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킹필름, 하늘에서 떡밥이 빗발친다 (3) >
“복덩이 너, 재벌가 금수저냐?”
“금시초문인데요.”
3팀장이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엔터사업 준비하려고 밑바닥에서 현장경험부터 쌓고 있는 거라던데. 손대는 일마다 성공하는 것도, 운이나 실력이 아니라 사실은 본가에게 은밀히 밀어줘서 그런 거라고.”
“일주일 동안 들은 헛소리 중에 탑이네요.”
3팀장은 찌라시만도 못한 루머를 몇 개나 더 알려주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 그가 사라지자 라운지 곳곳에서 흥미로운 눈으로 힐끔거리던 시선들도 함께 떨어져 나간다.
메이킹필름 첫방이 나간 후 일주일.
하루하루 조용한 날이 없었지만, 그 중에서도 오늘이 절정이다. 2화 방영하는 날이라 그런가. 화제의 중심에 말뚝처럼 박혀있는 건 귀찮고 피곤한 일이다. 그래도 감수할 가치는 있다.
메이필이 일주일 내내 화제성 지수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으니까.
헛소리가 쏟아지긴 했어도, 다행히 크게 논란이 될 만 한 건은 없었고.
오늘 방송이 나가면 관심이 분산될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선우 씨! 중학교 동창이라는 사람이 인터넷에 글을 올렸는데요!”
젠장.
홍보팀 여직원이 태블릿을 들고 달려왔다.
그 뒤로 홍보팀 박 팀장이 설핏 굳은 얼굴로 다가와 이름을 말했다.
“자기랑 짝꿍이었다는데, 누군지 알아?”
“인생의 암흑기였던 때라 기억이 흐릿한데. 안 좋은 내용이에요?”
“일단 봐봐.”
태블릿을 넘겨받았다. 게시글 제목이 ‘나 W&U 정선우 중학교 동창인데’였다. 인증용으로 졸업 단체사진도 올려놨다. 본격적인데. 글 밑으로는 댓글들이 줄줄 달려있다.
내가 중학교 때 사고 친 게 있나? 아니면 나한테 앙심품었던 놈이 있나?
혀를 차며 글 내용을 읽었다.
내가 중2때 전학 갔는데 짝꿍이 정선우였음.
인상이 흉악범(지금은 그때랑 비교하면 모범수임)이라 친해지기 힘들겠다 싶었는데, 얘가 종일 엎어져 자는 거야. 수업시간에 조는 애들 두들겨 깨우던 선생님들도 정선우는 냅두더라고. 그래서 선생님도 못 건드리는 쌩양아치 새끼랑 짝꿍이 됐구나, 좆됐구나 하고 벌벌 떨었지.
근데 알고 보니 그때가 정선우 네쌍둥이 조카 신생아 때라 밤에 집에서 잠을 못자는 거였음. 애기 넷이 돌아가면서 운다고. 맨날 애 보느라 몸에서 애기 젖냄새랑 토냄새 나고, 똥냄새도 나고 그랬음.
TV에 나오고 유명해지니까 네쌍둥이 보모 얘기 다 이미지메이킹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들 있던데, 진짜라는 거 말하고 싶어서 올려봄.
사람 앞날은 모른다더니 정선우가 이런······.
중간까지 읽고 고개를 들었다.
홍보팀 여직원과 박 팀장이 심각한 표정을 지우고 킬킬거리고 있다.
“누군지 모른다는 거지? 잘됐네. 친한 사이면 사주를 했네, 알바를 썼네, 그런 얘기가 나올 수도 있거든.”
“걱정 없이 퍼뜨려도 되겠네요. 이렇게 네쌍둥이랑 묶여서 언급될 때가 제일 반응이 좋아요. 인간미가 느껴져서. 아니었으면 선우 씨 재수 없다는 반응도 꽤 있었을걸요.”
“일등 공신이지. 잘 키운 네쌍둥이가 홍보팀보다 낫다.”
한숨을 쉬며 태블릿을 다시 넘겼다.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잖아요.”
“걱정 마. 우리가 큰일 안 터지게 계속 주시하고 있으니까.”
박 팀장이 웃으며 내 팔를 툭툭 쳤다.
“심각한 건 없어. 대부분 추측이거나 근거 없는 헛소리야. 아, 자기 지인이라는 사람이 기자한테 인터뷰한 게 있던데.”
응?
“자기한테 로또를 대신 사달라고 부탁했었는데,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었다고. 정선우 성공이 다 운빨 덕택이라는 건 헛소리라더라. 기자들도 트래픽 늘리려고 헛소리를 다 써놨···.”
“그거 3팀장님인데요.”
“뭐?”
“부탁하시길래, 한동안 대신 사드렸거든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곧바로 박 팀장의 인상이 험악해진다.
“직원들한텐 기자들 앞에서 입조심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더니, 어디서 어떤 기자한테 떠들고 다닌 거야?”
박 팀장이 시끄러운 발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3팀장을 붙잡으면 바가지를 박박 긁어 구멍을 뚫을 기세였다.
혹시 지난번에 2팀장 안목을 저격했던 기사 인터뷰도 3팀장 작품인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 맞다. 선우 씨 이름값이 확 올라가긴 했나 봐요.”
홍보팀 여직원이 뒤돌아 가다가 말했다.
“증권가 찌라시가 잠깐 떴었는데.”
“무슨 찌라시요?”
“선우 씨가 중국기업한테서 투자 제안 받았다고.”
손끝이 흠칫 굳었다.
“중국자본 끼고, 선우 씨 W&U에서 독립하는 거 아니냐고요.”
“······아.”
“3팀장님, 2팀장님도 이런 찌라시는 한 번씩 다 돌았을걸요. 독립얘기가 나올 만큼 선우 씨 몸값이 높아졌다는 증거죠. 찌라시는 바로 덮였으니까 걱정 마세요.”
“다행이네요.”
가볍게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했다.
***
“도시락 어때요. 스텝들 건강음료랑 기호식품도 넉넉하게 챙기고.”
먹송하가 생과일주스를 빨아올리며 제안했다.
젖살이 남은 나이였지만, 오랜 팬질 경력에서 나오는 여유가 느껴졌다.
“담배도 반응이 괜찮다던데.”
“너무 짜치지 않아요?”
값비싼 브랜드 시계를 찬 젊은 남자가 끼어들었다.
“이왕 조공하는 거 도시락보단 푸드트럭 어때요. 주식, 분식, 디저트까지. 있어 보이는 걸로.”
이송하 개인 팬페이지 임원이었다. 먹송하의 눈이 가늘어졌다. 견원지간인 둘이 서로를 쏘아보자, 중간에 낀 여자가 열심히 눈치를 보았다.
넵튠 공식 팬클럽 트리톤. 이송하의 개인 팬페이지 연합. 그리고 모으고 모아봐야 한줌밖에 안 되는 프리티걸의 팬카페 대표.
세 명은 밀폐된 비즈니스 룸에 모여 있었다. 회동 목적은 메이킹필름 제작진에게 조공할 품목과 규모 결정. 메신저 채팅이나 전화로는 결판이 안 나서 마련한 자리였다.
먹송하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기요, 송하렐라님. 예산이 안 된다니까요.”
“그럼 트리톤에선 도시락 하세요. 우린 총알 더 모아서 송하 이름으로 푸드트럭 보낼게요. 이쪽은 중국 팬들도 있고, 조공 스케일 키우라고 통장 던지는 사람 많아요.”
“적당히 좀 하시죠. 팀 안에서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단체출연인데 스텝들한테 개인조공 따로 하고 생색내면, 위화감 조성하는 것밖에 더 돼요? 소문 퍼지면 송하만 욕먹어요.”
“우리라도 송하를 챙겨야, 애가 언니들 앞에서 기가 안 죽을 거 아니에요!”
송하렐라가 진짜 신데렐라에 빙의라도 한 것처럼 주먹을 꽉 쥐었다.
먹송하의 목소리가 덩달아 커졌다.
“제가 알기로는, 송하가 언니들 앞에서 기죽고 그러는 애가 아니거든요!”
“저번 주 메이필 안 보셨어요? 다른 애들 한마디씩 하면서 분량 챙겨 갈 동안 송하는 눈치 보느라 잘 끼어들지도 못하잖아요! 그리고 24분대에 멤버들 다 같이 있는데 송하만 표정 안 좋았어요!”
“송하는 원래 말수가 적어요! 표정도 원래 그렇고! 당사자들이 사이 괜찮다는데 왜 자꾸 루머에 휘둘려요? 정선우 실장님도 멤버들 사이좋다고 그랬잖아요!”
“정 실장님은 남자잖아요! 여자들만 해석할 수 있는 미묘한 게 있다고요!”
“송하렐라님도 남자잖아요! 미치겠네, 진짜!”
둘의 언성이 높아질수록, 프리티걸 팬 대표는 점점 움츠러들었다.
답답한 가슴을 치던 먹송하가 그녀를 힐끔 보고 말했다.
“이러다 정 실장님, 프리티걸 쪽으로 확 넘어 가실지도 몰라요”
송하렐라와 프리티걸 팬 대표가 동시에 움찔했다.
먹송하가 코웃음을 치며 덧붙였다.
“팬덤 결속력 높인다고 되게 애쓰셨는데, 이거 보면 정이 뚝 떨어지겠네!”
안 그래도 정선우 실장과 넵튠, 프리티걸의 삼각관계는 팬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프리티걸 쪽에서는 언감생심 바라지도 못하는 일이라 납작 엎드려 있었고, 트리톤과 이송하 팬 연합에서는 열심히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이윽고 먹송하가 핸드폰을 꺼냈다.
“정 실장님한테 조공 가능한 스케줄부터 물어볼게요.”
“실장님이요? 개인번호로 전화 자주 해요? 전화 걸면 받아요?”
송하렐라가 은근슬쩍 의자를 들어 먹송하 쪽으로 붙었다.
통화는 금방 연결됐다. 먹송하가 능숙하게 스케줄을 확인했다. 송하렐라는 먹송하가 든 핸드폰을 탐나는 눈으로 바라봤고, 프리티걸 팬 대표는 얌전히 날짜를 메모했다.
“실장님, 오늘 메이필에 넵튠 분량 좀 나올까요?”
마지막에, 먹송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은 떡밥 좀 있으면, 커뮤니티 돌면서 넵튠 영업하려고······ 네.”
먹송하의 표정이 묘해졌다. 다른 두 명의 시선이 핸드폰에 집중됐다.
전화를 끊자마자 먹송하가 붉어진 뺨을 문질렀다.
“빗발칠 거래요.”
“네?”
“떡밥이 빗발칠 거래요!”
***
“본방 보러 안 가세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직원이 앞에 서 있었다.
그가 술잔 넘기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애들이랑 다 같이 단체관람 어때요? 호프집 하나 예약해서요.”
“다음 주에 하죠.”
가방과 겉옷을 챙겨 일어났다.
“오늘 건 따로 봐야 할 것 같아서.”
익숙한 풍경이다.
다락방처럼 푸근한 공기가 흐르는 거실. 이태희는 오늘도 배부른 나무늘보처럼 소파에 드러누워 있고, 이송하는 굶주린 이태희의 다리에 기댄 채 아이스크림을 퍼 먹는다. 엘제이는 러그위에 편안하게 앉아있었다.
그리고 임서영은 노트북에 코앞에 놓고 열정적으로 모니터링중이다.
“오빠, 오빠! 지금 메이필 본방 기다리는 사람들 엄청 많아요?”
“그래?”
“시작도 안 했는데 기사도 막 올라오고. 이번엔 오빠가 또 무슨 미친 짓을 할까가 시청 포인트래요! 프리티걸 애들 보려는 사람들도 쫌 있고. 이 사람은 일주일동안 애들 매력 포인트 찾아 헤매다가, 본의 아니게 입덕했대요!”
신이 나서 커뮤니티와 SNS 반응을 훑던 임서영이 감탄했다.
“우와, 이송하 나오면 알려달라는 사람 되게 많아요! 쟤 나오는 부분에서 시청률 쭉쭉 올라가서 최고시청률 찍겠다! 피디님이 많이 넣어주셨으면 좋겠는데. 잘하면 오늘 10프로 넘을 수도 있겠죠?”
흥분으로 들뜬 목소리가 굴러다닌다.
넥스트 K스타에 출연한 뒤로 다른 예능프로, 드라마, 라디오, 영화까지 경험했다. 이제 다른 애들은 이런 일에 제법 익숙해졌는데, 임서영은 언제나 처음 반응 그대로다.
아직도 방송에 나오는 게 놀랍고,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게 신기한 것처럼.
“이제 집중해.”
자연스럽게 노트북을 뺏으며 말했다.
임서영이 밥그릇을 강탈당한 강아지처럼 놀란다.
“노. 노트북은 왜요!”
“TV봐. 반응은 내가 보고 알려줄 테니까.”
“전 눈알이 두 개라서 동시에 TV도 보고 노트북도 볼 수 있는데요!”
“헛소리하지 말고.”
다시 노트북을 돌려받으려고 애를 쓰던 것도 잠시. 광고가 끝나고 타이틀이 뜨자 곧바로 화면에 넋을 빼앗긴다. 임서영을 툭툭 건드리며 놀려먹던 엘제이가 그 모습을 보고 슬쩍 웃는다.
거실이 조용해졌다.
화면 속에는 나와 프로젝트 팀원들, 그리고 프리티걸과 이태신 실장의 얼굴이 번갈아가며 잡혔다. 화면에 내가 잡힐 때마다 왼쪽에선 이송하의 시선이 살짝살짝 닿고, 오른쪽에선 임서영이 호들갑스럽게 내 어깨를 흔들었다.
프리티걸의 싱글 앨범을 만들기 위한 팀이 제작되고. 하루아침에 변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프리티걸 애들이 보인다. 그리고 인터뷰가 이어진다. 원래 8명이던 프리티걸이 왜 3명밖에 남지 않았는지.
왜 이태신 실장이 정재이를 찾고 있는지.
과거사가 담담하게 흘러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낯익은 장소가 나왔다.
담쟁이넝쿨이 뒤덮인 하얀 빌라.
“어! 우리 숙소! 우리 숙소 나왔어!”
“알아. 우리도 눈알 두 개거든.”
엘제이가 임서영을 보며 심드렁하게 웃었다.
곧 화면에 숙소 거실이 비췄다. 곳곳에 설치한 카메라가 모여 앉은 애들을 다양한 각도와 사이즈로 촬영했다. 프리티걸을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계획을 세운다. 언제나 그렇듯이 대화를 이끌어가는 건 임서영이었다.
회의 같지 않은 회의는 금방 끝났다.
곧이어 내가 등장하더니, 스케줄이 있는 이송하를 데려간다. 이태희는 프로듀서와 자작곡에 대해 상의할 게 있다며 숙소를 나섰다. 마지막으로 엘제이가 언더 시절의 친구들을 만난다며 자리를 비웠다.
화면이 썰렁해진다.
방금 전까지 북적거리던 거실에 남은 건 임서영뿐이었다.
“어어, 끝났네. 뒤에 다시 나오나? 좀 더 나오겠죠?”
TV를 보며 임서영이 아쉽게 중얼거렸다.
화면 속의 임서영도 촬영이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카메라 전원을 끈다.
숙소에 설치된 카메라의 숫자를 알려주듯, 화면이 십여 개의 작은 화면으로 나눠진다. 임서영이 분주하게 움직일 때마다 영상이 하나씩 깜깜해졌다. 마침내 화면이 온통 검게 물들었다.
왼쪽 귀퉁이, 임서영이 비치는 작은 화면 하나만 남기고.
“어······?”
옆에서, 임서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메이킹필름, 하늘에서 떡밥이 빗발친다 (3) > 끝
ⓒ 장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