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150화 (150/218)

< 무능하거나, 유능하거나 (3) >

“사정을 짧게 듣긴 했는데, 소속사는 아예 손을 뗀 겁니까?”

이태신 실장이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네. 애들이 어느 회사로 가든 계약 문제로 시끄러울 일은 없을 겁니다. 그 문제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실제로 먼저 탈퇴한 멤버는······ 다른 회사랑 계약해서 데뷔조에 있다고 하고요.”

소속사도 없고. 팀은 해체되기 직전.

나를 애타게 쳐다보는 이태신 실장에게 말했다.

“저희 회사에선 당장 연습생을 뽑을 계획은 없습니다.”

“아······.”

내 말에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터진 상처위로 다시 핏기가 올라온다.

“다른 회사 연습생으로 들어가려면 셋이 뿔뿔이 흩어져야 할 거고요.”

“이런 상황에서 애들이 같이 지내길 바라는 건 욕심이죠. 건실한 회사에서 받아 주기만 한다면, 따로따로 떨어지더라도 당연히···!”

끅끅거리던 멤버 한명이 결국에 곡소리를 냈다. 울음은 금방 전염됐다. 너무 울어서 어지러운지, 술 취한 것처럼 휘청거리기까지 한다. 이태신 실장이 그 모습을 참담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한 멤버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저희까지 다 가면 실장님은요? 저희 땜에 돈도 많이 빌리셨는데.”

“사채업자들이 와서, 실장님 신장이랑 콩팥이랑 다 팔라 그러면 어떡해요?”

이태신 실장이 벌건 눈을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걱정도 많다. 그런데서 돈 빌린 거 아냐. 그리고 신장이랑 콩팥이랑 같은 거야. 둘 다 팔면 죽지. 나중에 예능 나가서 말실수하고 욕먹지 말고 공부해.”

“지금 그게 문제예요? 그게 문제냐고요! 실장니임···!”

“너희들 잘될 걱정이나 해. 너희가 뜬 다음에 나 다시 불러서 써주면 되지.”

이태신 실장과 멤버들이 생이별하는 가족들처럼 서로 붙들고 애달파하는 동안. 나는 한발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차가운 머릿속에 앞으로의 계획이 빼곡하게 채워진다.

결심은 더 확고해졌다.

내가 가져오자. 통째로.

“싱글 앨범 내시는 건 어떠세요. 예정대로.”

“······네?”

이태신 실장이 나를 홱 돌아본다.

괴롭게 일그러진 얼굴 위로 혼란이 번졌다.

“앨범이요?”

“네. 저랑 같이.”

곡소리가 뚝 그쳤다.

난장판인 방바닥을 대강 치우고 둘러앉았다.

이태신 실장과 멤버들은 얼떨떨한 표정이다. 내가 같이 앨범을 내보자고 말한 이후부터, 네 명 모두 내 말이 무슨 뜻인지를 해석하고 눈빛으로 토론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일단 곡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고, 곡이라면.”

이태신 실장이 눈을 깜빡거렸다.

“DOM이라는 작곡가한테서 받으셨다던. 다른 곡이 또 있어요?”

“아, 아뇨. 그거밖에 없어요.”

“설마 그 곡, 다른데 넘어가가나 하진 않았죠?”

“그럼요! 연두야, 너 노트북에···!”

“잠깐만요!”

이름을 불린 멤버가 부리나케 움직였다. 곧 넷북 하나가 방바닥에 놓였다. 이태신 실장이 음악파일을 찾았다. 손이 굳었는지 마우스커서가 몇 번이나 이상한 곳을 누른다. 이윽고 스피커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이드 버전이다. 반주 위에 허밍이 얹어진.

곡을 듣는 동안, 이태신 실장과 멤버들은 숨소리까지 죽인 채 기다렸다.

4분도 안 되는 곡은 금방 흘러갔다.

“어······저기, 어떠세요?”

이태신 실장이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그와 붕어 셋을 쭉 돌아보고 대답했다.

“좋은데요. 귀에 확 꽂히네요.”

“저, 정말이요?”

거짓말이다.

입술에 침을 바르고 새빨간 거짓말을 떠들었다. 사실은 쥐뿔 모르겠다. 무명 걸그룹을 단숨에 음원차트 1위에 올려놓을 곡. 반짝 인기가 아니라 적어도 2주 이상 정상을 지킬만한 곡.

김현조도 이건 누가 불렀어도 떴을 곡이라고 했으니까, 들어보면 정말 작살처럼 귀에 꽂힐 줄 알았는데.

듣기에 좋은 곡이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딱 그 정도다. 나한테는.

하긴, 이태희의 자작곡인 위성을 처음 들었을 때도 큰 감흥은 없었지.

이걸로 확실해졌다. 내 귀는 저질이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얼마 전에 이태희가 들려줬던 자작곡 세 곡도 나한텐 이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는 거다. 어쩌면 그 곡들도 1위를 노려볼만한 곡들일 가능성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쭉 올라간 느낌이랄까.

역시 다른 팀원들하고 A&R팀에 들려주고 전체회의를 하는 게 좋겠다. 이 싱글곡하고 이태희 자작곡 세 개를 동시에 들려줬을 때 김현조가 어떤 곡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할 지, 그것도 좀 궁금한데.

“저기, 저희랑 같이 앨범, 그거 진심으로······.”

우물쭈물하는 목소리가 생각을 흐트러뜨렸다.

다른 멤버들이 나를 부른 멤버를 황급히 잡아끈다.

“야아, 방해하면 어떡해! 생각하시잖아!”

“너, 너무 궁금해서.”

“참아!”

붕어들이 부산스럽게 속닥거렸다. 내 눈치를 살피면서.

“진심이야.”

내 말에 셋의 눈이 확 커진다. 벌어진 입이 뻐끔거린다.

이태신 실장을 바라봤다. 당장 질식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앨범 준비가 맨손으로 되는 건 아니니까, 저도 회사로 들어가서 얘기를 좀 해봐야 정확하게 정리가 되겠지만. 진심입니다. 프리티걸 다음 싱글, 같이 만들어 봤으면 좋겠는데. 어떠세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가 내 손을 덥석 붙들었다.

이태신 실장이 초조하게 다리를 떨었다.

팀을 뛰쳐나간 멤버들과 연락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정재이의 핸드폰은 나와 통화한 이후로 계속 꺼져있다. 아까 있었던 일을 말했더니, 이태신 실장이 안타까운 얼굴로 거듭 말했다. 뭔가 사정이 있을 거라고. 연락 되는대로 얘기해볼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지만 정재이만 묵묵부답인 게 아니었다.

나머지 두 명도 마찬가지다. 한쪽은 신호만 가고 있고, 다른 한쪽은 신호마저도 중간에 뚝뚝 끊어진다.

이건 아무리 봐도 전화를 피하는 것 같은데.

“애들이 지금 많이 과열된 상태라서······. 너희 핸드폰으로 한번 걸어봐.”

“실장님 전화도 안 받으면 저희 전화도 안 받을걸요.”

붕어들이 중얼거리며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응답은 없다.

대신 한 명에게 메시지가 날아왔다.

이태신 실장이 황급히 물었다.

“누구야, 애들이야?”

“효진언니요.”

“효진이? 뭐래, 뭐라고 왔어?”

“······짜증나니까 전화하지 말래요 실장님한테도 그만 좀 하라고 전하래요.”

내용 때문에 울컥했는지 통통한 뺨이 움찔거린다.

막말을 하고 나갔단 말은 들었지만, 내 생각보다 분위기가 더 안 좋은 모양인데. 그러고 보니 아까 이태신 실장이 그랬지. ‘언니들이 신경전’을 벌였었다고. 원래 멤버들 사이가 좀 삐걱거렸나?

“혹시, 메시지로 정 실장님 얘기를 좀 해도 괜찮을까요?”

이태신 실장이 애타는 얼굴로 말했다.

“실장님이 같이 일해보자고 하신 거 알면, 애들도 마음 고쳐먹고 올 텐데.”

“메시지는 좀. 만약 다른 사람이 보면, 순식간에 기사로 뜰 수도 있어서요.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상태라. 지금처럼 제대로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기자 먼저 터지면 곤란합니다. 그리고 멤버들이···.”

의구심이 든다.

이태신 실장의 말대로 뛰쳐나갔던 멤버들이 내 이름을 듣고 혹해서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프리티걸이라는 팀이 하나로 뭉칠 수 있을까. 이미 컵은 깨졌는데. 그걸 조각조각 이어 붙여서 물을 담아놓는다고 해도, 얼마나 버틸까.

원래대로라면 다 같이 잘됐을 애들이고, 어쨌든 내가 만든 나비효과인 만큼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게 나로선 덜 찝찝한 일이긴 하지만. 통째로 가져오기로 작정한 이상, 불안요소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뭐, 그 멤버들하고 직접 얘기해본 게 아니니 아직은 기우일 뿐이지만.

고개를 저으며 일어났다.

“일단 회사로 가봐야 될 것 같습니다. 서로 문제 해결하고, 다시 얘기하죠.”

멤버들이 우르르 현관문 밖까지 나와 배웅했다. 애들을 들여보내고 혼자 주차장까지 따라온 이태신 실장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애들이 있어서 위에선 말을 못 꺼냈는데, W&U에서 저희 같은 팀에 투자를 해 줄까요? 돈이 한두 푼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하루만 시간을 주시면 제가 돈을 좀 마련해서 보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면 더 가능성이···.”

나는 미니밴에 올라타며 대답했다.

“그 문제는 저한테 맡기세요.”

***

3팀장이 사무실 안을 휘휘 둘러보곤 김현조를 불러냈다.

그가 라운지 자판기에서 믹스커피 두 잔을 뽑으며 물었다.

“복덩이 오늘 회사로 출근 안 하냐?”

“뭐 다른데 들렀다가 온다는데? 왜?”

김이 올라오는 커피를 마시며, 3팀장이 용건을 꺼냈다.

“어제 보니까 걔가 생각이 좀 많은 거 같던데, 얘기해봐야 되는 거 아냐?”

“벌써 했어.”

김현조가 어깨를 으쓱였다.

“했다고?”

“실적으론 한참 전에 역전당한 무능력한 선배라서 나도 가끔 깜빡깜빡 하는데, 내가 걔 사수거든. 어젯밤에 형은 모르는 선후배간의 대화가 좀 있었어.”

농담 섞인 말에, 3팀장이 김현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서 그 대화는 잘 됐고?”

“내 생각엔 그런 것 같은데. 선우 출근하면 표정 보고···.”

김현조가 멈칫했다. 4층 엘리베이터가 열리더니, 정선우가 불쑥 나왔다.

자판기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정선우의 눈이 커다래졌다. 입 꼬리도 올라간다. 잘 됐다는 듯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를 보고, 3팀장이 김현조의 옆구리를 툭 쳤다.

“너 상담에 소질 있는 거 아니냐? 쟤 오늘 얼굴에 생기가 넘치는데?”

“그러게. 지금이라도 직업을 바꿀까.”

“팀장님, 실장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잠깐 괜찮으세요?”

정선우가 대뜸 말했다. 둘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세 사람은 회의실 하나를 차지하고 마주앉았다.

“뭐가 이렇게 급해? 무슨 얘긴데?”

“혹시 프리티걸이라는 걸그룹 아세요?”

“프리티걸? 이름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앨범 몇 개 말아먹은 중고 신인 아냐? 걔들은 왜?”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3팀장과 김현조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선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프리티걸이 다음 앨범으로 디지털 싱글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문제가 생겨서 소속사랑 관계가 끊어졌어요. 준비하던 싱글 앨범도 엎을 판이고요.”

“흔한 일이네. 곧 해체 수순 밟겠구만.”

3팀장이 혀를 찼다.

“그래서 그 프리티걸이라는 애들이 왜?”

기다렸다는 듯, 정선우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한번 키워보고 싶어서요.”

프리티걸의 음악방송 무대 영상이 끝났다.

3팀장과 김현조는 새까맣게 죽은 태블릿 화면을 한참 더 쳐다봤다. 그들의 낯빛도 비슷한 색이었다. 곧 3팀장이 차갑게 식은 커피를 털어 넣었다. 커다란 손 안에서 종이컵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저 여섯 명 중에 고등학생 셋 남았다고. 나머지는 짐 싸가지고 나가고.”

“지금 당장은 그런 상황이죠.”

“걔들 싱글 앨범을 제작하고 싶다는 거지.”

“네.”

“그 싱글 곡은, 도미라는 무명 작곡가 곡이고?”

“DOM이요, 돔.”

“도미고 가자미고, 지금 그게 문제냐!”

버럭 외친 3팀장이 뒷목을 붙잡았다. 앓는 듯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가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는 김현조에게 물었다.

“야, 너 어젯밤에 쟤랑 무슨 대화를 했다고?”

“······뭐 하나 말아먹는다고 인생 안 끝난다고. 즐겁게 일하라고.”

“아이고.”

“부담 갖지 말라고 한 말인데. 약빨이 과하게 들었나봐.”

“과한 정도가 아니라 도핑 테스트해야 돼. 저놈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3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김현조가 한탄하듯이 말했다.

“야, 너는, 왜 또 이상한데 꽂히고 그러냐. 남조윤 씨는 홀몸이기라도 했지. 얘들은 팀이잖아. 그리고 너 한명이 붙는다고 될 일도 아니고. 앨범 만드는 거면 녹음, 믹싱, 안무팀도 필요하고. 뮤비도 찍어야 되고. 스타일리스트에, 메이크업 아티스트에, 회사에서 투자할 게 산더민데. 실패했을 경우에 리스크가 너무 크잖아. 네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 않냐?”

“복덩이 너 안목 좋은 거 알지. 아는데, 이번엔 일 벌이는 사이즈가 심하게 크다. 이건 본부장님이나 대표님한테까지 올라갈 것도 없어. 나가서 직원들 붙잡고 물어봐라. 다 너보고 미친 거 아니냐고 할 걸?”

흥분해서 속사포처럼 내뱉은 3팀장이, 이번엔 달래듯이 말했다.

“놓치기엔 가능성이 아까운 애들이면, 넵튠 수록곡에 피쳐링으로 써보는 방법도 있어. 그러니까 뜬금없는 싱글 앨범은 접어두고, 넵튠 정규 앨범에 더 집중해.”

“결과가 좋으면 넵튠한테도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겁니다.”

“뭐?”

“좋은 결과 낼 자신 있습니다.”

정선우가 두 사람을 똑바로 보며 덧붙였다.

“계획도 있고요.”

*

백한성 대표가 대표실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본부장이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인사하는 목소리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당장 소리 내 웃고 싶은 것을 참는 것처럼, 둥글둥글한 뺨이 씰룩거렸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아니, 복덩이 하는 짓이 나날이 재밌어지잖아요. 걔가 제 인생의 활력소라니까요? 십년 동안 묻혀있던 무명배우를 데려와서 살려놓더니, 이번에는 해체 직전까지 간 걸그룹한테 꽂혔다잖아요. 그것도 반은 도망가고 반만 남은.”

본부장이 한참을 낄낄거렸다.

홍차로 목을 축이고 겨우겨우 웃음을 삼킨 그가 다시 말했다.

“근데 이게 참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한데, 복덩이가 벌이는 일이라 그런가, 너무 궁금하단 말이에요. 얘가 그 걸그룹에 손을 대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그게 궁금해서 한번 시켜보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흥미진진하게 떠들던 본부장이 불현듯 눈살을 찌푸렸다.

“어이구야. 이거 입단속 잘해야지, 기자들이 알면 난리 나겠네. 뒤집어지겠는데요?”

“그렇겠지.”

백한성 대표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럼 들어볼까. 무슨 생각인지.”

곧장 핸드폰을 꺼낸 본부장이 전화를 걸었다.

“어, 대표님 지금 들어오셨어. 복덩이 올라오라고 해.”

< 무능하거나, 유능하거나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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