지를 켜자, 조실장이 어깨를 움츠렸다.
“얼마 전부터 그런 소문이 돌더라고요. 그냥 소문이에요, 소문.”
“그러니까 무슨 소문!”
조실장이 말을 꺼냈다.
“할리우드 진출이 계속 성과를 못 내고 있으니까, 그쪽 투자를 좀 줄이고 국내시장에 집중한다고요. FA시장에 나오는 A급 이상 배우들을 더 영입해서 매니지먼트사업부를 확대 개편할 거라고. 그리고······.”
“외부 배우 영입? 그게 사실이면 내가 모르겠어? 대표님이랑 본부장님이 나한테 제일먼저 얘기할 텐데.”
2팀장이 코웃음을 치고 캐물었다.
“그리고 또?”
“사업부 안에 신설 팀이 하나 생길 거다. 그 팀에······.”
눈동자가 슬금슬금 움직이며 눈치를 봤다.
“나머지는 정말 근거 없는 헛소리라서, 팀장님이 신경 안 쓰셔도···.”
“말을 끝까지 해! 그런데 뭐!”
“저, 정선우가 팀장으로 올라오지 않겠냐고.”
“누가 그런 헛소리를 떠들어!”
2팀장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보기 좋게 다듬은 턱수염이 부들부들 떨렸다.
“헛소, 헛소리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그래서.”
“팀장? 팀장! 정선우 그놈이 회사 얼굴마담으로 TV에 나가니까 대외적으로 보기 좋으라고 임시 팀장 직함 좀 달아준 걸 가지고, 별 소리가 다 나오네! 아직 프로젝트 성공한 것도 아니잖아!”
“그게 분위기로 봐서는 이미 성공한 거나 마찬가지고, 남은 건 중박이냐 대박이냐의 문제라고······.
“뭐, 인마?”
중얼거리던 조실장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2팀장이 냉수를 거칠게 들이켰다. 그리고 배를 문질렀다.
“내가 정선우 그놈 때문에 대표님이랑 본부장님 만날 때마다 눈치가 보여. 이젠 아주 그 자식 이름만 들어도 속이 더부룩하다고. 손채영이랑 같이 내 스트레스 유발하는 쌍두마차라니까. 팀장은 무슨 팀장. 내가 그 꼴은······!”
빈 컵을 들고 문을 돌아본 2팀장이 말을 끊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송인호가 서있었다.
“인호 넌 왜 그러고 있어?”
“아까 노크했는데, 못 들으신 것 같아서···.”
“들어와.”
송인호가 발을 들여놓자, 얼어붙어 있던 팀장실이 조금 녹았다.
2팀장이 황금알을 품은 거위를 보는 눈으로 웃었다.
“무슨 일인데?”
“저 독립영화 크랭크아웃이 좀 더 미뤄질 것 같아서요.”
“뭐?”
2팀장의 얼굴에서 웃음이 싹 가셨다. 살을 에는 찬바람이 불었다.
“가지가지 하네. 그 감독은 올해 안에 영화 완성할 생각은 있는 거냐?”
“추가촬영이라 금방 끝날 거예요.”
“그 추가촬영이 벌써 몇 번째야! 너 이제 언론 홍보활동 시작하면 일분일초도 쪼개 써야 할 만큼 바빠질 텐데, 언제까지 그거에 발목 잡혀 있을래? 다른 건 다 좋은 놈이 이상한데서 말을 안 듣네.”
“스케줄에는 절대 지장 안 가게 하겠습니다. 절대요.”
송인호가 한참을 애걸복걸하고 나서야 2팀장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그가 송인호를 가까이 불러 앉혔다. 그리고 얼굴을 훑어봤다.
“에스테틱 꾸준히 가고 있지?”
“네.”
“관리 잘해. 윤 감독 작품 개봉하면 매일 카메라 앞에 서야 되니까.”
2팀장이 송인호의 뺨을 툭툭 두드렸다.
“앞으로도 넌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
미팅 스케줄이 행사철 넵튠 스케줄만큼이나 빽빽하다. 고르고 골라 중요한 것만 잡았는데도, 점심 미팅이 겹쳐서 밥을 몇 번이나 먹어야 할 판이다. 먼저 잡힌 미팅장소로 이동하려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미니밴을 코앞에 두고 시간을 확인했을 때.
누군가 뒤에서 팔을 홱 잡아끌었다.
블랙아웃 사생팬인가?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푹 내려쓴 모자 아래로, 너무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 보인다. 송인호였다. 몸에 힘을 풀자 내 팔을 질질 끈다. 길쭉한 팔다리를 CCTV 사각지대에 쑤셔 넣고, 송인호가 반갑게 말했다.
“형,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이네. 근데 지금 뭐하냐.”
기자 피해서 밀회하는 연예인커플도 아니고.
“형 만나는 거 들키면 야단 날 걸요. 지금 2팀장님 기분 안 좋거든요.”
“오늘은 또 왜?”
“형 때문에요.”
송인호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형 프로젝트팀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도 난리인 것 같던데요. 그래서 요즘 2팀장님 앞에서 절대 꺼내면 안 되는 이름이 두 개래요. 손채영 선배님이랑 정선우 임시 팀장님.”
내가 손채영이랑 동급이야?
웃으며 송인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송인호가 싱그레 웃는다. 곧은 눈이 나를 바라본다. 내 오피스텔에 찾아와서 숨 막혀 죽을 것 같다고 울던 게 고작 몇 달 전인데. 그 뒤로 프리티걸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연락을 많이 못했다.
“영화 두 개는 어떻게 돼가고 있어?”
“독립영화는 추가촬영 중이고, 윤 감독님 영화는 크랭크아웃 했어요. 곧 개봉할거래요. 배급사 사정 때문에 좀 서두르는 것 같더라고요.”
2팀장이 고른 영화.
시나리오는 나쁘지 않았는데, 어떻게 뽑혔을까. 성적은 또 어떨까.
“시사회 잡히자마자 보러 갈게.”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형.”
송인호가 쭈그리고 앉은 상태로 더 다가왔다.
“아까 들었는데, 매니지먼트팀이 개편되고 팀이 하나 더 생긴다는 소문이 있다던데요.”
“그래?”
“형이 신설팀 팀장으로 올라갈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있고요.”
언젠가 백한성 대표와 독대했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소문이 돌고 있단 말이지?
내 표정에서 뭘 봤는지, 송인호의 안색이 밝아졌다.
“만약에, 정말로 그렇게 되면요, 형.”
송인호가 덮치듯이 내 양 팔을 붙잡았다.
“저 좀 형 팀으로 데려가주시면 안돼요?”
*
뭐야. 꿈인가?
분명 방금 전까지 송인호랑 대화중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내 눈에는 새파란 하늘이 보인다. 탁 트인 전면 유리창 너머로 구름이 태평하게 흘러가고 있다. 꼭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풍경이다.
묘한 기시감이 든다. 내가 이 풍경을 어디서 봤지?
아, 사무실이구나. 이십여 년 후의 내 대표 사무실.
미래예지라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미래의 내가 고개를 돌린다. 노이즈 없이 또렷한 시야로 중년의 박우정 기자, 박 국장과 송 기자가 보였다. 나는 귀를 활짝 열고 집중했다.
박 국장이 말했다.
“한창 인기 많았을 때 은퇴했었죠?”
은퇴? 누가?
설마 송인호 얘긴가?
내 의문을 송 기자가 대신 물었다.
“그분은 왜 은퇴한 건데요?”
“소문만 무성했었어. 중국 재벌이랑 결혼했다, 불안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었다, 임신했다, 국내에서 은퇴하고 외국에서 연극하고 있다, 별별 얘기가 다 있었는데.”
임신?
중얼거리듯이 대답하던 박 국장이 어깨를 들썩였다.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
“아······.”
“아역부터 시작해서 연기는 참 잘했는데.”
박 국장이 이쪽을 보며 덧붙였다.
“지금은 어디서 뭐하고 살고 있을까요, 손채영.”
응?
< 누가 그의 사람인가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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