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킹필름, 하늘에서 떡밥이 빗발친다 (5) >
발가벗겨진 사람처럼, 임서영은 잔뜩 움츠러든 채 시선을 피했다. 다른 멤버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도망친다. 숨을 곳을 찾는 절박한 시선이 나를 붙들었다.
아프게 깨물린 입술.
저 틈으로 나왔던 말이 귓가에 뚜렷이 남아있다.
‘회사가 선우 오빠를 우리 팀 매니저로 보냈고, 내가 운 좋게 그 팀에 있었던 거지.’ ‘나도 별의별 걸 다 해봤는데, 나한테는 그런 게 없더라고.’ ‘지금은 뭐, 내가 우리 팀 찌끄러기 같은 거야.’
나도 안다.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다.
애쓰는 게 눈에 보이니까.
이송하와 이태희의 성공을 엿보게 해줬던 미래. 심지어 일면식밖에 없던 프리티걸의 성공까지 알려줬던 미래예지가, 임서영과 엘제이에게는 야속할 만큼 잠잠했다. 마치 두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그렇다고 남조윤과 맞닥뜨렸을 때처럼 뭔가 꽂혔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게 없더라도 성공시키고 싶었다.
꼭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엘제이는 상황이 조금 나았다. 언더시절부터 실력파로 유명했고, 국내 여성 래퍼를 꼽으면 반드시 한손에 들어가니까. 이번 정규앨범에 솔로트랙을 하나 넣어보고, 괜찮으면 아예 싱글 앨범을 따로 낼 계획도 세워 놨다.
반면에 임서영은, 어려웠다.
춤을 잘 추고 노래를 잘하지만, 그만큼 하는 애들은 이 바닥에 흘러넘친다. 그래서 내 힘으로 잡을 수 있는 모든 예능에 내보냈다. 내가 아는 임서영이라는 사람은 사랑스러우니까. 충분히 호감을 받을만한 사람이니까.
그런데 카메라 앞의 임서영에게선 그런 것들이 잘 안 보인다.
‘잘 해야지.’ 그리고 ‘더 열심히 해야지.’
그 발버둥 때문에.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애를 써봤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그래서 판을 만들었다.
넵튠에게, 그리고 임서영 개인에게도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는 판을.
“저, 저건, 프리티걸 애들이 우는 거 보고 나도 휩쓸려서 그랬던 거야.”
임서영이 밝은 목소리를 냈다.
분위기를 돌려보려는 듯이.
“별거 아닌 건데도 엄청 크게 느껴지고, 또 부정적 감정이 폭발할 때 있잖아! 생각해보니까 내가 저 날 생리 중이었던 것 같아!”
거실이 더욱 고요해졌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임서영이 결국 벌떡 일어난 순간. 창백한 손이 임서영의 발목을 붙잡았다. 엘제이였다. 도망치려고 허우적거리는 임서영에게, 엘제이가 말했다.
“미안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엘제이의 사과였다.
임서영이 단번에 얼어붙었다.
“그동안 너한테 멍청이니, 바보니 했던 거. 내가 너무 심했어.”
“야, 너 왜 그래! 네가 그러는 거 장난인 거 다 아는데! 내 말은···!”
“말이 씨가 될 줄 알았으면 입조심을 좀 할걸 그랬네.”
양손에 고개까지 더해서 홱홱 흔들던 임서영이 멈칫했다. 엘제이의 말에 섞인 묘한 뉘앙스를 눈치 챘는지, 임서영이 동그란 눈을 깜빡인다. 엘제이가 그런 임서영을 잡아당겨 앉히며 말했다.
“찌끄러기? 네가 찌끄러기면 난 부스러기냐?”
“뭐?”
임서영이 놀라서 엉덩이를 들썩였다.
“네가 왜 부스러기야! 너는······!”
“스케줄이 알아서 들어오는 건 저쪽동네 얘기고. 나야 뭐 별거 있어?”
소파 쪽의 두 명을 눈짓으로 가리키고, 엘제이가 계속 말했다.
“피쳐링 조금 한 게 전분데. 예능프로랑 라디오도 너랑 세트로 묶여서 들어간 거고. 네가 넵튠의 찌끄러기면 난 부스러기, 그냥 부스러기도 아니고 먼지 부스러기쯤 되겠네.”
한쪽만 세운 무릎에 팔꿈치를 툭 얹고, 손에 턱을 괸다.
엘제이의 비뚜름한 입 끝이 손가락에 가려졌다.
“매사 당당해보여? 그건 쪽팔리고 얕보이는 게 싫어서 그런 거고. 표정관리 하나는 너보다 내가 낫지. 난 어렸을 때부터 멀쩡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데는 도가 텄거든. 혼혈이잖아.”
엘제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렇다고.”
턱을 괴던 손이 얼굴 반을 덮는다.
벼락 맞은 나무처럼 굳어있는 임서영에게, 이번엔 이태희가 말했다.
“서영아. 난 늘 내가 무능력한 리더라고 생각해.”
“언니!”
이제 임서영의 낯빛은 파랗다 못해 검은색에 가까웠다.
이태희는 가만히 임서영을 바라봤다. 언제나 그렇듯 바람 없는 호수처럼 잔잔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안은 까마득하다. 밑바닥에 뭔가 도사리고 있는지 감도 못 잡을 만큼.
“네가 있으니까 우리 팀이 문제없이 굴러가는 거지. 다른 팀 리더들이 하는 일을 우리 팀에선 네가 앞장서서 하니까.”
“그, 그만해, 언니! 나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위로하려고 안 해도 돼!”
“너 달래려고 대충 하는 말 아니야.”
이태희가 희미하게 웃었다.
“네가 아니었으면 무명기간을 트러블 없이 이겨내지도 못했을 거고, 네가 없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가족처럼 가까워지지도 못했을 거야. 내 능력으로는 이런 팀을 만들 자신이 없거든. 그런데 네가 왜 찌끄러기야.”
깜빡거리는 임서영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여전히 목줄처럼 임서영의 발목을 붙든 채로, 엘제이가 끼어들었다.
“야, 너 없을 때 우리 숙소 분위기가 어떤지 아냐?”
“어?”
“독거촌이야, 독거촌.”
임서영이 울먹이다말고 고개를 갸웃한다.
“도, 독거촌?”
“네가 숙소 비우는 날은, 우리 셋이 온종일 한 집에 있어도 서로 세마디도 안 할걸. 태희언니는 독거노인처럼 방에서 밥 대신 캔맥주나 마시면서 작업하고. 송하 쟤는 은둔형 외톨이처럼 틀어박혀서 본 시나리오 또 보고. 가끔 돌아다닌다 싶으면 화장실 아니면 냉장고 앞이고.”
이태희와 이송하를 번갈아보면서 말하더니, 이번엔 본인을 가리킨다.
“나도 비슷하고.”
임서영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엘제이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사이가 나쁜 게 아니라, 생겨먹은 게 이래. 그래서 숙소에 카메라 설치했을 때도 너 없이 우리만 있을 때는 대부분 꺼놨었어. 피디님이 우리 세 명으로는 건질 게 쥐똥만큼도 없다고 하셔서.”
말하고는 덧붙인다.
“뭐, 그랬다고.”
엘제이가 심드렁하게 고개를 돌렸다.
이태희의 시선이 잠깐 내 쪽을 스친다. 다시 입이 벌어졌다.
“전에 너희들한테 곡 들려주기 전에 선우 오빠한테 먼저 갔었어. 오빠 반응이 안 좋았으면 너희한텐 완성했다고 말 안했을 거야.”
“뭐?”
“왜? 곡 완전 좋았는데!”
엘제이와 임서영이 동시에 물었다.
언제 쪼그라들어 있었냐는 듯 임서영이 목을 쭉 뺐다. 이태희의 자작곡들을 듣고 눈앞에 천둥이 쳤었다느니, 듣자마자 우리 타이틀이라고 느꼈다면서 열심히 감상을 늘어놓는다.
이태희가 뒷목을 쓸었다.
“내가 만든 곡에 자신이 없었거든. 실패할까봐 겁이 났어.”
그리고 임서영을 보며 덧붙인다.
“그런 일이 있었어.”
묘한 침묵이 거실을 휘감았다. 저마다 속내를 한줌씩 털어놓은 멤버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같은 침묵이었지만, 쩍쩍 갈라져서 바스러질 것 같던 아까와는 달랐다. 축축한 침묵이다.
비온 뒤의 땅처럼.
숨을 크게 몰아쉰 임서영이 입술을 떼려던 때였다.
“난 우리 팀에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했어.”
끼어들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는지, 이송하가 툭 던졌다.
순식간에 거실이 끓어올랐다.
“뭐라고?”
“어떤 놈이!”
“누가 그런 말을 했어?”
임서영은 물론이고 다른 둘의 고개까지 홱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이송하가 나를 힐끔 봤다. 그걸 눈치 챈 애들이 펄떡 동요한다.
“오, 오빠가?”
“내가.”
이송하가 정정했다.
“내가 오빠한테 그렇게 말했었어. 고양이 수호령 캐스팅되기 전에.”
“등신아!”
임서영이 소리를 빽 질렀다.
“다시는 그런 생각 하지 마!”
“그럼 언니도 그런 생각 하지 마.”
심각한 얼굴로 잔소리하던 임서영이 움찔했다.
입술을 질끈 물었다고 놓고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런 생각 하지 마. 네가 왜 쓸모가 없어. 네가 열심히 하는 덕분에 우리가 얼마나······!”
“사실은.”
말허리를 뚝 자르고, 이송하가 말했다.
“지금도 가끔씩 그런 생각 들어. 내가 연기를 잘하면 팀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때는, 그게 원동력이 됐었는데. 지금은 또 나 때문에 팀 안팎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하잖아. 안 좋은 소문도 많이 생기고.”
덤덤한 목소리였지만, 러그의 보푸라기를 쳐다보는 눈빛은 조금 울적했다.
“예전처럼 돌려놓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 난 여기서 앞으로도 같이 살고 싶은데. 나 때문에 분위기가 나빠지니까, 내가 계속 숙소에 붙어있어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당연히 되지! 우리 숙손데! 부엌에 여기저기 영역표시 해놔도 괜찮아!”
임서영의 거의 비명처럼 소리쳤다.
이송하가 못을 박았다.
“언니가 찌끄러기고, 엘제이 언니가 부스러기면 나는 천덕꾸러기······.”
“하지 마! 하지 말라고! 그거 이제 그만해!”
임서영이 시뻘게진 얼굴로 팔을 휘저었다.
그 옆에서, 엘제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두드러기.”
“야! 그만하라고!”
“본능이라서.”
엘제이가 어깨를 들썩인다. 곧바로 임서영이 엘제이와 맞붙었다. 이송하는 할 말을 끝내고 이태희의 허벅지에 기댔고, 이태희는 이송하의 긴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개와 고양이가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일상의 모습이다.
나도 모르게 입 끝이 슬쩍 올라갔다. 웃으며 눈앞의 광경과 노트북 화면을 번갈아보고 있는데, 임서영이 와락 달려들었다.
“오빠! 혼자 노는 부분은 몰라도, 뒷부분은 미리 얘기 하셨어야죠! 기절하는 줄 알았잖아요!”
작은 손바닥이 야무지게 내 팔뚝을 때린다. 찰싹찰싹 소리가 요란했다.
“미리 말 못해서 미안. 너한테는 정말 미안해.”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시청자들한테도 네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 카메라도 시청자도 신경 안 쓰는 자연스러운 모습. 그걸 제대로 보여줄 수만 있으면, 대박 날 거라고 생각했거든.”
“대, 대박까지야······.”
팔뚝을 때리는 힘이 약해진다.
노트북을 돌려 임서영의 눈앞에 내밀었다.
“봐봐.”
임서영이 의아한 얼굴로 화면을 훑어봤다. 임서영의 이름을 검색한 포털창. 넵튠과 임서영의 이름이 헤드라인에 박힌 수많은 기사들과, 지금도 정신없이 업데이트 되고 있는 SNS반응.
그리고 실검 메뉴에 떡하니 올라온 ‘임서영’이라는 이름까지.
임서영이 주춤거리며 노트북을 잡았다. 손가락 끝이 화면을 더듬는다.
“임서영 오늘 밤에 잠 다 잤네.”
엘제이가 임서영의 정수리에 턱을 올리며 웃었다.
“어?”
“너 방송 나간 날은 인터넷 반응 다 찾아보고 자잖아. 오늘 뜨는거 다 보려면 너 잠 못 자겠다고.”
“까. 까짓것 날밤 새우면 되지.”
임서영이 노트북을 끌어안았다. 단단히 홀린 듯, 눈빛이 몽롱하다.
그러다가 나를 홱 돌아본다.
“근데 어차피 이건 한참 전에 촬영한 거잖아요. 오늘 저한테 미리 얘기 못한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아직 촬영이 덜 끝났거든.”
“네?”
어리둥절해하는 임서영에게 턱짓했다. 거실 곳곳을 가리키자 임서영의 시선이 졸졸 쫓아온다. 그러길 한참. 숨겨진 것을 발견했는지 임서영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떨리는 손이 선반을 가리켰다.
“저거 뭐예요?”
“카메라. 너 없을 때 다시 설치했어.”
“그럼······!”
임서영이 황급히 나를, 그리고 놀란 기색이 없는 멤버들을 돌아봤다.
“말했잖아. 시청자들한테 네 이런 모습 보여주고 싶었다고.”
내가 말했다.
“전부 다 찍었어.”
임서영이 노트북을 툭 떨궜다.
*
늦은 밤, 수거한 테이프 영상은 두 군데로 보내졌다.
한쪽은 IBC 유수영 피디의 편집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W&U홍보팀으로.
홍보팀 박 팀장은 촬영된 영상들을 쭉 돌려보더니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내 웃음도 비슷하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대중에게 보여주려고 애써왔던 넵튠의 모습이 생생하게, 날것 그대로 담겨있는 영상이니까.
영상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아주 많은 게 달라질 거다.
밤은 아주 길었고, 바빴으며, 흥분으로 뜨거웠다.
나를 비롯한 프로젝트팀은 물론이고 홍보팀 전원이 달라붙었다. 메이킹 필름 연출팀의 도움까지 받았다. 그렇게 밤을 꼬박 새워 십오 분짜리 클립 영상을 만들었다.
촬영된 분량에서 부적절한 부분을 싹 도려내고 포인트만 넣은 영상을.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가랑비가 그치기 시작한 아침.
간밤에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임서영의 셀프 몰래카메라가 불씨가 되어 남아있을 때. 임서영의 이름이 실검 상위에 머물러 있다가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을 무렵.
클립 영상이 포털에 공개됐다.
< 메이킹필름, 하늘에서 떡밥이 빗발친다 (5) > 끝
ⓒ 장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