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킹필름, 하늘에서 떡밥이 빗발친다 (2) >
“대박!”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홍보팀 여직원이 내 손을 낚아챘다.
“첫방 시청률 9프로! 동시간대 1위! 또, 또 뭐지?”
“SNS화제성 지수 1위!”
홍보팀 남직원이 싱글싱글 웃으며 내 반대쪽 손을 붙들었다. 동시에 다른 직원들이 우르르 덮쳐왔다. 예상했던 일이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핸드폰에 남은 수많은 부재중 통화기록과 축하 메시지를 봤을 때부터.
하지만 강강술래까지는 예상 못했는데.
한참 내 손을 붙들고 팔짝거리던 여직원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어제 메이필 방송에 나온 사람들. 프리티걸, 넵튠, 남조윤씨, 심지어 작곡가까지 화제예요! 선우 씨는 말할 것도 없고요. 전에 예능 게스트로 출연했던 때랑은 파급력이 비교도 안 될걸요? 아직은 실감이 확 안 나시죠?”
“실감 나요.”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고 말했다.
“인터넷에 제 고등학교 졸업사진이 돌아다니더라고요.”
친구 놈들이 단톡방에서 웃고 난리길래 뭔가 했더니, 그거더라고.
직원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튀었다. 몇 명은 아직 못 봤는지 재빨리 핸드폰을 두드린다. 곧 웃음이 배로 늘어났다. 킬킬거리다 못해 거의 울고 있는 홍보팀 여직원에게 물었다.
“사진 다 못 내리죠?”
“포기하세요. 그건 국정원도 못해요.”
그럴 줄 알았다. 그냥, 혹시나 했지.
사무실 안을 슥 둘러봤다.
유쾌한 웃음소리. 그리고 흥분으로 가득하다. 내 입가에도 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오랜 시간 매달려온 일이 성과를 거뒀을 때의 기분은, 언제 느껴도 뿌듯하고 만족스럽다.
이번 프로젝트는 이제 첫발을 내딛었을 뿐이지만.
어쨌든 무진장 성공적인 첫발이니까.
“프리티걸 애들은 어때요?”
이태신 실장에게 물었다.
넋이 나간 채로 돌아다니던 그가 퍼뜩 놀란다.
“아! 애, 애들이요. 재이는 안무 연습중이고 막내들은 학교 갔습니다. 수업 끝나자마자 곧바로 연습실로 오기로 했어요.”
“방송 나가고 나서 별일은 없대요?”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달라졌을 텐데.
“애들은 아직 얼떨떨한 거 같은데, 좀 전에 연두랑 통화했더니 반 친구들이 난리가 났다고 하더라고요. 앨범 언제 나오냐고, 노래 먼저 들어보면 안 되냐고 하도 졸라서 도망 다니고 있대요.”
“당분간은 학교에서 바로 픽업해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너무 크게 화제가 돼서, 기자들이 붙을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어제 방송 나간 이후로 연락이 엄청 오는데요.”
이태신 실장이 핸드폰을 꺼냈다. 지금도 진동하고 있다.
“인터뷰랑, 케이블이나 종편 프로그램 게스트 섭외도 들어오고요. 행사대행사 쪽에서도 계속 전화오고 있습니다.”
방송 나가기 전에는 슬쩍슬쩍 간만 보더니.
첫방 반응이 뜨거우니까 이제야 마음이 기운 모양이지.
“그건 정리해서 다시 회의하죠. 아직은 추이를 더 봐야하니까.”
“아, 네. 그럼 목록 정리해놓겠습니다.”
대화를 끝내고 의자에 앉는데, 이번엔 김현섭이 수첩을 들고 왔다.
“조윤이 어머, 실장님. 조윤이한테도 섭외가 이것저것 들어오는데요.”
“어떤 거요?”
김현섭이 섭외내용을 읽었다. 대부분 여자들이 많이 보는 잡지거나, 여자들이 많이 보는 케이블 프로그램이다.
홍보팀 여직원이 수첩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방송 후부터 여성커뮤니티 쪽에서 반응이 확 오고 있거든요.”
“방송엔 얼마 안 나왔잖아요?”
“분량보단 임팩트가 중요하죠. 남조윤 씨 예전 잡지 인터뷰나 기사들이 다시 발굴되고 있어요. 특히 선우 씨하고의 관계를 흥미로워하더라고요. 얼라이브 악역 이미지가 이번 기회에 많이 환기됐어요. 상당히 긍정적으로.”
“어떤 포인트가 먹혔는지 몰라도, 잘 됐네요.”
일 끝나면 제대로 모니터링 해봐야겠네.
이관우와 넵튠 스케줄까지 정리하고 나서야, 마침내 책상에 앉았다.
인터넷을 켜고 포털에 접속했다. 메인에 걸린 기사에 내 얼굴이 보인다.
[미다스의 손 정선우, 언론이 만들어낸 허상일까?]
*
“연예인이신가 봐요?”
점원이 캐리어에 커피를 담으면서 물었다.
주문 받을 때부터 힐끔거리는 게 이럴 것 같더라니.
“아니에요.”
“저 방송국 커피숍 알바 1년째예요. 딱 보면 알아요.”
애교 섞인 콧소리를 내며 대놓고 내 얼굴을 훑어본다. 그냥 평소처럼 선글라스로 끝낼걸, 괜히 모자까지 썼나. 방송국 근처에는 이렇게 얼굴 가리고 다니는 연예인들이 수두룩하니 점원이 오해할 만도 하다.
도넛박스와 커피를 챙기고 돌아섰을 때였다.
“시발. 뭔 놈의 아이돌 리얼리티가 시청률이 9프로가 나오냐?”
“더 오를 것 같던데? 메이필, 메이필, 시끌시끌하잖아.”
“이거 때문에 우리 애들이 헛바람 들어가지고 지상파 리얼리티 잡아달라고 난리다. 헛소리하지 말라고 했더니 정선우처럼 노오오력을 해보래.”
“정선우 개새끼.”
“방송국에서 그 새끼 만나면 계단에서 등 밀지도 몰라.”
고개를 슬쩍 돌리고, 매니저인 게 분명한 남자들을 지나쳤다.
앞으론 마스크도 쓰고 다녀야 되나.
방송국에 인기 많은 아이돌이 와 있는지 건물 밖에 어린 여자애들이 우글거린다. 달라붙는 시선을 털어내고 로비 안쪽에 있는 출입구로 다가갔다. 무슨 일인지 여기도 시끌시끌하다.
“아저씨, 저 기자예요. 인터뷰하러 왔다구요!”
“출입증 보여주세요.”
“놓고 왔어요. 오늘만 그냥 들어가면 안돼요?”
“안 됩니다. 저번에 극성팬이 기자 사칭하고 들어가서 사고 났었어요.”
젊은 여자와 경비원이 실랑이 중이었다. 경비원이 내 쪽을 쳐다봤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예능국 유수영 피디님 좀 뵈려고요.”
도넛박스를 옆구리에 끼고 선글라스를 벗었다.
“출입증··· 아, 들어가세요. 어제 방송 진짜 재밌던데요.”
“감사합니다.”
“저 사람은 왜 출입증 검사 안 하는데요!”
“얼굴을 아니까요.”
경비원이 무뚝뚝하게 말하고 한쪽 입구를 열었다. 그가 젊은 여자를 잡고 있는 동안 안으로 들어갔다. 등 뒤로 여자가 떽떽거리며 소란을 피운다.
내가 보기에도 기자 느낌은 아닌데. 정말 사칭이라면, 누구 팬인지 그쪽 매니저도 고생 참 많게 생겼다.
넵튠 팬덤에선 큰 사고치는 애들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곧장 예능국으로 올라갔다. 오늘따라 더 북적거린다. 영업을 하러 왔는지, 나처럼 커피 캐리어를 들고 있는 매니저도 몇 보인다. 흔한 풍경이다. 이젠 커피를 받는 피디 표정만 봐도 저건 되겠다, 안 되겠다 짐작이 간다.
복도를 빠져나가는데 한참이 걸렸다. 높은 시청률을 축하하며 친근하게 다가오는 사람들. 쑥덕거리며 멀리서 쳐다보는 사람들. 중간에서 머뭇거리는 사람들. 다행히 등 뒤에서 미는 사람은 없다.
편집실 근처에서 메이킹 필름 조연출을 발견했다.
커피를 든 젊은 매니저, 그리고 인형처럼 웃고 있는 여자애들도 함께.
“지금 편집하시느라 바쁘세요. 저한테 말씀하세요.”
“메이킹 필름 끝나면, 유수영 피디님이 바로 굿프렌즈 2시즌 메인으로 들어가신다고 들었는데. 저희 회사 신인 애들 좀 보여드리려고요. 딱 인사만 할게요. 얘들이 인지도가 쫌 아쉽긴 한데, 예능감은 장난 아닙니다.”
매니저가 잽싸게 손짓한다. 여자애들이 얇은 허리를 반으로 접으며 인사했다. 이미 다른 매니저들한테도 꽤 시달렸는지, 조연출이 한숨을 푹푹 쉬며 마주 인사했다. 그리고 입을 열다가 나를 발견했다.
“정 실장님!”
“첫방 반응이 너무 좋아서 인사차 들렀어요. 그런데···.”
조연출에게 커피를 건네며 물었다.
“굿프렌즈 출연자 바뀌어요?”
“네? 아뇨! 애들은, 아니 출연자는 그대로 가고 피디만 교체됩니다!”
다행이네.
뺨이 따갑다. 웃으며 다른 매니저에게 인사했다. 떨떠름한 얼굴로 마주 인사한 매니저가 여자애들을 끌고 황급히 사라졌다. 여자애들이 질질 글려가면서도 몇 번이나 뒤돌아봤다.
“반응 장난 아니죠?”
조연출이 입 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어제 방송에서 정 실장님을 떡밥으로 던져서 그런가, 편집실에 틀어박혀 있는데도 정 실장님 얘기가 엄청 들리던데요? 프리티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보다 긍정적인 의견이 많고요.”
“피디님이 워낙 편집을 잘 해주셔서. 다 알고 봤는데도 재밌던데요.”
“재미가 없을 수가 없어요. 활활 불태우고 계시거든요.”
조연출이 뒤쪽을 가리켰다. 메이킹 필름 이름표가 붙은 편집실. 안을 들여다보니, 프리뷰 노트가 너저분하게 깔린 닭장 안에서 유수영 피디가 편집 중이었다.
문득 첫 만남이 떠오른다.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휴먼다큐 프로그램을 시사하던 유수영 피디의 모습이. 지금은 봉두난발을 하고 어깨위에 부스스한 담요를 두르고 있다.
“애도 있으신 분이, 집엘 안 가시고 편집실에서 사세요.”
조연출이 혀를 내둘렀다.
“일이 많으신가 봐요?”
“많긴 하죠. 메이필 편집하시랴, 굿프렌즈 구성 검토하시랴, 바쁘신 건 맞는데. 제가 보기엔 즐기시는 것 같아요. 가끔 막 중얼중얼하시거든요. 역시 예능이 재밌어. 짜릿해. 새로워. 이러시면서.”
아. 그러고보니 술 먹고 예능이 하고 싶다고 울던 여자였지.
편집실 안으로 들어가 커피와 도넛을 건넸다. 겉보기엔 방구석 폐인이지만, 유수영 피디의 눈은 즐거움으로 번쩍거렸다. 즐기면서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준다면야,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지.
잠깐 얘기를 나누다가 화면을 봤다. 임서영 얼굴이 떠 있다.
“넵튠 애들 부분도 잘 부탁드립니다, 피디님.”
“어떻게 붙을 건지 다 아시면서. 새삼스럽게.”
유수영 피디가 도넛을 크게 물며 웃었다.
그때 누군가 닫힌 문을 두드렸다. 조연출인가 했더니, 최병수 피디가 문틈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밤샘중인 유수영 피디보다 저쪽이 더 퀭하다. 서로 간에 반가운 얼굴은 아니라 데면데면한 인사가 오갔다.
그가 나와 유수영 피디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시청률 꽤 잘 나왔던데요. 축하합니다, 정 실장님. 선배님.”
설마 저 말을 하러 왔나 싶었는데, 곧장 구시렁거린다.
“능력도 있으신 분이 왜 후배 밥그릇을 뺏어 가시고······.”
그가 불만스럽게 덧붙였다.
“뭐, 잘 해보세요. 팀 새로 세팅하시고 파악하시려면 바쁘시겠네요.”
“팀을 왜 새로 세팅하니?”
“저도 빠지고 작가진도 빠지면, 새로 세팅하는 거나 다름···.”
“작가진은 그대로 갈 거야.”
최병수 피디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대로 간다고요? 황 작가님이···!”
“메인작가랑 얘기 다 끝났어. 너만 빠지면 돼.”
유수영 피디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멍청한 얼굴로 입을 벙긋거리던 최병수 피디가 촛불 꺼지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유수영 피디가 손에 묻은 도넛 부스러기를 털고 내밀었다.
“앞으로도 쭉 잘 해봐요. 한 식구처럼.”
좋지, 한 식구.
즐겁게 그 손을 맞잡았다.
*
행사장은 열기로 후끈거렸다. 무대 앞에 바글바글하게 모인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넵튠의 무대까지는 아직 좀 시간이 남았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정신없이 바쁜 행사대행사 직원들 틈에서 익숙한 얼굴을 찾아냈다.
“저 찾으셨다면서요.”
“아이고, 정 실장님! 아니, 팀장님!”
대행사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행사철 아닙니까! 넵튠 스케줄 좀 여쭤보려고요.”
목소리가 살살 녹는다.
넵튠은 행사 쪽으로 인기가 높은 편이다. 가성비가 좋으니까.
넵튠이라는 팀만 따지면 급이 애매한데, 거기에 이송하라는 여배우가 포함되면 대중성도 화제성도 확 올라가거든. 개런티는 싸게 들고 주최 측에게는 제대로 생색을 낼 수 있으니. 대행사들이 넵튠의 급이 이 상태로 쭉 머물기를 기도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다.
뭐, 지금까지는 그랬는데.
“이미 잡힌 스케줄 말고, 나머지는 좀 기다렸다가 잡으려고요.”
“네? 왜요?”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하곤 좀 많이 달라질 것 같아서요.”
< 메이킹필름, 하늘에서 떡밥이 빗발친다 (2) > 끝
ⓒ 장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