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122화 (122/218)

< 물리고 물리는 갑을관계든, 신경전이든 (4) >

“아니 왜, 손채영이 여길 왜 왔지? 뭐예요?”

입을 벙긋거리던 성 실장이 날 쳐다본다.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아, 왠지 정 실장님은 알 것 같아서. 둘이 사이가 꽤.”

“안 좋구요. 왜 왔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토네이도를 목도한 사람들처럼 굳어있는 동안, 공항은 예상에 없던 탑스타의 등장에 시끄러웠다. 팬들은 쳐다봐달라며 손을 흔들었고, 사진기자들은 일제히 셔터를 눌렀다.

손채영은 그들에게 여유롭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걸어온다.

“이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요.”

“그러게요.”

“암만 봐도 정 실장님 보고 오는 것 같은데.”

“선글라스 쓰고 있는데 그게 보입니까. 그냥 여기에 세이프 라인이 처져 있으니까 이리로 오는 거겠죠. 회사 사람들이랑 경호원들도 여기 다 모여있고.”

라고 말은 했지만, 어째 내가 보기에도 내 쪽으로 오는 것 같다.

토네이도가.

“뭐야, 왜 일로 오는 거야, 또 무슨 시비를 걸려고?”

불쑥 튀어나온 임서영이 허리에 양손을 얹고 눈을 부라린다.

“시비 걸기만 해봐, 어디!”

“걸면 뭐, 손채영이랑 붙으면 네가 이기겠냐, 멍청아?”

“괜찮아, 우린 네 명이잖아! 숫자 앞에 장사 없어! 우리가 이겨!”

임서영이 가슴을 내밀면서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핀잔을 주면서도, 엘제이 역시 임서영 옆에 선다. 이태희도 덩달아 그 옆에 섰다. 아니, 덩달아라고 하기엔 이태희 눈빛도 착 가라앉아있다.

다들 이송하 문제로 손채영한테 맺힌 게 많긴 하지.

애들은 뒤에 선 이송하랑 나를 감싸는 것처럼 학익진을 만들고 서 있고, 이송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고요하게 타오르면서.

“송하야, 너 지금 뭐 찾냐.”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빠. 그냥 손이 좀 허전해서요.”

“그 손은 그냥 허전하게 둬.”

“오빠한테 또 무슨 짓 하면 어떡해요. 제가 대비를.”

“하지 마. 대비하지 마. 여기 기자 쫙 깔렸다.”

이송하가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기자들 없었으면 정말로 투척용으로 뭐 하나 들었을 태세다. 손채영이 아직 뭔 짓을 저지른 건 아닌데. 이젠 손채영 얼굴만 보면 반사적으로 투척 욕구에 사로잡히는 모양이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주위는 조용해졌다.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불안한 얼굴들을 하고 있다. 혹시 여기서 뭔 일 나는 거 아닌가, 기자들 눈치 못 채게 인간 바리케이드라도 쳐야 하나, 뭐 그런.

다행히 이송하는 말렸는데, 전투력 넘치는 애가 또 있다.

임서영이 집 지키는 용맹한 강아지처럼 으르렁거렸다.

“어디 한번 와 봐, 와 봐! 덤빌 테면 덤···!”

“안녕.”

손채영이 웃으며 인사했다.

그러니까, 웃으면서.

토네이도의 예상치 못한 패턴에, 앞에 선 애들이 우뚝 굳었다.

숨죽이고 쳐다보던 스텝들도 눈을 동그랗게 뜬다.

손채영이 태연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스치듯이 눈이 마주쳤다. 눈동자에 떠오른 빛이 묘하게 감정적이라고 생각했을 때.

손채영이 다시 한 번 웃으면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성 실장한테.

그리곤 나는 본체만체하며 홱 옆으로 가버린다. 그리고 다른 스텝들과 빠짐없이 인사를 나누더니만, 조금 떨어진 벤치형 의자에 앉는다. 경호원과 자기 코디들에게 둘러싸여서.

화가 난다기보다는 황당하다.

너무 대놓고 ‘나 지금 너 무시한다, 무시할 거다’라는 태도라.

“왜 저래? 기자들 때문에 저러나?”

“그런가 보지. 이미지관리 하나는 투철하네.”

앞에서 임서영이랑 엘제이가 도끼눈을 하고 수군거린다.

성 실장이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정 실장님, 최근에 손채영이랑 싸웠어요?”

“새삼스럽게. 처음부터 지금까지 안 싸운 적이 없었는데요.”

“아니, 그래도 너무 정 실장님만 무시하는데요? 왜 저래요?”

“모르죠, 저도.”

“당사자가 모르면 누가 알아요?”

“저 속은 아무도 모를걸요. 손채영이잖아요.”

내 말에 성 실장이 깊은 깨달음을 얻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좀 떨어져 있던 임주원이 이쪽으로 다가오며 감탄했다.

“와, 손채영 선배 시상식 때밖에 못 봤는데, 코앞에서 보니까 더 끝내주네요. 나중에 꼭 작품 같이했으면 좋겠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말이 씨가 된다는데!”

성 실장이 식겁해서 속삭였다. 임주원이 어깨를 으쓱거린다.

“왜요, 저 선배 성격 좀 있다는 건 나도 들어서 아는데, 그래도 내 이상형이란 말이에요. 뭔가 깨끗하고 애틋한 분위기가, 남자의 보호본능을 자극하잖아요.”

올해들은 개소리 중 최고다.

성 실장이 임주원 눈에 쓰인 콩깍지를 벗기려고 노력하는 동안, 중국 측 스텝들과 통화를 하고 돌아온 김현조가 손채영을 발견하고 심장마비가 온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씨, 비행기가 아니라 앰뷸런스 탈 뻔했잖아!”

김현조가 손채영 뒤를 따라온 2팀 소속 실장에게 따지듯 물었다.

“쟤 뭐야? 뭔데?”

“그러니까 그게, 나도 모르겠다. 니미럴.”

2팀 실장이 거무죽죽한 낯빛으로 중얼거렸다.

“서지준 쪽이 개인적인 일이 생겨서 출국을 미뤘어. 그래서 비행기 표 취소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손채영이 지가 이걸 타겠다는 거야. 나도 팀장님이 시켜서 땜빵으로 쫓아온 거야. 급하게 나오느라고 팬티도 한 장 못 챙겼다.”

“쟤가 중국엘 왜 가는데? 스케쥴 있어?”

“베이징에서 화보 찍는대. 다음 주에.”

“다음 주 스케줄인데 왜 지금 가?”

“몰라, 지가 이걸 타겠대! 갑자기! 배우들 변덕 심한 거야 종특이지만, 손채영은 진짜 끝판왕이다, 끝판왕.”

김현조가 미간을 움찔하며 물었다.

“설마 우리랑 같은 호텔이야? 아니지? GHB는 예약 안 하면.”

“그 호텔 소유주가 손채영이랑 밥한 번 같이 먹으려고 난리였대.”

“염병할.”

김현조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성 실장도, 나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같은 표정이었다. 물정 모르는 임주원과 몇몇 스텝들만 기뻐했다. 이게 웬 횡재냐며. 횡재가 아니라 재해인 줄도 모르고.

임주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까 임서영 씨가 한 말이 딱 맞네요. 진짜 MT 같겠다.”

MT는 개뿔!

손채영이라는 토네이도가 상륙해서 좋은 점이 딱 하나 있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서은교가 찌그러진 것.

고양이 수호령이나 로열패밀리의 다른 배우들은 다 출발일정이 제각각인데, 하필이면 서은교랑만 겹친다. 그 얘길 듣자마자 비행기 안에서도 긴장하고 있어야 하나 싶었는데, 그 걱정은 덜었다.

서은교도 처음엔 위풍당당했다. 감독 작가도 없으니 군기 좀 잡아볼까 하는 표정으로 우리 쪽으로, 정확하게는 이송하한테 다가올 때까지만 해도.

하지만 곧장 뒤에 있는 손채영을 발견하고 식겁했다.

“아, 안녕하세요, 선배.”

“안녕하세요.”

나이는 서은교가 위지만, 경력이랑 연예인으로서의 급으로 따지면 손채영이 훨씬 높다.

전체적으로 밀리는 입장이라서인지, 넵튠 애들과는 떨떠름한 고갯짓 한 번으로 인사를 끝내더니 손채영 앞에서만큼은 무척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손채영이 입 끝을 살짝 올리면서 인사를 받자, 기죽어서 눈치를 보던 서은교가 반색했다. 눈빛에는 이 기회에 손채영이랑 친해지겠다는 열망이 가득 떠오른다.

손채영한테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듯한 모습이, 오늘은 여왕벌이 아니라 치와와 같다.

“저 예전에 선배랑 같이 촬영한 적 있는데. 혹시 기억하세요?”

“그랬어요? 나랑 붙는 배우들은 거의 다 기억하는데, 모르겠네.”

“아, 그땐 제가 엑스트라였어요. 그래서 기억 안 나시나 보다. 회상 씬에서 선배랑 같은 고등학교 반 친구로 나왔었는데. 근데 선배도 같은 호텔에 묵으신다면서요?”

손채영이 도로 선글라스를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선배랑 되게 친해지고 싶었는데. 그동안 기회가 없었어요. 연예인 모임 같은 것도 안 하시고, 소속사 연예인들하고만 친하게 지내시잖아요. 신비주의시라.”

신비주의는 무슨. 치와와 풀 뜯어 먹는 소리 하고 있네.

“로열패밀리도 선배랑 같이 찍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쉬워요. 며칠 안 되지만, 지내는 동안 잘 부탁드려요.”

서은교가 손채영한테 찰싹 달라붙으며 떠들었다.

얼마 전 장 작가를 끌어안았을 때의 그 얼굴로.

가만히 그 꼴을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진짜 거지 같은 투샷이다.

*

“선우야.”

창 너머로 구름을 보고 있는데, 옆좌석에서 김현조가 불렀다.

“네, 실장님.”

“손채영이 너 쳐다보는 거 같은데.”

“저요?”

뒤를 돌아봤다. 손채영은 태연히 잡지를 보고 있었다.

“아닌데요.”

“맞아. 아까부터 봤어. 노려보는 거 같기도 하고.”

김현조와 몇 마디를 더 나누다가, 불시에 뒤를 돌았다. 그리고 손채영하고 눈이 딱 마주쳤다. 손채영의 오른쪽 눈썹이 살짝 들린다. 그리고 화장기 없는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왜 봐요.’

유치원생이야?

유치하게 입씨름하고 싶진 않아서 도로 눈을 돌리려는데, 시야에 동그란 머리통이 기웃기웃하는 게 보인다. 손채영의 앞자리에 앉은 이송하가 목을 빼고 날 쳐다보고 있다. 저를 좀 보라는 것처럼.

눈이 마주치자 살짝 웃는다.

손채영이 난입했기 때문인지, 덩달아 이송하도 아까부터 미묘하게 정상이 아니다. 딱 봐도 엄청 의식하고 있다. 제 구역을 침범당한 짐승처럼 안절부절못하는 느낌이다.

역시 저 둘은 붙여놔서 좋을 게 없어.

같은 호텔에 머무는 동안 최대한 마주칠 일이 없게 해야겠다.

평화를 위해 고민하는 사이, 짧은 비행을 끝내고 베이징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인원을 체크했다. 연예인만 일곱 명이다 보니 스텝들까지 포함하면 어마어마한 인원이었다.

파악을 끝내고 대이동을 하려던 때였다.

공항상황과 이동 차량을 살펴보러 나갔던 스텝들이 당황한 얼굴로 돌아왔다. 베이징 공항 측 관계자들, 그리고 시커먼 양복을 입고 귀에 리시버를 낀 경호원들과 함께.

“공항에 팬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몰려서 이대로는 못 나갈 것 같다는데요? 이 정도일 줄 모르고 경호원을 많이 배치하질 않아서, 자칫하면 안전사고 날 것 같답니다.”

“사람이 그렇게 많아요?”

“수백 명 모였대요. 공항 바깥까지 바글바글하답니다.”

“뭐야, 윤태경도 있는 줄 아는 거 아니야?”

김현조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안 그래도 이런 상황이 벌어질까 봐 윤태경은 비밀리에 움직이기로 했다. 중국 스케줄을 소화하는 김에 겸사겸사 중국 예능에도 출연하기로 해서, 그쪽 방송사에서 전세기를 보내기로 했다나.

윤태경은 한번 뜨면 공항 주변이 마비되는 급이니까. 기사를 보니까 지난번엔 거의 천명이 몰렸다던데. 중국 공안이 직접 경호를 해야 할 정도였다더만.

“뭐야, 누구 보러 몰려왔지? 서은교 보러왔나?”

“아니면 서지준이나 송하······ 는 그 정도 인지도는 아니고.”

“손채영이 비행기 탄 게 벌써 소문 난 걸지도 몰라요.”

김현조를 비롯한 실장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수군거렸다.

스텝이 다시 말했다.

“VIP 통로로 몰래 나가야 할 것 같다고, 그쪽 출구에도 리무진이랑 경호원들 배치하는 중이래요. 지금 그쪽에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준비 끝날 때까지만 여기서 대기해달랍니다.”

“으아아, 대박. 공항에 해외 팬들 몰리는 거 기사에서나 봤는데!”

흥분한 임서영이 내 팔을 붙들곤 발을 동동 구른다.

“오빠, 오빠, 근데 우리 보러 온 사람도 한두 명쯤은 있지 않을까요? 막 피켓 들고 우리 나오도록 기다리고 있으면 어떡하지? 몰래 빠져나가면 실망할지도 모르잖아요! 우리는 그냥 입구로 나가면···.”

“확실히, 우리가 나간다고 안전사고가 날 것 같진 않은데요.”

엘제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거들었다. 그 말을 들었는지, 스텝이 공항 측 관계자와 중국어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임서영과 엘제이 쪽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나가셔도 된답니다. 걱정 없을 것 같답니다.”

“좋긴 한데, 쪼금 슬프다.”

임서영이 복잡한 얼굴로 말했을 때였다.

“그쪽 팀은 빨리 갈 수 있어서 좋겠네요.”

서은교가 불쑥 말했다.

웃으며 우리 쪽을, 특히 이송하를 힐끔 보더니 스텝에게 묻는다.

“그래서 여기서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데요?”

언뜻 보면 귀찮아하는 것 같지만, 어깨가 올라가 있다.

“아, 일정 급하시면 서은교 씨도 그냥 나가셔도 될 것 같답니다.”

“네?”

서은교가 머리를 쓸어넘기는 자세로 멈칫했다.

눈알이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게 여기서도 보인다.

“저요? 저?”

“네. 서은교 씨요. 바쁘시면 먼저 나가셔도 됩니다. 괜찮습니다.”

저건 확인사살인데.

몇 초간 멍하니 있던 서은교가 황급히 선글라스를 꺼내쓴다. 그래봤자 목까지 시뻘겋게 달아오른 게 훤히 보인다. 그리고 몇몇 스텝들도 얼굴이 벌게졌다. 웃음을 참느라고.

“어, 그리고 임주원 씨도 같이 나가셔도 된다고 하고요.”

“이거 상대적 박탈감 끝내주네. 부럽다, 한류스타.”

임주원이 입맛을 다시며 손채영을 쳐다봤다.

솔직히 손채영 때문이라면 대단하긴 하다. 비행기 뜨기 전까지만 해도 손채영이 중국으로 온다는 건 아무도 몰랐는데, 그 사이에 수백 명의 팬을 공항으로 모이게 할 수 있다는 게.

이런 건 한류스타 중에서도 윤태경쯤 되는 남자 배우나, 블랙아웃처럼 해외 극성 팬이 많은 보이그룹이나 가능할 줄 알았는데.

“손채영 씨는 VIP 통로 이용해주시고요.”

역시 손채영 때문이었구나.

스텝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 피가 쏠리다 못해 피 칠갑을 한 것 같던 서은교도 당황을 좀 수습했는지, 다시 손채영한테 달라붙어서 말을 건다. 역시 선배는 다르네, 어쩌네, 하면서.

그때 스텝이 다시 말했다.

“그리고 이송하 씨도요!”

“네?”

“어, 송하요? 얘요?”

다들 놀란 얼굴이었다. 나도 그렇고, 당사자인 이송하도 그렇고. 심지어 임서영은 이송하의 뺨을 쿡 찌르면서 얘 말하는 거 맞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스텝과 공항 측 관계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이송하 씨요.”

< 물리고 물리는 갑을관계든, 신경전이든 (4)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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