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164화 (164/218)

< 메이킹필름, 하늘에서 떡밥이 빗발친다 (1) >

[메이킹 필름(메이필) 불판 깝니다. 첫방이라 몇 분이나 달리실지 모르겠지만!]

-탑승! 본방 벌써 시작했나요?

┖아직요. 광고 꽤 붙었네요.

┖완판됐을걸요. 정선우 때문에 화제성 어마어마했으니.

-근데 정선우는 대체 왜 인기가 많은 거예요?

┖어디서 인기가 많아요?

┖선우니?

┖인기까진 모르겠는데 인지도 높은 건 확실함. 미다스 때문에.

┖호불호 따지면 호가 많긴 해요. 초반에 예능 두 개 출연해서 이미지를 잘 잡았던 게 컸죠. 겉보기엔 학창시절에 담배 피고 다녔을 것 같은 놈이 사실 기저귀 갈고 다녔다는 갭이 잘 먹혔음.

-메이필 흥할까요? 첫방 시청률은 높을 것 같은데.

┖이런 거 흥하려면 악마의 편집으로 희생양 만드는 게 제일인데, 메이필은 감성팔이로 갈 것 같음. 1시간동안 프리티걸 나와서 질질 짤 것 같아서 벌써 기 빨리네요.

┖그렇게 만들려고 휴먼다큐 했던 피디 부른 거죠.

┖오늘 시청자 못 잡으면 거품 다 꺼지고, 결국 넵튠 팬만 보게 됨.

-근데 무명 걸그룹 쌔고 쌨는데 왜 프리티걸을 골랐을까요?

┖이게 최대 의문이죠. 오늘 방송에서 사연 풀어줄 듯!

-광고 끝났어요! 본방 시작함!

*

사례 1_

어둑한 화면 속에 자막이 뜬다. 담쟁이덩굴에 뒤덮인 빌라 외경이 비치더니, 카메라를 든 제작진이 안으로 찾아 들어갔다. 미스터리 장르의 영화에나 어울릴 것 같은 배경음악이 스산하게 깔렸다.

전환된 화면에 숙소 거실에 둘러앉은 넵튠 멤버들이 보였다.

「생각해보면 송하한테 연기 시킨 거요. 그거 진짜 뜬금없었어요.」

파자마를 입은 임서영이 무서운 얘기를 하는 것처럼 말했다.

「송하가 안무연습하고 있는데, 선우 오빠가 갑자기 와서 이랬대요.」

「너 연기해라.」

엘제이가 성대모사 하듯 덧붙였다.

임서영이 계속 말했다.

「그때부터 도망치는 송하 잡으러 다니다가 결국 설득했죠. 그리고 그날 바로 송하한테 줬던 게 고양이 수호령 시놉이었어요.」

유수영 피디의 목소리가 물었다.

「같은 날 성도원 씨가 정선우 실장님한테 매니저로 와달라고 제안했었다면서요? 실장님이 그걸 거절하고 넵튠 팀에 남았고, 바로 송하 씨랑 고양이 수호령 오디션 준비했다고.」

잠시 이태희를 쳐다본 임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들 오빠한테 미쳤다고 했어요. 엄청난 기회 걷어차더니 뭐하는 거냐고.」

엘제이가 턱을 괴고 덧붙였다.

「그땐 고양이 수호령이 이렇게 잘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을 때였으니까요. 회사 사람들 전부 송하 연기가 발연기 수준인 걸로 알고 있었고.」

「되게 궁금했어요. 대체 뭘 믿고 저렇게 밀어붙이는 걸까.」

임서영이 고개를 기울였다.

「선우 오빠도 그전까지 송하 연기하는 거 본적 없었거든요.」

사례 2_

자막과 함께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이번엔 이름 모를 카페의 프라이빗룸이었다. 창백한 조명이 흔들렸다. 테이블 건너편에는 남조윤과 그의 매니저 김현섭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인터뷰 촬영이 익숙하지 않은지 남조윤이 마른 입술을 더듬었다.

「선우랑은 독립영화 촬영장에서 처음 봤습니다. 그 다음날 프로필 보내달라고 연락이 왔고. W&U에서 미팅을 했는데, 결과가 안 좋았어요.」

메마른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걸로 끝일 줄 알았는데. 곧바로 선우가 제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왔습니다. 정식으로 계약서는 못 쓰겠지만, 괜찮다면 같이 일하고 싶다고.」

「제3자가 보기엔 그 상황이 어땠나요?」

유수영 피디가 김현섭에게 물었다.

김현섭이 과장스럽게 손사래 쳤다.

「듣고도 못 믿었죠.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잖아요. 그날 촬영장에서 조윤이가 연기한 부분이 얼라이브에 나온 것처럼 임팩트 있는 씬도 아니었고. 그 자리에 얘보다 잘생기고 평 좋은 다른 배우도 있었거든요.」

김현섭이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만난 지 며칠 만에 그렇게 됐다고 하니까. 정 실장님이 아니었으면 사기꾼이라고 생각했을 걸요? 아니, 돈 뜯어내려는 사기꾼들도 그것보단 신중하게 접근할 텐데.」

「대체 왜 남조윤 씨였을까요.」

유수영 피디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남조윤이 멋쩍은 듯 목덜미를 쓸었다.

「사실은, 저도 아직 모르겠어요.」

「얼라이브로 많은 호평을 받았고, 충무로의 기대주로 자리를 잡았으니 결과적으로는 정선우 실장님의 선택이 옳았다고 봐야겠죠.」

「그럼 다행이네요.」

남조윤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제게서 뭔가를 봤다고 말하는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거든요.」

「이번에 정 실장님이 프리티걸이랑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는데, 그 선택을 두고 반응이 시끌시끌해요. 프리티걸이 특이점이 없는 무명인데다가 해체 직전까지 갔던 걸그룹이니까요.」

「뭐, 그런 반응이야 조윤이 때도 많았죠.」

김현섭이 어깨를 들썩이며 덧붙였다.

「얼라이브 개봉 전까지만 해도 다 정 실장님보고 미쳤다고 했어요.」

화면이 움직였다. 제작진은 비좁은 원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다시 기묘한 배경음악이 흘렀다.

건조한 자막이 의문을 제시했다.

정선우는 왜 이송하의 연기를 보지도 않고, 그렇게 연기를 권했을까. 그리고 왜 무명배우였던 남조윤을 무조건적으로 영입하려고 애썼을까. 사람들은 두 번 모두 미친 짓이라고 했지만, 결과는 둘 다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사례 3_

고정된 화면에 프리티걸의 동갑내기 막내멤버 셋이 들어왔다. 교복을 입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웃고 있다. 가운데에 선 오연두가 경직된 손을 교복 치맛단에 문질렸다.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음방 때 처음 인사하고, 이년 만에 공연장에서 다시 뵀어요.」

「그게 얼마 전 일이죠?」

「네. 그 날은 별다른 일 없이 헤어졌는데, 며칠 후에 정선우 실장님이 숙소로 직접 찾아오셨어요. 저희 팀이 해체하기 직전이라 상황이 정말 안 좋았었는데, 그 자리에서 싱글 앨범을 같이 만들어보자고 하셨어요.」

「갑자기, 세 번째 만남에서요?」

「네. 그날 바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됐어요.」

곧장 정선우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화면속의 그는 가만히 앉아있었다.

유수영 피디가 물었다.

「가장 궁금한 건, 대체 왜 프리티걸이냐는 거예요.」

「글쎄요. 말로 설명하기가 참 어렵네요. 느낌이라.」

정선우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느릿하게 턱을 문지른다.

「이런 경험이 몇 번 있었는데요.」

「이송하 씨랑 남조윤 씨요?」

그가 어깨를 조금 들썩이며 웃었다.

「네. 제가 뭐라고 설명하든, 결국엔 다들 미쳤다고 하시더라고요.」

*

-여러분 진정하시죸ㅋㅋㅋㅋㅋ이러다 불판 터지겠어요!

-정리 좀 할게요. 이송하 연기를 정식으로 못 본 상황에서 연기하라고 설득했다는 거죠? 사실이면 안목이 좋은 정도가 아니라 눈깔이 스카우턴데?

-남조윤이랑은 만난 지 삼일 만에 결혼한 부부급 사연ㅋㅋㅋㅋ

-2년 전이면 성도원 한창 탑급일 때 아닌가요?

┖탑오브탑이었죠. 그때 성도원한테 갔으면 완전 망테크 탔을 텐데.

┖진짜 신내림 받은 거면 이제 그만 털어놔라. 믿어줄 준비가 됐다.

-정선우 미친 짓 중에 프리티걸이 최고 아니에요? 2년 만에 만나서 인사만 한 사인데 바로 프로젝트 제안. 그것도 앨범에 방송까지 포함된 초대형 프로젝트. 완전 미친놈인데ㄷㄷㄷ

┖분명 미친놈은 맞는데 이미 다른 미친 짓을 성공시킨 미친놈임.

-이송하랑 남조윤 때도 다 미친 짓이라고 했는데 성공한 거 보면, 프리티걸한테도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겠죠?

-프리티걸 멤버들 다시 나오네요. 일단 봅시다.

*

「프로젝트 기사 뜨고 주변 반응이 어땠어요?」

피디의 물음에, 오연두가 큰 눈을 굴리며 대답했다.

「축하해주신 분도 많고,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신 분도 많았어요.」

「본인들은 이유가 짐작이 가요?」

멤버들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아니요.」

「노래나 안무 연습은 정말 많이 했는데. 근데 이건 저희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무명 걸그룹이나 연습생들도 다 똑같이 열심히 하니까요.」

「정 실장님이 다 실수라고, 취소하자고 하시는 꿈도 꿨어요.」

「저도요. 평생 꾼 악몽 중에 제일 무서웠어요.」

말하다가 소름이라도 돋았는지 멤버들의 어깨가 흠칫흠칫 떨렸다.

유수영 피디가 다시 물었다.

「혹시 노래나 안무 말고 서로 아는 매력 포인트가 있다거나?」

멤버들이 풀지 못하면 세상이 멸망하는 퀴즈를 받은 것처럼 심각해졌다.

침묵이 길어지자, 셋 중에 가장 호리호리한 윤솔이 나섰다.

「연두가 저희 중에 제일 손재주가 좋아요!」

오연두가 헛숨을 삼켰다. 유수영 피디가 관심을 보이자 윤솔과 다른 멤버인 이화인이 옷장에서 옷을 꺼냈다. 눈부시게 화려한 비즈가 빽빽이 붙은 무대의상이었다.

「연두가 한 알 한 알 꿰서 붙인 건데. 다 전문가 작품인 줄 알아요.」

「하, 하지 마.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아···!」

목부터 이마까지 열이 오르듯 새빨개진 오연두가 손사래 쳤다.

뭔가 열심히 생각하던 윤솔이 다시 입을 열었다.

「화인이는 공부 잘해요!」

「내, 내가?」

이화인이 기습당한 사람처럼 놀랐다. 쌍꺼풀 없이 단정한 눈이 커졌다.

「우리 중에 제일 잘하잖아. 짬 날 때마다 공부하고 있고.」

「그거야, 성적 유지 못하면 아빠가 그만두고 집으로 내려오랬으니까.」

「몇 등정도 해요?」

피디의 태연한 물음에 이화인의 귀가 붉어졌다.

「어, 십육 등이요. 반에서.」

「아.」

마지막으로 윤솔이 오연두의 부추김으로 성대모사를 몇 개 했다.

그 뒤에 남은 건 침묵. 그리고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는 금붕어 셋이었다.

*

-수작업으로 무대의상 구슬 꿰는 부분이 딱 감성팔이 타이밍이었는데.

-성적 얘기할 때 전교 1등정도 나올 줄 알았음ㅋㅋㅋㅋ

-이송하랑 남조윤은 연기를 엄청 잘했죠. 그 가능성을 정선우가 발견해서 키운 거고. 그럼 분명 프리티걸한테서도 뭔가를 봤을 텐데. 그 뭔가가 뭘까요.

-근데 원래 리얼리티는 ‘이게 얘 매력 포인트야!’ 하고 시청자들한테 주입시키는 거 아니에요? 이건 왜 시청자들이 멤버들 매력 포인트를 적극적으로 분석하고 앉아있지.

┖프리티걸 나올 때마다 스킵하게 될 줄 알았는데 눈에 불 켜고 봄ㅋㅋ

-애들은 멘붕인데, 정선우는 이 와중에 작곡가한테 곡 받으러 가네요.

┖DOM이 누구예요? 처음 듣는데.

┖완전 무명 작곡가라는데요. 그럼 곡 다른 걸로 바꾸지 않을까요?

┖이미 계약된 거 아닌가? 저 작곡가는 웬 날벼락?

┖더 좋은 곡 새로 뽑아서 타이틀로 밀고, 저 작곡가 곡은 수록곡으로 돌리던가 하겠죠. 무조건 곡이 좋아야 되는데 의리 따질 때는 아님.

-잠깐만요, 잘못 들었나?

*

「진짜 제 곡으로 그냥 가신다고요?」

화면은 반지하 자취방 한쪽에 차려진 작업실을 보여줬다. 젊고 비쩍 마른 무명 작곡가 DOM이 정선우와 마주앉아 있었다. 와이셔츠의 단춧구멍처럼 작은 눈이 계속 깜빡였다.

정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프리티걸 주기로 한 곡이잖아요.」

「그, 건 그렇죠. 그런데 다른 작곡가 곡으로 바꾸실 줄···.」

「다른 곡은 애초에 염두에 없었어요. 이 곡으로 갈 겁니다.」

「저, 정말이요?」

「정말입니다.」

정선우가 웃으며 말했다.

*

-이해할 수가 없네. 아니 왜? 진짜 왜? 대체 왜?

┖저 작곡가 표정이 내 표정.

┖W&U면 좋은 곡 많을 텐데. 다른 것도 고려해 보는 게 정상 아닌가?

┖저 곡이 스타 작곡가 씹어 먹을 만한 곡이면요? 전에 이태희 자작곡 타이틀로 밀어서 성공시킨 적도 있었고. 정선우 실장이 저 곡 때문에 프리티걸을 선택한 걸 수도 있잖아요.

┖같이 앨범 만들자고 한 다음에 곡 들었다고 했음. 순서가 안 맞아요.

-생각해봤는데 정선우요. 지금 미다스의 손이라는 타이틀에 너무 휘둘려서 본인이 주체를 못하는 거 아닐까요. 무조건 남들 예상과 다른 선택을 해서 그걸 성공시켜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여기 한 표.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무작정 직진하는 느낌인데.

┖저도 여기 한 표.

┖저도.

-곡 듣자마자 이거다! 해서 다른 곡 들을 필요를 못 느낀 걸 수도?

┖전 이쪽. 이송하나 남조윤 때 생각하면, 진짜 뭐 꽂힌 듯.

메이킹 필름의 첫방이 끝난 후에도 인터넷은 가라앉을 기미가 안보였다. 앨범과 프리티걸, 특히 정선우의 이야기가 각종 커뮤니티와 SNS에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실시간으로 방송을 중계하던 글에는 댓글이 수백 개씩 쌓였다. 메이킹 필름과 관련된 키워드가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빠르게 점령했고, 연예뉴스 페이지들은 어뷰징기사로 도배됐다.

뜨거운 반응은 메이킹 필름의 본방을 보지 않은 사람들까지 웅성거리게 했다. 누군가는 서로 감상을 주고받고, 어디선가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기대를 드러냈다.

-메이킹 필름, 이거 2화 엄청 궁금하지 않아요?

< 메이킹필름, 하늘에서 떡밥이 빗발친다 (1)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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