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능하거나, 유능하거나 (1) >
“뭐? 뭐라고?”
2팀장이 멍청한 얼굴로 물었다.
뜬금없이 터진 기사 때문에 복잡했던 머리가, 2팀장 덕에 말끔하게 정리됐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 고민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2팀장의 반응에 집중하고 싶다고나 할까.
모두들 아닌 척 2팀장을 힐끔거리고 있다. 팝콘이 필요한 눈으로.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2팀장이 거칠게 직원들을 제치고 화면을 쳐다봤다.
“이런, 뭐, 이게 무슨 개소리야!”
“그 ‘보는 눈 없는 담당 팀장’ 엿이나 먹으라는 소리 같은데?”
3팀장이 친절히 대답했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코미디 프로를 보는 얼굴이다.
“실명만 안 밝혔지, 그냥 대놓고 깠네. 누군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는데. 이거 봐라. 저 팀장은 W&U 안티냐, 시말서라도 써야 되는 거 아니냐는 댓글에 추천 엄청 박혔다. 이게 웬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유명세야?”
“어떤, 어떤 정신 나간 놈이 기자한테···!”
피가 거꾸로 솟는지, 2팀장의 낯빛이 붉으락푸르락 요동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3팀장은 여전히 천연덕스러웠다.
“그러게나 말이다. 어떤 놈이 팀킬을 했나. 그렇게 입조심들 하라고 신신당부를 해도 꼭 이런 놈들이 있다니까. 문제야, 문제.”
“관계자 이거, 이거 어떤 놈이야! 정선우, 너냐?”
그렇지. 불똥이 나한테로 튈 줄 알았다.
핏대를 세우고 노려보는 2팀장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뇨. 저 기자가 저랑 인터뷰를 했으면 고작 저걸 물어봤을까요.”
남조윤과의 관계나,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칭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일 텐데. 그리고 뭣보다 내가 익명 뒤에 숨어서 2팀장에 대한 비하인드를 털어놨으면 저거 몇 줄로 끝나지도 않았다. 얘깃거리가 워낙 많아야지.
어쨌든 내 말에 납득했는지 2팀장이 화살을 돌렸다.
“아니면 누구야? 어떤 새끼가···!”
“생사람 잡지 말고 너희 팀에 가서 찾아봐.”
3팀장이 웃음을 지우고 말했다.
“뭐?”
“네가 뭐라고 했는지 정확하게 아는 걸 보면 너랑 미팅룸에 같이 들어간 놈들 중에 있겠구만, 뭘. 그러니까 남의 집에 불 났나 기웃거리지 말고, 가서 너희 집에 난 불이나 끄라고.”
“너, 이···!”
씩씩거리던 2팀장이 멈칫했다. 그리고 사무실을 홱 돌아본다. 전화통화중인 박 팀장을 제외한 모두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손에 든 핸드폰과 2팀장을 번갈아 힐끔거리는 사람도 있다.
결국 2팀장이 자리를 피하듯 사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어떤 놈인지 잡으면 가만 안 두겠다는 말만 남기고.
사무실 안에 헛기침 섞인 웃음이 번졌다. 언제부턴가 나도 웃고 있었다. 3팀장은 아예 배를 잡고 낄낄거렸다. 의자 째로 벌렁 넘어질 뻔한 걸 김현조가 간신히 붙들었다.
“아이고, 망신도 이정도면 역대급 개망신이다. 그러게 사람이 심보를 곱게 써야지, 엿 먹이겠다고 작정하고 익명으로 떠든 놈을 어떻게 잡을 거야? 평판 엄청 신경 쓰는 놈인데, 한동안 저것 때문에 난리겠구만.”
3팀장이 내 팔을 툭 치며 속삭였다.
“야, 복덩이. 근데 진짜 너 아니냐?”
“아니라니까요. 제가 인터뷰했으면 망신으로 안 끝났죠.”
내 대답에 3팀장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여긴 뭐가 이렇게 재밌어요? 나 혼자 심각하네.”
언론사와 통화를 끝냈는지 박 팀장이 다가왔다.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자기 혹시, 남조윤 씨한테 따로 뭐 받은 적 없지? 돈이라든가.”
웃음소리가 확 사라졌다.
“없어요. 왜요?”
“기자가 취재하면서 그런 얘길 들었다던데. 자기가 남조윤 씨한테 개인적으로 거액의 돈을 받고 얼라이브에 꽂아준 거라고. 이송하한테 끼워 팔기 해서. 사실이냐고 묻더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헛소린데요.”
영화 푯값 대려고 밥도 굶었던 사람인데, 거액의 돈은 무슨.
이송하 식욕 떨어지는 소리하고 있네.
“출처가 어디예요, 그거?”
“그건 못 알아냈어. 기자도 팩트 확인이 안 되니까 기사에선 빼고 날 떠보는 거 같더라고. 남조윤 씨가 잘되니까 배 아픈 머저리들이 있나본데. 언론사에는 근거 없는 헛소리니까 기사 쓰면 재미없을 줄 알라고 해놨어.”
말하면서, 박 팀장이 마우스를 잡았다. 화면이 새로 뜬다. 조금 전에 본 단독기사 말고도 나와 남조윤의 이름을 사이좋게 걸어놓은 헤드라인이 몇 개나 더 보였다. 그걸 보고서야 나도 다시 기사에 신경이 쏠렸다.
“그새 우라까이 기사들 올라오네.”
박 팀장이 손뼉을 쳤다.
“우리도 빨리 보도자료 내보냅시다. 루머 같은 거 발도 못 붙이게!”
*
눈 깜짝할 사이에, 남조윤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갔다.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를 찍은 얼라이브의 화제성, 내 이름의 화제성, 그리고 남조윤과 내 스토리를 휴먼다큐 뺨치게 정리해 준 박 팀장의 보도자료. 이 세 가지가 만나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덩달아 얼라이브도 다시 실검에 떴다.
SBE 필름에서 지원사격 고맙다며, 남조윤의 캐스팅 건에 대해 명쾌한 보도자료를 뿌렸다. 최성원 감독의 코멘트를 포함해서. 덕분에 악질 루머 따위가 수면위로 올라오는 일은 없었다.
하루 만에 남조윤의 이름이 언급된 게시글과 SNS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지난번 남조윤의 가족들과 함께 시사회를 보러갔을 때 찍혔던 사진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남조윤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남조윤이 누군지 아는 사람? 왜 듣보잡이 실검에 떠 있지?
-얼라이브에 출연한 배운데, 십년 무명이다가 이 영화로 급부상 중.
-영화보고 관심 생겨서 자료 찾고 있는데 진짜 없음. W&U들어간 것 같던데 열일 해줬으면 좋겠다.
-아, W&U 들어가고 뜬 거예요? 연예인 띄우는 건 진짜 소속사 힘이구나.
-W&U가 아니라 정선우 실장 버프예요. 오피셜 기사 뜸. 남조윤이 W&U 전속계약 미팅했다가 물먹었는데, 정 실장이 남조윤한테 혼자 꽂혀서 따로 키웠대요. 그리고 몇 개월 만에 남조윤 관 뚜껑 열고 살아난 거.
-헐. 이건 운으로 되는 수준이 아닌데? 진짜 능력자네.
-정 실장, 나도 좀 키워주라!
남조윤과 얼라이브가 실검에서 내려간 후에도.
여전히 내 이름은 거기 남아있다.
기사도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초반엔 단순하게 보도자료를 기반으로 한 이슈 기사와 어뷰징으로 도배되더니, 어느 순간부터 대중문화평론가나 업계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넣은 기획기사들이 속속 올라왔다.
연예인이 뜨는데 회사와 매니저의 힘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나와 남조윤, 넵튠, 특히 이송하를 엮어 가면서.
남조윤의 반응을 모니터링 하는데 반 이상이 나와 관련된 내용이다. 정선우, 미다스의 손, 원석 발굴, 비결, 2년째 성공가도. 비슷비슷한 키워드로 범벅된 기사와 게시글, 댓글들이 흘러넘쳤다.
갑갑하다.
“기승전정선우네.”
뒤에서 불쑥 목소리가 들렸다.
어깨에 담요를 덮은 김현조가 하품을 하며 다가왔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야심한 시간이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주변이 시끌시끌했었던 것 같은데, 적막하다. 지금 사무실에 남아 있는 건 나랑 김현조 둘 뿐이었다.
대체 얼마나 이러고 앉아있었던 거지?
뻑뻑한 눈을 문지르는데, 김현조가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너 이러다 돈다발 든 박카스박스 같은 거 받는 거 아니냐?”
“그런 농담 하지 마세요.”
“농담 아닌데? 이 바닥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냐? 그런 무명가수, 무명배우들 눈에는 지금 네가 지푸라기도 아니고 황금 동아줄로 보이지 않겠냐?”
눈살이 찌푸려졌다.
안 그래도 오늘 전화 엄청 받았다. 연기학원에 다니는 애들 프로필을 보낼 테니까 한번 보기만 하라는 레슨선생, 내 딸이, 아들이, 조카가, 연습생 생활만 몇 년째 하는 중인데 한번 만나만 보라는 사람들.
그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그리고 기사를 볼 때마다 머리위에 망치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오늘 하루 내 키가 10센티쯤 줄었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였지, 부담이 커진 게.
“근데 너 퇴근 안하냐? 가서 쉬어, 임마.”
“고민하던 게 있어서요.”
집에 가봤자, 어차피 오늘도 뜬 눈으로 꼴딱 샐 것 같고.
“실장님은 왜 안 들어가세요?”
“난 A&R팀에서 넘어온 곡들 좀 듣고 있었지. 그거 보니까 진짜 감회가 새롭더라. 이만큼 떴구나 싶은 게. 곡 모집 끝나지도 않았는데, 저번 미니앨범 낼 때보다 훨씬 많이 들어왔어. 퀼리티도 좋고. 수록곡 고르는 것도 꽤 애먹겠다.”
“앨범 망하면 어떡하죠?”
불쑥, 나도 모르게 물었다.
오랫동안 참고 있던 것이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흐뭇하게 웃고 있던 김현조가 나를 쳐다봤다. 잠이 확 깬 얼굴로.
“얌마, 부정 타게. 네가 그런 말하면 더 찝찝해. 왜, 앨범 망할 거 같냐?”
“그런 건 아닌데, 좀 걱정돼서요. 중요한 앨범이잖아요. 무조건 성공···.”
“뭐 다른 앨범은 안 중요했냐? 항상 중요하지. 그리고 어떡하긴 뭘 어떡해,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도 이번 앨범 말아먹으면, 만에 하나 그러면, 그 다음 앨범은 꼭 성공 시켜야지.”
김현조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넵튠이 이제 앨범 하나 말아먹는다고 그룹 존망이 흔들리는 급은 아니잖아. 송하 악성 개인 팬들이 더 늘어날 거라는 게 문젠데. 송하도 당장 차기작 들어가는 거 없으니까 그룹 단체로 리얼리티 프로 같은 거 하나 잡아서 최대한 정리해 봐야······ 너 표정이 왜 그러냐?”
“네?”
“너 지금 표정이 되게 희한한데.”
표정은 잘 모르겠고, 기분이 희한한 건 맞다.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내보냈다.
“아니, 전 요즘 망한 다음에 어떡할까 하는 생각은 아예 안하고 있었던 것 같아서요. 어떻게 해야 안 망할까, 잘못되면 안 되는데. 어떻게 해서든 성공시켜야 되는데, 방법이 없을까, 뭐 이런 생각만 했지.”
언제부터 이랬지.
프리티걸에 대한 미래를 보고 난 다음부터였나?
생각하고 있는데 김현조가 묘한 얼굴로 물었다.
“너 입사하고 나서 지금까지 크게 말아먹은 적이 한 번도 없나? 한번도?”
“······없죠.”
“그래서 그런가. 매니저 업계에 획을 그을 대단한 기록인 건 맞는데, 뭘 그렇게 집착하냐. 하나 말아먹으면 인생 끝나냐? 난 넵튠 데뷔시켜놓고 2년 동안 죽 쒔는데. 나는 쓰레기냐? 아니, 이건 내가 생각해도 좀. 예를 잘못 들었네.”
김현조가 헛기침을 했다.
“수완 좋기로 유명한 백 대표님도 할리우드에선 몇 번이나 물먹었는데. 네가 하는 일마다 다 잘되면 그게 비정상이지. 그럴 수 있으면 지금 바로 회사를 차려, 임마. 나도 좀 데려가고.”
상상이라도 한 듯 낄낄거린 김현조가 계속 말했다.
“그리고 언론에서 미다스의 손이니 뭐니 떠드는 것도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네가 국가대표냐? 그냥 써먹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해. 오늘만 해도 봐. 덕분에 남조윤 실검 찍었잖냐.”
김현조가 내 등을 퍽 때리며 덧붙였다.
“그러니까 일 즐겁게 해, 임마. 즐겁게. 너 그러다가 탈모 온다.”
밤을 새고 있다.
또. 삼일 째.
하지만 지난 이틀 밤하고는 좀 다르다. 지금까진 머릿속의 실타래가 만질수록 꼬이기만 했다면, 오늘은 좀 풀리는 느낌이랄까.
김현조가 했던 얘기를 곱씹으면서 생각해봤다.
왜 그렇게 압박감을 느꼈을까. 왜 그렇게 부담스러웠지?
김현조의 말처럼 뭐 하나 말아먹는다고 내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물론 안 말아먹고 성공하는 게 좋지. 지금까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해야 하나?
무조건,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어떻게 해서든?
왜 그렇게 해서라도 성공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을까. 대체 왜?
의문을 가지고 부담감을 한 꺼풀 벗고 나니, 생각이 차근차근 정리됐다.
이태희의 자작곡이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렇다고 실패가 예정된 것도 아니다. 로열패밀리와 얼라이브가 그랬던 것처럼.
물론 프리티걸의 싱글은 성공하겠지.
그 곡을 가져와서 넵튠이 불러도 성공할 확률이 높고.
하지만 그 이후에도 나는 지금하고 똑같은 사람일까. 그 이후에도 내가 손채영이 과거에 했던 짓을 경멸하고, 최건영을 배신자라고 부르고, 2팀장이 하는 짓을 비열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나도 똑같아질지도 모르는데.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하자.
영혼을 구정물에 쑤셔 박진 말고, 수단 방법은 좀 가리면서.
그렇게 결정하는 걸로 하고.
고민도 끝났으니, 이제 잠 좀 자자.
*
-근데 실장님, 오늘 기분 되게 좋으신가 봐요?
이름 모를 기자가 친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가 밝으신데··· 아, 생각해보니 기분이 나쁘실 리가 없겠네요. 얼라이브 관객 수는 이틀 만에 2백만 넘기고 계속 질주중이겠다, 어제 실검 이후로 남조윤씨 인지도도 훌쩍 올라갔겠다.
“그런 것도 있고, 어젠 오랜만에 잠을 잘 잤거든요. 상쾌하네요.”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운전하며 대답했다.
아침 내내 기자들과 통화하고 있다. 하룻밤이 지났는데도 내 이름은 아직 포털 실검 끄트머리에 남아있다. 기사도 꾸준히 뜨는 중이고. 내 인터뷰 내용이 기사에 삽입되면, 남조윤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되겠지.
써먹을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됐는지, 꽤 할 만하다.
사람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더니. 오늘부턴 다시 즐겁게 일하자, 즐겁게.
차를 세워놓고 다시 말했다.
“기자님, 저 이제 엘리베이터 타야 하는데 더 질문하실 거 없으시면···.”
-아! 실장님, 하나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요!
기자가 황급히 말했다.
-혹시 남조윤 씨 이후에는 못 보셨어요? 뜰 것 같은 연예인.
곧바로 프리티걸이 눈앞을 스쳤다.
-어, 바로 대답이 없으신 거 보니까 누구 있으시구나? 살짝 귀띔만 좀···!
“전화 끊자마자 기사 쓰실 거면서.”
-아니에요,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 궁금해서!
기자가 애달프게 캐물었지만, 명확한 답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시동을 끈 차에 홀로 앉아서 생각했다.
곡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정보는 남는다.
무명의 프리티걸이 다음 싱글에서 기사회생할 거라는 것. DOM이라는 작곡가한테서 받은 곡으로 적어도 2주 동안 주간차트 1위를 할 거라는 것. 정재이라는 멤버가 ‘제2의 이송하’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뜬다는 것도 알고.
이 정보를 잘 써먹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서로 윈윈하는 방향으로.
그러고 보니 프리티걸 회사가 사정이 안 좋다고 했지. 멤버들 무대의상 맞출 돈도 없어서 직접 수선해서 입는 형편이라고. 앨범 하나 만드는 데 돈이나 품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걸 생각해보면······.
이태신 실장에게 연락해서 한번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또 다시 전화가 울렸다. 이번에도 모르는 번호다.
“네, 여보세요?”
-저기, W&U 정선우 실장님 맞으시죠?
긴장한 듯 살짝 머뭇거리는 목소리.
방송 관계자나 기자이겠거니 했는데, 느낌이 좀 다르다.
“맞습니다. 누구세요?”
-저 프리티걸 정재이라고 하는데요. 얼마 전에 생방송 대기실에서 뵀던.
정재이?
“아··· 기억해요.”
생각지도 못했던 상대라 대답이 늦었다.
그날 얘한테도 명함을 주긴 했는데, 나한테 무슨 볼일이지?
-혹시 시간 괜찮으실 때, 따로 만나 뵐 수 있을까 싶어서요.
“저를? 무슨 일로··· 프리티걸 일이에요?”
-아뇨. 저 프리티걸에서 나왔어요.
뭐?
등받이에 기대고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이해가 안 되는데, 그룹에서, 프리티걸에서 탈퇴했다고요?”
-네. 정 실장님이랑 일하고 싶어서요.
더욱더 이해가 안 되는데.
이게 지금, 무슨 헛소리야?
-그날 멤버들 중에 저만 계속 보셨잖아요. 마음에 드셨던 거 아니에요? 저 정말 열심히 할게요. 그동안 피디님들한테 프리티걸에 있기 아깝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고, 팬도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제가 제일 많아요.
“지금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 말을 자르고, 정재이가 조급하게 말했다.
-돈 어느 정도 필요한지, 액수만 말해주시면 금방 준비할 수 있어요. 돈 말고 다른 것도 시키시면 할게요. 그러니까 실장님, 저 좀 키워주세요. 이송하 선배님처럼. 남조윤 선배님처럼요.
< 무능하거나, 유능하거나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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